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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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나라의 도성이 크다는 말은 들어왔지만 실지 훑어보니 굉장했다. 13개의 성문을 가진 장방형의 장안성은 동서와 남북의 한기장이 20리를 넘었다.

성안에는 웅장한 기와집들이 처마를 맞댔고 궁궐앞으로 나있는 길의 폭은 무려 백자나 되는것 같았다.

궁성에는 태극궁이니 동궁이니 흥경궁이니 하는 대궐들이 틀지게 앉아있는데 그중의 대명궁만 보더라도 함윤전, 선정전, 자서전 등의 이름이 붙은 호화로운 집들이 하늘을 찌를 기세로 솟구쳤다.

《돌아보니 장안이 과연 보기 드문 큰 도성이라는것만은 틀림없소. 허나 그대의 군사들이 고구려의 도성을 불태워버리지 않았더라면 그런 자랑을 하지 못했을거요.》

조금도 에돌지 않고 진속을 직판 터놓는 계루왕에게 영왕은 딴전을 부렸다.

《난 강토이니 나라이니 하는 말에 흥미가 없소. 당당한 황자이건만 맏이가 아닌 불운한 팔자탓에 난 나라를 가질수 없단 말이요.

그래서 난 발해태자와는 달리 락이나 누리는것으로 뜻을 삼았단 말이요.》

계루왕의 엄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리였다.

《그 락이란것도 이 나라에 전란이 없을 때라야 이루어질수 있는게 아니겠소. 남의 강토를 탐내는 그대의 조정이 발해와 싸움을 일으킨다면 그땐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재난만 차례질거요. 그러니 락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그대는 전란을 막기 위해 애써야 하며 그러자면 나를 도와야 할거요.》

어두워진 안색으로 거친 숨을 내쉬던 영왕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발해태자의 말이 그르다고는 볼수 없소. 자주 싸우면 백성이 지치고 오래 싸우면 군사가 피페해진다고 지금 우리 당나라는 천하의 대국이라지만 오랜 세월 고구려와 돌궐과 같은 이웃들과 싸우다보니 국력도 쇠진해지고 사람들도 모두 지칠대로 지치였소.

이런 형편에서 날로 강성해지는 발해를 집어삼키려 하는것은 그야말로 까마귀가 학을 잡아먹겠다는것만큼이나 어리석다 하겠소.

난 되지도 않을 그런 일엔 진저리가 나오.》

영왕은 계루왕을 건너다보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얼마전 우리 조정에서는 오랜 의논끝에 발해의 북방에다 기미주로서 흑수도독부를 내오는 동시에 말갈인들로 흑수군을 뭇기로 락착을 지었소. 이제 곧 우리의 사신이 그때문에 흑수말갈을 찾아갈거요.》

영왕은 손세까지 써가며 열을 올렸다.

《우리 조정은 어떻게 하나 흑수말갈을 부추겨 발해에 반기를 들게 하자는거요.

이게 바로 손자병법에서 일러주는 원교근공이란 계책이요. 먼데의 나라와는 친교를 맺고 이웃들은 힘으로 답새겨야 한다는 원교근공은 적을 분렬시켜 각개격파하는 술책임을 그대도 잘 알거요.

자고로 우리의 선조들은 이 술책으로 허다한 승전을 이루었소.

허나 발해한테는 이 술책이 절대로 통하지 않을거요. 왜냐하면 미개한 흑수말갈따위가 강대한 발해와 상대가 되지 않기때문이요.

도리여 그 술책이 자는 범의 코구멍을 쑤셔놓는 격이 되고말테니까.

그래서 난 조정이 하는 일에 흥미가 없다는거요.》

계루왕이 보건대 말투나 행동거지로 보아 영왕이 거짓을 꾸미는 같지는 않았다.

영왕이 문득 한탄조로 말했다.

《만나자 리별이라고 앞으로도 값만 맞으면 이런 흥정을 계속하고싶다만… 운이 틀려져 그대와 더는 만나볼것 같지 못하오.》

《그건 무슨 말이요?》

놀라와하는 계루왕을 바라보며 영왕이 고개를 저었다.

《요즘 조정에서 내 이름이 물망에 오르고있소. 나를 안동도호로 내려보낸다고 말이요.》

계루왕은 가슴이 철렁하였다.

이 나라 조정의 형편에 환한 거물과 사귀였다 했는데…

《하필 황자인 그대를 골라 안동도호로 내려보낼건 뭐요?》

영왕이 실눈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그건 나를 조정에서 몰아내자는거요. 내가 태자의 자리를 넘볼가 꺼려서 말이요.》

당나라임금 리륭기에게는 황자들이 많았지만 아직 태자를 세우지 않고있었다.

그런데로부터 황자들이 태자의 자리를 노리고 암투를 벌리고있었다.

영왕도 례외가 아니였다.

속이 엉큼하기란 능구랭이 한가지인 영왕은 적수들을 물리치자면 남다른 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남다른 공이란 아비가 제일 두려워하면서도 어떻게 하나 먹어치우려고 하는 발해를 무너뜨리는것이였다.

말로는 계루왕앞에서 흑수말갈을 부추겨 발해와 싸우려드는 아비의 처사를 비웃어댔지만 자기가 직접 나선다면 얼마든지 무너뜨릴수 있다는것이 그의 진속이였다.

발해를 무너뜨린다면 태자로 책봉되는것은 먹어놓은 떡이라고 할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병서를 직심스레 읽어온데다 자기를 당나라의 임금으로 내세우려 하는 장수들도 적지 않고 보다는 안동도호부에 대군이 있으니 머리를 잘 쓰면 발해를 굴복시킬수 있을것 같았다.

설사 발해를 이기지 못한다고 해도 나라에서 제일 많은 병력을 쥐고있는데 수틀리면 대군을 거느리고 장안으로 쳐들어가 룡상을 빼앗으면 될것이였다.

세상에 그런 전례가 오죽이나 많은가.

그래서 영왕은 배가 맞는 대신들을 시켜 자기를 안동도호로 천거하도록 한것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안동도호감으로 보다 손탁이 세서 발해와 맞세울수 있는 사람을 물색하던 리륭기였던지라 대신들이 문무를 겸비한 인재라며 영왕을 천거하니 그에 응했던것이다.

실눈을 짓고 입언저리에 묘한 웃음을 띠고있는 영왕을 눈여겨보던 계루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드러난 언행속에 계책을 깊이 숨겨두는 잔꾀를 제일로 일러주는자들이 당나라사람들이 아닌가. 진짜처럼 보이나 그속에 거짓이 있고 거짓인것 같으나 그속에 진속을 묻어두는 계책을 지금 영왕이 쓰고있다면 그는 세력다툼질에서 밀려내려가는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권력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 일부러 그 자리를 차지하는것이다.

안동도호가 어떤 자리인가.

당나라에서 병력을 제일 많이 쥐고흔드는 군부의 노란자위라고 할수 있다.

그러니 이자는 그 많은 병력으로 발해를 치려할것이고 발해와 싸워 이긴다면 그 공으로 태자는 물론 황제로도 될것이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계루왕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아무리 외직으로 내려간다 해도 영왕의 권세야 어데 가겠소? 난 이것으로 우리의 흥정이 끝났다고 보지 않소.》

계루왕을 따라 대문밖까지 나온 영왕이 한마디 하였다.

《나도 우리사이의 거래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오.》

영왕과 헤여진 계루왕은 급히 말을 내몰았다.

영왕이 안동도호로 내려간다는것은 고국에 있어서 실로 좋지 않은 소식이 아닐수 없었다.

(안팎이 다르고 야심만만한 영왕이 안동도호로 내려가는것은 고국에 있어서 대단히 위험하다. 권력에 환장된 그런자가 바로 불을 지르는 법이다.

그러니 그놈을 얼마든지 눌러버릴수 있는 사람에게 서쪽의 변방을 맡겨야 하질 않겠는가.)

그날로 계루왕은 가장 날랜 시중군을 고국으로 떠나보냈다.

그가 빠른 말을 타고 등주로 가서 발해를 오가는 장사배를 타면 보름안에 이 소식이 동모산에 가닿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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