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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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디여 장문휴는 료동성을 눈앞에 두고있었다. 이제 한나절만 가면 도독영이 자리잡은 료동성이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아래형편을 알만큼 알았다고 생각하는 장문휴는 이제는 한시급히 도독영에 들어가 일을 내밀 생각뿐이였다.

부임되여 하는 첫 정사로서 크게 내밀자고 하는것은 군정의 대대적인 징발이였다.

뒤따라 당도할 경군의 두개 군은 외적의 있을수 있는 대거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불러들인것이기에 이 고비가 지나면 돌려보내야 했다.

그들을 돌려보낸 다음에도 그만한 수의 군사를 더 가져야만 날로 악화되는 변방의 형편을 능히 타개해나갈수 있다고 장문휴는 결심한것이였다.

어서가자!

조급해지는 마음에 장문휴는 말의 배허벅을 걷어찼다.

《이랴, 쩌!-》

장문휴의 준마는 기세좋게 고개길로 치달아올랐다.

장문휴를 따라 일행모두가 박차를 가하며 말을 급히 내몰았다.

인차 고개마루에 올라선 말들은 그 기세로 내리막길을 줄달음쳤다.

내리막길이 끝나자 소담한 이삭이 가득한 수수밭을 낀 마을이 나타났다.

그래도 준마가 굼뜬것 같아 채찍을 쳐들던 장문휴는 그 마을에서 들려오는 떠들어대는 소리에 귀를 강구었다.

웬일일가?!…

급히 눈길을 주니 마을복판에 숱한 사람들이 오구구 모여들어 다투고있었다. 보매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것 같았다.

어렵지 않게 그들이 떠들어대는 말소리를 가려들을수 있었다.

《이보시우, 아무리 빚진 종이기로서니 그래 꿔다 먹은 수수쌀 한섬에 다 자란 내 딸을 앗아가겠단 말이요. 세상에 그런 법도 있수?》

《법? 야, 이 늙다리야. 법은 만들기탓이야. 나라의 법이 뭐 너같은 빚진것들을 위해주는줄 아느냐?》

금시 의분을 치솟게 하는 그 말에 장문휴는 급히 말고삐를 끄당겼다.

그 바람에 앞발을 쳐든 준마가 오홍- 하고 울어댔다.

말을 멈춰세운 장문휴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거 갈길이 바쁜데 어쩐다?!… 그대로 지나쳐간다면 마음이 편치않을게 아닌가.

수수쌀 한섬에 남의 집 처녀를 앗아가겠다니 이런걸 어찌 내버려둘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아니야.

말에서 뛰여내린 장문휴는 말고삐를 호력이에게 넘겨주고는 마을로 접어들었다.

람루한 옷을 입은 처녀애의 팔을 부둥켜안은 로인의 뒤덜미를 우악스레 거머쥔 젊은 놈이 목에 피대를 돋구고있었다.

《이 늙다리야, 물고를 내기 전에 그 계집을 내놓지 못할가? 어서!-》

격분이 끓어오른 장문휴의 얼굴이 무섭게 이그러졌다.

늙은이를 저다지도 욕보이다니… 이 하나만을 가지고도 저놈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

젊은 놈을 당장 땅바닥에 들어메치고싶었지만 사연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장문휴는 뒤따라온 호력이와 풍걸이에게 일렀다.

《너희들은 참견말아.》

장문휴는 소리없이 로인과 젊은 놈을 둘러싼 마을사람들의 뒤에 가섰다.

명주옷을 빼입은 젊은 놈이 한사코 딸애를 떼여놓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로인에게 소리쳤다.

《이것아, 왜 제 사정은 알고 남의 사정은 그리도 몰라주는거냐. 내 오늘 너희 집의 묵은 빚값으로 이 계집을 데려가지 못하면 주인어른한테서 졸경을 친단 말이다. 그걸 알아주어야지 않아?》

쪽 째진 두눈에서 독기를 내뿜는 《명주옷》은 어느 부자집의 심부름군인것 같았다.

그놈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로인에게 삿대질을 하였다.

《빚값으로 딸년을 바치면 너나 나나 다 좋을텐데 왜 고집이야? 그러다 집이랑 땅이랑 다 떼우고 한지에 나앉아야 정신을 차리겠어, 엉?》

악에 받친 로인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왜 한지에 나앉아야 한단 말이냐?… 그래 내가 남의 재물을 도적질이라도 했느냐 아니면 남을 때리기라도 했단 말이냐. 난 누구한테도 죄되는짓을 하지 않았단 말이다. 알겠어?》

《명주옷》이 로인의 턱밑에 주먹을 들이밀며 을러멨다.

《이 무지렁이 상것아, 빚도 물지 않겠대, 딸년도 내놓지 않겠대, 그래 이게 죄되는것이 아니란 말이냐?》

더는 어쩔수 없었던지 로인이 눈물을 흘리며 애걸했다.

《이보시우, 제발 저희 집 사정을 봐주시우. 내 어떻게 하나 다음해 농사를 잘 지어서 묵은빚을 말끔히 갚겠으니 주인어른께 잘 여쭈어주시우. 내 딸을 끌어가면 신세를 망치고마오이다.》

기고만장해진 《명주옷》이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따위 공념불같은 수작은 하지도 말아. 명년농사라고 곡식이 곱절 나겠대? 흥! 송기나 벗겨먹는 거렁뱅이주제에 한입 더는게 좀 좋아. 이 계집에게 복이 들었어. 주인어른이 이 계집을 곱게 보거던. 그러니 주인집에 들어가면 잘 먹고 잘 입겠다 잘하면 주인어른도 쥐고흔들수 있을거야. 이런걸 가리켜 호박이 넝쿨채로 떨어졌다고 하는게다.》

장문휴는 비로소 이들이 다투는 까닭이 리해되였다.

빚지면 저절로 종이 된다는 말처럼 누구든 빚을 지면 빚받이군이 하자는대로 순종할수밖에 없는 법이다.

아마도 이 집의 고운 딸을 탐낸 부자가 빚단련을 들이대게 했을것이다.

로인도 그의 딸도 불쌍하였지만 빚진 죄인이라 도와줄수가 없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할수 없는것이기에 오죽했으면 반안왕조차 이런 일에 나서지 말라 했겠는가.

장문휴는 돌아서려 하였지만 두발이 말뚝에 꼭 매인듯 걸음이 떼지지 않았다.

이전처럼 군사에만 매인것도 아니고 또 남의 고을 사람들의 일도 아닌데 그냥 돌아선다면 백성들이 뒤손가락질을 할것이다.

가난뱅이들의 살림은 도와주지 못한다 해도 이것을 송사라 여긴다면 수수쌀 한섬으로 사람을 앗아가는짓이야 막아주지 못하겠는가.

장문휴는 다시한번 로인의 딸을 흝어보았다. 기운 옷을 입었어도 젊음이 싱싱한 얼굴도 몸매도 꽃처럼 어여뻤다.

이런 처녀를 수수쌀 한섬으로 끌어가겠다는 그 부자놈이 더없이 미워졌다.

《명주옷》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더 긴말할새가 없다. 이제 딸년을 곱게 놓아주지 않는다면 네 집이 끝장나는줄 알아라.》

그 말을 지옥사자의 불호령으로 들었는지 처녀애가 로인에게 사정했다.

《아버지, 전 념려마시고 집으로 돌아가시오이다. 어서요.》

로인이 별안간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다.

《이놈아, 죽일테면 죽여라. 가난뱅이들을 다 잡아먹고 돼지같은 네놈들 부자들끼리 남아서 실컷 잘살아봐라. 허나 언제든 <한풀이네>들이 나타나 내 원한도 풀어줄게다. 네놈은 그래 <한풀이네>가 무섭지 않느냐?》

《명주옷》의 상판이 한순간 시꺼멓게 질리였다.

그다음 놈은 《이 늙다리가 미쳤구나.》하더니 사정없이 로인을 걷어찼다.

놈은 땅바닥에 쓰러진 로인을 마구 짓밟으며 소리쳤다.

《이 죽일놈아, 뭐 <한풀이네>가 어떻다구. 그 륙실할 놈들이 나라의 원쑤 초적인줄 몰라? 그 말만을 가지고도 네놈은 얼마든지 릉지처참을 당할게다.》

또다시 발길질을 하던 놈이 악- 소리를 지르며 풀썩 꼬꾸라졌다.

풍걸이 비호같이 달려들어 놈의 명치를 걷어찼던것이다.

두눈에 무섭게 달이 오른 풍걸의 발길질이 그놈의 가슴과 배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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