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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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와 헤여진 장문휴는 대문앞에 두마리의 돌범이 버티고선 반안왕부를 찾았다.

금시 뛰쳐나와 덮칠듯싶은 기세로 서있는 돌범앞에서 산책을 하던 반안왕이 반색하며 맞아주었다. 보통키에 몸집도 보통인 반안왕은 나이와 달리 머리도 수염도 온통 칠혹빛을 띠고있어 무척 젊어보이였다.

늘 정기를 머금고있는 두눈이 인상적인 반안왕은 인사를 드리는 장문휴의 옆을 끼며 말했다.

《잘 왔네. 기다렸다니까.》

반안왕은 언제나 그러했듯 명화 《호렵도》가 있는 서재로 장문휴를 이끌었다.

장문휴에게 자리를 권한 반안왕이 벙글 웃었다.

《자네의 뜻대로 일이 되였으니 한시름놓게 되였네.》

기쁨으로 장문휴의 얼굴이 환해졌다.

《전 황상마마께서 저에게 나라의 관문을 맡겨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소이다. 이렇게까지 믿어주시는데 한몸을 내대고 나라의 기대에 보답할 생각뿐이오이다,》

《암, 그래야지.》

반안왕은 《호렵도》에서 활로 범을 쏘는 장사를 가리켰다.

활의 시위를 당기는 장사는 웃동을 벗고있는데 두눈에서는 자신만만한 배심이 뿜어져나오고 근육이 울퉁불퉁한 팔뚝이며 가슴에서는 그 어떤 적수도 단매에 둘러메칠 기력이 넘쳐보였다.

《난 자네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산중의 왕을 사냥하는 저 장사처럼 당나라것들을 꼼짝 못하게 눌러놓는 진짜배기 장수가 되리라 믿네.》

아무런 꾸밈이 없는 반안왕의 진정에 장문휴는 고개가 숙어졌다.

《전하, 지금껏 생각지도 않던 백성을 다스리는 일감까지 맡고보니 그걸 바로해내겠는지 걱정이 앞서오이다.》

《호렵도》속의 장사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반안왕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란 말이지…》하고 뇌이던 반안왕의 눈길이 장문휴의 듬직한 얼굴로 옮겨왔다.

장문휴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알게 된것도 행운이고 나라에 저런 장수가 태인것도 복이 아닐수 없지.…

반안왕은 장문휴를 고구려의 명장들보다 못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였다.

지금껏 여러차례나 전장에 나가서 단 한번의 패함도 없이 오직 나라에 승전만을 가져다준 장수는 장문휴뿐이였다.

우매한 말갈족의 반란을 평정하는 싸움에서 적장의 목을 버인 공이며 옛 고구려의 강토를 수복한 공이며 불의에 배를 타고 기여든 당나라해적들을 쳐부신 공이며…

물론 이 싸움들은 량켠에서 수만, 수십만명의 대군이 맞붙어 벌린 격전은 아니였다.

허나 작은 싸움들에서 이긴 장수라야 큰 싸움에서도 이길수 있는 법이다.

장수가 싸움에서 이기려면 반드시 지략에서나 용맹에서나 적장을 압도해야 할뿐아니라 수백가지 전장의 형편을 순식간에 정확히 타산하여 내리는 선견지명이 뛰여나야 하는것이다.

장문휴는 바로 그것을 타고났기에 싸움들에서 패전을 모른것이다.

이웃나라들도 시야에 두고있는 반안왕은 당나라에도 장문휴와 견줄 장수가 없다고 보고있었다.

당나라에 장수는 많아도 지략이 있으면 용맹이 부족하고 용맹이 있으면 지략이 모자라는 절반짜리 장수들뿐 문무에 지인용을 겸비하여 장차로 명장이라는 이름을 후세에 떨칠만 한 진짜 장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반안왕이였다.

당나라가 발해와의 대결을 주도하라고 안동도호의 감투를 씌워준 설태가 지략과 용맹을 갖추었다고는 하지만 통솔력과 선견지명이 부족하여 장문휴의 적수로는 적합치 않았다.

당나라에서 용맹이 있다고 알려진 장수들은 대개 돌궐이나 거란에서 투항해온자들인데 그들에게서도 지략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보다 훨씬 출중한 장문휴가 애써 분발한다면 외적의 대거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도 능히 나라를 버티여낼것이였다.

반안왕은 믿음어린 눈길로 장문휴를 바라보며 말했다.

《용맹이나 지략에서라면 누가 자넬 따르겠나. 허나 그것만 가지고서는 나라를 버티는 큰 기둥이 될수 없네.

나라를 버티는 큰 기둥이 되자면 백성을 다스릴줄도 알아야 하네. 백성을 바로 다스리기란 싸움하기보다 어려우면 어렵지 헐치는 않네.》

반안왕은 지그시 두눈을 내리감으며 말했다.

《자네가 난생처음 수만백성을 다스려야 하니만치 어려운것이 한두가지가 아닐걸세.

백성이란건 하늘탓으로 농사가 잘되지 않아도 관가를 원망하고 외적의탓으로 어려움을 겪어도 조정을 욕한다네.

하여간 저희들에게 리롭지 못한것은 다 우의탓이라고 여긴다네. 철부지 아이들과 같다고 해야 할지

그렇다고 백성을 짓밟는다면 나라가 위태로와지네. 나라를 지켜야 할 군사도 나라를 살리는 모든 재물도 다 백성이 낳는것이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는것이 백성을 바로 다스리는것이겠나? 황소가 아무리 기운이 세차고 심술이 사납건만 사람들에게 고분고분 끌려다니는것이 무엇때문인가? 코를 꿰였기때문일세. 백성들의 코를 꿰자면 그들이 무엇을 그리워하고 무엇때문에 아파하는것인지 그걸 알아내야 하네.》

반안왕의 이야기는 장문휴의 귀에 쏙쏙 흘러들었다.

《자넨 책도 많이 읽고 들은것도 많지만 백성살이에 대해서는 체험한것이 많지 못하네.

예로부터 명군이라 알려진 임금들은 례외없이 백성살이를 제 눈으로 살피기를 좋아했네. 그래서 일부러 백성차림을 하고 고을들을 돌아보았다고 하네. 숱한 신하를 거느린 임금으로서는 궁궐에 앉아서도 백성살이를 알수 있을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네. 사람마다 보고듣는 깊이가 다르고 또 대개 아래사람들이란 웃사람에게 좋은것만 아뢰이는것으로써 낯내기를 하려들기때문에 임금이 우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아래를 똑똑히 알수가 없네. 그래서 어떤 임금들은 잠행으로 아래를 돌아보려 했던거네. 평백성의 차림으로 본색을 숨기고 돌아보면 가난뱅이들은 무엇을 먹고 그들이 무엇을 원망하는지 속속이 알수 있으니까.

대개 백성들이 관가를 원망하게 되는것은 탐욕스러운 관리들이 국법을 어기고 남의 재물을 악착스레 빼앗아들이기때문일세. 그럴 때 백성들의 원성을 아주 크게 산 탐관오리 몇놈의 목을 쳐보게. 민심이 어떻게 되겠나? 또 백성들이 탐관오리들에게 빼앗긴 재물중에서 얼마쯤 찾아주어보지. 어떻게 되겠나?

이게 바로 백성들의 마음을 사는 말하자면 백성들이 그리워하고 아파하는것을 풀어주는 묘리일세.》

책에서 읽었던것과는 거리가 먼 그 말에 장문휴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렇게 하는걸 어떻게 백성구제라 하겠소이까?》

반안왕이 껄껄 웃고나서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책에 씌여있는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네. 백성구제가 나라의 할바라지만 천하의 그 어떤 나라도 백성을 구제하지 못했네. 앞으로도 백성을 가난에서 구제하는 나라는 없을걸세.

사람이 저 하나 잘살자고 해도 어려운데 어떻게 나라가 한둘도 아닌 그 많은 백성을 잘살수 있게 하겠나. 그건 도저히 이루어질수 없는 꿈같은 일일세. 꿈같은 일이기에 백성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잘살날이 오기를 바라는것이고 그래서 백성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도 생겨난걸세.

그러니 그런 일에 마음쓰지 말고 나라방비에 힘쓰고 민심을 잃지 않도록 머리를 쓰라구. 그건 그렇고…》

입가에 웃음을 띤 반안왕이 불쑥 화제를 돌리였다.

《자네네 집 시비를 아려라고 했던가?》

《예.》

《드러난 남의 눈과 귀를 떼버리고 가는게 결코 내 진속을 감추는것으로는 되지 않을걸세.》

장문휴는 그 말뜻을 제꺽 알아차렸다.

《그럼 아려를 부임지에 데리고 가겠소이다.》

《그래야 해. 그래야 여러모로 좋을걸세.》

반안왕은 천정으로 눈길을 던지며 말했다.

《자네를 처음 알게 된지도 벌써 스무해가 지났어. 난 주자감시절의 자네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해.

새파랗게 젊었던 자네가 반간계에 대한 명백한 주장으로 나를 감동시켰댔지. 적과 싸워이기려면 반드시 우리의 눈과 귀를 밝히는데 모를 박아야 하네. 지략과 용맹이 출중하다고 해도 적의 형편을 모르면 패할수 있네. 자네가 흑수말갈에 우리의 촉수들을 박아넣은것은 잘한 일일세.》

이미 장문휴는 그 일에 대해서 황상과 반안왕에게 알린바있었다.

《매사에 적의 간계를 앞질러 알아내는 일을 잊지 말게.》

《알겠소이다.》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는 장문휴를 반안왕은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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