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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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도 장문휴는 나라방비를 첫자리에 놓고 일손을 잡았다.

아침일찍 본영에 나가 각 군진들에서 보내온 공문서를 펼쳐보니 병력수가 많은 군진들에서 소금부족으로 애를 먹고있었다.

군진들의 군사수가 수천명으로부터 수백명에 이르기까지 그 병력수가 서로 다른데도 일률적으로 공급하고있으니 큰 군진들에서 소금이 부족될수밖에 없었다.

즉시 판관을 불러 주먹치기로 일하지 말고 병력수에 따라 군진들에 소금을 내주라는 령을 내리고났는데 가죽주머니를 든 호력이 그의 방에 들어왔다.

가죽주머니에 방울이 무려 세개씩이나 달려있는것을 보아 그안에 대단히 긴급한 공문서가 들어있는 모양이였다.

나라의 법에 공문서를 넣어보내는 가죽주머니에는 방울을 달게 되여 있는데 그 수의 따라 급하고 덜 급함을 표시하였다.

보통공문서에는 한개의 방울을, 그보다 급한것은 두개, 아주 급한 공문서는 세개를 달게 되여있다.

장문휴는 세개의 방울이 달려있는 가죽주머니를 놀라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데서 오는거냐?》

《대내상부에서 보내온것이오이다.》

《?!

지금껏 조정에서 열댓건의 공문서를 내려보냈었지만 방울이 기껏 많아야 두개였다.

그러니 대단히 중요한 분부가 들어있을것이였다.

혹시 당나라것들의 움직임을 알려주는것이 아닐가 아니면 흑수정벌소식을?!

봉인을 뜯고 꺼내든 공문서를 펼쳐보던 장문휴는 주먹으로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세상에 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같은 일인가.

대내상부에서 보내온 공문서에는 흑수원정군의 군장 문예가 정벌을 중지하자는 상주문을 올리고 그 죄가 두려워 도망쳤는데 당나라로 간것이 확실하다는것과 이와 관련하여 변방의 방비에 더욱 전심하라는 령이 씌여져있었다.

뿐더러 나라에서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반안왕이 원정군의 군장이 되여 흑수진격을 개시했다는것도 알려주었다.

공문서를 꽉 움켜쥔 장문휴는 이를 사려물었다. 그래서 문예 그놈이 북방의 강토가 어쩌구저쩌구, 당나라가 또 어떻다고 수작질을 한것이였구나. 그때 벌써 놈은 여차하면 당나라로 도망칠 꿍꿍이속이였구나.

공문서를 그러쥔채 자리에서 일어선 장문휴는 이를 갈았다.

문예, 네놈이 미쳐도 더럽게는 미치였구나.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었노라고 뽐내던 네가 적국으로 달아났다고 해서 무사칠 못하다는걸 그래 모른단 말이냐.

그래 네놈의 말로가 고연수의 말로 아니, 그보다 더 비참한 말로가 될줄 모른단 말이냐.

고연수는 고구려의 장수였다.

당나라가 백만대군으로 고구려에 쳐들어왔을 때 나라에서는 정예한 대군을 고연수에게 주어 그를 막게 하였다.

원래 병법에 밝지 못한 무능한 고연수인지라 적장의 꾀임에 빠져 패하였다.

싸움에서는 이길수도 있고 패할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평시에 명문가의 자식이랍시고 우쭐해서 다른 장수들을 눈아래로만 굽어보는데 습관된 고연수는 이 한번의 패전으로 나라가 무너질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제 나라가 무너지면 그와 함께 내 목숨도 끝장일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적국으로 넘어간 고연수였다.

허나 연개소문장군이 거느린 고구려군의 드센 반격전에 당나라군은 무수한 주검을 남기고 쫓겨나고말았다.

황급히 도망치는 적을 따라 이역만리로 쫓겨간 고연수에게 차례진것은 멸시와 고독뿐이였다.

고국에서라면 대대로의 귀족으로서의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었지만 고국을 배반하고 도망쳐간 그에게 이국의 천민들까지 역적이라 손가락질을 해대니 그만 울화통이 터져 제 명을 살지 못한 고연수였다.

그에게 무엇이 부족했던가.

그것은 제 겨레와 자기 나라를 위해서라면 한몸도 바치겠다는 그 정신이 없었기에 그런 말로가 차례진것이다.

《문예, 네놈한테도 그 정신이 없었어.》하고 부르짖는 장문휴는 치솟는 분노로 하여 틀어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당장 달려가 역적놈을 잡아다 쳐죽이고싶은 마음뿐이였다.

이제 문예가 나라를 저버리고 남의 나라로 도망쳐간것이 알려지면 군심과 민심을 해칠것이다. 반면에 당나라는 좋아라 환성을 지르겠고…

또 그것으로 끝이 날리 만무하다.

나라의 형편을 손금보듯 알고있는 그놈이 당나라의 길잡이가 되여 우리를 치자 할건 뻔하다.

놈이 하루라도 더러운 목숨을 부지한다면 그만큼 더 큰 화를 가져올것이다.

문예놈때문에 화가 닥치기 전에 손을 써서 살아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것이 긴급한 국사중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상주문을 쓴 장문휴는 그것을 호력이에게 주었다.

《이건 아주 급하게 조정에 올라가야 하는 글이다.

그러니 방울 세개를 달고 네가 제일 믿는 부하에게 맡기되 그가 직접 가지고 동모산에 가도록 하라.》

상주문이 든 가죽주머니를 들고 나가려는 호력이에게 장문휴가 한손을 쳐들며 일렀다.

《가만, 풍걸이를 들여보내라.》

료동성에 온 지금껏 아무런 일감이 차례지지 않아서 공밥을 먹는다는 죄의식에 가슴을 조이던 풍걸이 사기가 나서 나타났다.

다른 사람도 아닌 도독이 드디여 불러주는것은 보통일감이나 주자는것이 아닐것이기때문이였다.

일감도 아주 큼직한 일감이 차례질수 있다는 생각으로 장문휴에게 깊숙이 큰절을 하는 풍걸이였다.

장문휴는 큰절을 하는 풍걸의 얼굴에 기쁨이 어린것을 보자 마음이 흥그러워졌다.

《너도 문예가 흑수원정군의 군장이 되였다는걸 알테지?》

전혀 생각밖의 질문에 풍걸은 어정쩡해졌다.

그렇다면 큰 일감을 주려고 부른것이 아니였단 말인가?!

《아는가 말이다.》

장문휴의 엄한 소리에 풍걸이 큰소리로 대꾸했다.

《알고있었소이다.》

《그럼 이걸 보아라.》

장문휴가 내미는 공문서를 얼결에 받아든 풍걸은 곧 그게 어떤것인지 깨달았다.

이런 공문서는 오로지 벼슬아치들만 볼수 있었다.

풍걸은 얼른 공문서를 책상우에 내려놓았다.

《이걸 소인이 어떻게… 안되오이다.》

《읽어보라는데, 어서!》

장문휴의 엄한 재촉에 못이겨 글줄을 더듬던 풍걸이 깜짝놀랐다.

문예가, 그것도 무거운 중책을 저버리고 남의 나라로 도망치다니…

도무지 믿을수 없는 일이기에 고개를 젓던 풍걸은 장문휴의 분노에 찬 눈길과 부딪쳤다.

《그렇다, 문예 그놈이 당나라로 도망쳤다. 허지만 아직은 이 사실을 너와 나만이 알아야 한다.》

그제서야 믿어야 하는 현실임을 안 풍걸은 어깨를 흠칫하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황자라는 사람이 무엇이 모자라서 남의 나라로?!…》

장문휴는 풍걸의 어깨를 움켜쥐였다.

《얼이 없으면 그렇게 되는 법이다. 개만도 못한 놈, 난 너에게 아주 크고 긴한 일감을 맡기자고 한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든 풍걸이 기대어린 눈길로 장문휴를 쳐다보았다.

《그저 큰 일감만 맡겨주소이다. 그러면 그 어떤 령일지라도 달게 받겠소이다.》

《그래야지.》

장문휴가 가지고있는 장점들중의 하나가 일단 결심이 서면 즉시로 실행하는 그것이였다.

오늘도 그는 조정의 공문서를 손에서 내려놓기 전에 정확한 판단에 기초한 새 결심을 세웠던것이다.

그 결심을 실천에 옮겨줄 적임자가 곁에 있었다. 당나라의 말과 풍습에 환하고 불의를 원쑤처럼 미워하는 풍걸이야말로 그런 일의 적임자였다.

무엇을 보고 풍걸이가 불의를 원쑤로 여긴다고 할수 있는가.

장문휴는 수수쌀 한섬에 남의 딸을 빼앗아가려던 부자집 심부름군을 쳐눕히던 풍걸의 모습에서 그것을 엿본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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