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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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로파는 두눈을 꺼벅이며 장문휴를 쳐다보았다.

《그럼 나그네는 우리 고장 사람이 아니시우?》

《예, 난 저 머나먼 동모산에서 오는 나그네이오이다.》

로파는 입을 씰룩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우리 고장이 소금고장이라고는 하지만 시골백성들에게는 소금이 아주 바르다오. 관가와 부자들이 염분을 독차지하고 바다 먼 고장들에 소금을 가져다 비싸게 파는 재미에 그렇게 됐수다.》

《보아하니 주인네는 살림이 그리 궁색하지 않은것 같은데 돼지한테 소금을 못 먹였다니 무슨 사연이 있는것 같소이다?》

로파가 탄복해하는 눈길로 장문휴를 쳐다보았다.

《어쩌면 나그네는 보는 눈이 참 매눈 같다니까. 내 집이 밥술이나 먹는게 옳수다. 진작 소금때문에 이놈들이 귀쪽을 잘라먹는다는걸 알았으면야 이런 일이 있었겠수? 우린 식솔이 적다보니 음식찌꺼기도 적게 나오고 반면에 돼지는 많으니 소금이 부족할수밖에 없었수다. 그러나 이젠 소금을 넉넉히 먹인다우.》

장문휴는 정사에 도움이 될 또 한가지를 알게 된것이 기뻤다.

부당한 소금거래만 바로잡아도 민심을 모을것이였다.

흡족해진 장문휴는 여전히 쿨쿨 자는 돼지들을 가리켰다.

《이놈들은 붙잡아가도 모르겠소이다?》

로파가 뻐기며 대꾸했다.

《그건 내가 이 약손으로 조화를 부렸기때문이라우.》

《?!…》

《돼지를 빨리 키우자면 묘술이 있어야 하우다. 돼지는 배집이 큰놈이라 조금만 배가 꺼져도 먹을걸 내라고 보챈다우. 보채면 보챈만큼 살이 오르지 않는다우.

그래서 난 이놈들이 배불리 먹고는 잠에 취할수 있도록 죽에도 잠약을 친다우.》

장문휴에게는 그 말도 금시초문이였다.

《허- 세상에, 돼지에게 잠약을 먹인다니? 그게 어떤 약이오이까?》

로파는 무슨 큰 비밀이라도 대주는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게 뭔고하니 메대추씨를 가루낸것이라우.》

장문휴는 진실로 탄복해마지않았다.

《참말 재간이 이만저만 아니오이다.》

로파는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 무슨 재간이겠수. 마을에 달려들어 온갖 행패질을 일삼는 관가것들을 꼼짝 못하게 잠재운다면 몰라두…》

그 말에 장문휴는 정신이 날카로와졌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이까?》

로파의 목소리가 떨리였다.

《나그네는 동모산사람이라는데 거기 백성들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지만 여긴 살아가기가 대단히 헐치 않수다. 조세도 엄청나게 많고 관가에서 내라하는것이 그리도 많은지… 그 시달림에 가난뱅이들은 빚이 잔뜩 불어나 가산은 말할것도 없고 지어 자식까지 팔아 빚을 갚는 사람도 있수다.

우리도 아들이 아니였다면 돌아가신 시부모님들이 물려준 땅을 영영 떼울번 했수다.》

《아들이 한자리를 하는가보오이다?》

로파는 허리를 쭉 펴며 뻐기였다.

《바로 맞혔수다. 우리 아들은 어려서부터 힘장수였다우. 고을의 씨름장에 나가 소까지 타왔다니까요. 그 애가 무술까지 잘해서 동모산에 뽑혀올라가더니만 대궐을 지키는 군교가 되질 않았겠수.

때마침 그 애가 지난해 부른듯이 나타났수다. 그때 우린 관가에 진 빚때문에 땅을 떼울 형편이였다우. 그걸 안 그 애가 그 즉시 우리 현의 웃어른인 현승을 찾아가 들이댔지요.

우리 집을 해친다면 조정에 아뢰여서 가만두지 않겠다는 그 애의 으름장에 끝내는 현승이 지고말았수다.

대궐을 지키는 군교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우다. 그 덕에 우리 집안은 땅도 떼우지 않았고 이제는 보다싶이 살림도 펴이였다우.》

그 말에 장문휴는 자신이 맡게 될 부의 정사가 여간 어렵지 않겠다는것을 절감했다.

나라의 법을 휘둘러 제 배를 채우려드는 관속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런것들을 데리고 백성을 바로 다스리겠다는것은 고삭아빠진 옷에다 수를 놓겠다는 격이였다.

로파의 눈살이 꼿꼿해졌다.

《이제 우리 고을에도 <한풀이네>가 와서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관가를 들부실거우다.》

그 말에 장문휴는 신경이 곤두섰다.

여기까지 오면서 백성들에게서 《한풀이네》라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

그들에게 알아보니 《한풀이네》는 산에 숨어다니며 관가와 부자들을 답새김으로써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준다는것이였다.

좀더 《한풀이네》에 대해서 알고싶었지만 그들도 그 이상은 모르고있었다.

혹시 이 로파가 알고있지 않을가?…

장문휴는 처음 듣는 말인듯 놀라와하며 물었다.

《 <한풀이네>란건 무슨 소리오이까?》

로파는 자못 긴장해서 놀라와하는 장문휴의 얼굴을 으쓱해서 바라보았다.

《하긴 동모산사람이라니 그걸 알수가 있을라구. 몇해전 우리 안원부의 어느 고을에서 어떤 힘장수가 못되게 굴던 부자놈을 쳐눕히고 산으로 들어갔다구 하우다. 그때부터 힘장수는 못돼먹은 관속들과 부자들을 돌아가며 그것들의 재물을 털어내여 가난뱅이들에게 나누어주니 그에 감동된 사람들이 그를 따라나섰다우.

이제는 그들이 큰 무리를 이루고 이 고을, 저 고을 번쩍번쩍 나타나 가난뱅이들의 한을 풀어주니 그래서 백성들이 그들을 가리켜 <한풀이네>라고 부르는거라우. 참, 지난해에는…》

로파는 장문휴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지난해에 안원부도독이라는 큰 어른이 조정에 굉장한 봉물짐을 올려보냈는데 로상에서 몽땅 털렸다우다. 소문에는 그것도 <한풀이네>의 소행이라고 한다우.》

장문휴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도 안원부의 봉물짐도난사건을 알고있었다.

이전 안원부도독 리오구는 봉물로 우에 발라맞추기에 이골이 난 작자였다.

안원부는 발해에서 으뜸가는 곡창이라 할수 있었다.

료수를 끼고 펼쳐진 기름진 벌은 하루종일 말을 타고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 넓은 들에서만 농사를 잘 지어도 온 발해가 한해 먹을수 있다.

뿐더러 바다에서는 해산물이 쏟아져나오고 땅속에는 구리돌과 쇠돌뿐아니라 금도 은도 많이 묻혀있다.

이런 먹을알이 큰 고장이기에 리오구는 조정대신들의 환심을 사서 안원부를 타고앉았을것이고 또 그 좋은 자리를 그냥 부지하자니 봉물찜질로써 그들을 삶으려 했을것이다.

지난해에도 리오구는 금덩이, 은덩이는 말할것도 없고 저 멀리 남쪽나라들에서만 난다는 진귀한 향료까지 부담짝에 가득 실어 동모산으로 떠나보내였다.

힘센 장정이라야 겨우 질수 있는 봉물짐짝이 무려 백개나 되였다니 그것이면 큰 부자 열을 만들고도 남을것이였다.

그런데 그 봉물짐이 안원부의 지경을 벗어나기 바쁘게 로상에서 달려든 도적들에 의해 바람같이 사라져버렸다.

그때문에 조정에서 도적무리를 잡아내라고 군사를 파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장문휴는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 봉물짐을 털어낸 도적의 무리가 안원부를 횡행한다는 《한풀이네》라면 이보다 큰 화근덩이가 어데 있겠는가.

해야 할 일이 산같은데 《한풀이네》까지 말썽을 일으킨다면… 그것들을 잡아치우지 않고서는 편안치 않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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