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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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나라에서는 발해태자를 특별히 우대하여 피서지로 이름난 황궁근처의 정원속 별궁을 내주었다.

호화로운 별궁에 자리를 잡기 바쁘게 계루왕은 이 나라의 조정대신들과 마주앉아 만일 당나라가 흑수말갈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켜놓고 이때라고 발해로 군사를 들이민다면 이는 곧 두 나라사이의 화친을 깨는짓이라 우리는 즉시 숙위의 소환과 함께 모든 교역을 중지할뿐아니라 당나라로 대군을 진격시킬것이라고 들이댔다.

이는 곧 태자 일개인이 아닌 발해의 뜻이라는 그 말에 당나라대신들이 깜짝 놀랐음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껏 장안에 와있던 그 어느 나라의 숙위도 계루왕처럼 뢰성과도 같은 선언을 한바 없었다.

한번 한다고 하면 끝까지 하고야마는 발해사람의 기질을 모르는바가 아닌 당나라대신들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것이라는 말로 계루왕을 진정시키느라 진땀깨나 쏟았다.

이렇게 당나라대신들을 한바탕 들쑤셔놓은 계루왕은 이 나라 조정의 속심을 알아내는 일에 달라붙었다.

먼저 손을 잡을 적임자로 택한 사람은 이곳에 숙위로 와있는 신라왕자 김사란이였다.

신라는 그전부터 당나라와 자별한 사이이니 신라왕자라면 이 나라 조정에 인맥관계가 있을것이였다.

계루왕이 김사란과 마음이 통할수 있겠다고 단정한데는 그럴만한 타산이 있기때문이였다.

겉보기에는 신라와 당나라가 형제만큼이나 가까운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 신라가 차지한 강토에서 신라조정의 령이 쭉쭉 내려먹는것이 아니였다.

고구려와 백제의 후손들이 당나라에 추종하려드는 신라조정에 등을 돌려대고있기때문이였다.

당나라는 신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에 달려들었을 때에는 신라사람들에게 제 살이라도 떼여줄듯 각별하였다.

그러나 고구려를 무너뜨리고나서 당나라는 이때까지 쓰고있던 탈을 활 벗어던지고 신라마저 집어삼키려고 하였다.

그러자 고구려와 백제의 후손들까지 손에 병쟁기를 들고일어나 싸우는 바람에 뜻을 이룰수 없었다.

이때문에 성이 독같이 난 당나라임금은 고구려에 출병했던 장수들을 불러들이고 신라를 먹지 못한 죄를 따지였다.

한편으로는 신라가 고구려를 치는 일에 큰 공이 없으니 비렬성(안변)과 그 이북의 땅을 다 내놓으라고 강박하다못해 장안을 찾아온 신라사신들을 잡아가두었으며 대군으로 신라를 치겠다고 위협까지 하였다.

그러나 압록강이북에서 일떠선 발해가 선조의 나라인 고구려를 해친 당나라를 원쑤로 여기고 강하게 맞서는 바람에 신라에 대한 위협을 걷어치우지 않을수 없었다.

당나라는 신라가 발해로 기울어지는것을 제일 두려워하고있었다.

김사란이 이것을 모르지 않을것이니 그를 찾아가면 동족으로서 마음이 통할것이였다.

이런 큰 기대를 안고 김사란을 찾아갔더니 천만뜻밖에도 문전거절을 하는것이였다.

알고보니 그는 당나라것들이 저희들에게 끼친 죄악은 생각지도 않고 오로지 그들을 대국이라며 섬기는 바보같은 작자였다.

그런 바보같은 작자가 아무리 동족의 나라라고 한들 발해를 도와줄리 만무였다.

김사란을 단념한 계루왕은 당나라의 백사만사에 환할 사람을 물색하였다.

그렇게 해서 걸려든 사람이 《장안의 활량》이라고 소문난 영왕이였다.

돈이면 지옥문도 연다더니만 산삼이며 범가죽같은 발해의 명물과 금덩이가 힘을 쓴 덕에 웬간한 대신들은 거들떠도 안 본다는 영왕이 계루왕에게만은 이처럼 제 집의 대문을 활짝 열어준것이였다.

계루왕은 여전히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는 영왕을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실은 병도 고쳐보러 왔는데 이 나라에 명의가 없소그려.》

영왕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당나라에는 의술의 인재가 아주 많소. 황궁의 어의들속에 천하명의도 있는데 그들에게 손을 내밀면 어떤 병이든 다 고칠수 있을거요.》

계루왕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나라 어의들에게 한가닥 기대를 안고온 계루왕이였다.

계루왕을 따라와 시중을 드는 발해의 어의도 그들을 크게 믿고있었다.

그는 장안에 당도하기 바쁘게 당나라 어의들을 청해왔었다.

허나 말뿐이지 그들도 계루왕의 병치료에 도움이 되는 신통한 처방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들이 기껏 내렸다는 처방이 서우뿔과 인삼을 쓰라는것인데 그쯤은 발해의 보통의원들도 알고있는것이였다.

《난 이미 당나라 어의들을 만나보았소. 하지만 그들도 내 병엔 속수무책이였소.》

계루왕은 머리를 한번 젓고나서 화제를 돌리였다.

《이태전 안동도호 설태라는 이 나라 사람이 우리 발해의 북방에도 당나라의 기미주로서 흑수도독부란걸 내오고 동시에 말갈인들로 흑수군을 무어 우리를 견제하자는 상주문을 올렸다는것을 나도 모르는바가 아니요. 또한 당나라가 안동도호부에 더 많은 군사를 두고 우리 발해를 어째보려 한다는것도 알고있소.》

안동도호부란 고구려를 무너뜨린 당나라가 그 땅을 제것으로 만들고싶어 평양에 설치했던 통치기구였다.

허나 고구려를 재건하려고 일떠선 고구려유민들의 드센 공격으로 평양에 둥지를 틀었던 안동도호부는 쫓겨나고말았다.

하는수없이 만리장성가까이의 평주고을로 안동도호부를 옮겨온 당나라는 여기에 제노라하는 장수들을 모아놓고 기어이 발해를 먹으려고 독을 쓰고있었다.

대개 자기 나라의 변방에 사는 다른 종족들을 줌안에 넣고 다스릴 목적으로 내오는 고을을 가리켜 기미주라고 하는데 이런 따위로 남을 해치려드는것이 당나라것들의 상투적인 수법이였다.

계루왕은 살푸둥이 좋은 영왕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난 장안에 려장을 풀자 당나라대신들부터 만나 어리석게도 격안관화의 계책으로 발해를 어째보려 한다면 우리의 대군이 이 나라로 진격해올것이라고 을러멨던거요.》

격안관화란 범들을 싸움시켜놓고 자기는 산꼭대기에 앉아 구경을 하다가 어부지리를 얻는다는 이네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손자병법》중의 한 계책이였다.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당신네가 불집을 일으켜놓고 쳐들어온다면 그 불길은 발해의 강토가 아니라 이 나라 강토를 재더미로 만들게 될거요.》

영왕이 몹시 긴장한 눈길로 적의가 가득한 계루왕의 두눈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내 보기에는 당나라와 발해사이에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거요. 강국들사이의 싸움은 피나 많이 흘리게 될뿐 승패가 나지 않으니까.》

계루왕은 적의가 가셔지지 않은 눈길로 영왕을 마주 바라보았다.

《원래 감언리설로 상대를 업어넘기기 잘하는것이 이 나라 사람들의 해묵은 술법임을 내 모르는바가 아니요. 난 그대를 찾아온 진속을 숨기지 않소. 내가 알고싶어하는건 우리 나라에 대한 당신네들의 진짜 속심이란 말이요.》

대바람 얼굴이 시뻘개진 영왕이 아부재기를 쳤다.

《그래서 나에게 천금을 아끼지 않았구만. 그래 코아래진상으로 날 역적으로 만들셈이요?》

계루왕은 벙글 웃으며 다불러댔다.

《이보시오, 그쯤한걸 알려주었다고 해서 역적으로 몰린다면 이 나라에 역적이 아닌 사람이 있겠소? 여기에서 만리가 넘는 머나먼 동모산에 앉아있는 우리가 이 나라 조정의 움직임을 손금보듯 알수 있는것은 다 이곳 대신들의 입때문이 아니겠소. 그것을 죄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숙위를 보내라고 청한 그대의 임금부터 죄를 따져야 할거요.》

그만에야 영왕도 웃었다.

《하긴 그렇소. 우리의 한복판에 숱한 시중군들을 데리고와있는 숙위의 눈과 귀를 어찌 가리울수 있겠소. 자고로 숙위로 온 사람들이야 공인된 렴탐군들이니까.》

계루왕은 가슴을 쭉 펴고 대꾸했다.

《옳소. 그러니 우리에게 그런것쯤이나 대주었다고 해서 어찌 그대의 임금이 따지고들겠소.》

그 말에 기분이 거슬렸던지 영왕은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세상에 해동사람들만큼 남의 속내를 샅샅이 파고드는 사람들은 없을거요.

수나라때만 놓고보더라도 비서감 우위장군 부재는 고구려사신한테 금붙이를 받아먹고 조정의 형편을 알려주었다가 그 죄가 드러나서 두다리를 동여맨 정갱이짬에 몽둥이를 끼우고 주리를 트는 그 모진 가새주리형을 당하고도 모자라 목까지 잘리웠소. 이런 실례는 얼마든지 있단 말이요.》

계루왕이 한번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할말이 있소. 수나라까지는 그만두고 그대의 당나라가 고구려의 형편을 알아내려고 얼마나 검질기게 굴었소. 화친의 명목으로 고구려를 찾아왔던 직방랑중 진대덕은 평양으로 가는 길에 고구려군이 진을 친 곳만 나타나면 나는 산수경치를 돌아보기 좋아하니 여기를 꼭 구경해야겠소.라고 하면서 속속이 렴탐질을 하였소.

그 공으로 당나라임금에게서 상을 후히 받았으며 그가 알아낸것들이 후날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는것은 그대도 알거요. 렴탐군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해야 하는것이니 우리 이 자리에서 그런 시비질은 그만두는것이 어떻겠소?》

남을 헐뜯으려다가 도리여 코만 떼운 영왕은 그 분풀이로 계루왕의 의도와는 전혀 딴데로 화제를 돌리였다.

《그래 우리의 도읍을 밟아보니 느낌이 어떠하오. 이만큼 큰 도성이 세상에 또 있을것 같소?》

계루왕은 의분을 금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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