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 회)

제 4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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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성주동지께서는 우등불앞에 돌아와 앉으시였다. 영진이가 옷을 가지고가서 뭐라고 속삭이며 귀띔을 하는 모양을 그이께서는 못 보신척하고 우등불밑에 떨어진 숯불을 따로 골라내시여 쪼이기 좋게 펴놓으시였다. 그리고 옆에 가려놓은 삭정이단을 헤쳐 와짝 불을 지피시였다.

곽만득은 우들우들 떨면서도 죄나 지은 사람처럼 소리없이 다가와서서 쭈밋거린다.

《왜 그러고 섰습니까? 앉으시오.》

곽만득은 그이의 말씀만 듣고서는 노하신것인지 아닌지 똑똑히 분간되지 않는지 어정쩡해서 《괜찮습니다.》 하고 그냥 서있다.

《앉으시오.》

김성주동지께서 거듭 이렇게 말씀하시고 고개를 들어보니 장대한 사나이가 머리를 거푸시하게 헝클어뜨리고 우들우들 떨고있다.

《사람두 참, 아이들 꼬임에 넘어가서 이게 무슨짓이요? 어서 앉아 몸을 녹이시오.》

《아이들 꼬임이 아닙니다. 영진이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똑똑한 아입니다, 어른들보다 더.…》

《쳇! 딴소리만 하네.》

영진이가 코방귀를 불며 돌아섰다.

《영진이, 너도 여기 앉고…》

곽만득의 몸에서 김이 문문 피여올랐다. 수건을 대신했던 옷가지들이 말라들자 그도 어지간히 마음이 누그러지는지 그제야 때늦은 인사말을 했다.

《그런데 이 밤중에 그 몸으로 강가에는 왜 나오십니까?》

《나는 못 나올데입니까?》

《그래도 강바람이 이렇게 찬데… 해롭습니다.》

곽만득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드렸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웃음으로 얼버무려넘길수밖에 없으시였다.

《곽만득동무는 자기만 몸이 튼튼하게 한단 말이요. 자기는 이런 때 발가벗고 물속에 들어가면서…》

《그러나 선생님은 편찮으신 몸이 아닙니까.》

《일없습니다. 이제 보시오. 오늘 밤 동무들과 함께 이렇게 재미있게 보내고나면 래일은 감기가 뚝 떨어질것입니다. 감기야 이렇게 슬슬 다니면서 떼는게 아니요?》

그러자 영진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참견하였다.

《아닙니다. 선생님은 기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기훈이라고 했습니다.》

《그건 누가 그래?》

《청암선생이 그랬습니다.》

《기훈이나 감기나 같은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저 고기나 밸을 따가지고 와. 칼이 있니?》

《칼은 있는데…》

《그럼 됐구나. 자라를 못 잡은 대신 여기서 고기나 구워먹자.》

《야- 나한테 소금도 좀 있어요. 아침에 가지고 왔댔어요.》

영진이는 손벽을 치며 일어섰다. 곽만득이도 따라일어서려는것을 그이께서 잡으시였다.

《그냥 두어두시오. 나하고 이야기를 좀 합시다. 그래 지금 오가자사람들의 기분이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번 가을에 저 지주 사가놈에게 2. 8제를 먹이고 그것을 다른 지주놈들에게도 적용시키기 위해서 한바탕 해보자는건데 오가자사람들이 그런 투쟁을 할 용기가 있을가요?》

《글쎄요.…》

곽만득은 조심을 두며 그이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오가자에서는 지주들과의 투쟁을 위하여 혁명군대원들도 나가고 청년동맹의 간부들도 나가서 선전사업을 들이대고있으니 곽만득이도 들은 소리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압력에 눌리워 언제나 피동적인 립장에 있었기때문에 아직 똑똑한 주견이 없었다.

《곽동무네는 래년 가을까지 장리를 안 먹고 날만 합니까?》

《사실은 그래야 하겠는데… 그렇지를 못합니다. 올해는 아버지가 일을 통 못하신데다 약값 빚진것이 있고 또 여름에 내가 그 고유수에 가느라고 돈을 좀 썼습니다.》

《잔치때문에?… 여기 와서 뭘 좀 차렸는가요?》

《차린것도 없습니다. 부조가 오히려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된셈인지 사가놈의 빚을 또 져서 그때문에 석섬을 잘리웠습니다.》

영진이가 깨끗하게 손질한 고기를 꿰미에 꿰여가지고 왔다. 이글이글하는 숯불우에 올려놓으니 연신 칙-칙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를 피워올린다.

《그러니까 한번 해볼만 하지. 농민들이 모두 뭉쳐 들고일어나면 그놈도 꼼짝을 못할거요.》

《그러다가 그놈이 땅을 내놓으라고 하면 야단 아닙니까?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투쟁을 달가와하지 않습니다. 지주 조가봉이와도 포섭하였는데 사가와는 왜 투쟁하겠는가고 하면서 조가봉이와는 맺힌것이 없어서 싸워도 별로 손해볼것 없지만 사가는 싸우다 실패하면 땅이나 떼운다고 말입니다.》

곽만득은 고기굽는 냄새에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물었다.

《이제 사가놈이 틀림없이 땅을 내놓으라고 할것입니다. 그렇다고 주저앉겠는가. 그리고 사가를 타도하는 문제는 조가봉을 쟁취하는것과 다른 문제입니다. 사실 조가봉이 무슨 지주입니까. 소작준 땅도 없고 순 제 손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까지 지주로 몰아 타도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잃게 되는지 모릅니다. 설사 그가 지주라 해도 사가놈처럼 인민들을 못살게 굴지 않고 놈들과 한짝이 되여 혁명을 가로막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 포섭하고 한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사가놈처럼 사람들이 굶든말든 상관이 없이 자기 배만 채우려는 흉악한 놈과는 투쟁을 벌려 혼쌀을 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혁명을 하는 목적도 앞으로 그런 놈들이 없는 참다운 인민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걱정할건 없습니다. 그놈들이 말로야 땅을 내놓으라고 으르겠지만 오가자사람들이 몽땅 뭉쳐서 들고일어나면 그 땅을 그놈이 도루 황무지로 만들자고 진짜 내놓으라고 하겠소? 그럴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쪽에서 뭉치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그거야 못해보겠습니까? 밑져야 본전인데… 우리는 아무데 가나 같은 신세가 아닙니까? 겁날것도 없어요.》

《그렇소, 그렇단 말이요. 영진이, 공산당선언을 봤나?》

김성주동지께서는 가슴이 밝아져 고기 굽는데 열중해있는 영진이에게 물으시였다.

《읽어봤는데 하나도 모르겠어요.》

《한마디도 남은것이 없나?》

《한마디는 있어요. 제일 크게 쓴것만 알아요.》

《한번 외워보라.》

전세계 무산자는 단결하라!

《그래, 맞았다. 이제 만득아저씨가 한 말도 있지?》

《무슨 말인데요? 쳇, 그따위 무식한 말이 있을게 뭐예요.》

영진이는 잔뜩 얕잡아보는 눈길로 곽만득을 가로훑어보았다.

곽만득은 그저 씨물씨물 웃고있다.

《왜 없어? 공산주의혁명에서 무산자가 잃을것은 철쇄뿐이요, 그들이 얻을것은 전세계이다. 이런 말이 없어?》

《예, 있어요. 형이 매일 그걸 외웠어요. 그런데 이 아저씨가 어디 그런 말을 했어요? 혁명이라면 벌벌 떨기만 하는데…》

《영진이, 너 틀려먹었구나. 너를 소년학우회에서 비판한것이 얼마나 옳은지 모르겠다. 웃어른보고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곽만득아저씨가 이제 말한것이 결국 그런 뜻이 아니냐. 밑져야 본전이라는것은 뭐냐? 지주와 해봐서 손해볼것은 아무것도 없다는것이다. 곽만득아저씨가 왜 혁명이라면 벌벌 떤단 말이냐? 이렇게 용감한데… 너처럼 사람들의 속이나 썩이면서 제멋대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에게 페를 끼치는것은 용감한것이 아니라 건달이다. 그런것은 아무데도 못쓴다. 너 래일 동무들앞에서 잘못했다고 자기비판을 하겠니, 못하겠니?》

《하겠어요, 할 사이도 없이 내쫓구선…》

영진이는 시무룩해서 웅얼웅얼했다.

《또 남을 껴들이지. 네가 여기 아이들을 다 얕잡아보고 어른들도 얕잡아보고 나중에는 조직까지 얕잡아보고 제멋대로 놀아난것이 다른 사람때문이란 말이냐?》

영진이는 더는 말을 않고 뚜-해서 고기만 굽는다.

《얘, 고기 다 탄다. 이제는 그만 구워라.》

김성주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산적한 고기를 들어내시려다가 한절반 불에 탄 꼬챙이가 부러져 이글이글하는 꽃불우에 떨어졌다. 서둘러 고기를 집어내시려다가 이번에는 새빨간 숯덩어리가 함께 묻어오르는 바람에 손을 털며 한절반 일어나시였다.

《헤헤헤, 그건 이렇게 나무저가락으로 집어야 하는건데.…》 하면서 영진이는 자기의 나무저가락을 내놓고 조그만 종이봉지를 꺼냈다.

사탕알만 한 소금덩어리가 나왔다. 여기서는 소금이라는것이 모두 광염이라 얼음덩어리같이 생겼다. 그것을 칼로 긁어서 부스러뜨려놓으니 모든 차비가 다된셈이다.

고기냄새가 코를 찔러 더는 참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껏 기름진 뱀장어가 한마리, 메기가 두마리, 거기에 붕어가 세마리나 된다. 밤깊은 료하기슭에 고소한 고기내가 감탕내 비슷하게 그슬린 연기내에 엇섞여 상처입은 쓰라린 가슴들을 어루만지듯이 부드럽게 떠돈다.

우등불은 활활 타오르고 낮에 보면 볼꼴없는 강물에 그 불빛이 어리여 신비경을 빚어낸다. 나무등걸과 락엽과 물고기가 함께 그슬리는 연기내는 사실 얼마나 구수한가. 그것은 비단 물고기뿐아니라 어딘가 인간세상의 번쩍거리는 도금을 벗겨내고 은근하고 웅심깊은 색조를 빚어내는것 같기도 하였다.

《이걸 자라맛에 대겠소?》

김성주동지께서는 뱀장어 한토막을 집어들고 말씀하시였다.

《그래도 자라가 약이랍니다.》

곽만득이가 너무 뜨거워 몇번 입안에서 굴린다는것이 언제 씹어볼 사이도 없이 꿀꺽하고 뱀장어고기가 토막채로 넘어가는 바람에 눈만 더부럭거리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이제 두고보시오, 래일 아침에는 내 몸도 깨끗해질테니.…》

《래일이 어데 있어요? 이제 곧 날이 밝겠는데요 뭐.》

영진이는 무릎뼈만 커다란 다리를 일으켜세우고 앉아 약삭바르게 고기를 이리저리 굴리며 뜯어먹다가 말했다.

《그래, 참 벌써 새날이 잡혔군.》

찌무르대평원 저쪽 아득한 지평선이 벌써부터 불그스레 물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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