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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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윽고 장문휴는 쿨룩쿨룩 기침을 하는 호력이에게 눈길을 옮겼다.

《넌 돌아가서 부도독에게 일러라. 우리 군사가 흑수말갈을 평정하고 돌아온 소식을 모든 고을들에 알리라고 말이다.

그럼 경사가 났다고 온 안원부가 들썩할게다.》

《알겠소이다.》

호력이를 떠나보낸 장문휴는 호위군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도 떠나세.》

그리고는 온태곤에게 제곁으로 말을 들이대라고 손짓했다.

씨엉씨엉 눈길을 박차며 호기있게 나가는 말우에서 장문휴는 호위군사를 통솔하는 온태곤에게 말했다.

《난 먼저 자네의 고향마을부터 돌아보자는것일세. 그래 좋은가?》

그 말에 답답할 정도로 입이 무거운 온태곤의 입이 벙글 열리였다.

《그게 참말이오이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장문휴를 바라보며 온태곤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렇다면 제 손으로 물오리구이를 해올리겠소이다. 제 고향마을의 큰 늪에는 사시절 물오리가 많소이다. 소인의 활재주이면 물오리를 얼마든지 잡을수 있소이다.》

온태곤에게는 명궁이라 할만치 활을 잘 쏘는 재간이 있었다.

활만 잘 쏠뿐아니라 칼도 잘 쓰고 여간 날래지 않았다. 게다가 눈썰미도 빠르고 글재간도 있었다.

그런 재주때문에 왕종군이 도독의 호위를 맡은 군교로 추천한것이다.

왕종군은 온태곤이 자기의 처조카이기 전에 제자이기때문에 더 믿을수 있다고 하였다.

료동성에서 서쪽으로 불과 수십리 못미처 고철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바로 그 마을에 왕종군의 처가가 있었다.

그 마을에서 태여난 온태곤을 왕종군이 제 집에 데려다 글도 배워주고 장가도 들여 료동성에서 살도록 해주었다.

온태곤이 자랑조로 말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꿩구이가 제일이라고 하지만 물오리구이를 맛보면 더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할것이오이다. 고소하고 만문하고… 아니, 그 맛을 뭐라고 그려야 할지…》

장문휴는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

《물오리구이도 좋겠지. 그런데… 난 제 가문의 명인을 모르는 사람이 주는것이라면 금덩이라도 뿌리치는 고약한 습관이 있네.

그래, 자네네 가문이 낳은 명인이 누군가?》

입술을 뻑 문지른 온태곤이 머리를 기웃거리며 대꾸했다.

《우리 고향마을에는 온씨성을 가진 사람이 많소이다. 로인들 말이 온달장군이라고 고구려때 이름난 장군이 우리 온씨들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이런것도 가문의 자랑이라고 하겠는지? …》

장문휴는 평보로 말을 내몰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네. 제 가문이 낳은 뛰여난 인걸들을 잊지 않는 사람이라야 그들처럼 살겠다는 의욕을 가지게 되는 법일세.》

장문휴는 심중해진 온태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다음 알아야 할것은 선조들이 무엇으로 고향을 일떠세웠는지 그걸 알아야 하네.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만이 제 고향을 위해 큰일을 할수 있는것이니까. 자네네 고향에도 자랑거리가 없지 않을거네.》

온태곤이 벌쭉 웃었다.

《아, 그렇지 않구요. 우리 고향에도 자랑거리가 얼마든지 있소이다. 우리 고향에서는 먼 옛날부터 쇠를 뽑아왔소이다. 고향마을의 산들이 온통 쇠돌산이오이다.》

온태곤과 나란히 말머리를 한 장문휴는 그의 등을 두드렸다.

《바로 그거네. 쇠가 바로 자네네 고향의 으뜸가는 자랑거리란 말일세. 우리 안원부에는 쇠돌이 무진장하게 묻혀있네. 특히 료수가 동쪽은 쇠돌의 산지라고 할수 있지. 그뿐이 아니네. 료수의 주변에는 구리돌도 많아.

하기에 우리 선조들은 오랜 옛적부터 이 고장에서 강쇠와 함께 놋쇠도 많이 뽑아 병쟁기며 농쟁기를 만들었네. 그때문에 선조들이 강해질수 있은걸세.》

장문휴는 뒤를 따르는 군사들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자네들도 이걸 자랑으로 여겨야 해. 그리고 선조들처럼 분발해서 우리 나라를 강국으로 다지는데 기여를 해야 하네.》

《명심하겠소이다.》

이날 고철골을 찾은 장문휴를 온 마을이 반겨맞아주었음을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날 밤 고철골마을에 거처를 정한 장문휴는 잠자리에 들기에 앞서 집밖에 나와 홀로 소풍을 하고있었다.

온태곤이 따라나서는것을 혼자 거닐고싶어 억지로 등을 떠밀어 들여보낸 장문휴였다.

휘영청하게 밝은 달이 하늘중천에 떠있어 저녁소풍의 류다른 멋을 돋구는듯싶었다.

잠시 밝은 달을 쳐다보며 저 달속에 계수나무도 있고 토끼도 산다는 옛말을 돌이켜보던 장문휴는 북두칠성이 유난히 빛을 뿌리는 동녘하늘로 눈길을 옮기였다.

바로 저 하늘아래에 동모산도 있을것이고 승전고속에 흑수에서 돌아온 반안왕도 이밤 황상과 더불어 나라의 서쪽대문인 안원부를 잊지 않고있을거라고 생각하니 힘을 내여 관문을 더 잘 지켜내리라는 분발심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적국에 가있는 계루왕이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당나라것들이 아직은 발해를 치는것을 시기상조라고 했다는데 그 수작의 의미를 음미해보면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 수작은 우리와 싸움을 할만큼 그것들의 군력이 아직은 여의치 못하다는 뜻이였다.

지금 당나라의 군사가 50여만명이라니 그럴수 있다.

양광이 300만명, 리세민이 100만명의 대군으로 선조의 나라에 쳐들어왔던것을 미루어보아 그것들이 적어도 100만이상의 병력수에 이르면 우리와 싸우자 할것이다.

그것들이 우리가 제놈들에게 추종하던 흑수말갈을 보기 좋게 짓뭉개버렸다는것을 잘 알면서도 시기상조를 내뱉자니 얼마나 복통이 터져했겠는가. …

벌써 당나라가 그 시기상조를 현실로 전환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당나라 리륭기의 아들 영왕이 안동도호로 부임되는것이 기정사실로 되였다니 이는 곧 본격적으로 우리와의 싸움준비에 달라붙었다는것이다.

순전히 발해를 겨누고 내온 안동도호부에 여느 장수도 아니고 당나라의 황자들중에서도 제일로 병법을 통달하고 능구렝이로 알려진 영왕을 그 수장으로 내려보낸다는것은 앞으로 리세민이때와 같은 큰 전란을 예고해주는것이 아닐수 없다.

이로 하여 어느때건 한번은 우리 겨레의 생사를 판가리하는 무서운 싸움이 벌어질것이다.

허나 그 어떤 싸움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이다.

우린 기어이 너희들을 쳐이기고 이 나라 발해를 천하의 강대국으로 일떠세울것이다.

난 내 나라를 고이는 주추돌이 되자고 하는 사람으로서 다가오는 전란을 더없는 쾌승으로 만들기 위해 분발하고 또 분발할것이다.

두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쥔 장문휴는 부르짖었다.

《어디 누가 이기나 맞서보자.》

이윽고 새벽이면 북극성을 축으로 반바퀴 돌아서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이 가있을 서녘하늘로 눈길을 옮긴 장문휴는 머나먼 그 하늘아래의 당나라에서 고국을 위해 애쓰고있을 계루왕을 그려보았다.

그때 검은 형체가 조심조심 장문휴에게로 다가들고있었다.

셋이였다. 그 셋이 모두 한손에 칼을 들고있는데 달빛에 날카롭게 번쩍거렸다.

계루왕을 그려보던 장문휴는 아주 가늘게 느껴지는 인기척에 놀라 《누구냐?-》 하고 소리쳤다.

그 순간 세사람이 일제히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야앗!》

장문휴의 입에서 울려나온 기합소리였다.

기합소리와 함께 불시에 땅을 차고 한길높이 뛰여오른 장문휴의 두다리가 가위모양으로 움직이면서 비수같이 두놈의 면상으로 날아들었다.

장문휴가 걷어찬 두발끝에서 강한 부딪침을 느끼는 동시에 으악- 하는 비명소리가 울렸다.

땅에 내려서면서 나머지 한놈에게 된주먹을 안기려 했건만 어느새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장문휴의 기합소리에 놀란 온태곤이 벼락같이 방문을 차며 뛰쳐나왔다.

장문휴는 숨을 헐썩이며 뛰쳐나온 온태곤에게 땅에 나딩구는 놈들을 가리켰다.

《자객인가본데 그놈들 낯짝을 보게.》

곧 온태곤이 불망치를 켜들고 들여다보니 놈들은 이미 숨통이 끊어져있었다.

《도독어른, 처음보는 놈들이오이다.》

호위군사들이 다 모여들었다. 인차 그들도 처음보는 놈들이라는것이였다.

장문휴는 턱을 어루만지며 오락가락하였다.

자객들이 도대체 어떤 놈들일가. 나를 노리고 달려든걸 보면 내가 살아있는것에 손해를 당하는 놈들일텐데… 당나라놈들?… 아니면 내 손에 밥줄이 떨어져나간 놈들?…

아무리 따져보아야 확신이 가지 않았다.

하여간 세상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란 없는것이니 장차로 흑막은 벗겨질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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