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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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익은 음성에 대문을 향해 돌아선 장문휴는 목소리의 임자가 누구인지 첫눈에 알아보았다. 주자감시절의 문우이자 둘도 없는 송아지친구인 고인의였다.

보통키에 언제나 여위여있는 고인의의 갱핏한 얼굴에서 어글어글한 두눈이 기쁨으로 빛나고있었다.

《이게 누군가. 이 친구야!》

장문휴가 뜨락으로 내려서려 하는데 어느새 마루우로 뛰여오른 고인의가 덥석 손을 그러쥐며 부르짖었다.

《이 친구야, 이번에도 자네가 보고싶어 죽는줄 알았네. 우리들이 어른이 되여서는 늘 헤여져만 있어야 하니 이런 불행이 어데 있나.》

눈물이 글썽해진 장문휴는 쌍둥이라며 고인의를 붙안고 뛰여다니던 어린시절이 생각나 두눈을 슴벅이였다.

고인의네는 고구려때부터 부귀와 권세를 크게 누려온 오랜 귀족의 가문이였다.

그들이 어려서부터 딱친구로 될수 있은것은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여난 인연때문이라고 할수 있었다.

이런 기이한 인연때문에 그들의 부모들은 제 자식의 생일날이면 서로 청해다가 함께 즐기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쌍둥이처럼 지내면서 두집을 제 집으로 여겼던것이다.

그러나 두사람의 성격은 생김처럼 판판 달랐다.

매사에 신중하고 침착한 장문휴와 달리 고인의는 생각을 묻어두지 못하고 헤덤비는 축이였다.

주자감시절 장문휴가 병서에 빠지였다면 고인의는 이름난 문인이라도 된듯 시짓기에 미쳐돌아갔다.

허나 고인의는 장문휴의 말이라면 덮어놓고 따르던 어린시절처럼 주자감을 마치자 송아지친구가 택한 무인이 되는 길에 주저없이 뛰여들었다.

서로 손을 잡고 놓지를 못하는 그들을 지켜보던 장문휴의 안해 왕씨가 조심스레 일렀다.

《안으로 들어가 회포를 나눕이 어떻소이까?》

그 말에 장문휴는 고인의를 방으로 떠밀며 물었다.

《내가 온걸 어떻게 알았나?》

《반안왕부에 심부름을 갔다가 알았지. 래일 어전회의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방안에 들어선 장문휴는 고인의 못지 않게 두눈이 둥그래졌다.

방안에 생일상이라고 할만큼 요란한 음식상이 차려져있기때문이였다.

발해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흰쌀밥에 남새의 으뜸인 아욱으로 끓인 국, 돼지고기찜이며 잉어회까지 올라있는데 보다 놀라운것은 그 음식들이 모두 아직은 본적없는 멋스런 그릇들에 담겨져있는것이였다.

그래서 더 눈맛이 있어보였다.

푸르스름하고 불그스름도 하며 여기에 밤색이 섞인 이 세가지 빛갈의 조화로 황홀경을 자아내는 그릇들에 두사람의 눈길이 쏠려있었다.

의문을 풀길없어 마침내 장문휴가 먼저 술을 붓는 안해에게 물었다.

《이 그릇들은 어데서 났소?》

왕씨가 방글 웃으며 대꾸했다.

《며칠전 시전에 나갔더니 글쎄 이런 그릇들이 나와있지 않겠나이까. 저도 이런 멋진 그릇은 난생처음이였나이다.

알아보니 세가지 색갈이 어울렸다고 해서 삼채자기라고 한다나요. 이것들은 이번에 자기공들이 새롭게 구워낸것이라고 하나이다.

이 그릇들은 보기에도 곱지만 그릇살이 아주 얇아 가볍고 그러면서도 놋그릇처럼 단단하오이다. 그래서 비싸지만 좀 사들였나이다.》

장문휴도 고인의도 그릇들을 만져보며 감탄해마지않았다.

감동되기 잘하는 고인의가 목멘 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지 놀랍구만. 우리 발해사람들은 재주가 정말 끝없다니까. 이걸 세상사람들이 보면 눈이 확 뒤집힐거란 말일세.》

감동되기는 장문휴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순간 가책되는바가 있어 한숨을 내쉬였다.

조정에서 일러주지도 않는 천한 쟁인바치들까지도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것을 만들어내고있는데 나라의 중임을 맡은 장수라는 나는 무엇을 해놓은게 있는가. 그저 선대들이 하던 일이나 잇고있을뿐 외적들을 벌벌 떨게 할수 있는 새로운 일은 해놓지 못한 나다.

이윽고 청주가 찰랑이는 술대접을 집어든 두사람의 눈길이 이번에는 밥상 한가운데의 작은 접시에 소복한 하얀 가루에 가있었다.

고인의가 접시를 가리켰다.

《제수님, 이건 또 무슨 음식이요?》

왕씨는 매번 자기가 장문휴의 형이라는 고인의의 억지에 웃음을 지었다.

《그건 소금이나이다.》

두 사나이가 거의 동시에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허참, 이런 맨소금도 이 한자리를 차지한단 말이요?》

장문휴의 핀잔에 왕씨는 입을 가리우고 웃었다.

《제 미처 사연을 알리지 못했나이다. 이 소금은 바다물을 구워만든 바다소금이 아니고 오로지 우리 발해에서만 자란다는 소금나무에서 얻는 나무소금이나이다.

어제 왔던 반안왕댁 시중군이 하는 말이 반안왕전하께서 주인어른에게 맛보이라고 이걸 가져다주게 했다는것이오이다.

며칠전 소금나무가 자라는 고을에서 황궁에 이해의 첫물소금을 올렸는데 황상께서 그걸 집안사람들이 맛을 보도록 하였다는것 같소이다.》

그제서야 장문휴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원, 모를 소리다. 제수님, 대관절 소금나무란게 우리 나라 어데서 자란다우?》

고인의의 질문에 장문휴가 대꾸했다.

《나도 소금나무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나무소금을 보기는 처음일세.

소금나무는 우리 동모산에서 며칠길 되는 발주에서 자란다고 하네. 그 고을의 어떤 산에 옛적부터 자라온 소금나무들이 있는데 바로 그 나무들의 껍질에 눈같이 하얀 소금가루가 덮여있다누만. 그걸 긁어낸게 이 나무소금이고…

나무소금은 바다소금보다 달고 또 약으로도 쓰이는데 그 량이 아주 적어 진상공물로나 되여왔다누만. 그래서 보통사람들은 이걸 구경조차 할수 없는거라네.》

왕씨가 탄복해하는 고인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제 나무소금을 절반 쭉 갈라서 댁에도 가져다주었나이다.》

고인의가 궁둥이를 들썩하며 기뻐했다.

《제수님 덕분에 내 집 식솔들도 이런 귀물을 맛보게 되였수다. 그럼 어디 맛 좀 볼가.》

장문휴도 고인의처럼 나무소금을 손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듣던바 소문그대로 짭짤한 맛에 단맛이 겹치는것이 별맛이였다.

왕씨가 장문휴의 옆구리를 건드리며 술대접을 가리켰다.

그 뜻을 알아차린 장문휴는 술대접을 집어들었다.

《자, 마시자구.》

장문휴의 재촉에 술을 쭉 들이키고난 고인의는 돼지고기찜을 집어들었다.

한동안 돼지고기를 걸탐스럽게 뜯어먹던 고인의가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과시 제수님의 음식솜씨는 언제나 이거요. 물론 이것도 막힐의 돼지고기겠소이다?》

왕씨는 비여있는 술대접에 술을 부으며 《예.》하고 대답했다.

발해에서는 고구려가 그러했듯 말과 소뿐아니라 양도 돼지도 많이 기르고있었다.

특히 동모산 북쪽의 막힐부에서는 부여때부터 돼지를 더 많이 길러오는데 부자집들에서는 한해에 수백마리로부터 수천마리까지 길러내여 막대한 리득을 얻고있었다.

막힐부에서 대대로 돼지를 많이 길러오는것은 그 고장의 돼지고기맛이 류별나게 좋기때문이였다.

막힐의 돼지고기맛이 어찌나도 좋은지 발해를 찾아오는 당나라사람들도 앞을 다투어 사먹는 판이였다.

걸탐스럽게 돼지고기찜을 먹던 고인의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녀인들의 손맛이란 참 이상하단 말이야. 내 집에서도 막힐의 돼지고기를 사다가 이런 찜을 만들어먹군 하였지만 제수님이 만든 이 맛에는 도저히 따르지 못하니… 이런게 조화가 아니겠소.》

고인의의 저가락은 돼지고기찜에서 떠날줄 몰랐다.

《제수님은 대체 어떤 조화를 부렸기에 먹을수록 별맛이요?》

장문휴가 두눈을 치뜨며 고인의를 바라보았다.

《자넨 그걸 정녕 몰라서 그러나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는건가?》

고인의가 손을 내저었다.

《말도 말게. 내 이 집에 올 때마다 이걸 만드는 비방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네.

가죽이 붙어있는 큼직한 고기덩이를 그대로 푹 삶아가지고 보기 좋게 편을 뜬 다음 참기름에 지져내고 그것을 가죽이 밑으로 가게 그릇에 담아서 양념을 발라가지고 또 쪄낸다는것을…

이게 제수님이 대준 비방인데 내 집 사람도 그 비방대로 했건만 맛은 이렇지 않네. 그저 보통 돼지고기맛이라니까.》

장문휴는 껄껄 웃으며 술대접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안주가 좋은데 어서 술이나 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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