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 회)

제 4 편

12

(1)

 

이튿날, 김성주동지께서는 끝내 몸져누우시였다. 기상나팔소리가 울리였으나 그이께서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살을 앓으시였다.

이날 기상나팔은 계영춘이가 불었다. 그리고 아침모임에 뒤이어 성격검토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강영진이는 호되게 비판을 받고 그것이 못마땅하여 버드럭거리다가 아예 소년학우회에서 내쫓기고말았다. 리종락은 소년학우회회의를 지도한 그 기세로 청년동맹에 나와서 이번에는 최용필을 본때있게 몰아세웠다. 그런데 최용필은 자기가 조직에 아무 통보도 안하고 거기에 강영진이까지 달고간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일이고 비조직적인 행동이라고 선선히 접수하고 누구보다도 자신을 먼저 규탄하였다. 회의가 끝난 다음 그는 리종락을 잡고 내가 아무리 과오를 범했다 하더라도 숙소까지 옮길것이야 있느냐고 섭섭한 소리를 하였다.

《동무야 나 없이도 너무 진보적으로 나와서 걱정인데 일이 있소? 나는 락후한 령감들과 함께 있기로 했소.》

리종락이가 무슨 심술인지 이런 말을 툭 해서 최용필은 낯색이 변하였다. 그럼 오늘 자기비판도 지내 앞질러 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어쨌든 이날의 사건으로 하여 리종락과 최용필의 사이는 좀 서먹서먹해지고 최용필은 슬금슬금 락후해지는 방향으로 키를 돌려 꺾는것이 앞으로 니시자와의 지시를 집행하는데 유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김해산의사가 와서 주사랑 놓고 간 다음에도 정신을 못 차리다가 어디선가 퇴퇴 뙤- 하는 마치 새끼꾀꼴새가 처음 노래를 배울 때처럼 흉한 소리를 내는 나팔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마에 얹혀있는 찜질수건을 집어내리시고 귀를 강구시다가 저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시였다. 근심스런 표정으로 지켜보고있던 리종락이가 찜질수건을 도로 이마우에 올려놓아드리며 말씀드렸다.

《나팔수를 바꾸기로 했소. 송재영이라는 송석담교장의 조카아인데 똑똑하오. 지금 계영춘동무가 훈련을 주고있소.》

김성주동지께서는 리종락을 올려다보시였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시였다. 리종락은 덧붙여 말씀드렸다.

《제 형이 화요파에 붙어 돌아가더니 영진이 그놈의 자식도 벌써 못된 버릇이 붙었소. 성격검토회에 내다세워놓으니까 제쪽에서 오히려 좀 경향이 나쁜 집 아이들을 반동이라고 걸고들고 나중에는 아침모임때 지각한 아이들까지 들추어내면서 못되게 굴었소. 어떻게 사납게 구는지 다른 아이들은 입도 못 벌리는 형편이요. 내가 답새겨주니까 그제는 좀 쭈그러들었지만 그래도 공주령에 제멋대로 갔다온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잘못했다는 말을 안하오. 이번에 보니까 서정길이가 역시 똑똑한 아이요. 네놈때문에 김성주선생님께서 앓아누우셨다고 무섭게 들이대더군. 그러니까 영진이라는 놈도 기가 꺾어졌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외면하시였다. 뙤 뙤 하는 나팔소리는 그냥 울리였다. 그것이 그이의 신경을 자극한다고 생각한 리종락은 당장 그들을 멀리 쫓아버릴 생각으로 일어났다.

《종락동무.》하고 김성주동지께서는 나가려는 그를 불러세우시였다.

《그래 강영진이는 아주 소년학우회에서 내쫓았소?》

《앞으로는 모르겠는데 현재는 내쫓았소.》

《그래 종락동무 생각에는 그렇게 하면 앞으로 소년학우회에서 모든 일이 잘되여나갈것 같소?》

《글쎄, 그러나 어쨌든 영진이 경우는 엄격하게 취급해야 된다고 보오. 그 애는 다 알면서 그런 못된짓을 의도적으로 하고 그걸 또 합리화한단 말이요. 제 형 영향을 입어서…》

《종락동무!》하고 김성주동지께서는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시였다. 리종락은 당황하여 그이를 도로 눕히려 하였으나 김성주동지께서는 이미 일어나시였다.

《형 이야기를 자꾸 끌어대지 마시오. 영진이가 형에게서 혁명성이나 애국심은 쉽게 옮았을지 모르지만 종파습성을 닮기는 너무 나이 어리오. 그리고 그 애의 형이 무슨 종파요? 순박한 농촌청년이 나쁜 놈들에게 얼려서 조국과 인민을 구원한다는것이 아까운 목숨만 잃어버린 희생자가 아니요?》

《그래도 그 애가 그렇게 당돌한것은 형때문이요.》

《나는 다른 영향도 있다고 보는데…》

김성주동지께서는 리종락을 찬찬히 살펴보시였으나 그 이야기를 더는 캐지 않고 다른데로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그렇게 한두번의 잘못으로 내쫓는 놀음을 한다면 우리가 이 오가자 인민들을 다 묶어세울수 있겠소? 강영진이야 그래도 혁명하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아예 혁명과 담을 쌓고 살자는 사람도 많은데 그들은 어떻게 하겠소?》

《이건 반지빠른 혁명성이 더 말째단 말이요. 그 후과가 얼마나 심하오?》

리종락은 옷까지 찾아입으시려는 그이의 손을 잡고 매달리듯 하면서 변명조로 말하였다.

《후과란 뭐요? 내가 그 애때문에 이렇게 됐다는거요? 얼토당토않는 책임을 어린 어깨우에 들씌우지 마시오. 나는 아까도 말하려다가 그만두었지만 리종락동무, 이것은 동무의 그 〈례외〉란 말이요. 또 하나의 례외란 말이요. 우리가 2천만겨레를 항일구국의 기치아래에 묶어세운다는 말은 하면서도 동무는 그가운데 벌써 자기 기분에 따라 수많은 〈례외〉를 만들고있소. 우리가 일단 세운 원칙, 일단 세운 규률에 〈례외〉를 만들기 시작한 그런 사고방식이 바로 강영진이와 같은 비조직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행동을 낳게 하는게 아닌가. 그 애의 행동속에 이러한 사상이 싹트고있지 않는가 하는것이 걱정스럽소. 보시오. 동무가 〈례외〉로 타도대상으로 지명했던 조가봉지주까지 우리 일을 적극 돕고있소. 지주도 그렇게 돌려세우는데 강영진이가 뭐요. 우리에게 폭탄이라도 던진 주구요? 왜놈이요?》

《성주동무, 나는 고치노라고 하고있는데…》

리종락이가 당황해서 변명하려 하는데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어디로 가자고 그러오?》

《나가봅시다. 서정길이도 만나보고 강영진이도 만나보기요. 사실 강영진이 하나를 우리 대렬에서 떼내는것이 그자체로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수 있소. 그러나 여기에 두가지 문제가 있소. 하나는 까다로운 사업대상은 이런 식으로 쉽게 처리해버리자는 안일한 사업태도에 있고 다른 하나는 그 후과요. 조선혁명군은 철없는 아이가 놀음기분에 들떠서 보고없이 공주령에 한번 갔다왔다고 대렬에서 축출했다는 말이 돌아가면 그런 융통성없는 혁명군의 규률에는 못 견디겠다고 생각할 농민들이 얼마든지 있을수 있소.》

이미 신을 신고 마당에 나서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진심으로 걱정어리신 낯빛으로 말씀하시였다. 리종락은 이제는 말릴래야 말릴수가 없다는것을 깨닫자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아니지 않소. 강영진이가 조직에서 축출된것은 군중을 깔보고 조직을 깔보고 조직의 비판에 도전해나섰기때문이요.》

《그건 다 쓸데없는 변명이요. 물론 잘못은 강영진이에게 있을수 있소. 그렇다고 우리 책임이 없겠소? 그리고 잘못을 저지르는것이 강영진이뿐이겠소? 이러저러하게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소. 그렇다고 인민이 잘못 생각하니 하는수 없다고 우리가 나앉을수 있소? 누가 밥을 주고 돈을 주어서 우리가 혁명을 시작했소? 칭찬을 받자고 혁명을 시작했소? 가슴터지는 오해와 불신을 참으면서 구구히 자기를 낮추고 사람들의 굳게 닫긴 가슴을 두드리는것은 우리가 조국을 사랑하고 인민을 사랑하기때문이며 이렇게 잘못된 생각들을 바로잡아줘야만 조국도 인민도 구원할수가 있기때문이 아니요?》

흙먼지를 날리며 회오리바람이 불어쳤다. 리종락은 여전히 억울한 생각이 가셔지지 않았으나 그이의 옆모습에서 병색을 띠여보자 모든 감정을 눌러버리고 애원하였다.

《성주동무, 들어가시오. 내가 다 수습하겠소. 못다한 말은 다시 들으러 가겠소. 그리고 영진이를 찾아서 잘 타일러보겠소. 그 애가 스스로 잘못을 느끼도록 하고 소년학우회에서 다시 토론하도록 하겠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이윽히 리종락을 바라보다가 말씀하시였다.

《그럼 그렇게 하시오. 강영진이를 되게 비판해야 합니다. 조직자체가 후퇴해서는 안되오. 그러나 처리를 편협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애들을 떼놓기 시작하면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떼놓게 될지 모른다는 점을 명심하시오.》

《알겠소.》

《그럼 가보시오. 나는 나왔던김에 학교에 가서 10월혁명기념행사준비에 대해 좀 알아보고 들어가겠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촌공회앞길에서 리종락이와 헤여지시였다.

얼마후 아침모임터에서 울려오던 그 서툰 나팔소리도 멎었다. 서정길이는 리종락이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자기가 평소에 강영진이를 맞갖지 않게 생각했기때문에 말이 과격하게 나갔고 그것이 또 강영진이에게 예상외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을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강영진이를 찾으니 아무데도 없었다. 온 동네를 다 뒤져도 없고 집에서도 모르며 그를 봤다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자 덤비기 시작하였다. 소년학우회 전원을 풀어 동네뿐아니라 팔옥, 하투, 사가자까지 다 보냈으나 아무데도 없었다.

짧은 마가을해가 저물고 어둠이 나래를 펴자 어른들도 덤비기 시작했다. 이 애가 또 어디로 갔는가. 이번에는 제 혼자 장춘이라도 나간게 아닌가.

어린게 혼자 다니다가 토비한테 끌려갈지도 모르고 더구나 오가자에 밀정이 박혀있는것 같다는 말이 있는데 혹 그 줄을 통해 험한데로 끌려갈수도 있지 않는가. 지어 어떤 사람들은 생매같이 성깔 사나운 아이가 밸풀이를 하지 못해서 어디 나가 죽은게 아닌가 하는 억측까지 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이날 종시 자리에 눕지 않고 종일 삼성학교에서 보내시였다. 변달환과 각 부락책임자들을 부르시여 농민들의 생활형편, 기분상태도 료해하시고 지주와의 투쟁을 벌리는데 대해 그들이 어떻게 나올것인가 하는 점도 타진하시였다. 지주와의 투쟁을 벌리자면 우선 농민들의 대렬을 빨리 조직적으로 든든히 결속해야 한다는것을 강조하시고 아직도 농우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부락별로 하나하나 따져보고 대상에 맞게 그들을 교양포섭할 책임을 혁명군대원들과 반제청년동맹의 핵심들에게 분공하시였다.

점심참에 궁금증을 누를길이 없어 강영진이네 집에 들리시였으나 아이도 없고 앓는다는 그 애의 어머니도 없었다.

무거운 생각에 잠기시여 돌아오시는데 뜻밖에도 영진의 어머니가 대동의원에서 나왔다. 병을 보러 왔느냐고 물으시니 그런것이 아니라 혹시 영진이가 병원에 오지 않았는가 해서 왔다는것이였다.

《그 애가 약값도 없으면서 몇번씩 의원선생을 청해오군 했기에… 그나저나 선생님까지 이렇게 걱정을 끼쳐서 어찌 미안한지.…》

거듭되는 불행에 심신이 다 노그라진듯 한 중년의 아낙네는 고개를 숙이였다.

《그래 의사선생님은 만나봤습니까?》

《선생님도 바깥에 나가고 없더군요.》

빈혈이 심하여 어지럼증에 시달리는 아낙네는 바로서있기가 힘든듯 주저앉으려 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다시 아낙네를 부축하여 그의 집까지 데려다 눕히고 싸늘한 구들에 군불을 지펴주신 다음 마침 지나가는 금실이에게 미음이라도 좀 쑤어서 대접하라고 이르시였다.

집에 돌아오시니 김해산의사는 뜻밖에도 문상우와 마주앉아 졸고있었다. 이야긴즉 두번씩이나 왔다가 계시지 않아서 아예 들어오실 때까지 기다릴 차비로 앉아있다는것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고나서 지금 나보다 강영진의 어머니가 훨씬 급하니 그리로 가자고 청하시였다.

《내 그 아낙네 병을 압니다. 신경쇠약에 빈혈이 겹쳤는데 뭐 대단할것 없습니다. 빈혈은 알만 한 병이고 또 신경쇠약이라는것은 세월이 고쳐줄겁니다. 세월같은 명의는 없답니다. 어쨌거나 그것은 내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만 우선 김선생님 치료부터 하고 떠납시다.》

《나야 젊은 사람인데 그야말로 그 세월의 명의한테 맡겨도 될것 아닙니까. 자, 갑시다.》

김해산은 어쩔수없이 일어서면서 저녁에 다시 오겠으니 꼭 오늘 밤은 집에 들어와 주무시도록 해야 한다고 부탁하였다.

김해산을 영진이네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학교에 나오시였다. 밤에는 야학에 나가시여 직접 토론회를 지도하시였다. 리종락이와 곽병호를 불러 문상우의 딸 복실이와 옥실이 형제를 야학에 받을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여러 시간 협의하시였다. 그러고나서 계영춘이와 이번 10월혁명기념일에 오가자사람들을 혁명에 눈뜨게 하는 새로운 내용의 가극을 하나 만들어 연예공연에 내놓자고도 하시였다. 계영춘이가 작품때문에 걱정하자 그이께서는 자신께서 이미 구상하고계시는 내용을 대충 말씀하시면서 미리 준비를 하라고 이르시였다.

이 모든 다사한 사업들을 처리해나가면서도 강영진이에 대한 소식에 귀를 강구고계시였다. 그러나 날이 저물고 초생달이 떴다가 사라지고 야학생들도 흩어지고 그리고 혁명군대원들과 오늘의 마지막총화까지 짓고 계영춘이와 헤여진 다음에도 강영진이의 소식은 없었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0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