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 회)

제 4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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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성주동지께서는 근심이 되시는 가운데서도 한편으로 믿고싶은 생각 또한 없지 않으시였다. 영진이를 처음 교하거리에서 띄여보았을 때 그 만만찮게 반짝거리던 오목눈과 총명해보이는 되박이마가 선히 떠올랐고 이곳 오가자에 와서도 제일 불쌍하게 된 처지였으나 기가 꺾이지 않고 아이들을 휘두르며 돌아간다는것으로 보면 어지간해서 나쁜 놈들에게 끌려가거나 홀림수에 넘어갈 아이가 아니였다. 또 말마디나 들었다고 쭈그러들 아이도 아니였다. 그러나 너무 조숙한 아이기때문에 어디로 훌 달아날 가능성은 있을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 애가 그렇게 란잡한 아이가 아니라는것을 믿고싶으시였다. 오가자에 와 첫상봉을 하던 강가에서 주낙을 따들고가던 그 애의 모습만 봐도 알수 있지 않느냐고 자신을 납득시키시였다. 어리지만 속이 깊다. 어머니를 모시고 생활의 중하를 그 앙상한 어깨우에 떠메고나가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있으며 형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있다. 그런 영진이가 그렇게 탈선할수는 없다고 생각하시였다.

그러나 어쨌든 그 애는 없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이제는 버릇된것처럼 수로뚝을 따라 걸으시였다. 하투부락의 불빛이 저만치 깜빡거렸다.

이 생각, 저 생각 더듬으며 걸으시는 사이 마침내 강기슭에 이르시였다. 그것은 하루의 군개와 련결된 곳으로서 오가자사람들이 봄마다 수로공사를 하여 동을 막는 곳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피곤하시였다. 자신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밤중에 이처럼 멀고 후미진 곳까지 나오셨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굳이 말한다면 어쩐지 영진이가 이 강가 어디엔가 있을것 같은 잠재의식이 그이의 발길을 끈것 같기도 하시였지만 정작 따지고보면 그럴만한 근거가 너무나 적었다.

우선 강가를 살펴보아야 잔뜩 줄어든 물이 거멓게 설레이며 흘러가고 강바람이 을씨년스럽도록 찬 기운을 안겨줄뿐 인적이라고는 느낄수 없으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사람을 다루는 일이 이처럼 힘든것인가 하며 생각에 잠기시였다. 인간이 위대한 그만큼 단순치를 않고 단순치 않은 인간들이 얽혀돌아가는 인간세상이 어떤 소부르죠아인테리들이 책장속에서 그려낸것처럼 그렇게 명백한 론리와 인간관계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을것은 뻔한 일이지만 조선혁명군 국내무장소조가 철창에 얽매여있고 공영소조가 다 희생된 오늘에 와서도 리종락이가 거듭 일을 저지르는것은 무슨 까닭인가. 강영진이가 말썽을 부리는것쯤은 약과다. 머리 허연 로인들이 다 큰 딸과 며느리들을 단간방에 가두어놓고 북만의 긴긴 겨울을 날 차비를 하고있는것은 어떤가?

김성주동지께서는 힘없이 강가에 주저앉으시였다. 힘이 진하여 숨을 좀 톺고야 걸을수 있을것 같으시였다.

잠시 앉아계시니 강기슭이 돼서 밤바람이 몹시 찼다. 몸이 떨려나서 어쩔수없이 일어서시는데 강이 굽이도는 상류쪽이 벌겋게 물들어있었다. 찬찬히 보니 둔덕이나 동뚝 저쪽에 불을 피운것 같았다. 토비가 아닌가? 혹시 영진이를 토비들이 끌고가는것이나 아닌가?

김성주동지께서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내시여 안전장치를 푼 다음 그대로 양복주머니에 질러넣으시고 방아쇠를 매만지시며 조심조심 그리로 다가가시였다.

무성한 땅버들숲을 헤치고 한참 나가니 새초가 말라 시들어진 두두룩한 언덕이 있고 그너머로 료하의 강굽이가 엇비듬히 안으로 휘여든다. 그 언덕을 넘어서서 다시 땅버들숲을 한참 누벼가서야 강줄기가 다시 나지는데 퇴적물이 쌓인 기슭을 마치 담벽처럼 절벽이 서있었다. 그것을 바람막이로 삼고 우등불을 피워놓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권총을 다시 안전장치를 해서 허리춤에 지르고 급히 우등불로 다가가시였다. 틀림없이 강영진이라고 짐작하셨기때문이다.

소대가리같이 생긴 땅버들뿌리가 서너개 겹쌓여서 실실 연기를 피워올리며 불타고있었다. 우등불의 불그림자가 얼른얼른하는 땅바닥에는 새초가 두툼하게 깔려있는데 강영진이는 그우에 팔베개를 하고 모로 누워 무엇인가 혼자 중얼거리고있었다.

《…칼을 쑥 뽑아들면서 이놈아… 아니, 권총이 더 멋이 있어. 처음에는 감추고 들어가서 헤헤헤 나리님.하고…》

영진이는 느닷없이 권총을 그 어떤 놈의 가슴에 내대는 시늉을 하려다가 팔베개가 허물어져서 머리가 땅바닥에 굴러났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사람들의 속을 태우면서 이런데 와 태평으로 누워있는 영진이가 괘씸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절로 미소가 그려지기도 하시였다.

《얘, 영진아.》

김성주동지의 목소리에 더 좀 멋이 있는 활극장면을 꾸며대느라고 고개를 기웃거리던 영진이는 후닥닥 뛰여일어났다.

김성주동지께서 우등불곁으로 다가가시니 영진이는 비실비실 쫓기면서 절을 굽석하였다.

《너 여기서 뭘하니? 낚시질을 하니?》

영진이는 되박이마밑으로 오목눈을 치뜨고 주위를 경각성있게 살필뿐 대답을 안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불앞에 가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불을 쪼이시며 영진이쪽은 보지도 않고 말씀하시였다.

《이게 뭐야? 낚시질을 하겠으면 그렇다고 말하고 나오든가 일찌감치 들어오든가 해야지 온 동네가 찾지 않느냐?》

영진이는 한참이나 선채로 그이의 안색만 살폈다. 자기를 어떻게 하실 작정인가 하는것을 판단해보자는것이다.

《네가 뭐 대단한 사람이 돼서 온 동네가 찾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너는 동네사람들, 동네아이들을 다 깔보지만 그 사람들은 너랑 너의 어머니가 불쌍해서 찾는것이다.》

《나는 말할데가 없습니다.》

영진이는 고개를 숙인채 아까 하신 말씀에 대한 대답을 하였다. 그 말속에는 아직도 앙심이 깃들어있었다.

《그건 무슨 소리냐? 소년학우회에서 너를 내쫓았단 말이냐?》

영진이는 숨을 씩씩거릴뿐 대답을 안했다.

《아직도 속은 살았군. 너 그럼 공주령 갈 때는 왜 말하지 못했니? 소년학우회에서 너를 내쫓았다면 어머니한테라도 말해야 할것 아니냐?》

《어머니는 말하면 가지 말라고 합니다. 강가에 나가면 빠져죽는답니다, 쳇.》

영진이는 경멸에 찬 어조로 말하며 발끝으로 땅을 후벼팠다.

《빠져죽어? 허허허, 너 거짓말하는구나. 아무렴 영진이가 빠져죽을가봐 그러시겠니. 자기때문에 추운데 나가서 고생한다고 그러시겠지.》

《아닙니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애기처럼 생각하는데요뭐.》

문득 교하에서 영진이모자를 처음 봤을 때 정경이 떠오르시였다. 영진이가 불평을 할만도 하다. 그러나 그 영진이는 또 어떤가. 어머니의 병을 덜어드리자고 어머니의 욕을 먹으면서 의사를 찾아다니고 이렇게 강가에 나와 떨지 않는가.

《그런데 너 추워하면서 이 옷은 왜 벗어놓았니?》

김성주동지께서는 우등불그늘에 허옇게 떠오르는 옷가지를 보고 물으시였다.

《그건 만득아저씨겁니다.》

《뭐, 만득아저씨? 만득아저씨가 어데 있니?》

김성주동지께서는 놀라서 일어서시였다.

《자라 따라 물속에 들어갔습니다.》

《이 추운데 물속에 들어간단 말이냐?》

《예, 처음에 나 혼자 할 때는 주낙을 기슭에 쳤댔는데 만득아저씨가 가을엔 기슭에 자라가 붙지 않는다고 낚시줄을 아예 강을 건네여 놓았습니다. 그래도 같아요. 자라새끼들 싹 죽은것 같아요. 벌써 몇탕째 했는데 한번도 안 걸리고 이따위 메사구만…》 하면서 영진이는 가까이 선 버드나무가지에 꿰여서 매달아놓은 고기꿰미를 발로 툭 걷어찼다. 메기, 뱀장어가 서너마리 되고 붕어가 여라문마리 꿰여져있었다.

《너 처음부터 만득아저씨하고 같이 나왔니?》

김성주동지께서는 엄한 기상이 되시여 기슭쪽으로 걸어가며 물으시였다.

《아니요. 저녁때 여기로 나왔어요.》

《널 찾으러 나왔댔지?》

《그런것 같아요. 그러다가 자라 잡는다는 말을 듣더니 날 밀어놓고 나섰어요. 농민이라는건 하는수 없어요.》

《너 그건 무슨 소리냐? 농민이 어쨌단 말이냐?》

김성주동지께서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시여 다시 소년쪽으로 돌아서시였다.

《농민이란 개인주의가 많아요. 그래서 형은 나더러 농민이 되지 말고 철도에 나가 로동하라고 했어요.》

《그래?》

김성주동지께서는 까닭없이 코허리가 매워오셨다. 지내 조숙한가 하면 지내 순진한 아이가 되여 아무데서나 사람의 가슴을 허비는 말을 탕탕 한다.

《그렇지만 네가 추워할가봐 물속에 들어간거야 무슨 개인주의냐?》

《선생님은 다 몰라요.》

영진이는 힐끔하고 오목눈을 치떠보더니 씩 웃었다.

《뭘 몰라?》

《만득아저씨는 자라를 잡아서 선생님께 신세갚음을 하겠다는거지요뭐.》

《뭐?》

김성주동지께서는 어렴풋이 느껴지는게 있었으나 막상 이렇게 말을 듣고보니 너무나 충격이 크시였다.

《그러나 허탕이지 볼게 있어요? 정성만 있으면 눈속에서 딸기도 찾는다고 그따위 유심론만 믿는게 될게 뭐예요》

영진이는 뭐라고 계속 두덜거렸다. 그러나 그의 불평이 결국은 자기의 성의가 곽만득이때문에 반분되고 그나마 실현될 가망이 없다는 거기에 있다는것을 느끼실 때 김성주동지께서는 와락 그러안고싶은 충동밖에 다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으시였다.

그러나 이 령리하고 조숙하고 당돌한 아이가 바로 그때문에 조직규률을 위반했다고 생각하실 때 서뿔리 감정을 드러내실수 없었다.

《만득아저씨를 불러라.》

《왜요? 이젠 저쪽기슭에 다 갔는데…》

《너 정말 소년학우회 성원의 자격이 없다. 부르라면 부를것이지 웬말이 많으냐?》

《그럼 난 아직…》

영진이는 미심쩍게 중얼거리다가 강기슭에 바싹 나서서 손나팔을 해대고 소리쳤다.

《아저씨, 나오라요!》

검은 물면우로 메아리가 퍼져갔다. 그 어둠속에서 추위에 진저리치는 소리와 함께 곽만득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없다. 없어. 넨장, 여기는 메사구도 없다.》

《나오라요!》

《그래도 마저 봐야지.》

《야참, 한심하군. 나오라요, 김성주선생님이 나오셨어요.》

《얘, 추워죽겠다. 좀 가만있거라.》

《야참, 김성주선생님 오셨어요.》

《뭐?》

《김성주선생님 오셨다는데…》

한참 아무 소리가 없더니 이윽고 절벅절벅하며 물을 가르는 기척이 알리였다. 5월이 지나 물량이 제대로 차면 강깊이가 한길 남짓해지지만 가을철이면 깊어야 허리나 치는 정도여서 헤염을 칠만 한데도 없다.

얼마 못되여 검은 그림자가 철떡철떡 물을 차며 서둘러대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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