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3 장

2

 

반안왕이 거느린 흑수원정군의 진격속도는 그야말로 질풍이였다.

길목들에 진을 치고있던 반란의 무리들은 노도같이 진격해오는 원정군이 나타나기만 하면 삽시에 산산히 흩어져 달아나버리였다.

너무도 용맹하고 너무도 드세찬 발해군앞에 오합지졸같은 반란의 무리는 상대가 될수 없었다.

걸치는것이 별로 없는 탄탄대로가 쭉 펼쳐져있었으니 어찌 그 진격속도가 질풍같지 않겠는가.

반란의 무리가 원정군을 보기만 하면 혼쭐이 나서 달아빼는것은 발해군이 무적의 정예군이기도 하거니와 보다는 장문휴의 계략이 크게 은을 냈기때문이였다.

이미전에 장문휴가 흑수땅에 소리없이 들여보낸 간자들이 반란의 무리를 다치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와해상태로 만들어버린것이다.

관군과 맞섰다가는 그 즉시 뼈대도 추리지 못하거니와 그 식솔과 삼대까지도 멸족된다, 당나라는 발해가 무서워 반란의 무리가 다 죽어도 절대로 도와나서지 않는다, 살길은 오로지 반란의 주모자를 처단하고 관군에게 투항하는 길뿐이다, 조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순종하는 말갈사람들을 발해의 백성으로 여기고 위해준다, 복을 누리자면 조정에 순종해야 한다는 등의 말들을 쫘하게 류포시킨것이였다.

그 말에 마지못해 반란에 끌려든 말갈인들은 원정군을 보기만 해도 줄행랑을 치였다. 제 소굴로 줄행랑을 친게 아니라 창대를 거꾸로 들고 원정군을 찾아와 항복하였다.

수천리 먼길을 누가 더 빨리 말을 내달리는가 경주를 하는듯 거침없이 진격해온 원정군은 마침내 반란의 소굴인 흑수주를 눈앞에 볼수 있었다.

반안왕 대일하는 흑수와 요력하(우쑤리강)가 합수되는 근방에 자리잡은 흑수주(오늘의 로씨야 하바롭쓰크시에 있었던 발해의 지방)의 20리앞에 진을 치라는 령을 내렸다.

진을 치기 바쁘게 임아가 반안왕의 군막을 찾아왔다.

반안왕을 마주하면 저절로 내 천자가 그려지군 하는 임아는 오늘도 례외가 아니였다.

한생의 적수라 여겨오는 반안왕과 마주했으니 그럴수밖에 없는것이였다.

더우기 밸이 꼴리는것은 반안왕을 전하라고 개여올리지 않으면 안되는 그것이였다.

하지만 강약이 부동이라고 조정의 꼭두인 대내상을 차지한 대일하가 반안왕이라는 직위까지 가지고있으니 얼굴은 비록 우거지상이 될지라도 입으로는 깍듯이 공대 안할수 없었다.

반안왕이 내주는 자리에 앉은 임아는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전하, 이제는 반란자들을 줌안에 넣은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떤 전법으로 그것들을 깡그리 전멸시키려 하오이까?》

전멸이라는 말이 반안왕에게는 거슬리게 들리였다.

그러나 언짢아진 감정을 억누른 반안왕은 임아가 몇살 우인 년장자임을 고려하여 공대하는 어조로 대꾸했다.

《래일 그들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소굴을 들이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내려고 하오. 사흘간 말미를 주었다가 그래도 무릎을 꿇지 않으면 공격하겠소. 공격은 3군이 각각 동쪽과 북쪽 그리고 서쪽에서 동시에 들이대되 남쪽만은 열어놓도록 하겠소.》

우거지상인 임아가 두눈을 치뜨며 언성을 높이였다.

《그거야 역적들에게 살길을 열어주겠다는것이 아니오이까?》

반안왕은 로골적으로 터뜨리는 임아의 불만에 찬 목소리에 분기가 치밀어올랐다.

사실 임아는 반안왕에게 있어서 있으나마나한 존재였다. 아니, 없는것이 오히려 유익했다.

황상이 문예를 원정군의 주장으로 내세울 때 그도 부군장으로 임명하였기에 거치장스러운 존재였지만 함께 동행한것이였다.

여기에까지 오면서 임아가 시끄럽게 군걸 생각하면 지금 당장 쫓아버리고싶었다.

그가 길을 잘못 들어 반란의 괴수를 따랐던 말갈사람들이 투항해올 때면 모조리 죽여치우라고 군사들을 부추긴것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때문에 항복한 말갈사람들을 죽이고 군령을 어긴 죄로 목숨을 바친 군사가 여러명이나 되였다.

당초에 반안왕은 원정길에서 투항해온 말갈사람을 죽이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령을 내렸던것이다.

군령을 범한 죄로 군사들을 처형할 때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라고 그토록 엄하게 일러주었건만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임아였다.

임아는 분기가 치밀어올라 얼굴이 붉어진 반안왕을 바라보며 씩씩거렸다.

나이로 보나 건국에 기여한 공으로 보나 내가 더 우인데… 그리고 너는 황상과 4촌간이지만 난 외삼촌이다. 그런데도 내가 네밑에 있어야 하니 이런 억울한 일이 어데 있단 말이냐.

내 너를 디디고 올라서지 못한다면 사내가 아니다. 전에는 문예로 하여금 이 길에서 큰 공을 세우게 하고 그 공으로 조정의 실권을 그러쥐게 하여 너를 몰아내려 했는데 그것이 수포로 돌아갔으니 이제는 내가 직접 너와 겨루어보련다.…

어떻게 하나 이번 원정에서 제가 더 큰 공을 세워야 반안왕을 누를수 있다는 생각뿐인 임아의 두눈이 도끼눈으로 변했다.

《보아하니 전하는 괴수만을 잡아죽이고 나머지는 용서해줄 작정인것 같은데… 그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오이다. 우린 반드시 무자비한 보복으로 반란의 무리를 씨도 없이 전멸시켜버려야 하오이다.

나도 한창시절에 성무고황제를 따라다니며 병법을 배웠소이다. 지금이야말로 문을 닫아매고 도적을 잡는것처럼 약한 적을 사면으로 에워싸고 일격에 전멸시키는 계략을 써야 할 때란 말이오이다.》

반안왕은 불이 이는 눈길로 임아의 도끼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대는 벌써 군령을 잊었소? 될수록이면 반란의 무리를 투항시키며 투항해온 사람들에게는 살길을 열어주라는것이 황상의 뜻이란 말이요.》

임아도 도끼눈으로 불이 이는 반안왕의 눈을 마주 바라보며 피대를 돋구었다.

《제 소굴에 들혀박혀있는 역적들을 멸족시키는것이 어찌 황상의 뜻에 어긋나는것이며 군령을 어기는것으로 되오?

이미 항복해올 놈들은 다 항복해오고 저 소굴것들은 알쭌히 역적들이란 말이오이다.》

흑수주를 쓸어버림으로써 그것으로 자기의 공을 만들고싶어하는 임아의 속심을 알고도 남는 반안왕은 피대를 돋구며 달려드는 그와 꼭같이 떠들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격해진 감정을 꾹 누르며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린 다같이 황상의 혈육이고 나이도 적지 않은데 혈기를 부리며 다투어서야 되겠소?

곰곰히 생각해보오. 예로부터 말갈은 우리에게 복속되여 우리의 백성으로 살아왔소. 물론 그들이…》

임아가 반안왕의 말허리를 꺾으며 기염을 토했다.

《말갈족속은 도리도 인정사정도 모르는 짐승같은것들이란 말이요. 그래서 야인이라고 하지 않소이까. 그것들은 아무리 잘 대해주어도 그 은혜를 절대로 모르오이다. 하기에 그것들은 예로부터 배은망덕하게도 우리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을 들씌웠단 말이오이다.

이제 더는 참을수 없소이다. 마침 하늘이 기회를 마련해주었으니 우린 이 기회에 저것들을 멸족시켜 대대로의 우환거리를 끝장내야 하오이다.

한놈이라도 더 많이 죽일수록 우리의 우환거리도 그만큼 줄어들거란 말이오이다.》

임아가 이렇게 억보로 나왔지만 반안왕은 참을성있게 설복하려들었다.

《말갈이 우리에게 큰 재난을 끼쳐온것은 옳소. 하지만 대다수 말갈사람들은 우리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고있소. 그래서 고구려에서도 그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고구려의 백성으로 살게 했던거요. 고구려의 선조들도 그러하였는데 우리라고 그렇게 못할게 뭐요?

그리고 그가 동족이 아니라고 해서 죽이려드는것이 사람이 할바가 아니란 말이요.

흑수말갈이 우리에게 반기를 들게 된것은 그들의 본심이 아니라 당나라것들이 사촉했기때문이 아니겠소. 그리고 우리에게 반기를 든 역적은 한줌도 못된단 말이요.

사실말이지 그것들을 평정하는데는 이렇게 많은 대군도, 우리같은 조정대신들이 나설것도 아니요. 경군의 한개 위만 파해도 능히 평정할수 있는거요.

그런데도 우리가 굳이 대군을 거느리고 온데는 이들을 반란으로 떠민 당나라것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갈사람들에게 두번다시 남의 꾀임에 넘어가면 목숨을 부지할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려주는 동시에 선정을 베풀어 그들이 다시는 그릇된 길에 빠지지 않도록 이끌어주자는것이 아니겠소?

공은 힘으로 강박하면 하루를 가지만 덕으로 이끌면 백년이 간다는 말의 참뜻을 알아야 하오.》

임아는 수그러들기는커녕 여전히 화를 내며 씩씩거렸다.

이번 원정이 자기가 더 높이 솟구칠수 있는 마지막의 기회로 여기는 그에게는 그 어떤 설복도 마이동풍이였다.

《난 전하의 령을 따를수 없소이다. 난 기어코 흑수주를 이 땅에서 지워버리겠소이다.》

여전히 피대를 돋구며 제 주장을 굽히려들지 않는 임아의 태도에 반안왕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게 누구 없느뇨?-》

반안왕의 웨침소리에 파수를 서던 군사들이 들어섰다.

반안왕이 그들에게 임아를 가리켰다.

《부군장을 잡아가둬라.》

반안왕의 호령에 군사들이 임아의 량팔을 꼼짝 못하게 부여잡았다.

반안왕이 군사들에게 일렀다.

《이 일을 누구도 알게 해서는 안된다. 이 일을 발설하는자 목을 치겠다.》

이어 임아에게 말했다.

《참는자에게 복이 든다고 했소. 공은 군막에 곱게 들어가 푹 쉬오. 그러면 그대에게 해가 될 일은 없을거요.》

그 말은 진심이였다.

의가 맞지 않을지라도 조정의 원로대신이니 꼭 붙들어두면 더는 체면이 깎일짓을 못할것이니까.…

이튿날 화살대에 매여단 원정군의 최후통첩을 적은 글쪽지가 적의 군영으로 날아갔다.

그때로부터 하루가 지나고 말미를 준 사흘이 되였건만 반란군의 괴수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드디여 나흘째 되는 날 아침 원정군의 총공격이 시작되였다.

하늘을 꽉 메우며 날아드는 발해군의 불화살에 적진은 불길에 휩싸였다.

화공전을 들이대며 동서북의 세면에서 천군만마가 짓쳐나가니 땅이 꺼져내리는듯싶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적진으로 뛰여드는 발해군앞에 반란의 무리는 추풍락엽의 신세였다.

오직 한길 열어놓은 남쪽길로 산사태인듯 말갈사람들이 밀려나왔다.

창대를 거꾸로 든 사람들과 아이들, 녀인들과 로인들이였다.

물밀듯이 밀려나온 그들이 반안왕이 진을 편 그앞에 꿇어엎드려 살려달라고 빌었다.

끝까지 발악하던 소수의 적은 발해군의 공격에 목없는 귀신이 되고말았다. 반란의 괴수도 갈데가 없었다.

이로써 반란은 일격에 평정되였다.

보름나마 머무르면서 이 고장 사람들속에서 신망이 있는자들로 새로 관리들을 등용하고 바른 정사를 펼치게 한 반안왕은 막하장수인 유격장군 양소에게 수천명의 군사를 주어 떨구어두고 귀로에 올랐다.

양소가 할 일은 새로 임명된 관리들이 조정의 령을 받들어 정사를 할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흑수주를 지키는것이였다.

그동안 군막에 갇혀있던 임아는 반안왕에게 이끌려 그와 나란히 말머리를 하고 동모산으로 향했다.

반안왕이 너그러이 대해주었지만 임아는 그에 대한 원망으로 앙앙불락할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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