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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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간에서 제갈량에 비긴다는 왕씨는 료동성의 남문에서 한마장쯤 떨어진 마을에서 살고있었다.

마침 정오인지라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글방은 조용하였다.

글방은 왕씨의 살림집이기도 하였다.

수수대울바자를 두른 글방의 십짝문앞에서 말을 세운 장문휴는 나직이 소리쳤다.

《주인 계시오이까?》

좀 있어 방문이 열리고 보통키에 몸이 갱핏한 사나이가 토방에 나서며 대꾸했다.

《누구를 찾으시오?》

말에서 내려선 장문휴는 삽짝문우로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재사는 인물부터 남다르다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가?…

토방에 선 사나이는 마흔살가량 나보이고 아녀자처럼 아련하게 생긴 용모로 하여 사내다운 맛이 엿보이지 않았다.

《글방의 주인님을 뵙자고 왔소이다.》

의아해하는 눈길로 장문휴를 마주보며 그가 대꾸했다.

《제가 글방주인 왕종군이올시다. 그런데 무슨 일로?!…》

실망한 장문휴는 한숨을 내쉬였다.

큰 기대를 안고온 걸음인데 어쩜 생김이 이전 사람들만도 못할가. 아녀자의 골상을 한 저런 사내가 뛰여나면 얼마나 뛰여났겠고 또 큰일을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옛적 어떤 사람은 두번째까지 허탕을 친 끝에 만나본 인재를 첫눈에 용모부터 마음에 들어서 스승으로 모셨다는데 저런 왕씨야 설사 아홉번만에 만나보았다고 해도 어디 반할만 한데가 있어 써주겠는가.…

장문휴는 돌아설가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다고 선자리에서 돌아서버리면 그보다 큰 실례가 없으니 왔던김에 만나보자. 혹시 촌장이라도 겸할만 한 재주라도 있겠는지 알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장문휴는 호력이에게 일렀다.

《넌 예서 좀 기다리라.》

삽짝문을 열고 들어서며 장문휴는 왕종군에게 말했다.

《학식이 높으신 주인에게 몇가지 의논할게 있어 찾아왔소이다.》

《허-》하고 가벼운 웃음을 터친 왕종군이 고개를 저었다.

《저같은 시골사람과 무슨 의논할게 있겠소이까. 보아하니 어른은 대군을 호령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큰사람같으신데 잘못 찾아왔소이다.》

그만 장문휴는 속으로 (아따, 이것 봐라.) 하고 탄성을 질렀다.

첫눈에 상대의 본색을 헤아려보는 사람이 어디 쉬운가.

《주인님은 혹시 저를 본적이 있소이까?》

왕종군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같은 시골뜨기가 무슨 발이 넓다고 큰 어른들을 뵈러 다니겠소이까.》

장문휴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밝아졌다.

용모는 비록 졸장부처럼 생겼으나 거인같은 인재도 있다하질 않았던가. 첫눈에 상대의 본색을 엿보는 그런 재간만 있어도 크게 쓸만 하다.

장문휴는 비위좋게 달라붙었다.

《난 그저 보통사람에 지나지 않소이다. 사람의 얼굴을 보아가면서 그러면 진짜 벗을 사귈수 없소이다.》

왕종군은 시쁘등해서 말했다.

《하여튼 방으로 들어가시오이다.》

왕종군에게 이끌려 방에 들어서니 너렁청한데 구름노전이 깔려있었다.

방의 아래목에 앉은뱅이책상이 있었다. 밤나무로 만든것인데 그우에 《장수는 어떤 사람이 될수 있는가.》라는 글이 씌여진 종이장이 놓여있었다.

왕종군과 마주앉은 장문휴는 그 종이장을 가리켰다.

《아이들에게 이런걸 가르쳤나보오이다?》

왕종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오늘의 나라형편이 이런걸 가르칠것을 바라니 어찌겠소이까.》

이야말로 상대의 됨됨을 재빨리 타진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 장문휴는 그의 말꼬리를 놓지 않고 물었다.

《주인님은 어떤 사람이 장수가 될수 있다고 생각하오이까?》

왕종군은 게면쩍게 웃었다.

《그거야 사람마다 보는 눈이 각각이니 말하기 곤난하오이다.》

《주인님의 눈에 맞는 장수,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장수를 알고싶소이다.》

《정 듣고싶다면… 대개 장수라고 한다면 군사를 통솔하여 적과 싸워 이길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을 가리킬것이오이다.

허나 지략과 용맹을 지님은 사람마다 다르기때문에 백명의 적을 대적할만 한 장수가 있는가 하면 천명, 만명의 적을 대적할수 있는 장수가 있고 지어 십만, 백만명의 대군을 쳐부실 장군도 있소이다.

난 십만대군을 대적하는 장수를 명장, 백만대군을 쳐부시는 장수는 천하명장이라고 생각하오이다.

선조의 나라 고구려의 명림답부, 을파소 그리고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이 바로 천하명장이라 할수 있소이다.》

장문휴를 쳐다보던 왕종군은 그가 틀림없는 신관도독일거라고 확신했다.

아무리 백성차림을 했어도 기품이 범상치 않고 장수다운 체취가 력력한데야…

그리고 신관도독이 인재를 물색하고있다는 소문이 나돌고있는데 그런 사람이 아니고서야 일부러 찾아와 이런 말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수 없을것이였다.

마침 잘됐다. 이런 기회에 정사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는것도 나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장수들을 돕고싶어한 나인데…

이런 생각에 왕종군은 흥분으로 가슴을 울렁이였다.

그의 입에서 열변이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천하명장들은 하늘에서 저절로 뚝 떨어지는것이 아니오이다. 백명의 적을 대적할 장수가 많을수록 천명, 만명의 적을 대적할 장수도 늘어나게 되며 만명의 적을 능히 대적할 장수가 많아야 그속에서 명장, 천하명장이 나오는 법이오이다.

고구려에서는 산골마을에 이르기까지 모든 마을마다 경당이 있었고 사내자식이라면 빈부귀천 막론하고 거기서 무술을 배웠소이다. 말하자면 온 나라가 련무장이였소이다.

바로 그 경당들에서 문무를 배운 젊은이들이 해마다 봄이면 크게 열리는 사냥시합에 나가 무술을 떨치였는데 나라에서는 시합에서 당선된 인재들에 한해서는 출신을 따지지 않고 장수로 등용했소이다.

비천하기 그지없는 온달이 장수로 된것이 그 좋은 실례라 할수 있소이다.

고구려때에는 백명, 천명을 대적할수 있는 장수들이 헤아릴수없이 많았기에 수나라, 당나라가 무서워한 천하명장들이 나올수 있었소이다.

우리의 력사를 보면 비천한 집의 자식일지라도 애써 분발하면 얼마든지 장수로 될수 있다는것이오이다.

그래서 난 아이들에게 누구나 글과 함께 무술을 닦으면 얼마든지 나라에 공을 세우고 후세에 좋은 이름을 전할수 있는 장수가 된다고 가르치고있소이다.》

처음에는 별스럽지 않은 말이라 생각했던 장문휴는 온몸이 귀가 된듯싶었다. 입을 꾹 다물고 숨까지 죽인 장문휴의 태도에 왕종군은 감동되였다.

이런 사람이라면 어찌 진속을 활활 열어제끼지 않겠는가.

《천하명장이 없는 나라는 장수마저 고갈되는 법이오이다. 백제의 망국사가 그걸 말해주고있소이다.

백제말년에 그 나라에는 외적의 침노에 사직을 능히 버티여낼수 있는 명장은커녕 장수마저 변변치 못하였소이다.

명장에게는 누구도 견줄바 없는 용병술과 지략은 물론 조정이 삐뚤어진 길로 간다면 그 조정을 줌안에 넣고 똑바르게 이끄는 완강한 수완이 겸비되여있소이다.

의자왕의 충신 계백장군에게는 바로 그 수완이 결여되여있었기에 무너지는 나라를 건질수 없었소이다.

저 중원에서는 제갈랑이 죽은 뒤 그처럼 군사가 정예하기로 이름났던 촉나라가 위나라에 먹히우고 이어 손씨의 오나라까지 멸망당한것이 그 좋은 실례라 할수 있소이다.》

비로소 왕종군이 이전의 사람들과 달리 범상치 않은 인재임을 확신한 장문휴는 불쑥 질문을 들이댔다.

《항간에 돌아가는 말에는 그대를 제갈량과 견줄 지략가라고 한다는데 오늘같은 때에 나라방비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오이까?》

왕종군은 잠시 코를 주무르고나서 씩 웃었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는데 그건 저를 모르고 하는 소리오이다. 제 지금껏 만나는 사람들에게 고구려의 명장들에 대해서뿐아니라 이웃나라들의 장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좋아했소이다.

그때마다 아무리 용맹해도 지략이 없으면 이름난 장수가 될수 없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더니 그런 말을 듣게 된것이오이다.

참, 오늘 나라에서 흑수의 반란무리를 결단코 짓부시는 일을 벌려놓았고 그리하여 당나라와 사이가 더 버그러지는 형국이 조성되였소이다.

허나 이건 결코 새삼스러운것이 아니오이다.

력대로 당나라는 힘이 강해지면 반드시 우리에게 병란을 일으켜왔소이다.

오늘 우리가 흑수를 정벌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쨌든 당나라는 언제든지 싸움을 걸어올것이오이다.

그러니 우린 응당 아무때건 그것들과 싸워 이길수 있는 군력을 갖추고있어야 하오이다.

나라방비에서 안원부가 차지하는 몫은 아주 크오이다. 안원부로 외적을 들여놓지 않으려면 장성을 중시하고 바다가의 군진들과 각 성들의 군사들이 서로 후원할수 있도록 하는데 중심을 두고 교련하고 그와 동시에 수군을 다져야 하오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우선 장성을 더 높이 쌓아야 하오이다. 장성은 고구려때 당나라와의 싸움으로 적지 않게 못쓰게 된것을 손질하였다고는 하지만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기여 낮아졌소이다.

장성을 든든히 만들고 료수건너의 서쪽변방에도 성을 더 쌓아야 하오이다.

지금 장성너머의 료서땅을 거란이 차지하고있지만 그것들은 원래 약소한 종족이라 당나라의 등쌀에 못이겨 길을 빌려줄수도 있고 언제 먹히울지도 모르오이다.

그러니 우린 장성이 당나라와 맞서있다고 생각해야 하오이다.》

장문휴는 마치도 외워두었던듯 거침없는 왕종군의 달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어쩜 이 사람의 주장이 나와 꼭 같을가. 이건 나라방비를 위해서 내가 생각하고 내미는 일들이 옳다는것이다.

또한 이 사람의 생각이 나와 같다는것은 곁에다 두고 쓸만 한 인재라는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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