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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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동모산의 궁궐은 어전회의에 참가하러 모여든 문무백관들로 차고넘쳤다.

궁전의 정면앞의 높은 곳에 룡이 그려진 병풍이 치여있고 거기에 금빛룡상이 자리를 잡았다. 좀 있어 옆쪽의 큰 문이 열리더니 룡포를 걸친 황상 대무예가 들어섰다.

그 순간 모든 신하들이 두팔을 흔들고 발을 들었다놓으면서 궁전이 떠나갈듯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였다.

그야말로 조상전래 박달겨레의 천자맞이의식이였다.

백관의 앞쪽에 선 장문휴도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이윽고 황상이 룡상에 걸터앉아서야 요란한 환호성이 점차 가라앉았다.

황상에게 시선을 두었던 장문휴는 자기보다 앞반렬을 차지한 조정대신들의 뒤모습에로 눈길을 옮기였다.

맨 앞반렬의 중심에 반안왕이 서있었다.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하는 대내상이란 최고관직을 지니고있었다.

발해에서는 고구려의 국상이나 막리지와 같이 문무백관을 통솔하는 최고의 관직을 내오고 그를 대내상이라고 불렀다.

반안왕이 이런 최고의 관직에 오를수 있은것은 출신의 덕이였다.

반안왕 대일하의 아버지 대야발은 형인 성무고황제를 받들어 발해의 건국에 큰 기여를 한 공으로 나라를 반석같이 그리고 편안하게 다진 제후라는 뜻이 담겨진 반안왕으로 된것이였던것이다.

반안왕도 계루왕과 마찬가지로 대대손손 대야발의 맏아들, 장손에게만 물려줄수 있었다.

그리하여 대야발이 세상을 떠나자 맏아들인 대일하가 부친의 왕호를 물려받았던것이다.

반안왕의 좌우에 황상의 친동생들인 대문예와 대술예 그리고 막달찬 임신부처럼 배가 불쑥 나온 임아가 그 큰 배를 그러안고 서있었다.

임아는 황상의 외삼촌으로서 모든 문관들의 임명과 파면을 맡아보는 충부의 장관인 경을 겸직한 대내상 다음가는 좌사성의 관직을 차지하고있었다.

드디여 황상이 입을 뗐다.

《짐이 등극하여 일곱해, 성무고황제의 유지를 받들어 신하들과 백성들이 우아래로 합심하여 애쓴 덕에 우리 발해는 당당한 강대국이 되였노라.》

장문휴는 장내에 힘있게 울리는 황상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정신을 가다듬었다.

황상의 눈길이 첫째동생인 대문예를 더듬었다.

오늘 거론될 국사의 중임은 전적으로 문예가 걸머지게 될것이였다.

바로 그런 중임을 맡기자고 올해초에 문예에게 지부의 경을 겸직하는 우사성을 맡겨준 황상이였다.

지부는 무관의 등용과 해임 그리고 나라의 군사전반에 대한 일을 맡아보는 관청으로서 상무를 국시로 삼고있는 발해에서는 황상이 한팔로 여기는터였다.

그리고 우사성은 좌사성과 동급으로서 대내상의 다음가는 높은 관직이였다.

형제간의 정을 보아서는 오늘 론의될 문제거리를 문예에게 알려주어야 했지만 국부로서 공과 사를 뒤섞을수 없기에 한마디 귀띔조차 안한 황상이였다.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않았다.

그러나 이제 곧 문예로 하여금 나라에 더할나위없는 큰 공을 세우게 하고 그 공으로 대문예라는 이름을 후세에 길이 전할수 있게 해줄것이니 이보다 더 큰 정이 어데 있겠는가.

그러했기에 황상은 먼저 첫째동생에게 나라가 인정할수 있는 공세울 기회를 마련해주려고 이처럼 왼심을 쓰는것이였다.

그 기회가 마침내 오고야말았다.

며칠전 당나라에서 태자 계루왕이 보낸 사람이 왔다.

황상은 태자가 써보낸 밀서를 받은 즉시 반안왕을 불러들여 당나라것들의 음모를 짓부실 방책을 의논하였다.

진지한 의논끝에 세운 방책을 오늘 어전회의에서 알려주고 결단코 적에게 공세를 들이댈 결심이였다.

황상은 어명을 내리기에 앞서 흑수말갈을 단호히 평정해야 하는 까닭을 다시한번 신하들에게 알려주고싶었다.

《듣거라. 그 어떤 대국도 우리 발해를 넘보지 못하도록 군력을 키워 고구려와 같이 강대국으로 되자는것이 성무고황제의 유지인줄 경들도 알것이다. 오늘도 그러하지만 래일도 우리가 강대해지는것을 죽도록 배아파하는 외적이 있다는것을 한시도 잊지 말라.

당나라가 어리석게도 먼데와는 친하고 가까운데는 치며 남의 칼을 빌어 적수를 죽이는 계책으로 우리를 어째보려 하고있다.

어이하여 그것들이 예나지금이나 우리를 두려워하고 먹지 못해 안달을 부리는것인가? 그건 우리 겨레가 남달리 슬기롭고 억세고 위엄있기때문이며 우리의 금수강산이 탐나기때문이다.

우리 겨레와 달리 그것들은 피줄이 서로 다른 숱한 종족들로 큰 땅덩어리를 이루었노라. 그때문에 중원에서는 종족들간의 끝없는 분쟁이 가시여질 날이 없었고 그로하여 영정의 진나라때와 같이 거대한 땅덩어리가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고 위나라, 오나라, 촉나라때와도 같이 그 땅이 여럿으로 쪼각나기도 하였다.

그래서 작은 나라들이 큰 하나를 이루면 그 큰 하나는 다시금 작은 나라들로 갈라지고 그랬다가는 또다시 합쳐진다는 말이 생겨난것이다.

결국 그 말은 언제 가도 그네들의 집안이 편치않다는 뜻이노라.

자고로 그네들은 제 집안이 편치않아도 이웃들과 전란을 일으킨 례가 수다하다.

오늘날 당나라는 오랜 전란으로 나라형편이 좋지 않다. 도처에서 살길이 막힌 백성들이 떼를 지어다니며 관가를 치고 살륙과 략탈을 일삼는다고 한다.》

황상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장문휴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당나라가 의연히 발해의 적으로 되는것은 바로 그것들이 우둔한 흑수말갈을 부추겨 우리의 집안도 편안치 않게 만들려 놀아대기때문이다.

우리가 배안의 혹과도 같은 반란의 무리때문에 진통을 겪게 된다면 이때라고 그 못된 무리가 파도처럼 달려들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되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흑수말갈을 짓뭉개는것과 동시에 불행의 화근인 그것들의 소굴을 한바탕 두들겨패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강토가 전장터로 되는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장수라면 이러한 때 당연히 한몸을 내대고 나서야 한다. 그것도 덮어놓고 나설것이 아니라 닥쳐드는 전란을 반드시 앞질러 쳐내겠다는 안목을 가지고 오로지 선제공격으로 다시는 외적이 그 더러운 고개를 쳐들지 못하게 묵사발을 먹이도록 황상을 도와야 한다.

장문휴는 간절한 눈길로 황상을 쳐다보았다.

제발 그런 용단을 내려주시였으면…

황상의 목소리가 장내를 울리고있었다.

《이처럼 골병에 든 그 꼴에 당나라는 가소롭게도 말갈을 부추겨 우리와 싸우게 하고 그런 다음 어부지리를 얻자는것이다.

우린 그것들과 반드시 결산할 때가 있으니 그것들은 잠시 제쳐놓고 못나게도 당나라를 등에 업고 반란을 일으킨 흑수말갈을 먼저 다스려야 한다. 그래 어떻게 다스렸으면 좋겠는가?》

앞반렬에서 임아가 격해서 부르짖었다.

《황상마마!》

발해에서는 자기 임금을 천제라는 뜻에서 황상이라고 불렀다.

《신에게 군사를 주소이다. 단숨에 흑수를 건너가 말갈것들을 씨도 없이 쳐없애고 북방이 영영 소란스럽지 않도록 하겠소이다.》

임아는 남에게 선코를 떼우기라도 하는듯 숨도 돌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간절히 아뢰이나이다. 북방땅은 예로부터 부여를 거쳐 고구려의 강토로 이어졌고 거기에서 사는 사람들은 우리 겨레이든 말갈족이든 다 발해의 백성이오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겨레에게 순종해온 말갈이 오늘 감히 란을 일으킨것은 나라에서 엄히 다스리지 않은탓이기도 하오이다.

궁벽지에서 란을 꾸민 그것들을 엄히 다스리지 않다가는 큰 변을 당할수 있소이다. 이번 기회에 아예 싹 쓸어버려야 하오이다.》

장문휴의 가슴에서 불뭉치같은것이 치밀어올랐다.

임아의 말이 백번 지당하다. 애초에 말갈을 북방에서 제멋대로 살도록 내버려둔것부터가 잘못이다.

그것들을 당초에 동서남북 사방으로 흩어놓았더라면 오늘 이런 말썽거리가 생기지부터 않았을것이다.

임아의 다음말도 장문휴의 심금을 울리였다.

《황상께서는 흑수의 정벌로 그칠것이 아니라 북방에 우리의 군사를 주둔시키고 조정의 신하들에게 그곳을 맡겨주시여 숨도 크게 쉬지 못하도록 말갈을 엄히 다스려야 할줄로 아오이다.》

그 말에 황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임아의 주장이 자기의 뜻과 거리가 멀었던것이다.

말갈이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고 배은망덕하게 놀아댄다고 해서 과격하게 힘으로만 다스리려 해서는 안된다는것이 황상의 생각이였다.

그럼 어떻게 그것들을 다스릴것인가. 그것은 동방례의지국답게 인덕으로 다스리는것이다.

이번 기회에 인덕을 크게 베풀어 그들을 감동시킨다면 다시는 도적같은 당나라를 등에 업으려고 하지 않을것이다.

흑수를 평정한 다음 나라의 은혜를 아는 말갈인들로 추장을 봉하고 그들이 조정의 령을 받들어 저희 족속을 다스리게 해야 한다.

하물며 옳은 법도에는 사사로움이 없고 언제나 의로운 사람을 편든다는데 반란을 일으킨 흑수말갈도 이 나라 백성이라 품어준다면 배신의 길을 고집하지 못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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