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 1 장

9

(2)

 

더는 지체하고싶지 않아 장문휴가 일어서는데 문예가 그냥 앉아있으라고 손짓을 하였다.

한모금 차물을 마신 문예는 손에 든 차잔을 뱅뱅 돌리며 말했다.

《내 말 좀 듣소. 옛 책에 이르기를 덕으로 나라를 넓히는 군주는 강토를 쉽게 차지하면서도 잘 잃어버리지 않으나 힘으로 나라를 넓히는 군주는 강토를 차지하기도 어렵고 반대로 잃어버리기는 쉽다고 하였소. 그 옛글에 오늘의 우리를 비추어보면 어떻다고 생각되오?》

장문휴는 저으기 긴장해졌다.

혹시 이 사람이 우리가 힘으로 강토를 넓히련다는 말을 하지 못해 이러는것은 아닐가?!

흑수를 포함한 북방의 강토는 대대로 물려오는 우리 조상의 강토로서 그 땅에서 못되게 구는 반란의 무리를 치는것을 가리켜 힘으로 나라를 넓힌다고 볼수는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황상의 친동생이 그렇게 생각할수 없다고 단정한 장문휴는 고개를 저었다.

《저같은 사람이 령공의 깊은 뜻을 어찌 알수 있겠소이까.》

기어코 원정을 중지시키리라 악심을 먹은 문예는 그 원정의 적극적인 발기자인 장문휴부터 짓밟고싶었다.

그래서 그의 가슴을 허비는 야비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하긴 군사밖에 배운것 없고 세상구경도 못해본 사람이 그 뜻을 알리 없지.

까놓고말해서 우매한 말갈족이 사는 북방의 강토는 우리에게 그리 소용되는 땅은 아니네. 춥디추운 겨울이 긴긴 그 땅에서 어찌 농사를 지을수 있겠소. 혹시 그대가 식솔을 끌고가서 땅을 갈면 되겠는지…》

장문휴는 숨이 꽉 막히는것 같았다.

이 사람이 발해사람이 옳긴 옳은가. 이런 머리통을 가지고 무슨 일을 제대로 할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바쁘더래도 문예의 삐뚤어진 머리통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한 장문휴는 커다란 주먹을 무릎우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설사 쓸모가 없는 불모지 얼음땅이라고 해도 조상이 물려준 땅을 줴버리겠다는것은 아주 온당치 못한 처사가 아닐수 없소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 평정된 조상의 땅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본분밖에 없소이다. 이것을 명심하지 않는다면 나라에 돌이킬수 없는 해를 끼치게 되오이다.》

북방의 강토를 머리속에서 지워버린 문예는 드디여 제 본색을 드러냈다.

《이제 내가 동모산을 나서면 흑수말갈은 평정될거네. 그다음 우리는 당나라와 싸우게 될것인데 그댄 정말로 그들을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오?》

문예의 비웃는 눈길앞에 장문휴는 주먹으로 무릎을 꾹 누르며 반문했다.

《그럼 진다고 생각하오이까?》

문예는 코웃음을 치며 빈정댔다.

《그대는 혹시 자기를 을지문덕장군으로 착각한건 아닌가?》

문예는 장문휴의 인격을 박박 깎아내려고 서둘러댔다.

《자고자대하지 마오. 오늘 그가 누구든 그 어른의 발뒤꿈치에도 따라서지 못한단 말이요. 수나라의 대군을 물리칠수 있은것은 고구려가 강해서라기보다 바로 그때 하늘이 을지문덕장군을 내려주었기때문이요.》

언제한번 자신을 고구려의 명장들곁에 세워본적 없는 장문휴는 웃고 말았다.

문예는 아무 말도 못하는 장문휴를 깨고소해하는 눈길로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옛말에 사냥개도 백마리이면 범을 잡을수 있다고 했네, 헌데 우리 나라는 인구도 많지 않으니 무슨 수로 그 많은 범을 다 잡겠소. 그대는 이걸 모르다보니 용맹한척 하거던.》

문예의 계속되는 멸시에 장문휴는 참기가 어려웠다.

《너는 무슨 심보로 구역질나는 말만 하는거냐? 당나라에 가서 눅거리차잎이나 달여마시다보니 자기 나라 사람들은 개로 보이고 그 나라것들은 다 범으로 보이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너도 개라는건데 거 참 볼썽 사납구나.》하고 놀려대고싶었다.

그러나 상대가 황상의 동생이고 나라의 재상이라는 생각으로 꾹 참고말았다.

문예는 몹시 불쾌하여 얼굴을 붉히는 장문휴를 좀더 물어뜯고싶어 실눈을 지었다.

《그대 생각엔 당나라가 왜 우리와 한사코 해보려는것 같소?》

《그걸 정녕 몰라서 묻소이까?》

장문휴의 노성에 문예는 코를 불어댔다.

《흥! 그건 우리 발해가 천자국이라 하기때문인줄은 삼척동자도 아는것이니까. 고구려도 천자국이라 자칭했기에 무너진거요.

천자국이라는게 참 골치거리요, 저 하늘에 두개의 해가 있을수 없듯 천하에도 두개의 천자국이 있을수가 없지.》

장문휴는 비양조로 뇌까리는 문예에게 엄한 눈길을 주었다.

《그대도 성무고황제께서 직접 주관하에 내놓은 단군봉장기년을 읽어보았겠는데 어찌 감히 그렇게 말할수가 있소? 우리 겨레의 시조 단군은 애초에 하늘나라 임금의 아들 즉 천자였소이다. 그래서 단군의 나라를 가리켜 세상에서 제일먼저 천자국이라 한것이오이다. 고구려가 그러했듯 우리 발해도 단군의 나라를 이었기때문에 천자국인것이오이다.

하지만 저 중원에서는 단군보다 수천년 썩 후인 영정때에 와서야 자기도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천자라고 했던것이오이다.

하기에 옛적에 증원의 사가들이 박달임금의 나라를 가리켜 이적이라고 헐뜯긴 하였지만 천자는 이적이 처음으로 칭한것인바 부친은 하늘이요. 모친은 땅이기때문에 천자라고 한다.라는 글을 남기였던것이오이다.》

오만상을 찡그린 문예가 이죽거렸다.

《중원사람들의 책도 읽긴 읽었구만. 허나 먼저 천자국을 칭했다고 해서 천자국이 되는건 아니요.》

장문휴는 심술기가 더덕더덕 붙어있는 문예의 얼굴을 처음보듯 들여다보았다.

《사실말이지 당나라가 천하에는 저 하나만이 천자국이여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그 말은 남의 강토를 빼앗고 남의 겨레를 짓밟으려하는 저희들의 무서운 흉심을 가리우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소이다.

당나라라는 그자체가 술한 종족들이 먹고 먹히우는 속에 커지고 부유해진것이 아니겠소이까.

그렇게 해서 비대해진 그네들의 욕심은 온 천하를 먹자는것이고 그 본성으로부터 세상에는 천자가 저희밖에 없어야 한다는 궤변을 들고나올수밖에 없는것이오이다.》

움씰 자리에서 일어선 장문휴는 엄하게 일렀다.

《어떤 나라가 진정 천자의 나라로 될수 있는가? 그건 고구려와 같이 그리고 우리 발해와 같이 제정신을 가지고 제 손으로 나라를 일떠세우고 제 힘으로 나라를 지키는 그런 나라가 천자국이 될수 있소이다.

반대로 남의 정신으로 남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부지하는 그런 나라는 땅이 크고 인구가 많아도 남의 속국을 면할수 없는것이오이다.

조종의 산의 정기로 자존자대의 유풍을 이어가고있기에 우리 발해는 떳떳하고 당당하여 똥개들이 무서워하는 범과도 같소이다.

간혹 얼빠진 작자들이 범의 무리와도 같은 우리의 군사를 통솔하는 군장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자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오이다.》

지금껏 누구한테서도 이런 호된 말을 들어보지 못한 문예는 가슴이 터질듯 분기가 치밀었지만 당장 제 얼굴로 날아들듯싶은 장문휴의 억센 주먹이 두려워 감히 어쩌지는 못하고 씩씩거렸다.

《제정신을 차리시오이다.》라는 위압적인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온 장문휴는 흑수부에 들여보낸 간자들을 임아에게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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