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2 장

4

(1)

 

한낮무렵 동모산의 궁궐뜨락을 거니는 황상은 아직도 달아오른 분노의 마음을 식힐수 없었다.

열댓걸음 뒤에서 황상을 긴장한 눈길로 지켜보며 조심스레 따르는 두 사나이는 내시가 아니였다.

한사람은 황상의 둘째동생 대술예이고 애젊은 사람은 둘째아들 대흠무이다.

오늘 그의 분노를 끓게 한 장본인은 문예였다.

며칠전 원정군의 군장으로 불녈에 내려간 문예한테서 상주문이 올라왔었다.

정벌의 길에 올랐음을 알리는 소식이겠지 하는 유쾌한 기분으로 봉서를 뜯어보았더니 뜻밖에도 글줄마다 두눈에서 불이 일게 하는 수작질이였다.

다른 국사도 아닌 흑수정벌을 가지고 이는 곧 고구려까지 멸망시킨 당나라의 대군을 불러들이는것으로서 망국을 재촉하는 길이니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원정군을 회군시킨다면 후세에 발해를 보전한 명군이라 칭찬을 받게 될것이라니 두눈에서 불이 일지 않을수 없었다.

진노한 황상은 당장 문예를 잡아다 목을 치고싶었다.

그러나 죄를 주는 일보다 더 긴급한 일은 문예가 망치려 하는 흑수정벌을 바로잡는것이였다.

아무리 군사가 정예할지라도 그를 통솔하는 군장이 비겁하면 약한 적과도 싸워이길수 없었다.

우리가 단행하는 원정이 어떤 국사인가.

그것은 우매한 말갈에게 배은망덕에 차례지는 벌이 어떤 주먹인가를 가르쳐주는데도 있지만 남의 집에 돌을 던진 놈은 제 상판이 깨질수 있다는것을 결단코 알리는 군력의 시위로 되는 원정이다.

그런데 그 원정이 한놈의 역적때문에 망칠수 있으니 이것부터 바로 잡아야 했다.

황상은 그길로 4촌형 반안왕을 문예대신 군장으로 임명하고 즉시 떠나보내면서 역적을 붙잡아 압송하라는 령을 내리였다.

늙은 형을 떠나보내고나니 심기가 여간 무직하지 않았다.

그러나 형밖에는 이 일을 수습할 적임자가 없기에 그를 고생시킬수밖에 없었던것이였다.

황상은 스적스적 거닐며 생각했다.

오늘쯤은 문예 그녀석이 끌려올수 있겠는데…

이제 압송해오는 문예를 어떻게 처리한다?!… 죄를 엄격히 다스리지 않을바에는 차라리 그냥 내버려두는것이 낫다고 했으니 설다치면 안된다.

황상은 격해지는 분노로 거친 숨을 들이키며 발길이 닿는대로 걸음을 옮기였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태여날 때부터 성인의 기상을 지니고 나셨다는 아버님에게 어쩜 그런 시라소니가…

대씨가문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성무고황제의 어머니는 꿈에 북두성의 정기를 삼키고 잉태했다고 한다.

성무고황제의 어머니는 시씨성을 가진 태후였다.

얼마후 시태후가 성무고황제를 낳았는데 그때 방안에는 전에 없이 상서로운 자주빛의 기운이 그윽하게 서리고 밖에서는 검은빛이 온통 집을 에워쌌다는것이다.

그런 속에서 갓 태여난 성무고황제의 얼굴은 검은 옻칠을 한듯 번들거리고 잔등의 왼쪽에는 둥근 해요, 오른쪽에는 보름달이 그려져있었다.

너무도 신기하여 동모산에서 학식이 제일인 사람을 불러다 그 현상을 풀이하게 하였더니 그가 하는 말이 밖에서 집을 에워쌌던 해빛도 검고 태여난 아기의 얼굴도 검은것은 태백산(백두산)을 떠인 북방에서 성인이 태여났다는것을 알리는것이고(여기서 검은색은 북방을 의미한다.) 그 아기의 등에 해와 달이 그려져있는것은 장차 커서 고구려와 같이 큰 나라의 임금이 될 징조라는것이였다.

그래서 아기의 이름을 큰 나라의 임금이 되여 나라를 떨치라는 뜻이 담겨진 조영이라 지었다는것이다.

이렇듯 타고난 성인인 성무고황제에게서 그 아버지의 빛나는 이름에 흑칠을 한 불효불충자가 나왔으니 이런 망신이 어데 있는가.

지은 죄를 보아서는 응당 목을 바쳐야 하는 문예이다.

정녕 그녀석의 목을 쳐야 하는가?!… 지은 죄만을 따져 목을 친다면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할가.

죄를 씻을 기회도 주지 않고 동생을 죽였다고 손가락질을 할것이다.

지나치게 기강만을 내세우면 의리가 통할수 없고 의리만을 중시하면 기강이 물러진다.

기강이 물러지면 간사한 무리가 창궐할수 있거니 나는 부디 이 두가지를 조화롭게 주물러야 할것이다.

그러니 문예에게 한번 소생할 기회를 주어 황상으로서의 도량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제 두달후면 제천의식을 여는 10월이다.

해마다 10월이면 도읍의 한켠에 높이 세운 둥그런 천단우에 임금이 친히 올라가 하늘에 제를 드리는 제천의식을 하였던 고구려에서처럼 발해에서도 선조의 나라에서 하였던 모든 의식을 그대로 이어가고있었다.

제천의식때면 황상의 참석하에 조정대신들이 모여앉아 의논한 다음 대역부도죄인을 처형하거나 대사령을 내려 옥에 갇힌 사람들을 놓아주기도 하였다.

이것이 고구려에서 물려받은 법도였다.

옳거니, 10월까지 문예 그녀석을 옥에 가두었다가 단단히 다짐을 받아낸 다음 제 손으로 제가 지은 죄를 씻을 기회를 주는것이 나라법에도 맞고 신하들도 좋아할게다.

그제서야 격했던 황상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기분이 흥그러워진 황상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진작 문예에게 관심을 돌렸더라면 오늘의 이 지경으로는 되지 않았을텐데…

후회와 함께 문예를 당나라로 떠나보내던 때가 돌이켜졌다.

그때 문예가 어찌도 섧게 울면서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애원했던지 성미가 굳센 성무고황제까지도 눈물을 흘리였었다.

그때 문예가 어이하여 한사코 숙위로 가지 않겠다고 했는지 그 진속은 오로지 그 당시 태자였던 황상만이 알고있었다.

처음 여러 황자들중에 어느 한사람은 숙위로 가야 한다는 말이 났을 때 형을 찾아온 문예는 적국으로 가는 길이 지옥으로 가는 길과 무엇이 다른가고 우는소리를 하였다.

그때 문예는 그 길이 아버지를 돕는 길이고 또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저 하나의 편안과 부귀만을 탐내는 그 못된 마음뿐이였다.

그러했기에 그후 몸은 비록 적국에 가있어도 발해를 위해 좋은 일을 찾아하기는커녕 도리여 향락에 빠지고 나중에는 제정신마저 잃고 남의 정신으로 돌아온 문예였던것이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0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