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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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몇달전 보국대장군 장문휴가 5군을 거느리고 나가 불녈에 진을 쳤다기에 황상이 허장성세의 계책으로 흑수말갈을 위압하여 당나라와 내통하지 못하게 하고 더불어 말갈추장들이 그 나라로 갈수 없도록 길이나 막으려 하겠지 하고 생각한 문예였다.

《형님이 실성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당나라와 힘을 겨루려 하겠소이까. 큰 나라와 맞섰다가 망한 나라들이 어디 한둘이오이까.

형님은 맨발로 바위를 차려하고있소이다. 우리가 형님을 설복하여 흑수정벌을 막아내야 나라를 부지할수 있소이다.》

임아는 문예의 돌발적인 태도에 너무도 기가 막힌 나머지 도리여 성이 가라앉았다.

《그럼 넌 형님을 설복할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한풀 기세가 꺾인듯싶은 임아의 태도에 보다 열이 난 문예는 어깨를 으쑥했다.

《당나라가 흑수땅에 흑수주도독부를 내온 까닭이 뭐겠소이까. 그건 우리를 분하게 해서 흑수말갈을 치게 하자는것이오이다.

우리가 그 수에 걸려들어 흑수말갈을 친다면 우린 당나라로 하여금 발해를 칠수 있는 구실을 주는것으로 될것이오이다.

당나라가 겉보기에는 국력이 진해서 맥을 출것 같지 않지만 실은 잠을 자는 사자와 같아서 깨나면 큰일이오이다. 그들의 백만군사가 우리에게 달려든다면 아, 생각만 해도 무섭소이다.

고구려도 맞섰다가 이기지 못했는데 우리야 더 말해 무엇하겠소이까.

그러니 우린 흑수말갈을 칠게 아니라 당나라와 더 깊이 친교를 맺어야 하오이다.

이걸 알고 형님이 나를 군장으로가 아니라 사신으로 봉해서 당나라로 가게 한다면 내 있는 재주를 다해서 그 나라 임금으로 하여금 흑수주도독부도 흑수군도 없애고 오로지 우리하고만 통하게 하겠소이다.》

임아는 속으로 개탄해마지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성무고황제의 아들이 어쩜 이럴수 있는가. 그것도 재주가 출중한 황자가?!…

문예는 성무고황제의 여러 황자중에서 지금 황상과 견줄만큼 무술도 뛰여났다.

그리고 문장을 짓는 재주는 황족에서 으뜸이였다.

그만큼 문예는 남다른 총명을 타고난것이였다.

임아는 아파나는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너는 제 이름에 담겨진 선제의 뜻을 잊은것 같구나. 그걸 잊으면 안된다.》

일찌기 성무고황제는 태여나는 황자들에게 심오한 뜻을 담아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맏아들에게는 힘쓸 무자, 둘째에게는 글 문자 그리고 셋째아들에게는 꾀 술자를 붙여 무예, 문예, 술예라 부르게 하였다.

이는 황자들이 용맹과 학식과 지략으로 고구려와 같은 강대한 나라를 일떠세우기 바란것이였다.

임아는 눈물이 글썽해서 말했다.

《네가 하도 오랜 세월 남의 나라 물을 마시다보니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당나라가 우리의 등에 칼을 박으려 하는데 화친이란 웬말이야.

물론 당나라가 우리보다 강토도 크고 군사도 많은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방으로 이웃들과 모두 사이가 나쁘기때문에 천만의 군사가 있다고 한들 맥을 추지 못해.

너는 고구려가 당나라와 싸워 패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리도 입삐뚤어진 소리를 하는거냐. 고구려는 수나라의 삼백만대군과도 싸워 이긴 천하강국이였다.

고구려가 무너진것은 당나라가 강해서가 아니라 연개소문장군이 돌아간 후 그의 여러 자식들간에 벌어진 권력다툼으로 나라가 사분오렬되였기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내 보기엔 당나라의 임금이란 사람이 졸장부같구나. 백만의 대군을 가지고있다면서 쪼물짝하게 미개한 말갈따위나 꼬드겨 우리와 싸우게 하는걸 보면 세상 비겁쟁이로다.

그가 정말 사내대장부이고 임금이라는 체통이 있다면 우리에게 직접 싸움을 걸어온지도 열두번이 되였을게다.》

문예의 손을 잡고 임아는 사정하듯 말했다.

《자넨 철부지가 아닐세. 두번다시 그런 말을 입밖에도 내지 말아. 이번 원정은 이미 이긴 원정이니 다른 생각말고 갔다오면 알도리가 있을거네. 알겠나?》

임아는 반안왕도 늙었겠다, 나라앞에 공만 세우면 문예가 대내상이 될것이라고 생각하는터였다. 바로 그 생각을 입에 올리려 했던 임아는 입술을 깨물고말았다.

문예가 잠시 그 빌어먹을 당나라때문에 분별을 잃어서 그렇지 제정신을 차리고나면 누구보다도 명석하여 하나를 하면 열스물을 헤아리는 그가 그런 말을 한 나를 치졸하다고 여길게 아닌가.

임아가 문예를 제 집으로 끌고온데는 그와 손을 잡고 반안왕을 제거하기 위한 음흉한 속심이 깔려있었다.

황상이 문예에게 수만군사를 척척 내주는걸 보면 이제는 그를 크게 써줄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것이다. 바로 이러한 때 문예로 하여금 큰 공을 세우게 하여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게 한다면 밉고미운 반안왕을 얼마든지 몰아낼수 있을것이다.

반안왕만 밀어내면 청렴이니 결백이니 하고 떠들어대는 장문휴따위들을 몰아내기란 식은죽먹기인것이다.

적수들을 몰아낸 자리들에는 물론 임아 자기의 심복들을 밀어넣을 생각이였다.

오늘 어전회의에서 리오구가 탐오죄에 걸려 파직된것은 임아에게 있어서 대단히 큰 손실이였다.

리오구는 임아네 고간에 만금재물을 대주는 물방아간의 물방아와도 같은 존재였다.

해마다 리오구가 가져다주는 재물은 보통부자 스물을 낳고도 남는것이였다.

안원부라는데가 금은보화가 많이 나오는 고장인 까닭에 그 주인으로는 리오구를 힘들게 들여앉히였는데 파직이 되였으니 실로 큰 불행이 아닐수 없었다.

그게 다 반안왕의 작간때문이고 군사에서 똑 제일인듯 놀아대는 장문휴 그놈때문이 아닌가.

임아의 이런 속심을 알리없는 문예가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외삼촌도 우리 꼭두에 올라가 더러운걸 쏴갈기려드는 장문휴 그놈처럼 발해가 그래 당나라를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오이까?》

젊었을 때 전장을 메주밟듯 하면서 당나라군을 쳐몰아내는데 기여한 임아는 왕년의 기개가 되살아나서 코웃음을 쳤다.

《장문휴 그놈 소리는 하지도 말아. 기분나빠진다. 그건 그렇고, 우린 얼마든지 당나라를 대적할수 있어.

무엇보다도 너의 형님이 리륭기인지 당나라임금인지 하는따위와는 대비할수도 없이 모든 면에서 뛰여났거던. 그리고 우리에게는 천하무적이라 할수 있는 경군만 해도 10만명이 넘고 각 부와 주의 군사들을 합치면 수십만의 정예군이 있다.

게다가 강토는 험준하고 성들이 든든하여 당나라의 백만대군이 다 달려든대도 막아낼수 있다.

그래서 난 장문휴 그놈이 무슨 큰일이라도 칠듯 서부변방에 경군을 들이밀자하는걸 꾸짖었던게야.》

임아의 손에서 홱 제 손을 나꾸어뽑아낸 문예가 그를 쏘아보았다.

《과연 우물안의 개구리라고 하겠소이다. 왜 그다지도 앞을 내다보지 못하오이까. 외삼촌조차도 이러하니 이 나라에 어찌 큰 화가 들이닥치지 않겠소이까.》

그만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오른 임아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도끼눈으로 문예를 마주 쏘아보며 발을 탕 굴렀다.

《두번다시 그런 넉두리를 하면 내가 널 가만두지 않겠다.》

정말로 성이 나서 펄펄 뛰는 임아의 기상에 문예는 입만 쩝쩝 다시였다.

임아의 마음을 움직여 조정에 원정을 반대하는 상주문을 함께 내려했던 속심이 깨지고보니 이 집에 더는 앉아있고싶지 않았다.

남의 정신이 골수에 찬 문예는 제 혼자서라도 상주문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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