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편

4

 

소나기는 야단스레 시작하더니 한참이 못 가서 싱겁게 지나가고 부슬비로 변하였다.

엷은 사막을 친듯 부유스름하게 흐린 하늘에서는 어딘가 아득히 먼곳에서 엇비듬히 해빛이 비쳐드는듯도 하였으나 비는 시원스레 내리지 않고 줄금줄금 시름없이 내렸다.

김혁은 초조한 표정으로 하늘을 지켜보더니 소옥에게 눈짓을 하였다.

두사람은 거리에 나섰다. 검부레기가 탕수에 휘말려 도로기슭을 소용돌며 하수도구멍으로 빠져나간다. 거리는 한결 시원해지고 깨끗해졌다. 망홀밑에서 솨- 솨- 흐르는 탕수소리도 청신한 느낌을 자아낸다.

김혁은 출판물을 적시지 않을양으로 소옥의 양산밑에 바싹 다가들어서 발걸음을 맞추었다. 아직 인적이 드문 거리를 앞뒤로 힐끔힐끔 살피는 그의 모양은 아닌게아니라 수집은 애인같기도 하다.

《이렇게 조심성 많은 선생님을 보는게 난 참 우스워요.》

소옥은 또다시 즐거운 생각이 나서 이렇게 롱조로 말했다.

《조심해야지 카륜회의 이전하구는 문제가 다르오. 한별동무의 이 연설을 각 조직에 빨리 전하는것이 동무가 가지고 온 긴급지시를 집행하는 기본열쇠란 말이요. 우리는 5. 30폭동의 후과를 하루빨리 수습하고 무장투쟁의 준비를 다그치자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5. 30폭동같은것을 자꾸 일으키는게 좋은것인가 생각하고있소. 종파들이 사람들의 이런 방황하는 심리를 리용하고있소.》

《그건 나도 알아요. 하지만 우리 녀학생들이 선생님을 뭐라고 말해왔는지 알아요?》

《그거 흥미있는데?… 뭐 내 흉을 봤겠지. 빈 깡통이라든가, 싱검둥이라든가… 혹은 운률도 모르는 시인이라던가…》

김혁은 소옥의 장난궂게 반짝거리는 눈을 들여다보며 이모저모로 떠보았다.

소옥은 못 본체 하고 곱게 씻기워진 보도우로 성큼성큼 옮겨놓이는 자기의 흰 운동화끝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본인백화점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모스또와야거리에 나서니 저만치 로씨야식사원의 둥근 지붕이 보슬비를 맞으며 번쩍거리고있었다.

《왕청문에 있을 때…》

소옥은 김혁을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신애 어머니가 말했대요…》

《신애 어머니가? 신애 어머니야 나를 사랑해주었으니 좋게 말했겠지.》

《흥.》

소옥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나서 말했다.

《그 어머니가 신애한테 야단쳤다는거예요. 지금 계집애들이 사상객이다 하면 줄줄 묻어다니는데 철딱서니가 없다. 김혁이를 봐라. 그 사람이 색시를 얻어서 아들딸 낳고 살 사람이냐. 사람이 그렇게 불이 붙어 돌아가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가 쉽지 녀편네치마폭에 쌔워서 죽는 법이 없다. 우린 그 말을 듣고 모두 한바탕 웃었어요.》

《그건 심한 비방증상인걸. 내가 그 어머니한테 섭섭하게 군 일은 없는데… 그러나저러나 동무들은 왜 웃었다는거요?》

《신애 어머니말이 비슷해서요. 그런데 오늘 보니 형장의 이슬이 될가봐 겁이 나는가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소옥동무, 이건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요. 내 어제도 수상한 놈이 뒤를 따르는것을 저 부가전의 뒤골목을 두바퀴나 돌아서야 겨우 떼버렸소.》

《그래요? 지금도 우리뒤에 뭐가 달려있는게 아니예요?》

소옥은 새삼스럽게 긴장되여 앞뒤를 살펴보았다.

《걱정마오. 지금은 아무것도 없소. 그러나 언젠가는 나를 찾아낼거요. 그럼 또 떼버리지.》

《어떻게 생긴 놈이예요? 내가 오기 전 일이예요?》

《나 혼자 다닐 때 일이요. 소옥동무가 와서 이제는 위장하기도 퍽 헐해졌지만 그때는 늘 막벌이군처럼 하고 다니니까 이런 거리에서는 인차 눈에 띄우지 않겠소. 그런데 소옥동무도 그놈을 알고있어야겠는데 설명하기가 힘들구만. 날카롭고 침울하게 생긴 뱀같은 놈이요. 내가 전에 한번 꼭 만난것 같은데 기억이 떠오르지 않소. 그때는 내가 멍청해있었는지… 한번 보면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그런 눈을 가진 놈인데…》

《너무 추상적이군요. 지내 과민해진게 아니예요?》

소옥은 미타한 눈길로 김혁을 곁눈질해보았다. 그러나 김혁의 표정은 심중하였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흔들며 말하였다.

《아니요. 그놈이 실수를 한것은 저만 나를 알고 나는 저를 모를줄 아는것이요. 제가 다부산자를 입고 중국말을 중국사람 못지 않게 지껄이니까 내가 속을줄 알지만 나도 동경 한복판에서 몇해동안 살았는데 왜놈의 체취를 모르겠소. 틀림없이 교육을 받은 미끈하게 생긴 왜놈이요. 그런 놈이 중국옷을 입고 중국말을 지껄이며 조선혁명군대원 김혁을 체계적으로 뒤따랐다면 그게 뭐겠소?》

김혁의 말은 너무나 론리적이여서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소옥은 명치끝이 답답해오는것을 느끼며 잠자코 걸었다.

거듭 거리를 살펴봐야 특별히 날카롭고 침울한 얼굴도, 뱀같은 인상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침 비도 멎었다.

소옥은 양산을 한옆으로 치우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의 불안을 날려버리기 위하여 일부러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 이제는 비가 멎었어요. 파란 하늘도 드러났네요.》

나하로브까선창에 이르는 길은 포장되지 않은 우불꾸불한 진창길이였다. 좁은 비탈길수렁을 피하느라고 손을 맞잡고 디뚝거리며 걷기도 하였다. 송화강의 물비린내를 풍기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다와 같이 넓은 송화강의 저쪽기슭은 아직 부유스름한 구름의 사막에 가리워 보이지 않고 흑룡강쪽으로 떠나는 모양인 두척의 큰 륜선에서 뿜어올리는 검은 연기만 가물가물한다.

강기슭에 나서니 바람은 더욱 누기차서 목덜미가 끈적끈적했다. 금시 파랗게 드러났던 하늘은 흐려지고 또다시 한소나기 퍼붓거나 바람질을 할상싶은 거무칙칙한 구름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뒤설레인다.

《정말 조심하세요.》

소옥은 동강난지 오래된 말을 불쑥 이어놓았다.

《왜 나더러만 조심하라는거요?》

김혁은 돌란간을 한손으로 쓸어나가며 히죽이 웃었다.

소옥은 제 약점을 드러낸것 같아 약이 올랐다.

《그건 조직에서 주는 과업이예요. 이제 선생님자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오, 과업?》

김혁은 크게 감탄한듯이 고개를 끄떡이더니 신중하게 말했다.

《조심합시다. 그러나저러나 하루만 더 견디면 되오. 우리는 래일 고유수로 돌아갑시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가 빨리 돌아가는것이 중요하오.》

《그래요? 오늘이면 모든 일이 다 끝나요?》

소옥은 방금 좀 시뚝해졌던 생각은 싹 잊어버리고 물었다.

《일이 끝나기도 했지만 여기 국제당통신련락소에서 김성주동무의 연설을 읽고 꼭 좀 만나게 해달라고 청해왔소. 전에 김성주동무도 5. 30폭동의 후과를 수습하는데는 국제당과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고 했소. 그러니 이걸 빨리 보고해야겠단 말이요.

이제 나하로브까련락소에 들렸다가 저녁에 나 혼자 <서운>호에 다녀오면 여기 일은 그만이요.》

《정말 잘됐군요. 국제당사람들도 <조선혁명의 진로>를 읽고 감탄한 모양이지요?》

《그런것 같긴 한데 깊은 속은 아직 모르겠소. 그러니 소옥동무는 오늘 저녁 그 마가구련락소에 가서 묵어야겠소.》

《그럼 나 혼자 마가구로 가라요?》

소옥은 걸음을 멈추고 쌀쌀한 어조로 물었다.

김혁은 그런 반응이 좀 뜻밖이였던지 잠시 머밋거리다가 타협조로 말했다.

《이제 나하로브까련락소에 가서 다시 형편을 알아봅시다. 내가 <서운>호로 곧장 가야 할 형편이면 별수 있소? 혼자 가야지. 래일 련락소에서 나올 때 그 집 주인한테 내 인사를 전해주오. 그리고 그 집에 내 책이 몇권 있는데 좀 걷어가지고 오오. 알겠소? 이렇게…》

저자구럭을 쳐들던 김혁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오이를 들추어보았다.

《이거 재미없다. 래일 낮까지면 다 시들겠는걸?》

《일없어요. 아침에 보고 시들었으면 새걸 사넣지요. 이건 먹어버리고…》

소옥은 어쩐지 서글퍼지는 마음을 감추기 위하여 일부러 쾌활하게 말했다.

《그래, 하기는 먹어버리면 되지. 가만, 그럴바에는 지금 아예 한개씩 먹어버릴가?》

이럴 때는 꼭 어린애같다.

바다같이 망망한 강우에 갑자기 으스름이 밀려들고 강건너편 하늘에는 노을빛이 역광으로 비껴 검게 일렁이는 물결이 한결 어수선하게 느껴진다.

소옥은 사사로운 감정과 임무간에서 어쩐지 갈팡질팡 섞갈리는듯 한 제 마음을 의식하며 소심하게 말했다.

《난 그 배에 함께 가면 안되나요?》

《뭐 안될거야 없지. 허지만 별스럽지 않을가? 맨 사내들 판인데…》

소옥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여태는 사내들 판에 끌고다니지 않은것처럼 그러네. 정말 선생님마음은 모르겠어요.》

《하기는 그렇군. 원래 소옥동무는 사내번지개니까.그럼 같이 가볼가?》

《싫어요. 억지로 청해서 가지는 않겠어요.》

《이거 토라졌군, 어쩐다?》

김혁은 난처한듯이 소옥이의 옆얼굴을 돌아보았다.

소옥은 정말 성이 난듯이 고개를 강쪽으로 돌리고 걸었다.

김혁은 지꿎게 자꾸 살펴보더니 일부러 자리를 바꾸어 제가 강쪽으로 나서서 걸었다.

이번에는 북받치는 웃음을 더이상 참을수 없었다.

《어떻게 하는가 하면 말이예요…》

소옥이는 돌란간에 허리를 기대고 서서 저자구럭의 오이를 한개 내밀었다.

《배에서 자지 말고 뭍에 올라와서 쉬여야 해요.》

《그건 왜, 배가 뒤집힐가봐?》

김혁은 오이를 쓱쓱 문대서 와싹- 하고 한입 깨물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이제 돌아간다니까 어쩐지 뒤숭숭하군요.》

소옥은 돌란간에 한팔을 올려놓고 강쪽으로 돌아서서 자기도 오이 한개를 꺼내여 새하얀 대문이로 끝을 물어끊으며 말했다.

《뒤숭숭하긴, 얼마나 큰 배기다 그래?》

《그런 큰 배에 수상한 사람이 전혀 없을가요?》

《점점 한다는 소리가… 여기 조직을 믿어야지. 이제 련락소에 가서는 그런 소리 입밖에도 내지 마오. 하긴 소옥동무는 그 련락소에 들어갈것도 없을것 같구만, 출판물만 넘겨주면 되니까.…》

김혁은 별안간 공식적인 어조로 말했다.

《안하겠어요. 허지만 나를 여기로 보내면서 김성주동지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뭐라고 말했소?》

《걱정했어요. 김혁동무는 시인이 돼서 아직도 끓기를 잘하는데 지하공작원에게는 해로운 성미라고… 절대 불이 달리지 않도록  살피라고 했어요.》

《왜 그 말을 이제사 하오?》

《혼자 알고있으라고 말했으니까요. 김혁동무가 알면 성을 낼지도 모른다고…》

《참… 내가 어린앤줄 아는 모양이군.》

김혁은 중얼거리듯 말하고 강을 향해 돌아섰다. 물결소리가 높아졌다.

강건너편 하늘의 노을빛도 차츰 엷어졌다. 날도 저물기 전에 망망한 송화강물결우에 으스름이 몰려온다. 날씨가 궂어질 기미가 어디서나 느껴진다.

김혁은 오이꼭지를 힘껏 팔매질을 해서 내던지더니 다시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래일 낮차를 타고가서 장춘에서 내립시다.》

《곧장 고유수로 가게요?》

《그래, 김성주동무는 이제는 고유수에 돌아왔을거요.》

《그래요. 우리를 고유수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두사람은 선창끝을 향하여 가볍게 걸음을 옮겨놓았다.

소옥은 몇걸음 걷다가 입을 싸쥐고 혼자 웃었다.

《왜 그러오?》

《아무것도 아니예요. 차광수동무 말이 생각나서…》

《차광수동무도 내 흉을 봤소?》

《특별히 그런것도 아니지만… 차광수동무는 아마 내가 이렇게 쉽게 타협해버릴것을 미리 다 알고있은가봐요.》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김혁은 헤여진지 얼마 되지 않지만 떠나자마자 그리움이 앞서는 다정한 생활과 동무들의 일이 궁금해서 다그쳐물었다.

《차광수동무는 내가 김혁동무한테 오는것을 반대했대요.》

《그건 왜?》

《모르겠어요. 무슨 장한 일이나 한듯이 나보고 그렇게 말하더군요. 김성주동무가 강하게 주장하기때문에 자기는 양보를 하기는 했지만 그런줄이나 알고 똑똑히 처신하라는거예요. 김혁동무의 그 시인기질이 드러나서 사소한 사고라도 생긴다면 다 내 책임이라나요.》

《흠, 그러니 아까 김성주동무가 나때문에 걱정했다는 말도 다 차광수가 나를 믿지 못하기때문에 한 말이겠구만. 그러니까 소옥동무는 내 후견인이나 보호자로 파견되여온셈이요?》

김혁은 기분이나 나쁜듯이 말하고있었지만 동지들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수록 근질근질해나는 마음을 다 감추어내지 못했다.

소옥은 확신성있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그 점에서는 나 역시 신임받지 못하는 후견인이지요.》

소옥이가 이렇게 말하며 얼핏 돌아보니 김혁은 여태까지 찬찬히 지켜보던 눈길을 허둥지둥 강쪽으로 돌렸다.

그도 무엇인가 느끼고있는것이다.

소옥은 입을 다물고 혼자 미소를 지었다. 정다운 카륜의 들길이 눈앞에 서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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