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 회)

제 3 장

8

 

립춘도 지나고 우수의 절기에 들어서니 이때를 기다려온 장문휴는 수하장수들과 각 고을들의 관리들을 불러들이고 장성보수의 령을 내리였다.

현지를 직접 밟아보며 공사량을 타산하였기에 장문휴로서는 씨붙임전으로 이 일을 끝낼수 있다는 자신심이 만만하였다.

장성보수의 령을 내린 장문휴는 왕종군과 함께 하루종일 방대한 공사를 치르는데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바로잡아주고서야 처소로 돌아섰다.

방에 들어선 두사람은 또다시 부의 정사에서 걸린 문제들을 화제에 올리였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늘 그러했듯 아려가 밥상을 안고 들어왔다.

서른살을 가까이하고있지만 아려는 여전히 얼굴도 몸매도 곱고 싱싱했다.

밥상을 차려놓은 아려는 화로까지 들여왔다.

인차 숯발이 맞춤한 화로의 적쇠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참새고기가 익어갔다.

그것을 굽어보며 의아해하는 장문휴에게 왕종군이 싱글 웃으며 말했다.

《도독어른의 몸이 축가기에 소인이 오늘 이런 별식을 차리게 했소이다. 참새고기 한점이 소고기 열점보다 낫다는 말이 있지 않소이까.》

왕종군이 잘 구워진 참새고기를 가리키면 저가락을 쥔 아려가 잽싼 솜씨로 그것을 집어내여 장문휴의 앞에 놓인 접시에 놓아주었다.

《도독어른, 식기 전에 드시오이다.》

아려의 정찬 소리에 장문휴는 웃으며 참새구이를 집어들었다.

동모산에서도 참새고기를 적지 않게 먹어보았지만 비린내가 전혀 없는 이런 맛은 처음이였다.

발해사람들은 옛적부터 겨울에 참새구이를 먹는것을 즐겨하였다.

특히 추위가 여물대로 여문 랍일(동지가 지난 뒤 세번째로 《술》자가 들어간 날)에는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참새를 구워먹었다.

《헌데… 이 맛 참, 고소하다.》

장문휴의 감탄소리에 아려가 대꾸했다.

《이 참새구이는 좀 별난 비방으로 만든것이오이다.》

아려가 왕종군을 가리켰다.

《부도독어른께서 이르기를 털채로 가죽을 벗겨낸 참새를 물에 씻으면 비린내가 나기때문에 반드시 술로 씻으라고 했나이다. 술로 씻어 구운 참새고기는 비린내도 없고 더 만문해져 별맛이라 하기에 그렇게 했을뿐이오이다.》

아려의 목소리가 친근하게 들려서인지 장문휴는 더 감질이 났다.

왕종군이 아주 맛스럽게 참새구이를 먹는 장문휴에게 능청스레 웃어보이며 말했다.

《의원들 말이 참새구이가 신기를 돋구어주는데서 더 이를데없는 명약이라 하오이다.》

그 말에 아려가 얼굴을 붉히니 장문휴는 허허- 웃고말았다.

장문휴는 즐거운 기분에 저녁을 달게 들었다.

이윽고 저녁상을 내여가고 방에는 장문휴와 왕종군만이 남았다.

먼저 왕종군이 입을 열었다.

《도독어른.》하고 허두를 떼는 왕종군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요즘 부자들에게 떼운 땅을 찾게 해달라고 날마다 농군들이 찾아오는데 이를 어쩌면 좋겠소이까?》

피곤에 몰리던 장문휴가 두눈을 치떴다.

이런 성화라구야.…

땅을 찾게 해달라는 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쑤셔나는 장문휴였다.

언땅이 녹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땅을 찾아달라는 농군들의 상소가 날로 늘어만 가고있었다.

처음 장문휴는 그들의 청을 모두 들어주려 하였다.

그런데 알아보니 그 땅의 대부분이 십년 이전에 빼앗긴것이고 최근의것이래도 그 땅을 부자가 빼앗아가졌다는것을 증명할 문서조차도 없었다.

남의것을 빼앗은자들이 앞으로 그 땅을 가지고 분쟁을 일으킬수 있는 건덕지를 남겨놓을리 만무한것이였다.

그러니 한둘도 아닌 숱한 사람들의 땅을 무슨 수로 그 진상을 밝혀낼수 있단 말인가.

또 일이 잘되여 그 진상을 밝혀놓는다고 해도 이로 하여 부자들과 가난뱅이들간의 싸움이 격화될것이라 이는 부의 정사, 나아가서는 나라방비에 혼란을 가져다줄것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쇠달이네 초적을 힘들게 귀순시켜 나라를 소란케 하는 근원을 겨우 없애버렸는데 이때문에 또 다른 초적이 생겨나게 할수는 없지 않는가?!

장문휴는 대답을 기다리는 왕종군에게 엄한 눈길을 던졌다.

《나에겐 지금 장성이라는 큰일밖엔 없소. 그 일을 끝내면 병선을 무어야 하고…

나라방비에는 만족이란 있을수 없으니 그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이 자꾸만 생길거요.》

왕종군은 장문휴의 심정이 리해되여 고개를 끄덕이였다.

《또 한가지…》

왕종군은 장문휴에게 너무 짐을 지우게 하는것 같아 망설였다.

《말하오.》

장문휴의 재촉에 왕종군이 한숨을 짓고나서 말했다.

《조정에서는 빨리 부세를 올려보내라고 독촉이 불같소이다.》

부세라는 소리에 기분이 상한 장문휴는 벽에 기대이며 두눈을 내리감았다.

부닥쳐보니 부의 일을 바로한다는게 여간 고되지 않았다. 정말 힘에 부치였다.

이러다가는 마음고생으로 말라죽을것 같았다.

(그 부세만 아니여도…)

백성들에게서 자꾸만 내라고 하는 부세만 아니여도 살것 같았다.

부세란 나라에서 조세외에 각이한 명목으로 내라고 백성들에게 내리먹이는 재물을 이르는 말이다.

고을마다 짐승가죽이며 금과 은이며 과일이며 약초며 해산물, 말과 소, 종이와 같은 특산물이 있다.

바로 그것들을 백성들에게 부담지워 내라 하는데 그것으로 끝나는것도 아니다.

베와 명주는 온 나라 백성모두가 빠짐없이 내야 했다.

조정에서는 조세와 함께 부세를 누가 더 잘 바쳤는가를 가지고 관리들을 평가한다.

바로 그것이 탐관오리들에게 살길을 열어주고있었다.

그놈들은 나라에서 내라고 하는 부세보다 몇곱절로 긁어내여 제 배를 채우는것이였다.

허나 원래 남의것을 탐내는것을 수치로 여기는 장문휴인지라 부세를 거두어들이는 일만은 관심을 두지 않았던것이다.

이래놓으니 부세의 징수가 잘될리 없었다.

장문휴는 부세를 가지고 왕종군이 자기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이 사람은 나에게서 너무도 큰것을 바라고있다. 내가 황상마마의 믿음을 받고 또 안원부가 나라방비의 큰 몫을 맡고있다는데로부터 조정에 아뢰여 부세를 좀 덜어주기를 바라고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안원부의 부세가 덜어진다면 그만큼 국고가 줄어들게 된다는것을 전혀 생각지 않고있다.

사실 나라를 유지하려면 부세는 필요한것이다.

하기에 예로부터 천하의 모든 나라들이 부세를 거두어들이는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이 조세보다 과중하다니 장문휴는 심각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잠시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러나 이미 두눈을 크게 뜬 장문휴의 목소리는 저으기 엄했다.

《내 생각이 잘못된것 같소. 백성들이 고달프기는 해도 나라에서 정해준만큼은 부세를 바치는것이 도리일거요.

외적과 싸워이기자고 해도 국고가 넘쳐나야 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도독이란 사람이 이것을 잊고 살았소. 그러니 부세를 독촉하오.》

장문휴의 그 말에 왕종군은 마음이 언짢아졌다.

한다하는 장수가 다문 한번만이라도 조정에 손을 내밀려 하지 않고 물러서다니… 혹시 조정에서 들어줄지 알겠는가. 사실말이지 국법에 조세를 1할로 받기로 되여있지만 부세를 너무 높이 정해놓다보니 백성들이 그때문에 살아가기 어렵다. 관가에서 부세로 내라는걸 다 사다 바치자면 땀흘려 지어놓은 곡식을 거의다 내다 팔아야 하니 조세 1할은 명색뿐이다. 그러니 조세 1할이야말로 눈가리고 백성을 속이려드는 기만술책이 아니고 뭐겠는가.…

허나 그는 곧 장문휴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도독을 탓할수야 없지. 번을 드는 군사들에게 병쟁기를 해결해주는것만도 이즈음 백성들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는것이 아닌가.

나라법에 군역을 지는 남정들은 군마와 번을 드는 기간 먹고입는것은 물론 병쟁기까지 자기의 부담으로 마련하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장검이나 창같은 병쟁기의 값이 보통 중소 한마리의 값이니 이것을 장만하느라 백성들이 괴로움을 겪고있었다.

그 괴로움을 장문휴가 풀어준것이였다.

올해 초에 장문휴는 철소들에서 뽑아낸 쇠로 관가들에서 병쟁기를 만들어 번을 드는 군사들에게 내주게 하는 조치를 취했던것이다.

《알겠소이다. 래일로 고을들에 독촉해서 수일내로 부세 전량을 거두어 바치도록 하겠소이다.》하고 대꾸한 왕종군은 요 며칠동안 마음을 괴롭혀온 말을 화제에 올리였다.

《저… 도독어른에 대한 불미스러운 뒤소리가 돌고있소이다. 혹시 아시는지요?》

《그게 뭐요?》

대바람 눈살이 꼿꼿해지는 장문휴였다.

《어서 말하오.》

장문휴의 독촉에 왕종군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저… 도독이 제 배짱대로 관리들을 마구 뗀다느니, 나라의 원쑤인 초적들을 끼고도는데 그러다가는 오래가지 못한다느니…》

별안간 장문휴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아직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손사래를 하며 말했다.

《어쩜 예견했던바 그대로인가. 참 재미있소. 그래 어떤 놈들이 그런 말을 돌리는것 같소?》

이미 장문휴한테서 자기를 헐뜯는자들이 있을것이니 그에 대해서 살펴보라는 분부를 받았던지라 왕종군으로서는 그에 대한 대답이 어렵지 않았다.

《이전 도독 리오구의 수족질을 하던 놈들의 입에서 나온게 틀림없소이다.》

《리오구… 리오구란 말이지.》하고 뇌이는 장문휴는 입이 쓰거워 났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미 오래전인 주자감때부터 나를 미워하여 헐뜯어온 그놈이 아직도 그 몹쓸 버릇을 고치지 못했구나. 리오구는 장문휴에게 지울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힌 적수였다.

장문휴가 스스로 나선 군졸살이에서 너무도 오래동안 장수로 발탁되지 못한것은 리오구때문이였다.

주자감을 나온 그길로 날래게 임아를 업고 벼슬길에 기여올라 지부에서도 노란자리를 차지했던 리오구는 주자감시절부터 질투해온 장문휴가 장수로 등용되는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경군에서 그를 장수로 써주었으면 하는 의향을 알려올 때면 이런저런 구실로써 코코에 막아치우군 했던것이다.

그때 태자이던 황상이 무술이 출중한 장문휴의 재주를 알아보지 못했더라면 리오구가 있는 한 그의 출세는 이루어지지 않았을것이였다.

장문휴는 도리머리를 하였다.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소. 하여간 공은 추악한 그놈들을 시야에서 놓치지 마오.》하고 말하던 장문휴는 누군가가 뒤통수를 내려치는듯 한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이다지도 안목이 무디여졌단 말인가. 가까이의 정적보다 먼곳의 외적을 더 잘 들여다보아야 할 내 눈이 아닌가?!

계루왕이 뭐라고 알려왔던가. 엉큼하고 야심만만한 영왕이라는자가 안동도호 겸 평로군 절도대사로 되여 우리의 코앞으로 온다고…

그자에게 제노라 하는 장수들과 간계의 능수들뿐아니라 발해에 박혀있는 간자들까지 배속되였다고 하는데 이건 당나라가 우리와의 싸움을 본격적으로 서두르고있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였다.

그 시작으로 그것들이 나에게 자객을 보냈던것이다.

반안왕이 써보낸 글에도 자객들은 필경 당나라에서 보냈을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들이 나를 노리고있는 이상 자객이 실패했다고 해서 물러서지는 않을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혀아래에 도끼를 들려가지고 나를 잡으려 하는것이다.…

이런 속생각을 감추며 장문휴가 입을 열었다.

《난 래일부터 장성에 나가살겠으니 그대는 여기에 남아있으면서 뒤배를 봐주오.》

《알겠소이다.》

왕종군과 나란히 잠자리에 누웠으나 장문휴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 영왕이라는 작자가 임지로 내려오면 어떤 수법으로 우리와 맞서려들가. 세치 혀끝으로 날 어째보려고 하는것을 보면 여간 능구랭이 같은 놈이 아닌데…

하지만 너의 간계에 놀아날 내가 아니다.

내 기어이 너의 간계를 앞질러서 너희들로 하여금 제가 묻혀죽을 함정을 파도록 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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