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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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휴는 기대어린 눈길로 왕종군을 바라보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수전에도 특기를 가지고있었소이다. 그런데 그 수전의 특기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고있소이다.

그대신 크게 소문이 난것은 고구려의 수성전이오이다.

고구려의 조상들은 세상에서 제일 견고한 산성을 도처에 쌓아놓고 그에 의거해서 천하무적이라 뽐내던 모든 외적들을 쳐물리쳤소이다.

산성에 의지해서 싸우는 수성전에서 고구려를 당할자 천하에 없었소이다.

그때문에 세상사람들은 양광(수양제)도 그렇고 리세민(당태종)의 군사들도 고구려의 수성전때문에 녹아난줄로만 알고있소이다.

수나라나 당나라나 우리 고구려로 쳐들어올 때 반드시 수륙병진을 하였소이다.

허나 바다길로 쳐들어오던 외적들은 모두 고구려의 수군에 걸려들어 바다에서 녹아나고말았소이다.

만일 그때 고구려의 수군이 놈들의 수군을 당하지 못하여 수십만의 적군을 뭍에 올려놓았더라면 어쩔번 했겠소이까.

고구려의 수군을 도저히 당할수 없다는것을 깨달은 당나라였기에 신라군과 손을 잡고 평양성을 공격하면서도 바다길로는 쳐들어오지 못했소이다.

고구려의 수군이 수전에 능할수 있은것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아주 든든하면서도 빠르게 만든 병선을 가지고 그에 맞게 싸우는 수군전법을 가지고있었기때문이오이다. 고구려의 선조들처럼 우리도 수전을 중시한다면 바다길로 기여드는 외적을 바다에서 모조리 수장시켜버릴수 있소이다.》

장문휴는 바다를 우리 수군의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견해도 자기의 생각과 일치되는것이 놀라왔다.

이 사람은 보기드문 인재가 틀림없구나.…

《듣자하니 주인님의 선조들이 고구려때 대가였다는데 그게 사실이오이까?》

왕종군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는 하는데… 자기 나라를 지켜내지 못했으니 제일 큰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인데야…》

그 말에 장문휴는 왕종군을 안아주고싶었다.

당당한 귀족가문의 후손이니 조정에 아뢰여 크게 쓸수가 있었다.

장문휴는 왕종군을 좀더 일찌기 알지 못한것이 아쉬웠다.

이 사람이 이런 궁냥을 가지고있으면서 왜 가만 있었을가?!

풀길 없는 의문속에 장문휴는 입을 열었다.

《주인님의 주견은 실로 감탄할만 하오이다. 그런데 왜 조정에 상주하지 않았소이까?》

왕종군은 쓴웃음을 지었다.

《웬걸요. 몇해전 도독이란 사람을 찾아갔었지요. 도독어른에게 장성과 수군에 대한 글을 올렸더니 그 사람이 호통치기를 나라를 걱정하는것도 지키는것도 다 조정에서 하는것인데 책이나 읽었다고 시골뜨기가 이따위걸로 소란케 군다면 벌을 주겠다고 했소이다.

하긴 조정에 천리밖을 내다보는 성인들이 있겠으니 나같은게 그런걸 들고 다닌것부터가 우스운 일이라 하겠소이다.》

장문휴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장문휴가 주자감을 다닐 때 선배였던 인연으로 리오구의 사람됨을 그만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나라앞에 이렇다할 공을 세운바 없는 집에서 태여난 리오구는 별다른 재주는 없고 오로지 탐욕스럽고 웃사람에게 발라맞추는 기질을 타고났을뿐이였다.

그 기질로 주자감을 마치자 임아에게 잘 보인 덕에 벼슬이 껑충껑충 뛰여올라 나중에는 나라의 관문까지 타고앉았던것이였다. 무능하며 부패한 리오구의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너무도 례사로울것이였다.

크게 숨을 들이킨 장문휴는 왕종군의 자질됨을 끝까지 들춰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또다른 질문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오늘날 우리가 당나라와 싸워이기려면 또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오이까?》

왕종군의 대답은 여전히 물이 흐르는듯 하였다.

《고구려도 천년이란 오랜 세월 중원의 침입을 당해왔소이다. 웬만한 나라같으면 천하대국이라 으시대는 그네들의 대거침입에 곧 무너지고말았을것은 뻔한 일이오이다.

중원을 쳐물리쳐온 고구려의 력사를 더듬어보면 안겨오는것이 있소이다.

고구려의 선조들은 외적을 쳐부시는데서 크게 세가지 수법을 써왔다고 할수 있소이다.

외적이 수십만명이상으로 대군을 무어가지고 쳐들어오는 경우에는 험한 산을 낀 곳으로 놈들을 깊숙이 끌어들여 족치였소이다. 산지싸움에 서툰 외적이 험한 산골로 끌려왔으니 백만대군이란들 무슨 맥을 추겠소이까.

을지문덕, 연개소문장군들이 바로 이 수법으로 적을 요정냈소이다.

외적이 십여만명정도로 쳐들어오는 경우 그때는 적의 선두진은 지경안으로 끌어들이고 불의에 그 앞뒤를 차단하는 동시에 적의 소굴을 들이쳤소이다.

이렇게 하면 선두의 적도 후위의 적도 다 혼비백산하여 맥을 출수가 없소이다.

중원땅에서 명장이라 자처하던 조조가 위나라의 승상으로 있을 때 고구려의 국상 을파소가 그렇게 싸워 그것들의 대군을 몰살시켰소이다.

외적의 침공이 예견되는 경우 말하자면 적국에 박혀있는 눈과 귀로 그것들의 침공을 미리 알아낸 경우라 하겠소이다.

이 경우에 고구려의 선조들은 미리 선손을 써서 그것들의 소굴을 답새겨 놈들이 움쩍 못하게 눌러놓았소이다.

모본왕과 신대왕때 있은 태원과 병주원정이 그 좋은 실례라 할수 있소이다. 그때 고구려군은 후한의 장성(만리장성)을 넘어가 도성의 근방까지 육박함으로써 그것들을 기절초풍케 했소이다.

우리도 고구려가 하였던것처럼 나라방비를 한다면 어찌 당나라를 어렵다 하겠소이까.》

이 역시 자기의 생각과 신통하여 장문휴는 탄복을 금할수 없었다.

장문휴는 벌써 주자감시절에 병서를 읽으면서 당나라의 침공이 예견되면 선손을 써서 그것들의 소굴을 들이쳐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기를 잘 택하지 못한 선손은 도리여 화를 불러들일수 있었다.

적의 기세가 대단히 강성하고 정예할 때에는 선손을 쓰는것보다 기여들 때를 기다려 매복전을 펴는것이 썩 유리한것이다.

우리를 노리는 적군이 방비없이 국경가까이로 모여들고있을 때 설사 방비를 하고있더라도 적장들사이에 갈등으로 그 내부가 편안치 않으면 선손을 쓸수 있는 적기인것이다.

그 적기를 알아내자면 어느 한시도 적국을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장문휴는 또다른 질문을 입에 올렸다.

《주인님은 배수진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오이까?》

이번에도 왕종군은 별로 생각을 더듬지 않고 대답했다.

《저희 군사로 하여금 더는 물러설수가 없도록 강을 등지고 적과 싸우는 배수진법을 우리 조상들은 좋아하지 않았소이다.

배수진법이라는게 중원땅을 처음으로 통일했던 진나라가 무너진 후 류방과 항우가 패권을 다툴 때 류방의 수하장수였던 한신이 쓴 전법이 아니오이까.

그때 5만명의 군사를 거느린 한신은 적군의 땅에 깊숙이 기여든 끝에 저들보다 네곱이나 많은 대적과 맞다들리게 되였소이다.

지략가라고 자처하던 한신은 거짓 패해서 도망치다가 불쑥 강을 등지고 진을 쳤소이다.

더는 물러설데가 없는 오직 싸워이겨야만 살수 있다는것을 절감한 한신의 군사들은 죽기로써 싸웠소이다.

그 덕에 한신은 훨씬 우세한 적을 격파하고 일약 명장이라 이름을 날렸소이다.

하지만 나도 우리 조상들처럼 배수진법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소이다.

고구려의 선조들은 배수진법으로 싸우지 않았소이다. 이 땅에 기여든 적을 쳐부실 때에는 요해처들에 쌓은 산성들에 의거하였기에 언제나 지형상의 우세를 차지했소이다.

지형상의 우세에다 죽더라도 외적을 쳐부실 마음뿐인데 어찌 적을 이길수 없겠소이까.

또 넓은 들에서 싸울 때에는 공격력이 강한 철기군을 선두에 세우고 적이 정신을 차릴수 없이 불이 번쩍나게 답새기는 전법을 썼소이다.

또 적의 소굴을 원정할 때에도 언제나 험산을 낀 곳으로 진출하여 싸웠기때문에 당초에 배수진같은것이 필요치 않았소이다.

우리한테 조상들이 물려준 이런 특기가 있는데 구태여 남의것을 본받을게 있겠소이까.》

이 역시 장문휴가 생각하던 대답이였다.

이로써 장문휴는 왕종군이 병서를 많이 읽었을뿐아니라 고금동서의 명장들이 써온 전법을 파악하고 우리 실정에 써먹으려 애쓰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이런 사람이 오늘 나라가 바라는 인재라 할수 있었다.

허나 장문휴의 요구는 그에 머무르지 않았다.

《주인님은 이곳의 민심을 어떻게 보오이까? 민심이 신통치 않다고 본다면 어떻게 해야 그를 바로잡을수 있다고 생각하오이까?》

입안이 마르는지 침을 모아삼킨 왕종군이 곧 입을 열었다.

《새로 도독이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 민심이 좋아졌다고 볼수 없소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이전 도독 리오구의 탓이라고밖에는 달리볼수 없소이다.

어르신도 지난해 안원부의 봉물짐이 로상에서 털린걸 아시겠소이다?》

장문휴는 얼른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소문에 리오구를 이곳 도독으로 내려보내는데 크게 힘을 써준 사람은 황상의 외삼촌이라 하오이다.

리오구는 그 은혜를 갚는다며 해마다 몇차례씩 우에다 봉물짐을 보내군 하였소이다.

그 봉물짐때문에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어찌 다 말로 그려낼수 있겠소이까.

리오구가 각 고을에 재물을 내라고 내리먹이면 관가들에서는 그를 턱대고 그 몇곱이나 백성들에게서 털어내오이다.

그통에 살길을 만난것이 관가것들이고 반면에 죽을 길이 난것은 백성들이오이다.

뿐더러 봉물짐때문에 조정대신들의 욕심자루도 날로 커지게 되였소이다.

조정의 모든 대신들이 붕물짐을 받아먹는데 몰두한다면 나라가 어찌 되겠소이까.

기울어진 민심은 리오구가 파직되였다고 해서 저절로 바로잡히지 않소이다. 리오구의 손발노릇을 하면서 제 배를 불리운 관가것들을 그대로 두고 정사를 바로잡겠다는것은 다 해진 치마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넣겠다는것만치나 우둔한 일이 아닐수 없소이다.

아래로는 촌장에 이르기까지 우로는 부도독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가들에서 평판이 좋은 사람들로 탐오죄를 지은자들을 모조리 갈아치워야 하오이다.》

장문휴는 잠시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확실히 왕종군은 나라를 누구보다 위하려 하는 좋은 사람인것이 틀림없다.

내가 오늘 이 사람을 만난것은 행운이고 복이다.

이 사람은 크게 쓸만 하다. 그럼 어떤 자리에?!… 료동성의 태수?!… 아니다.

이런 사람과는 모든 일을 옳게 의논할수 있으며 매사에 도움을 받을수 있다.

또 이런 사람이라야 인재천거를 맡기면 청렴결백한 인재들을 천거할것이다.

내가 그토록 찾고싶어한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니 도독의 다음가는 부도독으로 크게 써주는것이 아무모로 봐도 마땅하다. 아무렴!

왕종군을 데리고 가리라 결심한 장문휴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나를 도와주오.》

그 말에 왕종군은 공손히 아뢰였다.

《소인은 어른이 신관도독임을 알아보았소이다.》

《그걸?!…》

《신관도독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장수로서 나라방비와 부의 정사에 힘쓰고있다는 소문이 자자하오이다. 그런 어른이 아니고서야 리오구가 차버린 저같은 사람을 찾아올수가 있겠소이까.》

감동된 장문휴가 왕종군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그때 밥상을 안고 들어온 왕종군의 안해가 수집어하며 아뢰였다.

《해가 기울고있사오이다. 기다리다 못해…》

그 말에 두사람이 거의 동시에 이마를 쳤다.

왕종군이 《이런 인사불성이라구야…》하고 탄식했다면 기세가 오른 장문휴는 밖에다 대고 큰소리쳤다.

《이 애 호력아- 술을 들여오너라. 점심겸 저녁겸으로 실컷 마셔야겠다.》

일이 잘되였다는것을 안 호력이 사기가 나서 술동이를 안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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