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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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둘러 격구장을 나선 고인의가 반안왕부와 이어진 큰길로 막 접어드는데 웅글은 주라소리가 길게 울렸다. 격구놀이를 파한다는것을 알리는 주라소리였다.

이윽고 반안왕부에 이른 고인의는 마당에 우뚝 선 두개의 돌범상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느라니 금시 돌범들이 산범이 되여 뛰쳐나올것 같았다.

이 돌범들은 성무고황제가 군사를 중시해야만 나라가 굳세여진다는 그 뜻을 후손들에게 알리고저 세우게 했다지.…

이런 생각으로 돌범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데 등뒤에서 기척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돌아서니 호위군사들을 거느린 반안왕이 갈기좋은 백마를 타고 마당에 들어서는것이였다.

옷깃을 여민 고인의는 반안왕의 앞으로 나서며 군례를 차리였다.

말을 멈춰세운 반안왕이 놀라는 눈길로 그를 굽어보았다.

《경군의 랑장 고인의 전하께 문안드리오이다.

소인은 안원부도독과 송아지친구로서 전하께 꼭 청할게 있어 찾아왔소이다.》

《그런가?!…》

말에서 내린 반안왕은 고인의를 훑어보았다. 얼굴이 편안하게 생긴것이 마음이 모질거나 간사할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인차 언제인가 둘도 없는 송아지친구로서 고인의란 사람이 경군에서 랑장으로 있다고 한 장문휴의 말을 들은바있는 생각이 난 반안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사람이라면 가까이해도 무방할것이였다.

반안왕은 대문을 가리켰다.

《들어가세.》

고인의가 반안왕에게 이끌려간 곳은 별채의 서재였다.

대야발이 쓴것을 비롯해서 동서고금의 진귀한 책들로 한벽을 가득 가리운 방은 그외 별다른 기물이나 치장이 없었다.

구들이 뜨끈뜨끈하여 훈훈하기 그지없었다.

반안왕은 두툼한 비단방석을 내놓으며 말했다.

《이걸 깔고앉게. 그래 무얼 청하자고 하는가?》

막상 지체높은 사람과 마주하고보니 고인의는 가슴이 떨려 말이 나가지 않았다.

한참만에야 겨우 입을 뗐다.

《저… 소인을 안원부로 보내주었으면 하오이다. 왜냐하면…》

반안왕이 한손을 들어 그의 말을 제지시키였다.

《그런가, 그 한마디면 그대 마음을 알겠네. 벗을 돕자하는 그 마음이 갸륵해.》

고인의는 말을 떼기 바쁘게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반안왕이 고마와 눈굽이 축축해졌다.

《장문휴는 내게 있어서 아래사람이라기보다 친구라 할수 있네. 친구의 친구는 내 친구라고 그대가 장문휴의 딱친구라니 나의 친구일세.》

반안왕은 황송해하는 고인의에게 웃으며 말했다.

《장문휴가 그대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번이나 했었네. 그래서 자네를 좀 알지.》

장문휴는 반안왕을 만날 때면 고인의의 출세를 도와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어도 그의 재주와 됨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것이다.

요즘 그렇지 않아도 왜나라에 보낼 사신으로 쓸만 한 적임자가 누구일가 물색하던 반안왕에게는 고인의가 굴러든 복덩이로 여겨졌다.

고인의를 크게 써주려면 말로만 들은 그의 재주를 확인해보는것이 좋을것이였다.

반안왕은 친근하고 허물없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자넨 장문휴와 함께 주자감을 다녔다며?》

《예, 그렇소이다.》

《아주 좋아. 자네도 설문해자라는 책을 보았겠지?》

《예.》

《설문해자》는 한나라가 만든 한자자전이였다.

《그 책에 큰 대자와 활 궁자를 합쳐 쓴 편할 이자가 있네. 자넨 그 글자를 어떻게 해석하나?》

생각밖의 질문에 고인의는 다시금 가슴이 떨리면서 말이 나가지 않았다.

젊어서 책읽기를 좋아한 그는 주자감의 책을 거의다 보았을뿐아니라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글귀를 기억하고있었다.

이윽고 고인의는 용기를 내여 말했다.

《소인이 알기에 편할 이자는 한나라때 그들이 우리의 박달겨레를 가리키기 위해서 새로이 만들어낸 글자인것 같소이다.

하기에 설문해자에서 편할 이자에 대해 풀이하기를 큰 대자는 동국사람 다시말해서 우리 겨레의 사람들이 몸집도 크고 풍속도 어질고 군자가 많으며 오래 사는 그것을 가리키는 뜻이고 활 궁자는 남달리 일찍부터 돌활촉을 만들어 썼고 활을 잘 쏘는 동국사람들을 가리키는것이라 하였소이다.

이는 예로부터 용맹하고 문명한 우리 겨레를 비교적 옳게 평했다고 볼수 있소이다.》

반안왕은 이 하나의 대답으로써 고인의가 듣던바 그대로 박식한 인재임을 알아보았다.

불의적이고 생각밖의 질문앞에서는 한다하는 박식가들도 명쾌한 답을 즉석에서 내기 힘들어하는 법이였다.

반안왕이 다른 질문을 꺼내였다.

《자넨 안원부에 내려가서 장문휴가 세운 공이 뭐라고 보나?》

고인의는 긴장감을 느끼였다.

어이하여 내가 바라는 말은 해주지 않고 이런 질문을 하는것일가?…

하여간 질문을 당했으니 무슨 말이든 해야 할것이다.

요즘 동모산에서 돌아가는 화제거리의 하나가 장문휴에 대한것이였다.

싸움밖에 모르는줄 알았던 장문휴가 부의 민심을 솜씨있게 모았다고 그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전하, 장공이 일찌기 무예에 몰두하면서도 어떤 사람들을 싫어했는지 아시오이까?》

《말해보게.》

《그가 싫어한 사람들은 벼슬자리만 타고앉아가지고 나라위한 좋은 일은 않고 국록이나 타먹는 이를테면 머리수나 채우는 벼슬아치였소이다. 그보다 더 미워한 사람들은 좀벌레마냥 나라의 재물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벼슬아치들, 권세를 휘둘러 백성들의 재물을 마구 삼키는 탐오한 벼슬아치들이오이다.》

흥분된 고인의는 열변을 토했다.

《그러했기에 장공은 난생처음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맞다들렸지만 오로지 법을 틀어쥐고 부의 정사를 내밀어 민심을 바로잡았을것이오이다. 민심이 기울면 군심이 기울고 군심이 기울면 나라방비가 기울어진다는것을 소인은 그 친구가 한 일을 통해서 깨달았소이다.

이번에 장공이 민심을 얻음으로써 군심을 얻고 결국은 나라방비를 굳게 하였으니 이보다 더 큰 공이 어데 있겠소이까.》

그 말에 반안왕은 감탄해마지않았다.

정말이지 고인의는 박식하면서도 눈이 바로 배긴 인재라 할수 있었다.

이런 사람인데야 어찌 초면이라고 해서 중히 쓸수 없단 말인가.

《내 말을 새겨듣게. 황상께서는 왜나라에 사신을 보내려고 하네.

우리 발해가 일떠서서 아직 왜나라와 오고가지 못하고있는것은 자네도 알거네. 흑수정벌도 통쾌하게 치르었겠다, 당나라것들이 저희네를 추종하던 흑수말갈을 우리 군사가 짓뭉개버리는걸 보면서도 분통이나 터뜨릴뿐 어쩌지 못하고있는 이때 고구려가 했던것처럼 천하의 모든 나라들과 소리치며 통상을 해야 할걸세.》

반안왕은 격해진 마음으로 가슴을 들먹이는 고인의를 만족스레 바라보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오늘 뜻밖에 인재를 얻었어. 난 황상께 자네를 사신으로 천거하려네.》

고인의는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친구를 돕자고 하다가 사신이라니… 어쩜, 일이 이다지도 꼬인단 말인가.…

만족한 눈길로 고개를 떨군 고인의를 바라보며 반안왕이 말했다.

《이제 자네가 해야 할일은 장문휴의 곁에 가서 그를 돕는 일보다 비할바없이 크고 중하네. 그러니 딴 생각말고 그 일만을 생각하게.

장문휴에게도 자네가 어떤 일을 맡게 되였는지 알리겠네. 그도 기뻐할거네. 사신으로 갔다와서 장문휴와 함께 일하도록 해주게.》

그제서야 고인의의 얼굴에 웃음이 비끼였다.

웃음이 비낀 고인의를 바라보는 반안왕의 심중은 만족해하는 겉모습과 달리 몹시 착잡하였다.

말로는 고인의에게 장문휴의 곁에 가서 그를 돕는 일이 그닥 무겁지 않다고 했지만 실은 지금 그를 돕는것보다 더 급한 국사는 없었다.

당나라것들과의 싸움은 바로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며칠전 계루왕이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당나라 황자 영왕이 안동도호뿐아니라 변방일대의 모든 군사를 통솔하는 평로군 절도대사로까지 책봉되여 인차 부임지로 내려갈것이라고 하였다.

뿐더러 당나라에서 제노라는 장수들이 영왕의 휘하로 들어갔고 꾀를 잘 쓰기로 이름난 모략군들을 그가 자기 부하로 받아들였다는것이였다.

이것은 당나라군의 본영이 영왕에 의해서 안동도호부로 옮겨온다는것을 의미했다.

결국 장문휴는 당나라의 막강한 권력을 거머쥔 영왕과 맞서야 했다.

며칠전 어떤 알지 못할 자객들이 장문휴에게 달려들었다는 그의 급보를 받은 반안왕은 대뜸 그 진범인이 당나라일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안원부에서 탐오를 일삼던 관리들이 장문휴의 손에 밥줄을 떼웠다고는 하지만 그런 무모한짓까지는 저지를수 없다고 생각한때문이였다.

그 다음날로 장문휴에게 신변에 각별한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공문서를 내려보내기는 하였지만 당장 안원부로 달려가 그를 돕고싶은 반안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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