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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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시한번 나무를 어루만지고난 장문휴는 그곁의 말뚝에 말고삐를 비끄러댔다.

지금쯤 안해는 점심을 짓느라 부엌일을 하고있을것이였다.

대문으로 다가간 장문휴는 웅글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있나?》

기다리기라도 했었는듯 소리치기 바쁘게 대문이 찌쿵- 열리고 안해가 방실 웃으며 반겨맞는것이였다.

《정말 오셨소이다!》

《?!…》

이 사람에게 나가있던 식솔이 돌아오는것을 알아맞추는 그런 신기한 재간도 있었단 말인가.

장문휴의 팔을 잡아끌며 안해는 눈을 곱게 훌겼다.

《제 집에 돌아오신게 달갑지 않으시오이까?》

장문휴는 허허 웃고말았다.

《왜 웃으시나이까?》

《임자가 금시 맞아주는게 이상해서 그러네.》

안해가 입을 가리우고 호호- 웃었다.

《이상할게 하나도 없소이다. 실은 어제 반안왕전하택에서 일러주기를 어른이 래일 오실거라고 끼식대접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고 했소이다. 자, 뒤뜰에 가시여 손을 씻으시오이다.》

집뒤의 널다란 후원에는 언제나 맑은 물이 퐁퐁 솟구치는 박우물이 있었다.

안해가 마침 부엌을 나서는 얼굴도 해말쑥하고 몸매도 고운 젊은 시녀에게 일렀다.

《아려야, 어서 어른께 물을 떠드리렴.》

장문휴가 박우물에 다가가자 아려가 물을 가득 담은 놋대야를 가져다바치는것이였다.

수집음을 머금은 아려를 굽어보며 장문휴는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간 힘들지 않았나?》

아려는 여전히 부끄러워하면서 입을 열었다.

《마님께서 잘 대해주시니 제 집같사오이다.》

얼굴을 살짝 붉혔던 아려가 장문휴를 정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조정에서 어전회의때문에 어른을 부르셨다지요? 어서 손을 씻고 점심을 드시오이다.》

그 말에 장문휴는 속으로 긴장감을 느끼였으나 얼굴에 내색치 않고 물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느냐?》

아려는 천연스레 웃으며 대꾸했다.

《반안왕댁에서 온 사람이 알려주었나이다.》

세면대야를 마주하고 손을 씻으며 장문휴가 말했다.

《내 생각엔 인차 수정벌을 하게 될것 같구나.》

그 말에 두눈을 깜빡이는 아려의 목소리가 떨리였다.

《대장군어른의 신상이 걱정되오이다.》

몹시 긴장해진듯싶은 아려의 태도에 장문휴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장문휴는 아려가 어떤 녀인인지 그 본색을 잘 알고있었다. 아려는 당나라가 들여보낸 간자였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푸- 푸- 소리를 내여 얼굴에 물을 끼얹은 장문휴의 가슴은 흥분으로 울렁거렸다.

아려, 네가 용케도 내곁에 깊숙이 숨어들어왔지만 그것이 우리를 크게 돕는것인줄은 꿈에도 모틀테지.

너희 상전들이란게 적의 렴탐군을 역리용하는 반간계라는 계책을 입에 올리는것으로써 유식함을 뽐내려들겠지만 우리는 너희들의 그 수보다 몇수 더 내다보고있다.

이제 때가 되면 우리가 너를 통해 너희 상전들을 어떻게 골탕먹이였는지를 잘 알게 될것이다.

소는 부리자고 기르는것이고 말은 타고다니자고 기르는것이니 난 너를 될수록 오래 두고 마음껏 써먹을테다.

발해사람들속에서 아려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오직 장문휴뿐이였다.

아니, 또 한사람 반안왕이 알고있었다.

반안왕도 장문휴를 통해서야 그가 어떤 속심을 가지고 이 집에 시녀로 들어왔는지 아는것이였다.

장문휴는 아려에게 조금도 이상한 감촉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벙글 웃었다.

하긴 그래, 조롱에 가둔 새처럼 잘 대해주어야 하니까.

장문휴는 수건을 내미는 아려를 친근한 눈길로 바라보며 웃었다.

《넌 언제봐야 꽃같이 이쁘구나. 네가 밖에 나서면 탐을 내지 않을 사내들이 없을게다.》

《아이참.》하고 두눈을 내리깐 아려가 은근한 표정으로 물었다.

《반안왕전하께서 대장군어른의 스승이라는게 사실이오이까?》

이것은 분명 뜻밖의 질문이 아닐수 없었다.

이 집에서 반안왕과 그런 사이임을 아는 사람은 안사람뿐이였다.

그런것까지 알아낸것을 보면 아려가 자나깨나 제 할짓을 찾아하고있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였다.

장문휴는 속이 좋지 않았지만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누가 그런것까지 알려주더냐?》

《어제 반안왕댁에서 왔던 사람이 그 말도 했소이다.》

《하긴 그런거야 숨길것도 없지.》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장문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넨 이 집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아직 모르는것이 많을걸세. 난 주자감에 다닐 때 벌써 반안왕과 사귀였으니까.》

장문휴가 주자감시절에 애독한 책들은 동서고금의 병서들이였다.

고구려의 병서는 말할것도 없고 신라의 《무오병법》, 《화령도》, 《륙진병법》 그리고 오늘날 당나라사람들이 천하보물인듯 여기는 《손자병법》, 《오자병법》 같은 병서들도 보풀이 일도록 파고들었다.

얼마나 병서에 빠졌던지 주자감에서 장문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있어도 《병서에 미친 사람》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때문에 감(학장)이 장문휴를 불러들어고 성현들의 교리를 배우는것을 기본으로 삼는 주자감의 학도로서 그 근본을 잊고 외곬으로 병법이나 파고들면 안된다고 꾸짖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하지만 장문휴는 그런 훈시쯤은 꿈만해하였다.

어느날 주자감에 나온 반안왕이 학도들속에서 병서에 미친 애군이 있다는 감의 말을 듣고 장문휴를 불렀다.

성무고황제의 친조카이자 태자의 4촌형인 반안왕 대일하가 한갖 학도를 만나자고 한다니 장문휴는 가슴이 떨리지 않을수 없었다.

반안왕이 무엇때문에 찾는것일가, 아버지와도 아는 사이는 아니고 친척들과도 인연이 없는데

도무지 영문을 알수가 없으니 무슨 죄를 짓기라도 한듯 가슴이 떨리는것이였다.

감의 방으로 장문휴를 불러들인 반안왕이 느슨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읽으라는 경전은 덮어두고 병서만 읽었다던데 반간계에 대한 주장이 있으면 말해보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정황앞에 어리둥절했던 장문휴는 곧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제는 웬간한 병서들은 뜬금으로 외울수 있는 그로서 반간계쯤 설명하는것은 천자문을 구술하는것만큼이나 헐한것이였다.

싸움에 능한 장수일수록 적의 렴탐군들을 제때에 밝혀낼뿐아니라 그를 교묘하게 역리용함으로써 적장의 계략을 뒤집는 반간계를 중시한다.

《전하, 진짜싸움군은 언제나 자기의 눈과 귀를 적군에 묻어두고 그들이 적의 반간계에 놀아나지 않는가를 살피오이다. 그와 함께 휘하에 박혀있는 간자들을 속속이 색출하고 그들중 몇명은 그 본색을 묻어두고 그들로 하여금 가짜를 내탐하여 제 소굴에 알려주도록 하오이다.

결국 적장은 패할 싸움을 꾸밀수밖에 없소이다. 적의 눈과 귀를 허튼 곳으로 끌어당길줄 아는자는 언제나 적을 이길수 있소이다.》

그 말에 반안왕은 무릎까지 치며 기뻐했다.

《여기 주자감에 훌륭한 장수감이 있는것을 내 몰랐구나.》

그때 반안왕이 기뻐하는 까닭을 장문휴로서는 알수가 없었다.

반안왕이 그렇게 기뻐한것은 그가 맡고있는 국사와 관련되기때문이였다.

그는 나라에 숨어있는 적국의 렴탐군들을 잡아내고 또 적국에 우리의 간자들을 두고 그들의 음모를 알아내는 일도 맡고있었다.

그래서 그는 반간계에 대한 질문으로 장문휴의 실력을 타진하려 한것이였다.

반안왕의 다음말은 그 어조가 지극히 엄했다.

《병서나 파고들었다고 해서 지략을 가진 훌륭한 장수로 되는것은 아니다. 그가 누구든 제 나라, 제 겨레를 위해 공을 세우려거든 그에 앞서 새겨둘것이 있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고 했는데 하물며 나라위한 길에서야… 누구나 똑바로 새겨두어야 할것은 우리 겨레의 뿌리가 어떤것인지 하는 그것이다.》

그날 반안왕은 집에 소중히 간직했던 《단군봉장기년》과 《단기고사》라는 두 책을 빌려주면서 자자구구 새겨읽으라고 하였다.

《단군봉장기년》은 성무고황제시기 황상의 동생이자 반안왕의 아버지인 대야발이 나라에서 학식이 제일 높은 문사들을 거느리고 집필한 단군조선에 대한 력사책이였다. 그리고 《단기고사》는 대야발이 홀로 썼다는데 《단군봉장기년》에 빠진 사료들을 보충해주고있었다.

발해는 물론 선조의 나라 고구려만이 아닌 백제나 신라의 뿌리이기도 한 단군조선의 력사에 온넋이 끌린 장문휴는 그 두 책을 한자도 빼놓지 않고 고스란히 옮겨베끼였다.

그 책들을 한생 몸가까이에 두고 읽을뿐아니라 앞으로 자자손손 가보로 물려주고싶어서였다.

조종의 산을 떠인 이 땅에 태를 묻고 앞선 문명과 자존자대의 유풍으로 강대국을 이루었던 단군조선이 발해의 뿌리임을 깨닫고보니 겨레를 위해 더 힘껏 분발하리라는 마음이 굳어지는것이였다.

하지만 장문휴는 두손을 모아쥐고 쳐다보는 아려에게 주자감시절에 있었던 그 일에 대해서는 말해주고싶지 않았다.

어느때건 이 나라의 법에 따라 엄벌에 처해야 할 적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들려주겠는가.

그러나 상대의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자니 속에 없는 말일지라도 할만큼은 해야 했다.

《옛 책에 제아무리 병법에 밝은 사람일지라도 그를 천거해주는 현인이 없으면 아까운 재주가 썩고만다고 했다.

바로 반안왕전하가 나를 황상께 천거했으니 어찌 나의 스승이라 하지 않겠느냐.

이젠 그만하고 점심을 먹자.》

장문휴가 방문고리를 부여잡는데 《내 친구가 돌아왔다며?》하는 어떤 사나이의 석쉼한 목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리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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