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3 편

7

(2)

 

두사람이 너무 맹랑해서 눈길을 마주치고있는데 아이들중 한놈이 《영진이 온다!》하더니 냅다 달아났다. 그러자 다른 놈들도 덩달아 내뛰였다. 한놈은 댓걸음 못 가서 짚신이 벗겨지는 바람에 그것을 집어들고 뒤통수가 뽀얗게 달려갔다.

그 애들을 더 잡아두어봐야 소용이 없기에 달아나는 놈들의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고있는데 버들밭속으로 난 길에서 휘파람소리가 울려왔다.

문제의 영진이라는 인물이라는것을 짐작한 차광수와 계영춘이는 잔뜩 긴장해서 본능적으로 버드나무그늘에 몸을 숨기였다. 계영춘은 소리 안 나게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해서 지켜보는 두사람의 시야속에 마침내 문제의 인물이 나타났다. 방금 산지사방으로 흩어져간 조무래기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너들거리는 토스레저고리에 날 끊어진 짚신을 발에 걸친 열대여섯살 나보이는 소년이였다.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앞뒤로 되뚝하게 삐여져나온 남북머리와 귀엽게 쳐들린 들창코 그리고 오목하게 꺼져들어간 청청하게 맑은 눈이였다.

소년은 무슨 기분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버드나무회초리로 새초의 이슬을 툭툭 털면서 휘파람을 불며 건들건들 걸어왔다.

《혁명가》의 선률이였다.

《얘, 너 이리 좀 오너라.》

계영춘이 성큼 나서며 불렀다. 그러자 소년은 재빨리 버들숲속으로 몸을 감추고 만만찮게 이쪽을 쏘아본다.

《당신들은 누구요?》

그쪽에서 오히려 야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누구냐?》

계영춘은 되물었다. 소년은 아무 대답없이 두사람의 행색을 한참이나 뜯어보더니 길우에 척 나섰다.

《보니까 특무는 아닌것 같군요. 밤새 먼길을 왔습니까?》

아주 틀스러운 말투였다.

《그래, 우리는 먼길을 왔다. 너는 이 고장 아이냐?》

차광수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며 소년앞에 나섰다. 벌써 말하는 투가 나어린 소년이라고 허투루 접어들었다가는 뺨이라도 맞을것 같았다.

《나는 저기 소오가자라는데 살아요. 어디서 오시는 손님들인가요?》

《우리는 고유수에서 온다.》

차광수는 정색해서 대답했다.

《고유수에서요? 그럼 혁명군동지들인가요?》

《너 혁명군을 어떻게 아니?》

《혁명군을 왜 모르겠어요? 혁명군이 고유수에만 있는줄 알아요?》

《그럼 너희네 오가자에도 혁명군이 있니?》

계영춘이가 어처구니없을만큼 당돌하게 구는 소년과 마주친것이 재미가 나서 앞을 가르고 나섰다.

《우리 오가자에요? 그런것은 묻지 마십시오. 내가 말하는것은 조선혁명군이 고유수에 있다고 해서 그것을 고유수사람들만 아는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 그건 그렇다. 그런데…》

차광수는 암만 봐야 이 소년과 싱갱이를 하는것이 아까 다른 아이들의 경우에 비추어봐도 재미가 없을것 같아 한층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이제 여기서 총소리가 울렸는데 너는 못 들었느냐?》

《참, 그런 총소리가 울렸지요.》

《그게 웬 총소리냐? 누가 쏜 총소리냐?》

《그건 너무 따져묻지 마십시오. 아마 우리 동무들이 쏜 총일것입니다.》

차광수는 소년의 오연한 눈빛에서 총을 쏜것은 이 소년이며 이 소년에게는 총뿐아니라 아까 다른 아이들이 말한 그 폭탄인지 책인지 모를것까지 있다는것을 눈치챘다.

《동무 이름이 뭐요?》

계영춘이가 한결 정중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말끝마다 자기는 당신들과 대등한 혁명가라는것을 풍기는데 그까짓 공대야 못해줄게 뭐냐 해서 싹 말투를 바꾸어버렸다.

소년의 얼굴에는 만족해하는 표정이 감출수 없이 드러났으나 그는 매우 힘들게 그것을 억누르고 의젓하게 말했다.

《나는 강영진입니다. 교하에서 오가자로 온지 얼마되지 않습니다.》

《그래? 나는 계영춘이고 이 안경낀 동지는 차광수동지요.》

《그렇습니까? 차광수동지의 소문은 들었습니다. 우리 동네에 곽만득이라는 락후한 청년이 있는데 그 사람이 고유수에 가서 신세를 지고 왔다더군요. 오가자란 락후한 동넵니다. 굿이나 하고 잔치같은것을 차리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하에서는 그런것은 무시합니다. 교하사람들은 투쟁을 좋아합니다.》

차광수와 계영춘이는 너무나 조숙한 소년의 말에 기가 차서 눈길을 마주칠뿐 얼른 무슨 말을 하게 되지를 않았다.

세사람이 동네를 향해 걷게 되였을 때 강영진은 제먼저 또 입을 벌렸다.

《지금 우리 동네에 리종락동지가 와있는데 락후한 봉건들때문에 얼마나 성이 났는지 모릅니다. 리종락동지는 마을의 락후한 령감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우고있습니다. 나는 언제든지 리종락동지를 원조할 생각입니다.》

《얘, 그게 무슨 말이냐?》

계영춘이 너무 놀라서 부지불식간에 말투가 달라졌다. 강영진은 계영춘의 휘줄근해진 신사옷차림을 차겁게 훑어볼뿐 대꾸를 하지 않고 더욱 의젓한 목소리로 자기 말을 이었다.

《레닌은 프로레타리아의 해방은 무장폭동을 통해서만 성공하지 다른것은 모두 기회주의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오가자의 봉건령감들은 리상촌을 건설한다고 떠들고있습니다.

리종락동지는 며칠전에 삼성학교마당에다 락후한 마을사람들을 쓸어넣고 혼을 내놓았습니다. 이제는 좀 정신이 들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쇄골이 움푹하게 패인 앙상한 몸뚱이에 토스레를 걸치고 날 끊어진 짚신을 신은 더벅머리소년의 입에서는 아까 버들숲을 울린 총소리 못지않게 놀라운 소리만 연방 튀여나왔다.

지금 오가자에서 제일 완고한 반동이 변대우령감인데 자기네 모자는 변대우령감에게 신세를 지고 그 령감덕분에 살아가지만 계급투쟁에서는 이런 개인문제때문에 타협할수 없다고 하였다. 리종락동지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전날 독립군을 할 때는 그 령감의 부하노릇도 했지만 지금은 계급적으로 적대관계에 있기때문에 사정없이 비판한다는것이였다. 삼성학교마당에서 리종락이 연설한 소문을 들은 변령감은 동네 유지들과 아들, 딸, 사위들을 한방에 둘러앉혀놓고 구들이 꺼져나가게 목침으로 방바닥을 꽝꽝 내리치면서 욕설을 퍼붓는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반동들의 마지막발악이라고도 하였다.

나오는 말마디마다 기가 막힌 소리뿐이였다. 물론 철없는 소년의 말을 그대로 믿을수는 없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있는것은 사실이라고 느껴졌다.

오가자동네가 저만치 바라보이는 큰길가에 나섰을 때 차광수는 걸음을 멈추었다.

《강영진동무, 동무는 조선혁명군을 도울 용의가 있소?》

《있구말구요. 나도 교하폭동때 형을 잃었습니다. 형의 원쑤를 갚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하겠습니다.》

아침해살을 받아 령롱하게 빛나는 소년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하게 어려있었다. 차광수는 영진의 손을 굳게 잡았다.

《나는 영진동무를 믿소. 그런데 우리는 지금 사정이 있어서 오가자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을 접촉할수가 없소.》

《비밀때문이지요? 지하공작을 하자면 락후한 동네사람들앞에 얼굴을 보이지 않는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말이요, 동무가 리종락동무를 아무도 몰래 여기다 좀 불러올수 없겠소?》

《그건 문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까 총소리때문에 동네아이들을 붙잡고 물어봤는데 그 애들이 말을 내면 재미없지 않겠소?》

《그건 아주 잘못했는데요. 아이들이란 본시 철이 없기때문에 아무 소리나 망탕 지껄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까짓 자식들은 내 말 한마디면 움쩍도 못합니다.

내가 이제 가서 리종락동지를 보내고나서 그 자식들을 다 불러다놓고 따져보겠습니다. 만일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는 자식이 있으면 양떡을 한개씩 먹여놓겠습니다. 그러면 다시는 아무 소리나 망탕 하지 못할것입니다.》

양떡이란 아마 주먹으로 쳐서 혹을 만들어준다는 말같았다.

너무나 아는것이 많고 분명 교하 어디선가 비밀사업에도 관계해본듯 한 이 소년에게는 계영춘이조차 감탄해버려서 그에게 이러쿵저러쿵 가르치고 어쩌고 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차광수가 그 《양떡》을 미리 먹이지는 말고 먼저 소문을 내지 못하게 말로 하고 후에 약속을 어겼을 때 안겨주는것이 어떤가고 의견을 제기해서 참고해보겠다는 시쁘둥한 대답을 겨우 받았을뿐이였다.

강영진이가 급한 걸음으로 사라진 후 계영춘은 새삼스럽게 사위를 둘러보았다.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산이라고는 없는 밋밋한 구릉과 막막한 초원이 펼쳐져있었다. 해는 벌써 지평선우에 한자가까이 솟아올랐다. 엄청나게 커보이는 해는 너무 커서 그런지 볕은 따겁지 못했다. 둘러봐야 끝없는 땅버들숲이 펼쳐져있어서 어슬막이면 동서남북도 헛갈릴상싶었다.

《조선사람들이 고생을 하는군. 이따우 땅버들밭을 일구어서 논을 풀다니…》

《그래도 제땅이면 얼마나 좋겠소. 저렇게 내버려둔 땅도 농사군이 일구겠다고 나서면 임자가 나진단 말이요.》

차광수는 리종락을 기다리는 동안 좀 앉고싶었으나 돌멩이 하나 없는 고장이라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이슬을 대강 털고 풀밭에 아무렇게나 털썩 앉았다.

계영춘은 자기의 볼꼴없이 된 신사복을 한심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더니 그 역시 차광수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리종락이가 밥꾸레미라도 싸가지고 왔으면 좋겠다.》

계영춘이가 한숨처럼 중얼거리는 말이였다. 시장한것은 사실이였다. 또 시장해서는 오늘중으로 120리길을 가대지도 못할것이고 공주령에 가서 할 일을 제대로 해내겠는가 하는것도 의심스럽다. 더구나 그다음은 공주령거리에서 요기할 사이가 없을것이다. 옥섬이를 빼내면 그달음으로 고유수까지 내뛰여야 할판이다.

차광수는 은근히 속이 탔다.

다행히 리종락은 몇참을 못 기다려서 장용수를 데리고 나타났다.

장용수는 리종락이보다 한달 먼저 오가자에 파견된 반제청년동맹원이였다. 그도 사가자의 지주 사후겸의 머슴으로 들어가 몇달째 공작하고있는데 그 과정에 김성주동지의 신임으로 조선혁명군에 입대하게 되였다. 얼핏보매 어수룩해보이나 듬직하고 속이 깊은 사람이였다.

그러나 그 소박하고 꾸준한것 하나만으로는 온갖 시국풍조가 휩쓸어들고 한다 하는 독립운동자들과 사회운동의 거물들이 드나드는 동료하기슭을 혁명화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제낄 손이 있는 리종락이가 얼마전에 뒤따라온것이였다.

땅버들숲사이로 난 길굽이에 멈칫 서서 이쪽을 바라본 리종락은 허리에 두손을 척 올려붙이더니 껄껄 하고 웃었다.

《료하강물이 탁하기는 탁한 모양이군. 부처님같은 차광수도 멋쟁이 계영춘이도 볼꼴없이 만들어버렸으니… 오가자아이들이 국민당특무라고 냅다 뛸만도 하오.》

리종락이가 반가운 나머지 걸직한 롱에 섞어 이런 류다른 인사말을 하는 사이 장용수는 우르르 달려오더니 두사람의 허리를 번갈아 덥석덥석 그러안았다.

《밤길을 오시기 얼마나 수고했습니까?》

《수고나마나 배고파 혼났소. 그래 먹을걸 좀 가져왔소?》

계영춘은 대뜸 먹는타령부터 벌려놓았다. 그러자 반죽좋은 리종락도 그 넙적한 얼굴에 당황한 기색을 띠였다.

《내가 시켜놓고 왔습니다. 이제 들어가면 맞춤할것 같습니다.》

장용수는 오히려 계영춘의 말이 반가운듯 두손을 맞비비였다.

《들어갈 사이 없소. 우리는 이길로 떠나야 하오.》

차광수가 잘라서 말했다. 리종락이도 장용수도 긴장되였다.

계영춘은 또 제 직성이 나온다는듯이 차광수를 힐끔 돌아보았으나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자, 좀 앉읍시다.》

차광수는 장용수의 손을 잡아끌어 자기옆에 앉히고 리종락을 쳐다보았다. 이야기는 간단하고 명료하였다. 국내에 들어가 김형권소조가 조선혁명군의 기세를 온 삼천리에 떨치고 일제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는데 변절자의 밀고로 체포되였다는 소식을 듣자 리종락의 일상 자신만만해보이던 얼굴에도 긴장의 빛이 지나갔다.

《내가 지금 여기서 동무들의 사업형편이나 오가자의 이야기를 좀 들었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소. 우리는 지금 두다리로 이렇게 소식을 나르지만 왜놈들은 전신전화로 한단 말이요. 최효일을 놈들이 알아보면 공주령에 있는 그의 누이동생이 문제요. 공주령은 왜놈들의 조차지요. 당장 효일동무의 누이동생을 빼내야겠소.》

차광수의 말이 떨어지자 리종락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괴춤에서 권총을 꺼내여 탄알을 세여보았다. 그리고는 짤막하게 말했다.

《가기요.》

《그런데 집을 아오?》

계영춘이 물었다.

《집? 집은 나도 모르지만 공주령에 가면 알수 있소. 우리 도자판매소가 거기 있으니까 그 줄을 타면 제꺽 알아낼수 있을거요. 가만, 용수동무, 동무는 우리가 여기서 좀 토론해볼테니 그사이 시켜놓았다는 밥이나 좀 날라오오.》

장용수는 반달음으로 달려갔다. 세사람이서 버들밭에 앉아 토론해보니 옥섬이를 빼내는것도 문제지만 놈들에게 뒤를 밟히지 않게 하는것이 문제였다.

리종락은 그런것은 다 자기에게 맡기라고 장담하였다. 토비가 밤중에 달려들어 미인을 랍치해간듯이 꾸미면 된다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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