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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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전회의가 끝나기 바쁘게 임아에게 이끌려 대궐을 나선 문예는 속이 좋지 않아 씩씩거렸다.

생각할수록 분이 치밀어올랐다.

(밉살스럽게도 장문휴 그놈이 어전마당에서 주인행세를 하다니…)

문예는 그전부터 장문휴와 같은 장수들을 제 집의 대문이나 지키는 파수군으로 치부하고있었다.

그런 파수군이 백관의 앞에서 황족까지 제쳐놓고 황상과의 의논을 독차지했으니 자기가 무시당했다는 수치감에 푸르락불그락 화가 치미는 문예였다.

그놈을 시궁창에 처박고 두들겨패도 시원치 않겠다. 에익, 죽일놈.

너무도 격한 나머지 문예는 제 몸이 누구에게 이끌려가는지도 알수 없었다.

호화롭게 꾸려진 방에 들어선 문예는 한벽을 차지한 그림 《꿩사냥도》를 보고서야 외삼촌의 집에 왔다는것을 깨달았다.

어려서부터 보아와서 이제는 그림속에서 웃고있는 사나이의 수염까지도 그 수가 몇개인지 알수 있는 문예였다.

임아는 꿩사냥을 아주 좋아했다. 아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미쳤다고 해야 옳을것이다.

사흘이 멀다하게 매를 가지고 꿩사냥을 하는 그때문에 언제인가는 어전회의에까지 빠짐으로써 황상의 호된 꾸중을 당했던 임아였다.

자기를 나라의 제일가는 꿩사냥군으로 자처하는 임아는 젊었을 때 나라에서 제일 뛰여난 화공을 불러다 산판에서 매를 날리는 제모습을 그리게 하였다.

색감도 백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퇴색을 모른다는 금가루가 들어간것으로 그리도록 한 이 그림속에서 임아는 량팔에 얹은 꿩매를 날리며 웃고있었다.

그 그림을 등지고 방바닥에 주저앉은 문예는 옷깃을 헤치며 떠들어댔다.

《장문휴 그 버러지같은 놈이 그래 어전에서 제 세상처럼 날치는걸 내버려둔단 말이예요? 그 상놈때문에 내가 랑패를 당했단 말이요.》

임아는 문예의 속을 다는 알수 없었지만 어전회의에서 장문휴가 자기의 말을 지나가는 개소리만큼도 여기지 않던 일이 생각나 이를 사려물었다.

큼직큼직한 눈이며 코며 입이며 손바닥만 한 두툼한 두귀를 가진것으로 하여 평소에 부처와도 같이 호감을 주던 그의 살진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이그러졌다.

임아도 성이 나서 떠들었다.

《내 나이가 몇인가. 예순을 썩 넘겼어. 그런데도 아들벌밖에 안되는 장문휴 그놈이 탑전에서 내 말을 알은체도 없었단 말이야. 대신의 축에 생전가도 끼울수 없는 그 천한 놈이 민충이 쑥대에 오른듯 놀아대는 꼴을 보면 사지를 찢어죽이고싶다니까.

그게 다 뉘탓이냐? 네 사촌형인지 반안왕인지 하는 그 사람때문이 아니냐? 반안왕 그 사람이 아래웃턱도 모르는 그런 놈을 큰 장수나 되는듯 싸고도니 기가 막히다.》

임아는 장문휴 못지 않게 반안왕까지도 미워 이를 박박 갈았다.

지금껏 반안왕때문에 골탕을 먹은것이 한두번 아니니 임아로서는 그를 죽도록 미워할수밖에 없었다.

젊어서 한때 임아는 대야발과 쌍벽을 이루는 충신이라고 소문이 났었다. 성무고황제를 도와 발해의 건국에도 기여했고 건국후에는 국력을 다지는 일에서도 대야발에게 뒤질세라 승벽을 부리였다.

허나 성무고황제가 돌아가고 조카인 대무예를 임금으로 받들어세운 다음부터는 지난날의 공을 턱대고 탐욕을 부리였다.

권세를 휘둘러 벼슬도 팔고 지어는 나라의 재물까지 제 집으로 끌어들이는짓을 일삼았다.

그 비행을 반안왕이 밝혀내는 바람에 여러번이나 벼슬을 삭탈당했었다.

매사냥때문에 어전회의에 빠졌을 때에는 하마트면 변방 멀리로 정배를 갈번 하였다.

그때 반안왕이 한사코 정배를 보내야 한다고 하였는데 다행히도 황상이 나이가 많다며 두둔해주어 화를 면할수 있었다.

세운 공으로 보나 황상과의 혈연으로 보나 자기가 마땅히 대내상이 되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임아는 자기우에 올라있는 반안왕의 존재에 눈꼴이 쏴서 견딜수 없었다.

조정의 대신이 되고보니 제 리속을 먼저 챙그려야겠다는 욕심이 굴뚝같아진 임아였으니 그 길에 장애가 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원쑤처럼 보이는것이였다.

결국 그는 자기의 이런 처사가 조정을 병들게 하고 나아가서는 나라방비에까지 엄중한 후과를 미칠수 있다는것에 대해서는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임아가 불만을 터뜨렸다.

《대일하가 아비덕에 반안왕이랍시고 태위까지 가로타고있으니 정말 참기 어렵구나.》

대야발이 태위의 직분으로 만조백관의 우에서 성무고황제를 보필했듯 대일하도 그 직책으로 황상을 보좌하고있었다.

발해는 고구려의 후계국으로서 건국초기부터 3사3공의 직제를 두고있었다.

여기서 태사, 태부, 태보를 3사라 하고 태위, 사도, 사공을 3공이라 했다.

3사는 황상의 스승으로 되며 3공은 황상과 나라의 모든 일을 의논하여 처리할수 있었다.

3사3공의 직제는 오로지 제후국이 아닌 천자국에만 있는 관직제도였다.

황상에게는 스승이 될만 하고 백관에게는 거울로 삼을만 한 비범하고 공로가 큰 인재들만이 3사3공으로 될수 있는데 만일 그럴 인물이 없으면 그 자리를 비워두는것이 관례였다.

임아는 조정에서 반안왕을 몰아내야만 우리가 살수 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것을 겨우 눌러버리였다.

그래도 나살이나 건사했다는 체면에 문예를 바라보며 달래듯 말했다.

《내가 수를 써서 장문휴 그놈을 꼭 파면시켜버릴테니 그만 마음을 삭이라구. 역적루명을 만들어씌우면야 제깐놈이 어데라구. 흥!》

임아는 결코 빈말을 하는것이 아니였다.

반안왕때문에 당한 수치를 어느 한시도 잊지 않은 임아는 장문휴를 역적이라 처형하고 그 련루자로 몰아서 그를 조정에서 몰아내리라 악심을 먹은지 오랬다.

《외삼촌도 참 답답하오. 내가 무엇때문에 장문휴 그놈을 지금 미워하는지도 모르고… 난 그놈이 어전에서 입만 다물고있었더라면 흑수말갈을 군사로 치면 안된다고 형님께 아뢰려했소이다.

그런데 그놈이 앞장을 치는 통에 형님이 자기의 령에 불복하는자는 목을 치겠다고 하니 어데 입을 벌릴수 있겠소이까?》

문예의 볼멘 소리에 임아의 두눈이 떼꾼해졌다.

이건 또 무슨 놈의 가을뻐꾸기같은 소리인가?!

《흑수말갈을 군사로 치면 안되다니?!…》

《외삼촌은 나이가 헛드신것 같소이다.》

《뭐… 뭐라구?…》

임아는 너무도 억이 막혀 입을 딱 벌리였다.

이녀석까지도 나를 괄세하다니… 그것도 내 등에 업혀자란 녀석이…

문예는 어렸을 때 임아의 등에 업혀 놀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임아의 잔등에 오줌까지 싸갈겨 어지럽힌적이 한두번 아니였다.

그때가 생각난 임아는 두눈을 부릅뜨고 문예를 노려보았다.

《네가 군장이 되였다고 그러면 못써. 난 너의 부하이기 전에 아비와 같은 사람이야.》

온통 불만으로 가득차있는 문예인지라 임아의 기분같은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래 외삼촌도 흑수말갈을 치겠다는것이 누구와 해보겠다는것인지 잘 알것이오이다. 이것이 그래 셈판이 있는 일이오이까?》

임아는 방바닥을 두드리며 성을 냈다.

《흑수말갈을 치는게 당나라를 치는것인지 누가 모른단 말이냐. 당나라를 치는게 뭐 셈판이 없는 일이야?》

문예도 방바닥을 두드리며 성을 냈다.

《그게 제 정신을 가지고 하는 일이오이까. 도대체 그 뒤탈은 생각지도 않으니이러다 나라를 어느 지경으로 몰아가겠는지 알기나 하오이까?》

목에 피대를 세운 임아는 문예를 손가락으로 겨누었다.

《안다, 알아. 그래도 네 형은 이번에 널 크게 내세우려고 하는데 뭐가 어쨌어? 준마도 주인을 잃으면 삯마로 늙고만다고 했다. 네가 아무리 문무를 겸비했다고 해도 형님이 써주지 않으면 그땐 초부나 마찬가지야. 이 정신나간것아.》

문예는 그냥 방바닥을 두드리며 대들었다.

《정신이 나간 사람은 우물안의 개구리같은 외삼촌이올시다. 당나라와 화친을 맺어놓고 그들과 해보겠다는게 어디 도리인가 말이오이다? 그들과 맞섰다가 그래 나라를 부지할수나 있을것 같소이까?

난 당나라에 한두해도 아니고 십여년세월 가있어봐서 그 나라가 얼마나 크고 강한지 잘 아오이다.》

숙위의 명분으로 당나라에 갔다가 딴사람이 되여 돌아온 문예는 기가 나서 씩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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