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2 장

1

(2)

 

장문휴는 마당에서 닭둥우리를 엮고있는 로인의 집앞에서 말을 멈추었다.

말에서 내린 그는 로인에게 깍듯이 선절을 하며 말했다.

《주인어른, 댁에서 하루밤 쉬여가도 되겠소이까?》

일손을 멈추고 잠시 장문휴를 쳐다보던 로인이 쾌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사람의 집에 사람이 찾아왔은즉 어찌 마다할수 있겠나.》

백발이긴 해도 혈색이 좋은 로인은 첫 대면부터가 장문휴의 마음을 끌어당기였다.

《임자 기골을 보니 백사람도 대적할 장사다운 결기가 엿보이고 대군을 호령할 기상이 어려있네그려.》

그 말에 장문휴는 소리없이 웃었다.

로인이 소리없이 웃는 장문휴에게 눈그루를 박았다.

《요사이 조정에서 내려보낸 큰 장수어른이 평민차림으로 잠행하고있다 하네. 뭐 우리네 백성살이를 알아보려고 한다나… 자네가 그 어른이라면 얼마나 좋았겠나.

그러면 백성을 잡아먹자고 달려드는 관가의 떨거지들의 악행을 낱낱이 아뢰여서 그놈들이 홍찌를 싸갈기도록 만들어보겠는데…

허나 웬걸, 아무리 백성살이를 돌아보고싶어도 그런 큰 벼슬아치가 막사람들의 집에서 쉬여가자고야 할수가 없지. 안 그런가?》

얼결에 《아, 그야 물론이지요.》하고 대답을 한 장문휴는 로인의 판단이 빗나간것을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정말로 이 로인이 나의 본색을 꿰뚫어보았다면 그보다 딱한 일이 있겠는가.

놀라운것은 신관도독의 행차에 대한것이 어떻게 새여나갔는가 하는 그것이였다.

장문휴가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면 안된다고 일행에게 단단히 일렀고 또 그들이 항상 자기의 시야에 있었으니 이들속에서는 그런 말이 새여나가지 않았을것이였다.

그렇지, 파발군들한테서 새여나갔겠구나.…

장문휴는 한걸음 먼저 파발군들을 료동성의 도독영에 보내면서 신관도독이 도착할 때까지 부의 정사를 판관이 맡아하되 오로지 국법대로만 처리하라는 공문서를 주었는데 그들에게 자기의 잠행을 절대로 입밖에 내지 말라는 당부를 하지 못한것이 후회되였다.

그러니 그들이 로상에서 그런 말을 자랑으로 했을것이였다.

참말이지 사람의 입을 막는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는것 같았다.

장문휴는 시치미를 떼고 익살좋게 말했다.

《저도 그런 풍문을 들었소이다. 허나 풍문이란 말그대로 바람과 같아서 곧이들을게 못되오이다.》

절대로 자기를 로출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장문휴는 로인에게 일행을 가리켜보였다.

《전 십년만에 고향인 료동성으로 가는 길이고 이 사람들은 길을 오며 알게 된 나그네들이오이다.》

로인에게 이끌려 방에 들어가 앉으니 곧 이 집의 며느리가 밥상을 차려왔다. 죽이였다.

로인은 사람좋게 웃으며 죽그릇을 가리켰다.

《물고기가 헤염칠 멀건 죽이라 탓하지 마오. 갑자기 길손들이 들이닥쳤으니 죽에다 물을 더 넣은것 같아.

자고로 우리네 농군들이 조반석죽을 해온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옛말일세. 날마다 하루세끼 죽이라도 건네지 않으면 다행이지.》

밥상을 물리고난 장문휴는 들리는 집들마다 약속이나 한듯 죽을 내놓는것이 의문스러웠다.

《주인어른, 요즘은 그래도 곡식을 한창 베여들이는 좋은 때인데 농사군들이 멀건 죽이나 먹고있으니 참 이상하오이다.》

로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나그네는 범상치 않은 인품을 타고는 났지만 시골형편에는 깜깜인것 같네.

해마다 관가와 땅임자들이 우리네 농사군들에게 땅구실을 바치라는 몫이 굴리는 눈덩이마냥 그냥 불어나기만 하는데 가을이란들 어디 밥을 지어먹을수가 있을라구, 죽도 과남하지.》

장문휴에게는 그 말이 리해되지 않았다.

《저… 제 알기에 나라에서 땅구실로 거두어들이는 조세를 소출의 1할(10%)로 정했다고 하는데… 이건 고구려때부터 전해오는 국법이오이다. 안 그렇소이까?》

얼굴을 찡그린 로인이 손을 내저었다.

《꿈같은 소리, 그건 옛이야기에서나 들을수 있는 허망한 소리일세. 원 참, 내 한생 농사일로 늙어오지만 지금껏 조세를 소출의 1할로 받아들이는걸 본일 없네.》

《예- 에?!…》

《관가에서는 해마다 승기가 나서 조세를 더 내라고 들볶는데 지난해에는 5할이나 바쳤다네. 이래놓으니 식솔많은 집들에서는 가을에 벌써 쌀이 떨어져 꾸어먹어야 하는 판이네.》

또 한가지 의문이 장문휴에게 떠올랐다.

《그럼 군사들은 배불리 먹겠소이다?》

로인이 코를 불었다.

《흥! 배를 불려?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겠나. 옛말에 백성을 괴롭혀도 그게 외적의 탓이라면 백성은 그 괴로움을 달게 여긴다고 했네만 외적탓이 아니니 원망스럽다는거네. 조세가 불어날수록 우리 군사가 더 잘 먹는다면 누가 불평을 부리겠나. 암.》

《그럼 더 거두어들이는 조세는 어데다 쓴다는것이오이까?》

로인은 두눈을 부릅떴다.

《어데다 쓰는가고? 좀도적같은 아전놈들이 뜯어먹고 욕심쟁이 벼슬아치들의 배속에서 말끔히 뭉그러지고마는거지. 날이 갈수록 관가것들은 피둥피둥 살이 지고 우리네 농군들은 뼈만 남는다네.》

장문휴는 자신이 확실히 백성살이에 너무도 어둡다는것을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껏 군사에만 몰두하면서 백성살이를 외면해왔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장문휴는 말이 난김에 관가의 페행을 속속이 알고싶었다.

《제 알기엔 나라에서 관속들에게도 록을 주거나 전답을 떼여주어 먹고살도록 해준다는데… 그들이 무엇이 모자라 국법을 어기고 조세를 마구 거두어들이는지 모르겠소이다.》

로인은 장문휴를 흘겨보며 성을 냈다.

《하- 이 사람이 통 답답한 사람이로다. 아무리 시골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그렇지 산속의 중들도 다 아는걸 어찌 자네만은 모르나? 자네 혹시 궁중의 내시는 아닌가?》

모욕감이 없지 않았지만 장문휴는 본색이 드러날세라 어깨를 낮추었다.

《전 부모의 덕으로 밥술이나 먹다보니 시골형편엔 깜깜이오이다. 더 늙기 전에 세상형편을 알고싶어 그러니 나무람말고 일깨워주소이다.》

그 말에 성을 가라앉힌 로인은 웃기까지 하였다.

《자넨 확실히 범상치 않아. 좋아. 그럼 말해주지. 법이란건 대대로 권세없는 우리네 가난한 백성을 위해주자고 만드는게 아닐세. 말로는 나라가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다 하지만 천하의 그 어떤 나라도 백성이 리득을 보게 법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단 말일세.

결국 법을 주무르는 관가에서 백성것을 빼앗아먹는것은 당연하다 그말일세.

허나 그게 지나치면 큰일이 나네. 옛말에도 있지. 백성은 강물과 같고 조정은 배와 같아서 강물이 노하면 배가 뒤집어질수 있다고…

그러니 나라가 무사하려면 국사를 돌보는 조정이 제때제때에 고을형편들을 알아보고 관가의 악행을 바로잡아주어야 하는거네.》

장문휴는 가슴이 섬찍하였다.

로인의 말대로 고을마다에서 관가것들이 백성들을 뜯어먹기에 열을 올린탓으로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에 닿았을 때 외적이 달려든다면 천하없이 강한 군사가 버티고있다 한들 무너지고말것이다.

그러니 나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진짜배기 장수라면 늘 백성살이에도 눈을 밝혀 백성들이 나라를 원망하지 않도록 조정이 손을 쓰게 했을것이다.

이날에야 장문휴는 나라방비는 군력을 키우는것과 함께 민심을 바로 잡는데 달려있다는것을 비로소 깨달았던것이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0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