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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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부르셨나이까?》

방문턱에 걸터앉은 문예가 턱짓을 하며 물었다.

《고개를 들라구. 너 나를 따라 당나라에 갔던게 생각나지?》

말구종은 황송해하며 대꾸했다.

《전하의 덕으로 세상천지를 구경했사온데 그걸 잊을리야 있겠소이까.》

《그렇겠지. 넌 당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말구종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문예의 뒤에서 아니꼬운 눈길로 그를 보던 채운이 짜증을 냈다.

《아이, 답답하다. 죽은 소 같다니까. 아, 마음에 들면 좋다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나쁘다 하려무나.》

말구종은 가뜩이나 구부러진 몸을 더 굽히며 쩔쩔맸다.

《예예, 마음에 들었소이다.》

문예가 히죽 웃었다.

《그럴테지. 잘 먹고 잘 놀다왔는데야 마음에 안 들리가 없지. 너 그 나라에 다시 가서 잘 먹고 잘 살다가 그 땅에 묻히라고 한다면 어찌 하겠느냐?》

말구종의 두눈이 둥그래졌다. 둥그래진 두눈에 공포심이 비껴있었다.

문예의 한마디면 그렇게 될수 있다고 믿는 말구종이기에 목소리마저 떨리였다.

《주인님, 노자는 죽어 고향에 묻히고싶소이다. 이젠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제발 여기를 떠나지 않게 해주소이다.》

그만 문예는 버럭 성을 냈다.

《너 방금 당나라가 마음에 든다고 하질 않았느냐?》

털썩 땅바닥에 꿇어엎드린 말구종이 애원했다.

《아무리 좋다고 한들 자기 나라만이야 하겠소이까. 제발 비오니 죽어서 부모들곁에 묻힐수 있도록 해주사이다.》

이마에 흙이 묻는줄도 모르고 머리를 조아리는 말구종을 굽어보던 문예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 미물같은것이 나라이니 부모이니 하는걸 다 알다니… 가만, 이놈에게 큰걸 준다고 하면 마음이 달라지지 않을가?!

《좋아. 네 소원이 종살이를 면하는것이겠는데 그 소원을 풀어줄가?》

그 말에 귀가 번쩍 트이였는지 말구종이 땅바닥에 떨구었던 머리를 쳐들었다.

그의 두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대대로 내려오는 종신세를 면할수만 있다면…

사람답게 제집에서 제 식솔을 거느리고 제 손으로 벌어먹고 사는것을 꿈에서까지 그려보았는데 늘그막이나마(말구종은 등도 굽고 힘도 진한 자기를 늙은이로 치부하고있었다.) 그 소원을 이룰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을것이였다.

《주인님, 그게… 그게 참말로 하시는…》

문예의 얼굴에 흉물스러운 웃음이 가득하였다.

그는 지금 사람과 말하는것이 아니라 강아지를 가지고 노는 심정이였다.

《그럼, 네가 여기를 떠나 당나라에 가서 살겠다고만 한다면 지금 당장 종살이를 면하게 해줄테다. 그래 어떠냐?》

그 말에 말구종은 쳐들었던 머리를 땅바닥에 떨구며 부르짖었다.

《종살이를 그냥 해도 좋으니 여기서 살도록 해주사이다. 당나라에는 가지 않겠소이다.》

문예는 악이 나서 소리쳤다.

《에익, 듣기 싫다. 썩 물러가지 못할가?》

네발걸음으로 황급히 쫓겨가는 말구종을 노려보며 문예는 입을 쩝쩝 다셨다.

실은 종에게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다면 나라고 고향이고 다 저버릴줄로 알고 놀음삼아 말구종을 불렀던 문예였다.

그런데 그 생각이 어방없이 빗나가고만것이다.

함께 당나라를 다녀온 말구종이 그 나라에 가 살겠다고 한다면 일이 틀어지는 경우를 타산하여 그를 미리 빼돌리려 하였다. 당나라로 가득 처싣고 채운이와 함께 가게 할 생각이였다.

화김에 방문을 쾅! 닫은 문예는 벽에 기대앉아 한숨을 내뿜었다.

이젠 어떻게 한다?!…

처음에는 큰 나라에 맞섰다가 나라가 무너지리라는 짐작에 원정을 그만두게 하자고 했는데 그 생각을 달리한 문예였다.

지금의 문예를 들여다본다면 겉모양과는 달리 그의 진속은 발해사람이라고 할수 없었다.

다년간 고국을 멀리 떠나 당나라의 물을 마시게 되면서 자기의 겨레도 나라도 남보다 썩 못하다는 허무감으로 골수에 인이 박히고말았다.

그런데로부터 당나라를 섬기는것이 나라보전의 근본이라고까지 여기는 진짜바보가 문예였다.

이제는 제 정신이 아닌 문예의 머리통에는 흑수정벌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상주문을 올릴 생각뿐이였다.

문예의 속을 알리 없는 채운이 그의 목을 그러안았다.

《아이, 숨막혀라. 한숨소리에 집이 주저앉겠나이다. 원, 출전을 앞둔 군장어른께서 당치않게 한숨만… 전장에서 크게 공을 세우고 돌아오는 생각만 하시오이다. 그럼 호탕한 웃음이 절로 날것이오이다.》

전장이란 말에 문예는 무릎을 쳤다.

옳지, 전장에 선 장수에게는 때에 따라서 황상의 령도 뒤전으로 물려놓을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하질 않았는가.

그러니 불녈에 내려가 상주문을 올린다면 이 몸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원정을 멈춰세울수 있을것이다.

상주문을 어떻게 쓴다?!… 형이 굳이 흑수말갈을 정벌하려고 하는것은 말갈인들이 업고있는 당나라가 실은 얼마나 강대한지를 똑똑히 모르기때문이다.

인구로 보나 강토나 재력으로 보나 우리와는 대비할수도 없이 큰 당나라이다.

하기에 마음만 먹으면 삽시에 수백만대군을 무어가지고 그가 누구이든 짓뭉개버릴수 있다. 그런 당나라가 발해군이 흑수로 진격하기를 기다렸다가 우리가 말갈을 멸족시키려 한다면서 수백만대군을 들이민다면 이로써 대씨네 태묘사직은 끝장일것이다.

이런 리치로 글을 써올리면 형이 어찌 잘못을 깨닫지 않겠는가.

미리 상주문을 써가지고 내려가야지.

제딴에 큰 수를 생각해냈다고 기뻐한 문예는 채운의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내보냈다.

그렇게 하고서야 붓을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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