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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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령을 내린 장문휴는 엄하게 일렀다.

《정사라고 하면 흔히 백성이나 다스리는것으로 알고있지만 난 정사이자 군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옛적에 정사라는 말이 처음으로 생겨났을 때 그때의 사람들은 정사이자 산을 다스리고 강을 다스리는 치산치수라고 하였다.

치산치수를 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보금자리를 펼수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치산치수라는 말의 의미를 더 깊이 파고든다면 그 말은 곧 제 사는 보금자리를 지켜내야 한다는것이다. 제 사는 터전을 지켜내지 못하고서야 산을 다스려서는 무엇하며 강을 다스려서는 어데다 쓰겠는가. 망국노에게는 치산치수란 말이 통할수 없는것이다.

그런즉 치산치수란 나라방비이고 결국은 군사이자 정사라는 답이 나오는것이 아닌가. 그러니 군사를 소홀히 하는자는 곧 정사를 망쳐먹는 중범인이다.

그런 중범인들을 나는 가차없이 군령으로 엄벌에 처할것이다.》

이렇게 군령이 엄함을 공포한 장문휴는 내부의 일을 도맡아야 할 몇사람만을 남기고 나머지 관원들에게는 고을을 하나씩 분담시켜 떠나보냈다.

그들이 고을들에 내려가 할 일은 관가들에서 군정의 징발과 소금과 같은 물자들을 군진들에 우선 보장해주도록 떠밀어주며 나라방비에 저애를 주는자들을 도독부에 보고하여 즉시 처리하는것이였다.

그 이튿날에는 도독영의 군사들속에서 날파람있는 수십명을 선발하여 호력이 통솔하게 하였다.

그들의 일감은 동모산과 안원부의 각 군진으로 도독의 공문서를 가져가는것이다.

천리변방의 대군을 통솔해야 하는 장문휴에게 이만한 수의 정령을 두어야 군령을 시달하는데 지장이 없을것이였다.

전령군을 무은 즉시 장문휴는 이들에게 각 고을의 자사, 현승들을 도독영으로 부르는 공문서를 주어보냈다.

안원부에는 녕주, 미주, 모주, 상주의 4개 주와 주들에 소속된 모화현, 승평현 같은 수십개의 현들이 있었다.

주를 다스리는 벼슬아치를 자사, 현의 우두머리를 현승이라고 불렀다.

며칠후 도독영에서 자사, 현승 등 안원부의 모든 관가들에서 모여온 벼슬아치들의 모임을 연 장문휴는 먼저 조세와 리자와 소금에 대해서 나라가 제정한 법을 전달하였다.

그다음 오로지 국법대로 조세를 올해 거둔 곡식량의 10분의 한몫을 받아들이며 또 새로 개간한 부침땅에서는 3년간 조세를 면제시킬것과 관가들에서 자의로 거두어들인 재물 전량을 백성들에게 되돌려주며 염분들에서 구워내는 소금도 관가에서 전량 받아가지고 나라에서 정해준 가격으로 시장에서만 팔것을 명령하였다.

그리고 부자들이 국법을 어기고 망탕 리자를 불구어 받아들인것을 본인들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게 하도록 하였다.

만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어긴다면 그가 개국공신의 자손일지라도 엄벌에 처하겠다는것을 선포하였다.

장문휴는 이를 첫 정사로 간주했다. 그만큼 여기에 나라방비의 큰 몫이 달려있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하기에 그는 첫 정사에 대한 정형을 방으로 써서 모든 고을마다 관가앞에 내다붙이도록 하였다.

이를 백성들까지 다 알고 국법을 지키지 않는 관속들과 부자들을 관사에 고소하도록 하게 하자는것이 장문휴의 의도였다.

물론 이날의 회의에서 장문휴가 놓치지 않은것은 각 고을들에서 군량미조달과 군기엄수 그리고 군정의 징발이였다.

모임에 참가한 관리들은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범같이 사납다고 소문난 장수가 도독으로 내려와 군령으로 백사만사를 다스리려드니 그동안 제 배나 채우려고 저지른 못된짓도 켕기였고 또 그의 억센 손탁에서 딴눈을 팔다가는 목이 무사치 못할것이기때문이였다.

오로지 나라방비를 위해 장검을 찬 장수는 군령을 어긴자들에게는 일구이언함이 없이 칼로 다스린다는것을 그들이 모를바 없었다.

모임끝에 장문휴는 부안의 모든 봉수군이 밤낮으로 봉수대에서 떠나지 말라는 령도 내리였다.

안원부에는 천리장성과 바다에서 올라오는 두개의 봉수길이 있었다.

봉수군들은 바다와 장성앞의 국경일대로 외적이 쳐들어오면 이 두개의 봉수길에 설치된 봉수대들에 봉화를 올려 료동성의 도독영에 알려야 했다.

그러면 도독영에서 동모산으로 뻗어나간 봉수길의 봉수대들에 불을 지피게 함으로써 조정에 외적이 쳐들어옴을 전한다.

이튿날 장문휴는 수수쌀 한섬에 남의 집 처녀를 빼앗아가려고 하였던 부자놈을 불러들여 두번다시 그런 몹쓸짓을 한다면 민심을 망친 죄로 목을 치겠노라고 호령했다.

당장 목에 칼이 날아들것 같은 환각에 기가 질린 부자놈은 제발제발 용서를 빌고서야 네발걸음으로 기여나갔다.

며칠후 손꼽아 기다리던 경군이 도착하였다.

장문휴는 그 즉시 후군은 바다가의 군진들에, 전군은 안시성과 같은 요해처의 성들에 주둔할것을 령하였다.

아직은 변방너머에서 그런 징후는 보이지 않지만 당나라가 끝끝내 전란을 일으킨다면 바다가에서 그 침공을 저지시키는 동시에 드센 반격으로써 놈들의 소굴까지 답새기자는것이 장문휴의 확고한 결심이였다.

이런 결심속에서 장문휴는 휘하 군진들을 빠짐없이 돌아보면서 공격위주의 조련을 줄것을 장수들에게 분부했다.

열흘나마 군진들에 나가 방비책을 세우고나니 그 어떤 외적이 덤벼들어도 일격에 쳐물리칠 신심이 생기였다.

이제부터는 부의 정사에 전심해도 될것 같았다.

본영으로 돌아온 장문휴는 각 고을들에 시달한 군령의 실천여부를 알아보는 일에 달라붙으면서 이것을 안원부의 관리들에게만 맡기지 않았다.

현실에서 깨달은것은 관가것들이란 서로서로 싸고돌며 제 리속이나 챙그리는짓의 능수들인것만큼 그들만을 데리고서는 나라방비는 말할것도 없고 백성들도 바로 다스릴수 없다는 그것이였다.

그래서 장문휴는 백성들속에 신망이 있는 여러명의 식자들은 선발하여 관리들과 함께 그 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그들을 각 고을로 내려보내면서 사리에 밝고 신망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낼것과 백성들의 도움을 받아 일을 벌리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도독의 눈이자 귀이고 손발이 되여줄 그들을 보내고서야 한시름이 놓이는 장문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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