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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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시각 당나라의 장안(중국의 서안에 있었던 당나라때의 수도)에 머무르고있는 발해태자 계루왕은 이 나라 황자인 영왕의 초청을 받고 그의 집에 들어서고있었다.

영왕은 10여년전 당나라의 6대임금으로 등극한 리륭기(현종)의 열세번째아들로서 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였다.

영왕부에서도 제일 화려하게 꾸린 귀빈실로 계루왕을 안내한 영왕 리교는 퍼그나 놀라는 기색으로 물었다.

《신색이 여간 좋지 않아보이는데 그런 몸으로 이 먼델 숙위로 왔단 말이요?》

계루왕이 데리고온 역어가 목메인 소리로 그의 말을 발해말로 통역했다.

영왕과 마주앉은 계루왕은 서둘러 입을 열지 않았다.

숙위라는 말에 계루왕은 여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숙위라…)

속으로 숙위라는 말을 뇌이느라니 심화가 더욱 덧치였다.

20여년전인 천통8년(발해의 건국시조 성무고황제인 대조영시기의 년호. 705년), 그렇게도 발해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오던 당나라가 불쑥 화친의 청을 가진 사신을 보내여왔다.

당시 발해의 황상이였던 성무고황제는 선조의 나라 고구려를 해치고 박달겨레에게 헤아릴수 없이 큰 재난을 들씌운 당나라였지만 제 먼저 그전날의 죄과를 사죄하면서 이제부터는 두 나라가 화목하게 지내자는 그들의 청을 너그러이 받아주었다.

그때 성무고황제가 돌연 화친하자며 사신을 보내여온 당나라의 본심을 꿰뚫어보지 못한것은 아니였다.

남의 강토를 끝없이 앗으려드는것으로 하여 이웃나라들의 원한을 크게 사고있는 당나라가 제일 두려워하는 나라는 발해와 돌궐이였다.

그런데로부터 당나라가 간교한 술책으로 이미전에 돌궐과 궁실혼인을 이룸으로써 화친을 성사시켰다고는 하지만 그것으로 코가 꿰여 끌려다닐 돌궐사람들이 아니였다. 군력도 강하고 대가 센 돌궐사람들은 지난날 궁실혼인을 한 나라라고 하여도 자기의 강토를 범하는 경우 사정없이 답새겨댔다.

그러니 의연히 천하를 넘보는 당나라로서는 돌궐이 언제 돌변할지 몰라 마음을 놓을수 없었다.

설상가상이라고 오랜 전란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도처에서 들고일어나 관가를 부셔댔다.

이에 급해맞은 당나라로서는 동방의 강대국으로 일어선 발해와 친교를 맺어야만 반란을 일으킨 백성들도 평정할수 있고 군력도 키울 시간적여유를 얻을수 있었다.

성무고황제는 당나라의 이런 속통을 모르는바 아니였지만 이 기회에 국력을 크게 다질 생각으로 그들의 청을 수락한것이였다.

사실 발해가 수십만명의 대군을 가지고있다고는 하지만 갓 일떠서다보니 주, 현들도 바로 정해야 하고 조세징수와 군정의 징발, 부역동원 등 바로잡아야 할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던것이다.

화친을 맺는 석상에서 당나라사신들은 발해의 황자를 숙위로 보내줄것을 요청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황자를 당나라에 숙위로 보낸다는것은 천자국인 발해로서는 말도 되지 않을 일이였다.

숙위란건 황제국이라 자칭하는 큰 나라에 그를 섬기겠다고 약조한 제후국들이 그 나라에 보내는 볼모이기때문이였다.

발해는 단군의 나라와 고구려를 이은 강대국으로서 명실공히 천자의 나라였다.

천자국을 다른 말로는 황제국이라고도 한다.

천자국에서는 년호부터 제정하고 죽은 임금들에게는 황제에게 어울리는 시호를 올렸다.

하기에 발해는 건국의 그해부터 천통이라는 년호를 천하에 알린것이였다.

그러나 성무고황제는 당장 닥쳐들수도 있는 전란을 막기 위하여 그들의 청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발해의 서쪽에서는 언제 전란이 터질지 모르는 형편이였다.

발해의 강토는 서쪽에서 수백리의 거란땅을 사이에 두고 당나라와 떨어져있었다.

강토를 접한 나라는 공격하여 먹어치우는 계략에 매달리고있는 당나라는 거란을 무너뜨리려고 끊임없는 공세를 들이대고있었다.

거란이 무너지는 경우 그 즉시 당나라군이 국경을 접하게 되는 발해로 쳐들어올것은 정해진 리치였다.

이때문에 발해는 거란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있었다.

당나라군의 공세에 거란군이 수세에 빠졌을 때에는 정예군을 보내주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원체 세력이 약한 거란족이라 기어코 그들의 터전을 삼키려드는 당나라에 언제인가는 먹히울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이 점을 내다본 성무고황제는 당나라가 발해를 넘보지 않겠다는 조건부로 둘째아들 대문예를 숙위로 보낸것이고 이것이 곧 관례로 되였던것이다.

지난해 계루왕은 자신이 직접 당나라로 가리라 결심했다.

그동안 여러명의 황자들이 숙위로 갔었지만 발해를 해치려드는 당나라것들의 흉계를 속시원히 알아오지 못하였다.

그렇게 된데는 숙위로 갔던 사람들이 남의 속심을 헤쳐보는 재주가 부족한데도 있지만 보다는 그런 일에 제 한몸을 푹 적시려는 의욕이 부족한때문이였다.

그러나 계루왕자신이 숙위로 가자고 하니 태자라는 직분이 문제거리였다.

지금껏 발해에서는 태자가 숙위로 간적이 없었다. 황상의 뒤를 잇게 되여있는 태자를 숙위로 보낸다는것은 심중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발해에서는 태자에게만은 어느 황자도 가질수 없는 계루왕이라는 왕호를 주고있었다.

지금의 임금인 대무예도 성무고황제의 태자시절 계루왕으로 있었다.

계루왕이란 부름속에는 장차 황위를 이을 사람이라는 뜻이 어려있었다.

고구려가 처음 일어났을 때 령역을 크게 5부 즉 연나부(연노부), 관나부(관노부), 제나부(절노부), 환나부(순노부), 과루부(계루부)로 갈랐는데 그중 계루부는 황궁이 있는 황족의 중심부로서 중부 또는 황부라고도 불렀다.

발해를 세운 성무고황제는 자신이 고구려의 혈통을 이었으며 동모산은 고구려를 이은 천자국의 도읍이라는 뜻에서 계루부라 칭하고 태자에게 계루부의 주인이라는 의미가 담겨진 계루왕의 왕호를 준것이였다.

그러니 여느 황자도 아닌 계루왕의 왕호를 지닌 천자국의 태자가 숙위로 간다는것은 도무지 있을법한 일이 아니였다.

게다가 계루왕은 혈증(백혈병에 해당되는 병)이라는 심상치 않은 병까지 앓고있었다.

하지만 적국에 기어이 가야 한다는 계루왕의 결심은 더욱 굳어만졌다.

지금은 당나라가 화친을 유지하자고 매여달리고있지만 군력이 막강해지는 날에는 고구려에게 그러했던것처럼 반드시 발해로 쳐들어올것이 아닌가.

그러니 태자인 내가 직접 가서 알고싶은것도 알아내고 그것들의 음모도 짓부셔야 한다.

이렇게 생각은 하였지만 부황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병든 몸만 아니래도 내가 직접 부황께 청해보는건데

그래서 계루왕은 가까이 지내는 장문휴에게 도움을 청했다.

부황이 장수들중에서 그중 믿는 장문휴라면 얼마든지 황상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을것이였다.

과연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계루왕의 절절한 당부에 감동된 장문휴가 태자를 병치료겸 장안에 보내는것이 좋겠다고 거듭 간청함으로써 끝내는 황상의 윤허를 받아낸것이였다.

그리하여 계루왕은 올해 초에 장안에 려장을 풀게 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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