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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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가 가져다놓은 차잔을 집어든 문예는 차물을 마시는척 하면서 머리를 굴리였다.

하여간 수일내로 나의 본색이 드러날것이다. 그러니 그전으로 태자를 귀순시켜야 한다.

나도 처음 숙위로 올 때 억지로 왔고 그러다보니 이 나라를 대단히 좋지 않게 여기였다.

그러나 인차 그것을 지워버릴수 있은것은 이 나라의 문물에 마음이 끌렸기때문이다.

그러니 내 경우를 보아서 태자한테도 이 나라의 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것이 좋을것이다.

첫말을 어떻게 떼는가에 따라 그 성사가 좌우된다. 태자가 고국을 등진 나를 따르게 하자면 이 나라에 대한 호감이 살아나도록 이야기를 잘 꾸며야 한다.

그럼 어떻게?!… 어쨌든 구미가 돌고 흥미가 끌리게 운을 떼야 한다.

인차 문예는 그럴듯한 이야기감을 생각해냈다.

《참, 이번 걸음에 재미나는 이야길 들었다. 나를 맞이한 당나라사람이 들려준 이야기인데…

이 나라는 땅도 넓고 인총도 많아서인지 기이한 이야기가 수다하다니… 자네도  조조의 무덤을 파냈다는 이야길 들었겠지?》

계루왕에게는 듣느니 처음이였다.

아이적부터 동서고금의 이야기며 항간에 돌아가는 소문도 듣기 좋아하던 계루왕이라 웃으며 말했다.

《어떤 신비한 이야기인지 들려주시오이다.》

문예는 웃으며 너스레를 부렸다.

《허- 못 들었는가. 그럼 들려주지.

어느날 어부들이 강에서 그물을 당기는데 그만 몇사람이 문득 다리가 끊어지고 허리가 뭉청 잘리우는 괴변이 생기였다누나.

너무도 끔찍한 일이라 관가에서 백성들을 내몰아 물줄기를 돌리고 강바닥을 뒤지였더니 글쎄 강바닥에 날이 시퍼런 큰칼들이 숲을 이루었다는거다.

그것들을 몽땅 걷어내고 그밑을 파헤쳤더니 원, 이런 희한한 일이라구야. 바로 거기에 방만큼 큰 묘실이 있는데 금으로 만든 관이 있겠지.

그걸 뜯었더니 면류관을 쓰고 곤룡포를 걸친 늙은이의 시신이 있더라는거다.

그 시신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그게 조조라고 한다누나. 여하튼 기이한 일이야.》

계루왕은 자못 귀맛이 돌았다.

조조라고 하면 제갈량 못지 않게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다.

후한 말기 농군들이 일으킨 봉기를 진압하는 싸움들과 원소, 동탁 같은 적수들을 쳐이기고 승상을 차지한 조조는 오나라의 적벽싸움에서 참패를 당한때문에 더 크게 소문이 났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을 멸망시키고 위나라를 세움으로써 그는 위나라의 시조로 떠받들렸던것이다.

그런 조조의 시신이 나졌다니 실로 기이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계루왕이 자못 귀맛이 돌아하자 문예는 속으로 옳지, 일이 제대로 되여가는구나 하고 쾌재를 부르며 기세를 올렸다.

《그래 관가에서는 조조의 시신을 그의 생전의 적수였던 류비의 사당에 가져다놓고 목을 쳤다누나. 헌데 이 나라 문인들이 다시 고증한데 의하면 그게 진짜 조조가 아니라누나.

조조는 죽기 전에 제 무덤이 도굴당하는것이 겁이 나서 측근들에게 당부하기를 자기가 죽으면 장례를 보통사람처럼 치르되 일흔두개의 가짜무덤을 만들라고 했다누나.

사마염이 조씨의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를 세우니 조조한테 해를 입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떨쳐나 조조의 무덤을 찾아내는 바람이 불었는데 그때 일흔두개의 무덤을 다 파냈지만 그의 시신은 없었다고 한다.》

그쯤은 알고있었지만 어쨌든 조조에 대한 이야기로 계루왕은 재미있어하였다.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엮어내리던 문예는 점차 입이 쓰거워났다.

도대체 이따위 이야기로 태자를 귀순에로 떠밀수 있을가.

어쩜 내 신세가 점점 이 꼴로 되여가는것일가. 그래, 내가 당나라임금의 밑씻개노릇이나 하자고 이곳을 찾아왔단 말인가.

이럴줄은 몰랐어. 이런노릇이나 할것 같았으면 내 어찌…

당나라와의 충돌을 피하자면 반드시 흑수정벌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상주문을 띄울 때만 하여도 문예는 자기가 꼭 남의 나라로 도망쳐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불녈에 내려온 반안왕이 자기를 파면시키고 조정으로 압송하라는 어지를 전해주어서야 황상의 친동생일지라도 죄를 짓고는 살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도망쳐온것이였다.

자존심이 상한 문예는 당임금의 분부고 뭐고 다 걷어차버리고싶었다.

그렇게 한다고 나를 죽이기야 하겠는가.…

허나 곧 덜컹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에 문예는 흠칠 놀랐다.

아이쿠, 내 만일 당나라의 분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나를 고국에 넘겨줄것이 아닌가. 요행으로 넘겨주지 않는다 해도 상가집 개처럼 천대할것이다. 살길이란 오로지 허리굽혀 순종하는 길뿐이로구나. 아!-

어떻게 하나 살고보아야 한다는 욕구에 악을 먹은 문예는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쥐여짜면서 입을 열었다.

《난 이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이란 너무 모가 나게 살 까닭이 없다고 말이다.

조조도 제딴에는 공명을 떨치려고 전란을 평정하는 싸움에도 뛰여들었을것이고 손에 피를 묻혀가면서까지 권력을 차지했을거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조를 하내비처럼 떠받들며 충정을 떠벌였겠나 말이다.

그러나 조씨네가 망하니 누구도 그를 위해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죽은 몸도 령혼마저도 욕을 보이고있거던.…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공명이니 지조니 나라니 하면서 싸울게 있느냐 말이다. 다 허무맹랑한것이지.》

계루왕은 왕청같은데로 화제를 몰아가는 문예의 속을 알수 없어 의혹이 어린 눈길로 그를 지켜보았다.

의혹이 어린 계루왕의 눈길을 느끼였지만 문예는 내친 말이라 내뱉고보자는 심산으로 뇌까렸다.

《자네 이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나?》

문예의 본심을 알리없는 계루왕은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삼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덮어놓고 이 나라를 나쁘다고는 보지 않소이다. 이 나라의 백성들은 제 사는 집과 부쳐먹는 땅이 있으면 만족해하오이다. 그들은 결코 남의 나라를 빼앗으려는 전장에 끌려나가는것을 바라지 않소이다. 허나 이 나라 우의것들은 절대로 좋게 볼수 없소이다. 선조의 나라 고구려를 해친것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독을 쓰는데야 밸이 빠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좋다 하겠소이까.》

문예는 격해진 계루왕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이 나라가 우리를 해치려 한다면 가만있어서야 안되지. 그런데 돌이켜보니까 이 나라가 우리를 좋게 대해준것도 적지 않다.

난 지금도 우리 아버님이 돌아가시였을 때 많은 례물을 가지고와서 함께 슬퍼해준 당나라사람들을 잊을수가 없다. 그때 당나라처럼 우리의 국상을 위로해준 나라는 없었다.》

계루왕도 그때 일은 고맙게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삼촌, 그 점만을 생각하여 이 나라를 좋게 생각하다가는 반드시 화를 당하고마오이다. 당나라의 본심은 우리와의 진정한 화친이 아니라 우리를 어떻게 하나 물어메치자는것이오이다.

그러하기에 우린 매사에 각성하고 어느때건 이들이 달려들어도 단매에 쳐물리칠수 있도록 만전을 갖추고있어야 하오이다.》

문예는 속이 켕기였지만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 말도 틀리진 않다. 그러나 아무리 만전을 다한다고 해도 작은자는 큰자를 대적할수 없다고 한 옛말을 새겨볼바가 있지 않을가?…》

그 말에 계루왕은 문예를 낯선 사람인듯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쩜 삼촌이… 그 말을 잘 따져볼바가 있소이다. 허우대만 크다고 큰자가 아니며 몸집이 작다 해서 작은자가 아니오이다. 작은 나라도 사람들모두가 한데 뭉쳐 나라방비에 힘쓰면 얼마든지 몸집이 큰 나라를 대적할수가 있으며 그런 나라가 진정 큰자가 아니겠소이까.

삼촌은 황상마마의 사신으로 왔다면서 그런 정신으로는 발해의 위엄을 지켜낼수 없소이다.

삼촌은 지조이니 나라이니 하며 싸울게 아니라고 했는데 그것도 잘못하는 생각이오이다.

사람에게 지조가 없다면 또 제 나라를 위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게 짐승과 무엇이 다를바가 있겠소이까. 제발 그런 생각을 버리소이다.

나도 돕겠으니 이번 사신길에 우리를 넘보다가는 살진 궁둥이가 박살날수 있다는것을 이 나라것들이 깨닫도록 다불러대소이다.》

문예는 숨이 꺽 막히는것 같았다.

태자를 귀순시키기는커녕 잘못하다가는 여기서 덜미를 잡혀 고국으로 끌려갈수 있었다.

이런 때는 36계줄행랑이 제일이다 하고 생각한 문예는 서둘러 일어섰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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