(제 57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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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날 저녁은 길가의 마을에서 묵었다.

이튿날 정오무렵 장문휴의 일행은 장성에 다달았다.

보수공사를 위해 발이 닳도록 밟아본 장성이였지만 장문휴에게는 보면 볼수록 새롭고 신기하게만 여겨졌다.

장성앞에서 말을 멈춰세운 장문휴는 군사들에게 일렀다.

《저 성우에 올라가 꾸려온 점심을 먹고가자.》

말우에서 뛰여내린 장문휴는 흙으로 높이 다져쌓은 성벽으로 나는듯이 기여올랐다.

여기는 보루가 없는 곳이여서 조용했다.

장성에는 10~20리에 하나씩 보루가 있고 보루마다에 백여명의 군사들이 항시 진을 치고있었다.

파도가 늠실거리는 넓은 료수가 발치에 굽어보이는 그 자태 웅건한 장성우에 올라선 장문휴는 마치도 자신이 삼척검을 휘둘러 이 땅을 지켜낸 고구려의 장수인듯싶었다.

하긴 오늘의 장수라고 해서 선조들만 못해야 한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

부풀어오르는 가슴을 들먹이며 끝간데 없이 이어진 장성에로 눈길을 던지니 이 성벽을 일떠세우느라 들끓었던 선조들의 억센 모습이 보이는것만 같았다.

여기 천리장성은 날로 심각해지는 당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구려 영류왕14년에 첫삽을 떠서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연개소문장군때 끝을 본것이였다.

산과 들을 가로지르며 길이길이 뻗어나간 장성은 웅자가 실로 대단하였다.

열댓걸음의 밑폭에 그 높이가 여러길 되는 이런 큰 성벽을 천리에 아득히 펼쳐놓았으니 선조들의 통이 얼마나 웅장했던가를 사무치게 느끼는 장문휴였다.

단지 아쉬운것은 이 거대한 장성을 료수건너의 저 서쪽으로 쑥 내여 다 쌓았으면 더 좋지 않았겠는가 하는 그것이였다.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가?…

고구려의 선조들이 어이하여 이 자리에다 장성을 쌓았는지 그를 말해주는 기록들이 당나라군에 의해 불타버려 전해지지 못하였지만 장문휴에게는 곧 그 까닭이 료수를 천연해자로 삼으려 했을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것이였다.

장문휴는 제곁에 와선 군사들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장성을 가리켜보이며 말했다.

《이 성벽이 무너지면 나라가 위태로와지고 이 성벽이 굳건해야 나라가 무사할수 있다는것을 너희들은 명심하라.》

격한 어조로 이 말을 하고난 장문휴는 불쑥 떠오르는 생각으로 눈길을 들었다.

불쑥 떠오른 생각이란 요즘 내내 가슴 한구석에 납덩이런듯 무겁게 매달려있는 근심거리에 대한것이였다.

계루왕이 보내준 소식을 깊이 음미해보면 당나라가 우리와의 싸움준비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는 해답이 나온다.

영왕이라는자가 부임지로 내려오기 전부터 간계의 능수들을 불러들여 무슨 꿍꿍이를 하였다는데 이건 벌써 상당한 정도로 싸움준비가 진척되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다.

그것들이 어떤 계략으로 우리와 맞서려는것일가.

그걸 알아야 일격에 그것들을 짓뭉개버리겠는데 깜깜이니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장성우에 올라서고보니 하늘의 계시런듯 눈앞이 환해지는것이였다.

명백한것은 적들이 거란에게 길을 빌려달라는 계략은 절대로 쓰지 못한다는것이다.

거란이 발해를 치러 가는 길을 빌려주지도 않거니와 우리가 그걸 허용하지도 않기때문이다.

당당한 강대국인 우리 발해가 시퍼렇게 살아있으면서 우리를 치러 오겠다는걸 어찌 내버려둘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더이상 우리의 강토가 전장으로 되는것을 허용할수 없다. 또 제 집문앞에서 불이 나는것도 허용할수 없는 우리다.

그걸 모르지 않기에 영왕은 그런 수는 쓰려 하지 않을것이다. 그럼 어떤 수를?!…

영왕이 능구렝이라는데 그런 음흉한 작자라면 보통 엉큼한 수를 쓰려 하지 않을것이다.

그 엉큼한 수라는것도 이제는 알만 하다.

영왕은 필경 저희 조정이 거란에 대해서 써왔던 그런 교활한 수를 쓰려 할것이다.

그 수에 걸려든 거란이 얼마나 막대한 손실을 당했던가.

수십년전 성무고황제가 영주에서 당나라군을 몰아내는 싸움을 크게 일으켰을 때 거란에서는 손만영이란 사람이 저희 족속을 이끌고 그에 합세하였다.

이에 질겁한 당나라것들은 거란사람들끼리 싸우게 하는 리간계를 써서 결국 손만영이 자기 부하에게 살해되였다.

계속되는 당나라의 간계때문에 10여년전에는 거란추장의 4촌동생이라는 리실활이 저희 추장에게 반기를 들었다. 싸움끝에 추장을 이길수 없게 된 리실활은 적지 않은 병력을 끌고 당나라로 넘어갔다.

그로 하여 거란은 심히 약해졌다.

거기에 맛들인 당나라것들은 영왕으로 하여금 이번에도 그 수법으로 거란추장 리소고를 해치려 할것이다.

이걸 막자면 우리 조정이 거란에 사신을 급파하여 그들을 각성시켜야 한다.

그와 동시에 나는 장성의 수비를 더 굳게 하고있다가 당나라군이 거란의 지경으로 기여든다면 지체없이 반격전으로써 문앞의 전란을 몰아내야 한다.

이날 오후 장성근방에 진을 친 군진을 찾아가 실태를 료해하고 제기되는 부족점들을 바로잡아준 장문휴는 거란을 노리고있을수 있는 당나라의 리간계를 앞질러 짓부시는것이 좋겠다는 상주문을 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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