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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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에 쏘인 놈처럼 부랴부랴 방을 나서 부하들을 끌고 사라지는 문예를 계루왕은 어리둥절해서 바라보았다.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점심 한끼 나누지 않고 가는것일가?!…

그때 수종군이 나타나 방에 우뚝 서있는 계루왕에게 아뢰였다.

《전하, 고국에서 왔다는 사람이 전하를 뵙자 하오이다.》

방금 사신행차로 온 삼촌이 다녀갔는데 또?!…

수종군이 제 입을 손으로 가리우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데 그 사람 하는 말이 자기가 온것은 전하 말고 누구도 몰라야 한다면서 오로지 전하만을 따로 만나야 한다고 했소이다.》

그 순간 계루왕은 여러 생각끝에 아마도 반안왕이 보낸 사람일것이라는 판단을 내리였다.

반안왕이 당나라와의 소리없는 싸움을 주도하고있으니까.…

《좋다. 밀실로 데려오라.》

계루왕이 밀실로 꾸린 외따른 방에 들어가앉으니 인차 수종군이 방문밖에서 아뢰였다.

《그 사람을 들여보내라이까?》

《들여보내라.》

방문이 열리고 단단하게 생긴 보통키의 젊은이가 들어와 큰절을 하는것이였다. 풍걸이였다.

《전하, 타향만리에서 이 얼마나 고생이오이까. 전하께 안원부도독어른이 보내는 글월을 가지고왔소이다.》

《장공이?!…》

방금 내렸던 판단이 어방없이 빗나간것으로 하여 계루왕의 마음은 보다 긴장해졌다.

풍걸이 올린 종이말이를 받아 읽던 계루왕의 손에서 그것이 툴렁 떨어졌다.

《삼촌이?!…》

계루왕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였다.

풍걸이 집어올리는 종이말이를 받아든 계루왕의 손이 떨리였다.

이럴법도 있는가. 방금 사신으로 왔다는 삼촌이 나가기 무섭게 그를 역적으로 모는 사람이 오다니…

다시금 종이말이속의 글줄에 눈그루를 박은 계루왕은 문예의 역적죄를 알리는 글이 장문휴의 필체가 옳을뿐아니라 종이장에 박혀있는 도장자리도 틀림없는 장문휴의 도장으로 찍은것임을 알아보았다.

한두번만 보았다고 장문휴의 필체와 도장자국을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나직이 아뢰이는 풍걸이의 말은 계루왕의 마음을 더욱 허비여놓았다.

《도독어른께서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도 그 역적놈을 결단코 목을 버이여야 한다는 상주문을 조정에 올렸소이다. 그리고 저에게는 역적놈을 오라지울수 있도록 그놈의 행처를 알아오라고 했소이다.》

너무도 격한 나머지 계루왕은 손을 홱 내저으며 소리쳤다.

《그만해라.》

계루왕의 두눈에서 불이 일고있었다.

나의 삼촌일지라도 나라에 씻을수 없는 큰죄를 저질렀다면 그를 붙잡아 고국으로 압송하는것은 너무도 당연한것이다.

대씨가문에서 나온 역적은 내가 처치함이 마땅하다.

이제는 삼촌이 무엇때문에 나를 찾아왔댔는지 알만 하다.

모름지기 그는 이 나라것들의 충동질을 받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 내탐하려 했을것이다. 뿐더러 제놈이 당나라의 품에 기여든것처럼 나도 더러운 그 구렁텅이로 끌어들이자 했을것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위태로운줄도 알았을것이다. 제놈의 더러운 본색이 드러나는 경우 이 태자의 손에 붙잡혀 고국으로 끌려갈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놈이 마실군처럼 놀아대다가 정신을 차리라는 내 말에 도망친것이다. 이젠 네놈의 본색을 알았으니 너는 다 산 놈이다.

헌데 그놈을 잡기란 아주 어려울것이다. 본시 여간 꾀바리가 아니니 제 거처지가 드러나지 않게 수를 꾸밀것이고 또 당나라것들도 그놈을 깊이 감추자 할것이다.

게다가 그놈이 무술에 펄펄 나니 설사 거처지를 알아냈다고 해도 여간해서는 사로잡지 못할것이다. 그렇더라도 우선은 그놈의 행처부터 알아내야 한다. 어떻게 알아낸다?!…

한참 고심끝에 이런 일에 도움을 줄수 있는 적임자를 생각해냈다.

이 나라 형부에서 벼슬을 사는 주청이란 사람이였다. 은혜를 두눈에 흙이 들어가도 잊지 못하겠다고 한 그라면 얼마든지 도와나설것이였다.

몇달전 어느날 계루왕은 병치료로 다니는 의원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심심풀이로 시전을 찾았었다.

내성밖의 남북으로 길게 뻗은 큰거리의 량옆에 당나라에서 제일 큰 시전이 자리잡고있었다.

그 거리의 서쪽을 서시전, 동쪽은 동시전이라고 불렀다.

그릇가지며 천필이며 말을 파는 곳을 지나 얼마쯤 갔는데 무슨 구경거리가 생겼는지 숱한 사람들이 어깨담을 치고 떠들어댔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보니 어깨담을 두른 그안에서 감때군같은 놈팽이 여럿이 한 젊은이를 때리는데 그곁에서 한 처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매맞는 사람을 구원해달라고 간청하고있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숱한 사람들이 재미스럽게 구경할뿐 어느 누구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이 계루왕으로 하여금 의분을 끓게 하였다.

여럿이 한사람을 때리는 그자체부터가 불의한짓이 아닌가. 도대체 이 나라에는 불의를 미워하는 의로운 사람이 그리도 말라버렸단 말인가.

격분한 계루왕은 구경군들을 비집고나가며 천둥같은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 백주에 이 무슨짓이냐? 당장 물러서지 않으면 묵사발을 만들테다.》

그 소리에 제세상처럼 날치며 주먹질을 해대던 놈들이 후닥닥 뒤로 물러섰다.

인차 그놈들중 몸집이 실한 놈이 저희들앞에 나선 계루왕을 삿대질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 히야, 우스워죽겠는걸. 하루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른다더니 이따위 약골이 누구에게 호통질이야? 가소롭다, 뼈도 못 추리기 전에 어서 물러가.》

어려서부터 장문휴에게서 수박희를 배운 계루왕은 아무리 병들었기로서니 이런 망나니 열댓쯤은 문제없었다.

발해사람들이 즐겨하는 수박희는 말그대로 칼이나 창같은 병쟁기를 전혀 쓰지 않고서도 순수 맨몸으로 적을 제압하는 무술이였다.

계루왕은 허우대 큰 그놈을 쏘아보며 웨쳤다.

《이놈아, 너따위는 호박에 침주기다. 약질이 살인낸다는 말 몰라? 땅바닥에 코밀이를 당하기 전에 썩 사라져.》

약골같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호기있게 큰소리치는 계루왕의 기상에 위압된 그놈이 뒤걸음을 치며 물었다.

《대체 넌 누구냐?》

계루왕의 시종이 당장 된매를 안길듯 그놈의 턱밑으로 주먹을 내보이며 소리쳤다.

《우리 주인님은 발해사람이시다. 발해사람의 주먹은 곰대가리도 박살낸다.》

무술을 하는 사람치고 발해의 무술이 어떠한지 모르지 않는다.

발해의 무술이자 천하무적이라 소문낸 고구려의 무술이기때문이였다.

시종이 겁이 나서 뒤걸음치는 그놈들에게 을러멨다.

《이 송장메뚜기같은 놈들아, 다시는 이런데서 힘자랑하지 말아.》

어느새 놈들은 구경군들의 틈으로 달아나버렸다.

그 덕에 화를 면한 사람이 주청이였다.

그는 지난해의 과거에서 급제하고 벼슬받을 차례를 기다리던중 봉변을 당했던것이다.

함께 동행하던 약혼녀를 희롱하려던 그놈들과 맞선때문이였다.

그날 주청은 계루왕을 일생 은인으로 받들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주청이 지금은 형부의 관원으로 있으니 그에게 부탁하면 역적놈의 행처를 알수 있을것이였다.

마음이 놓인 계루왕이 풍걸에게 일렀다.

《너는 여기서 심부름을 하다가 내가 써주는 글을 받아가지고 돌아가야겠다.》

《알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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