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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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루왕은 아침부터 장안별궁의 후원을 거닐고있었다.

역적 문예의 행처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는 그의 귀에는 화창한 봄맞이로 나무들에 날아들며 지저귀는 고운 새들의 명랑한 울음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천천히 거닐며 발부리를 굽어보던 계루왕은 손에 들려있는 책에 눈길을 옮겼다.

이 책은 고국에서 가져온것이 아닌 당나라의것이였다. 여기 중원에서 사마염이 세운 진나라(서진이라고도 하였다.)때 장화라는 사람이 방탕하기로 추한 이름을 떨친 가황후에 대해 쓴 《녀사잠》이란 책이였다.

이 책을 얻었던 날을 생각할 때면 꼭 요귀에게 홀린듯 한 계루왕이였다.

이틀전이였다.

대문을 지키던 문지기가 달려와 어떤 기생이 주었다면서 책을 내놓는것이였다.

사연인즉 이 책을 발해의 황족이라는 사람이 발해태자에게 전해주라고 했다는것이였다.

깜짝 놀라 책을 펼쳐보니 책갈피속에 그렇게도 행방을 알수 없던 문예가 직접 쓴 글월까지 들어있었다.

글월에서 문예는 당나라조정을 통해 고국에서도 그렇고 계루왕까지도 이 삼촌을 오라지워가려고 행처를 찾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다면서 자기는 열스무겹의 든든한 보호속에 있으니 그런 부질없는짓을 단념하고 《녀사잠》이나 읽으면서 환락을 맛보라는것이였다.

문예의 이 처사에 심히 격분한 계루왕이 책을 가져온 기생을 찾게 하였으나 그 녀인마저 종적이 묘연하였다.

걸음걸음 이를 갈며 거니는 계루왕에게 두손을 모아잡은 풍걸이 조심히 다가가며 아뢰였다.

《전하, 오늘 오전중으로 주청이 전하를 만나뵙겠다고 했소이다.》

풍걸이에게로 눈길을 돌린 계루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리고 무슨 새 소식이 없느냐?》

풍걸이는 대답대신 한숨을 내쉬였다.

풍걸이 여기에 온 그날부터 계루왕은 한어에 류창한 그에게 여러명의 수종군들을 붙여주고 문예의 행처를 찾는 일을 전업으로 하도록 하였다.

계루왕의 도움속에 풍걸은 이 몇달동안 장안의 거리와 골목들을 살살이 훑었었다.

허나 문예는 땅속으로 잦아들어버렸는지 도저히 그 행처를 알길 없었다.

생각끝에 풍걸은 문예가 이 나라의 황궁이나 황족들이 사는 곳에 박혀있을것이라 타산하고 오늘은 신새벽부터 수왕부의 동정을 살피였다.

이 나라 군주에게는 30명의 황자들이 있었는데 수왕도 그중의 한사람이였다.

수왕은 부황의 으뜸가는 총애를 받는 무혜비가 낳은 황자로서 호화로운 별궁을 쓰고살았다.

허나 해가 높이 떠올라 수왕까지도 어데론가로 나섰지만 문예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허탕을 치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에 례부에서 원외랑의 벼슬을 사는 주청에게 들려 계루왕이 부른다는 말을 전했던것이다.

장마당에서 불량배들에게 뭇매를 맞던중 계루왕의 도움으로 구원된 그 은혜를 잊지 않고있던 주청은 인차 따라오겠다고 하였다.

대답대신 한숨을 짓는 풍걸을 바라보느라니 계루왕도 저절로 한숨이 나갔다.

도대체 이 역적놈이 어느 구석에 처박혀있을가. 지금껏 들인 공력이면 허허벌판에서도 흘린 바늘을 찾았겠는데…

문예의 행처를 찾느라 계루왕이 흘린 땀도 그 얼마인지 모른다.

당나라가 날로 승승장구하는 발해의 군력이 두려워 흑수말갈의 반란무리가 풍지박산난것도 모르는척 하고있는 이때 남의 땅으로 도망쳐온 문예의 목을 치는것이 자신이 맡아야 하는 제일 큰 일감이라 여긴 계루왕이였다.

그래서 안동도호 겸 평로군 절도대사로 부임되여 내려가려고 하는 영왕도 만나고 또 수차례나 주청을 불러 역적놈의 행처를 알아보았지만 아직은 소득이 전혀 없었다.

손짓으로 풍걸이를 물러가게 한 계루왕은 울적한 심사를 달래볼 심산으로 《녀사잠》을 펼쳐들었다.

몇장을 번지였더니 방에서 거울을 마주하고 머리를 빗는 녀인들의 그림이 나졌다.

그 그림을 들여다보던 계루왕이 고개를 저었다.

《허참, 나에게 이런 한가한 아녀자들의 자태나 들여다볼새가 있느냐 말이다?》

계루왕이 펼쳐들었던 책을 탁- 소리가 나게 접는데 《전하!》하고 부르는 소리가 곁에서 울리였다. 주청이였다.

그동안 이 나라것들이 발해를 노리고 꾸미는 음모의 내막을 적지 않게 알려준 주청을 마주하니 울적했던 심사가 좀 풀리는듯싶었다.

오승자와 같은 장수들과 진득여라고 하는 모략의 능수들 그리고 발해에 박혀있는 간자들도 영왕에게 넘겨주었다는 내막도 그가 알려준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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