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2. 신념의 침로

태양을 옹위하여

(1)

 

황금색으로 무르익던 대지는 어느새 수확의 계절을 넘어 만산의 단풍이 성글어가는 11월의 마감고개에 올라서고있었다.

해방된 조국에서 가슴벅찬 집회와 모임이 날이 감에 따라 늘어날수록 김광진은 해방의 봄바람을 압살하려 미친듯이 불어대는 테로바람, 모략바람을 짓부시며 거기에 모든 심혼을 쏟아부었다.

그무렵 반동분자들은 종파분자들의 해독행위로 말미암아 청년학생들을 유일한 조직에 묶어세우는 사업이 지연되는 틈을 타서 일부 동요하는 청년들을 부추겨 소동을 일으키게 하였다. 신의주지방에서는 반동분자들이 일부 각성되지 못한 학생들을 추동하여 공산당을 반대하는 란동까지 부리게 하였다.

해방후 정세가 복잡한 기회를 리용하여 당과 정권기관에 기여든 종파분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차지한 직권을 악용하여 국가와 인민의 재산을 사취하고 개인의 향락과 사리사욕에만 눈이 어두워 돌아쳤다. 도보안부장이라는자는 여러채의 집을 가로챈 후 첩까지 두고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고있었다. 당내에 끼여들었던 가짜공산주의자들의 이러한 행동은 일제의 악선전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던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공산당에 대하여 의혹을 품게 하였다. 이때를 노리고있던 반동들은 《보라, 공산당원들이란 바로 저렇다.》 하면서 순진한 청년학생들을 불순한 행동에로 추동하였다. 그리하여 11월말 반동들의 꾀임에 넘어간 중학생들이 공산당 도당부와 도인민위원회를 습격하는 불상사가 일어났으며 도보안부장이라는자는 학생들에게 총질까지 하도록 지시하였다. 사태는 인차 수습되였으나 민심은 매우 흉흉하였다. 반동분자들은 《공산당이 학생들을 죽인다.》고 악선전을 하면서 밤마다 시내의 곳곳에서 총질을 해대고 그것을 공산당에서 하는 행동이라고 요언을 퍼뜨렸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심정에 휩싸여 걱정들은 하였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신의주시안의 형편은 매우 복잡하였다.

광진은 놀랐다. 아니 의아했다. 그가 알고있건대 신의주와 그 주변의 의주, 삭주, 벽동, 룡천, 박천일대는 반일감정이 특별히 강한 고장들이였다. 오동진, 리관린, 공영, 최동오와 같은 사람들이 다 평안북도가 배출한 애국지사들이다.

하다면 신의주학생들의 저 소요는 어떤 인간들의 각본에 따라 빚어진것일가.

무엇보다도 새 세상을 그렇게도 바라던 조선의 학도들이, 새 나라건설에 한몸바칠 꿈과 리상을 실현하기 위해 한시한초라도 배움에 힘써야 할 인재들이 어쩌다가 그렇게 불미스러운 반란에 몸을 잠그고 깨끗한 넋을 흐리고있는것인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저렸다.

그것도 보통반란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을 반대하다니.

이것은 분명 반역의 찌꺼기들이 고안해낸것일거고 학생들은 그 한줌도 못되는 찌꺼기들에게 롱락당하였을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사태의 엄중성을 통찰하시고 반동분자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며 아직 각성이 부족한 청년학생들을 옳은 길로 이끄시기 위하여 주체34(1945)년 11월 26일 몸소 평안북도를 현지지도하시였으며 11월 27일에는 신의주시군중대회에 참석하시였다.

그때 김광진은 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하였다.

야밤에 어느 한 개인집에 대한 습격사건이 있은 뒤로는 주간보다 야간보초에 더 눈을 밝히며 힘쓰는 조경복이 이상한 감촉을 느끼고 꽝꽝 공포를 쏠 때마다 김광진은 멀리 하늘가를 바라보며 뇌이군 하였다.

《일없을가? 장군님께서는 무사하신지.… 아무렴 하늘이 내신분이신데 감히 어떤놈이?》

그럴 때면 총소리에 깜짝 놀라 깨난 왕수복이 나와 남편과 조경복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군 하였다.

《인제는 들어와서 좀 쉬라구.》

그무렵 광진은 밤에도 급작스레 밀려드는 피곤때문에 의자등받이에 머리를 제끼고 앉아 눈을 감고있다가도 머나먼 의식의 한끝에서 번개불같은 방전을 일으키며 졸음을 몰아내는 충격에 떠밀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군 하였다.

아직도 시내에는 적지 않은 일본인이 남아있으며 친일분자들과 무장을 가진 반동분자들, 테로분자들이 의연 총소리를 내며 민심을 소란시키고있었다.

광진은 며칠전 죽전리(지금의 대동문동)의 삼성모자상점에서 당창건회의장소에 폭발물을 설치할 음모를 꾸민적있던 10명의 일본군 헌병잔당들과 반동놈들을 일망타진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10월 13일 평양시내 각계대표들이 베푼 환영연회가 진행될 때에도 창당대회를 파탄시키려다 실패한 놈들이 있어 김광진은 정신을 도사리였다.

주석단에 한방의 총알은커녕 자그마한 돌 하나도 날아들게 해서는 안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방안을 거니는 사이에 흐리터분하던 머리가 거뜬해지고 로독도 씻은듯이 사라졌다.

두손으로 얼굴과 목덜미를 스무번씩 문지른 다음 창문앞에 다가가 거리를 내다보았다.

광진은 17시경 자동차를 몰고 고읍식당으로 가서 자동차를 멈추었다. 아직 열지 않은 식당문을 광진이 두드리자 경비원인듯 한 사람이 나왔다.

김광진은 그에게 책임자가 어디 있는가 묻고 식당에 들어가 책임자와 이야기를 하고나서 식당취사장, 방안들을 구석구석 돌아보고는 조경복과 함께 돌아보면서 의심되는 점이 없는가를 주의깊게 살피고 또 살피였다.

그후 인민정치위원회로 갔다가 18시 30분경 다시 와서 식당의 구석구석을 또 돌아보고난 광진은 조경복에게 장군님께서 오신다고 알려주면서 그가 설 초소를 정해주고 보초를 잘 서라고 당부했다.

《경복이, 피곤하고 힘들지?》

《피곤하지 않습니다.》

조경복은 헌헌장부답게 가슴을 쭉 펴며 대답했다.

그러는 경복을 김광진은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다음날 김일성장군님의 조국개선을 환영하는 평양시군중대회주석단을 돌아보려 김광진이 누구보다먼저 공설운동장에 도착하니 환영군중이 수많이 있었으나 주석단에는 아직 사람이 없었다.

광진은 주석단의 앞뒤, 측면, 아래까지 일일이 살펴보고나서 호위사업을 위해 설 자리를 정해주었다.

이러한 광진이였으니 이밤도 멀리 신의주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에 대한 불안과 근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것이였다.

그후 공화국북반부의 민주건설사업을 파탄시키기 위하여 온갖 파괴암해책동을 다하는 계급적원쑤들의 발악적준동도 극심하였다.

오랜 세월 뿌리깊이 박힌 봉건적토지소유관계를 근본적으로 뒤집어엎는 토지개혁을 앞두고 반동들의 준동은 극도에 이르렀다.

로동계급의 지원밑에 농민들은 전국도처에서 반동들의 책동을 물리치면서 지주의 땅을 빼앗아 땅없는 농민들에게 나누어줄것을 청원하는 편지와 결의문, 요청서들을 위대한 수령님께 계속 올리였다. 주체35(1946)년 2월말에는 각지에서 선발된 300여명의 농민대표들이 평양에 올라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땅에 대한 농민들의 세기적소원에 대하여 말씀드리기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의 혁명적열의를 더욱 북돋아주며 대중의 앙양된 기세로 반동들에게 섬멸적타격을 가하기 위하여 해방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3. 1운동기념일에 각지에서 경축행사를 크게 조직하도록 하시는 한편 평양에서 대규모의 경축대회를 열도록 하시였다.

그날이 바로 주체35(1946)년 3월 1일이였다.

경축대회가 있기 전날밤 광진은 밤깊도록 잠들수 없었다.

3. 1운동의 소용돌이속에서 세계관의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던 그때의 흥분과 감회가 새록새록 되새겨지며 어제일이런듯 눈앞에 삼삼했던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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