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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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녹기 바쁘게 중요한 군진들의 군사들만을 남겨두고 부안의 모든 군사들과 백성들을 천리장성의 보수공사에 불러낸 장문휴는 한달 가까이 현지에 나와 살면서 공사를 내밀었다.

도독이 어느 하루도 현지를 떠나지 않고 공사를 내미니 일자리가 푹푹 났다.

장성을 하얗게 덮은 사람들은 밤에도 쉬지 않고 다그쳤다.

그 결과로 공사는 장문휴가 타산했던것보다 더 빨리 진척되였다.

청제비가 날아들자 장문휴는 좋은 기분으로 백성모두를 돌려보냈다.

남은 공사량은 얼마 되지 않으니 군사들만 가지고서도 넉넉히 보름이면 마무리를 할수 있었다.

몇명의 장수들에게 남아서 공사를 마감짓게 한 장문휴는 새 일거리를 안고 영으로 돌아왔다.

새 일거리란 강력한 병선들로 바다를 두텁게 하는 배무이였다.

고구려의 선조들처럼 서해를 외적의 무덤으로 만들자면 지금 있는 병선만으로는 부족하였다.

한 이백여척쯤 더 만들어낸다면 서해를 우리의 세상으로 다질수 있었다.

그런데 괴로운것은 장문휴의 수중에 식량예비가 없는 그것이였다.

식량이 없이는 그 많은 병선도 그림의 떡이였다.

그렇다고 근근히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달씩이나 부역에 끌어내면서 저 먹을 식량까지 가지고 나오라고 할수도 없었다.

그 많은 식량을 어떻게 장만한다?!… 이런 때는 조정에 손을 내밀어도 되지 않을가?!…

이런 생각으로 왕종군과 마주앉은 장문휴는 그에게 물었다.

《우리가 찾아내여 조정에 올려보낸 봉물짐을 배무이에 쓰도록 돌려달라고 하면 어떻겠소?》

왕종군도 딱해하며 대꾸했다.

《지금 형편으로는 그렇게밖에는 달리할수 없소이다.》

《공의 생각도 그렇다면 우에다 손을 내미는 수밖에…》

장문휴는 내키지 않았지만 붓을 집어들었다.

봉물짐을 돌려주십사 하는 상주문의 서두를 막 쓰려 하는 찰나 기척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온태곤이 아뢰였다.

《도독어른, 웬 처녀가 도독어른을 꼭 만나뵙겠다 떼를 쓰는데 어찌 하오리까?》

금시 이마를 찡그린 왕종군이 장문휴를 대신해서 소리쳤다.

《이녀석아, 어찌 도독어른이 한가하게 내인들이나 만나줄수 있단 말이냐? 상소할게 있으면 함통에 넣고 돌아가라고 해.》

함통이란 백성들이 억울한 사정을 글로 써서 넣을수 있도록 관가의 대문앞에 가져다놓는 통을 이르는 말이다.

장문휴는 이해 정월부터 함통을 만들게 하고 열흘에 하루는 그속에 모아진 상소문을 꺼내서 판결을 해주고있었다.

장문휴가 없을 때에는 왕종군이 그를 대신하였다.

《원참… 이모부도, 함통에 넣을 일 같으면 벌써 그렇게 하게 한지도 오랬지요. 아주 중요한것이 있기에 반드시 도독어른에게만 아뢰겠다 그냥 뻗치니 이러는것이오이다.》

그 말에 한글자도 쓰지 못한채 장문휴는 붓을 집어던지고말았다.

아주 중요한걸 알려주겠다는데 아녀자라고 해서 마다할수 있는가. 장문휴는 방문을 열며 일렀다.

《어서 데려오게.》

좀 있어 온태곤이 처녀를 뒤에 달고 들어섰다.

처녀는 국화꽃을 수놓은 푸른 바지에 역시 꽃을 수놓은 저고리를 입고있었다.

이런 옷차림은 젊은 녀인들에게서 흔히 볼수 있었다.

머리를 틀어올리지 않은것을 보아 아직 처녀가 틀림없었다.

큰절을 하는 처녀를 유심히 굽어보던 장문휴는 퍼그나 놀라와했다.

이목구비가 어느 하나도 흠잡을데 없이 고운 미인이기때문이였다.

동모산에도 이런 미인은 흔치 않을것이였다.

장문휴는 처녀에게 방석을 내여주며 일렀다.

《이걸 깔고앉아라.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만나자고 하느냐?》

방석우에 무릎을 꿇고앉은 처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녀의 이름은 산련이라 하나이다. 이번에야 처음으로 그리운 고국을 찾아왔사옵니다.》

《?!…》

《당나라의 안서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옹근 한해가 걸렸나이다.》

너무도 생각밖의 일이라 장문휴도 왕종군도 온태곤이도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방안에는 산련이의 담담한 목소리만이 조용히 울리고있었다.

《소녀는 이역땅 안서에서 태여났소이다. 소녀의 할아버지는 고구려때 바로 여기 료동성에서 관가의 재물을 맡아보는 일을 했다 하오이다.

고구려가 무너지자 당나라군은 수많은 고구려사람들을 끌어갔는데 그때 소녀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등에 업혀 머나먼 안서로 끌려갔소이다.

안서에는 그때 끌려온 고구려유민들이 많이 살고있소이다.

이역땅에서 병든 할아버지는 운명하기에 앞서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어떻게 하나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하시면서 누구도 모르는 일을 알려주었나이다.

허나 아버지는 고국으로 돌아갈수 없었소이다. 당나라군의 기찰이 어찌도 심한지 식솔들을 데리고 빠질수 없었소이다.

무정하게도 세월이 흘러 어머니도 쓰러지고 아버지도 돌아가게 되였소이다.

이역만리에 저 홀로 남게 되자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고국으로 돌아가라 신신당부하였나이다.》

장문휴는 산련이의 이야기가 너무도 기이하게 들려와 숨소리마저 죽이였다.

잠시 말이 없던 산련이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가죽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그속에서 머리수건만 한 비단천을 끄집어낸 산련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 천에는 고구려가 무너질 때 저의 할아버지가 말굽은을 숨겨둔 자리가 표시되여있나이다.》

장문휴는 그 말이 꿈만 같아 물끄러미 산련이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내가 배무이에 얼마나 고심했으면 마치도 꿈이런듯 이런 처녀가 나타나 나를 희롱하는것일가?!…

얼이 나간듯 물끄러미 자기를 바라보기만 하는 장문휴가 이상하게 생각되여 그를 조심스레 쳐다보던 산련이 빙긋이 웃었다.

《도독어른, 소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소이다. 자, 말굽은이 숨겨진곳이 그려있는 이 천을 받으시오이다.》

산련이가 비단천을 손에 쥐여주어서야 장문휴는 정신이 펄쩍 들었다.

그럼 이게 꿈이 아니고 생시란 말이지. 아, 하늘이 돕는구나. 제발 그래주었으면…

비단천을 펼쳐든 장문휴는 비로소 깨달아지는것이 있었다.

안원부는 예로부터 금은보화가 많기로 세상에 알려진 고장이다.

고구려시기 이 고장의 절홀같은 은점들에서는 수백호가 전업으로 은을 캐서 나라에 바치였던것이다.

무려 수백호가 달라붙어 은을 캤다면 한해에 적어도 수천근의 은을 거두어들였을것이다.

그런 은점이 한두개도 아니요 또 한두해 캔것도 아니니 고구려가 얼마나 많은 금은보화를 쌓아놓았겠는지 알만 하지 않은가.

선조들로서는 그 억만금의 재부만은 외적에게 넘겨줄수 없었을것이다.

고구려는 잃었어도 반드시 나라를 다시 일떠세우리라는 뜻을 품은 선조들이였기에 장차 밑천으로 쓰일 은금보화를 여기저기 땅속에 숨겨두었을것이다.

산련이의 할아버지가 숨겨두었다는 말굽은도 하많은것들중의 하나일것이다.

산련이의 손을 덥석 부여잡은 장문휴의 두눈에 기쁨의 눈물이 고여올랐다.

이튿날 장문휴는 산련이와 함께 호위군사들을 거느리고 료동성을 나섰다.

비단천에 표시된 말굽은의 은닉장소는 료동성에서 수십리 떨어진 산골짜기에 있었다. 그 산골짜기로 조금 올라가면 산중턱에 절벽이 나지고 그 절벽아래에 굴이 있는데 바로 그안이 은닉장소라는것이였다.

절벽아래에 이른 장문휴는 군사들에게 굴입구를 찾아내라는 령을 내렸다.

오랜 세월이 흘러서보다 은을 감추었던 그때의 사람들이 큰 입구를 메워버렸을것이였다.

군사들이 한겻이나 나무를 베여내고 땅을 파본 끝에 드디여 흙속에 묻혀있던 굴입구를 찾아내였다. 굴은 사람이 허리를 펴고 들어설만 하였다.

불망치를 켜들고 선참 굴안에 들어선 장문휴는 높뛰는 가슴을 진정할수 없었다.

정말 여기에 말굽은이 있을가, 있다면 얼마나?!…

굴은 들어갈수록 넓고 높아졌다. 어찌나 굴이 높은지 장문휴의 머리가 굴천정에 닿지 않았다.

열댓보쯤 들어섰는데 굴이 방안처럼 넓어졌다.

장문휴의 입에서 《야!-》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바로 거기에 나무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몇번이고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건만 틀림없는 상자의 무지였다.

《도독어른, 제가… 제가 열어보겠소이다.》하며 창끝으로 첫번째 상자의 뚜껑을 뜯어낸 온태곤이 환성을 질렀다.

《야!- 굉장하구나. 이걸 보소이다.》

상자안에서 말발굽모양으로 빚은 은덩어리들이 불망치아래 번쩍거렸다.

장문휴도 감탄을 터뜨렸다.

《이게 정녕 은덩이란 말이지!》

온태곤이 또 다른 상자를 뜯어보이는데 뜯어보이는것마다에 한모양새로 말굽은이 가득했다.

흥이 난 장문휴가 군사들에게 일렀다.

《이걸 어서 밖으로 내여가라.》

굴밖으로 나온 장문휴는 즐거운 마음으로 흰구름이 점점이 떠있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내 인생에 이런 기쁜 일도 있다니… 이게 정녕 꿈은 아니겠지.

꿈에서는 사람이 실 한오리 걸치지 않고서도 밖으로 버젓이 나다니기도 하고 저승사람들도 만나 회포를 나누기도 하고 금붙이로 지은 집에서 살기도 한다만…

지금껏 병쟁기밖에 만져보지 못했던 이 손으로 천만금을 주물러보다니…

나는 이 보물로 병선을 꽝꽝 무어낼테다. 그렇게 하는것이 이 보물을 숨겨둔 조상들의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늘이 산련이를 보내주었을것이다.

이역땅을 빠져나온 산련이를 위해서도 이 보물은 고스란히 나라방비에 써야 한다.

《도독어른, 보물을 전부 끌어냈소이다.》

온태곤의 흥분에 찬 소리에 돌아다보니 굴앞에 수십개의 은상자가 무져있었다.

장문휴는 골짜기에 세워놓은 마차들을 가리켰다.

《어서 내려다 싣게.》

성수가 난 군사들이 은상자에 달라붙었다.

장문휴는 굴아가리를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산련이에게 말했다.

《네가 정말 큰일을 했다. 네가 세운 공이 외적을 몇천놈 버인것만 못하지 않다.》

그 말에 산련이 오열을 터치였다.

이역땅에 묻힌 부모님들의 소원을 끝끝내 지켜드렸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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