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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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윽고 밥상을 물리니 고인의가 개탄조로 말했다.

《이거 내 일은 어찌하여 꼬이기만 하는것일가.

전장에 나가야 공을 세우겠는데… 자네를 따라 전복을 입은지도 어언 스무해가 지났건만 나에겐 무슨 액운이 서리였는지 한번도 전장이 차례지지 않네그려. 자네는 해마다 전장이 차례지는데도 말일세. 쌍둥이같이 자란 우리들인데 어쩌면 이다지도 공평치 못할가.

난 이번에도 흑수정벌에 빠지고말았으니… 참 안타깝네, 안타까와.》

고인의의 한탄소리에 장문휴는 마음이 번거로왔다.

정말 어인탓인지 고인의는 지금껏 전장에 출전한적이 없었다. 그가 속해있는 위(발해경군은 8개 위로 구성되여있었다.)는 주로 도성의 수비를 맡아하였고 어쩌다 변방에 급파된다고 하여도 매번 성을 쌓는 일을 하였었다.

그러니 고인의에게 장수의 재주가 있다고 해도 그 재주를 드러낼 기회가 차례질수 없었던것이다.

결국 고인의는 마흔살이 되였건만 아직도 수백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랑장이란 무관직에 머무를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런 자리에 오를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귀족가문에서 태여난 덕이였다.

고인의의 벼슬인 랑장을 무관의 최고벼슬인 장문휴의 보국대장군에 비긴다면 하늘땅차이라고 할수 있었다.

발해의 경군은 좌맹분위, 우맹분위, 좌웅위, 우웅위, 좌비위, 우비위, 남좌우위, 북좌우위의 8개 부대로 구성되여있는데 매 위마다에는 만명이상의 군사가 배속되여있었다.

고인의는 마음이 답답한지 가슴을 두드렸다.

《내가 속해있는 위는 인차 남해부(함경남도일대에 있던 발해의 지방)로 간다고 하네. 남해부의 변방에다 성을 쌓아야 한다네.

허참, 이러다 싸움 한번 못해보고 전복을 벗어야 할가보네.》

장문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였다.

고인의는 어려서부터 시짓기를 좋아했지만 지략도 있고 무술도 그만하면 여느 장수들에 짝지지 않았다. 게다가 일손을 잡으면 모가 나게 하는 기질까지 있어 싸움에 나서면 얼마든지 큰 공을 세울수 있었다.

몇해전 신라가 빼앗아가진 고구려의 강토를 되찾으라는 황상의 령을 받은 장문휴는 경군의 한개 위를 거느리고 남해부의 니하(금야강)를 건너가 적지 않은 땅을 수복하였다.

장문휴가 거느린 발해군의 드세찬 남진앞에 급해맞은 신라조정은 하실라도(강원도 원산일대에 있던 신라의 고을)를 계선으로 국경을 정하자는 발해조정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옛글에 이르기를 일할줄 아는자는 닥쳐드는 화를 복으로 변화시키고 실패를 가지고 도리여 성공을 마련한다고 했건만… 난 확실히 일할줄 모르는가보네. 이러다 성쌓고 남은 돌처럼 아무런 공도 세워보지 못하고 늙고말걸세.

남의 말대로 내 입이 헤퍼서 써주지 않는것인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장문휴는 고인의의 한탄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이 사람이 벌써 로망이라도 했는가.

고인의가 제 말처럼 무관치고 입이 헤픈것만은 사실이였다.

허나 장문휴는 그런것이 장수의 부족점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장문휴의 체험에 의하면 평소에 입이 무거워 듬직하다고 호평을 받던 장수들속에 무술에는 범상치 않아도 변화무쌍하는 전장의 형편에 림기응변해서 적을 압도하는 지략가형의 장수는 많지 못하였다.

지략이 없는 반쪽짜리 장수들은 대개 학문을 싫어했다.

학문을 싫어하는 장수들은 백사만사중에서도 제일로 복잡하고 일각을 다투는 전장의 형세를 도저히 파악하지 못하였다.

병법, 다시말해서 전법에 대한 학문은 보다 다방면에 걸치는 많은 학식을 터득한 재사들만이 리해할수 있는것이였다.

결국 병법에 어두운 장수들은 일개 군졸처럼 병쟁기나 휘두르는 단조로운 그 일 외에는 입을 열수 없었다.

병법에도 문장에도 밝은 고인의같은 무관들이 남을 가르치려는 말이 많을수밖에 없는것이고 또 무식한 장수들이 장수랍시고 거들먹거리며 하는 주먹치기군사일을 보고 힐난의 목소리를 터치는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때문에 고인의는 도리여 무식한 장수들로부터 다사한 입때문에 무관으로는 쓸모짝이 없다는 비난을 받고있었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셔진 장문휴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네도 명장치고 능숙한 변설가, 원숙한 문장가가 아닌 사람이 없다는것을 잘 알지 않나.

적장들과 마주앉아 적수가 따를수 없는 뛰여난 론리와 해학의 언변으로 상대를 누르는 장수야말로 진짜 장수라고 할수 있네.

바로 고구려의 을지문덕장군이 그런 재주로써 적을 압도하질 않았나. 물론 재주라는것도 그 재주를 마음껏 펼쳐보일수 있는 기회가 차례져야 돼. 하지만 나라를 지키는 길에는 반드시 그 재주를 써야 할 때가 오기마련이니 조급해하지 말게.

충의가 있으면 반드시 보답을 이룬다고 했으니 아무쪼록 자네가 맡은 성쌓는 일을 잘해보게.》

심드렁해있던 고인의는 그 말에 코마루가 쩡하고 저려왔다.

비로소 제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은것이였다.

고인의는 물기어린 눈으로 장문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였다.

《자넨 언제봐야 큰 산이라니까. 내 잠시나마 출세에 눈이 어두워 공명을 탐내였네.》

사실 고인의가 장문휴를 찾아온것은 이번에 꼭 그의 휘하로 돌아앉기 위해서였다.

그는 진작 그렇게 하지 못한것을 후회하고있었다.

이번에 흑수원정군으로 돌아앉는다면 친구의 도움으로 전장에서 제일 요진통을 맡게 될것이고 그 기회에 군공을 세워가지고 장수로 되자는것이였다.

허나 오늘 또 한번 지내보니 장문휴는 헤픈 인정에 놀아날 소인이 아니였다.

나라의 중임을 진 장수들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사람들을 쓴다면 군사일이 어찌 되겠는가.

고인의의 진정이 담겨진 말에 장문휴는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둘도 없는 송아지친구가 바라는것을 외면한다는것은 실로 고통이였다.

허나 나라의 중임을 맡았기에 엷은 인정에 사로잡힐수 없었다.

나라는 하나의 거대한 집과 같은것으로서 이쪽의 기둥이나 주추돌을 뽑아 다른쪽에 맞추어 쓸수가 없는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런 집이 얼마나 가겠는가.

하기에 지금껏 장문휴는 나라에서 내준 군사들속에서 인재를 골라썼을뿐 다른데서 인재를 내라고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 마음을 고인의가 리해해주니 정말 가슴이 뜨거웠다.

고인의의 손을 잡은 장문휴는 두눈을 슴벅이며 웃었다.

《아, 자넨 정말 내 친구일세.》

《이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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