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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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임금이 나라를 맡으니 조정의 관직제도도 크게 달라졌다.

도병마사는 도평의사사로, 상서성과 중서문하성을 합쳐 첨의부라 하였고 시중은 첨의중찬, 평장사는 찬성사로 그리고 리부와 례부를 통합하여 전리사, 병부는 군부사로, 호부는 판도사, 형부는 전법사, 어사대는 감찰사 지어는 국자감을 국학으로, 이렇듯 3성6부 및 모든 중앙 관청들의 명칭과 관직명까지 고치였다.

고려의 관직제도만 달라진것이 아니라 이웃나라들의 형편도 크게 변했다.

몽골의 후비라이는 국호를 원이라고 고친데 이어 대군을 장강이남으로 들이밀어 끝내는 송나라를 먹어치웠다.

옛적에 당나라가 차지했던 강토까지 전부 타고앉은 후비라이는 천하대국은 세상에서 오로지 원나라뿐이라고 뽐내고있었다.

세상이 크게 달라진 이 나날 설경성이 스승으로 여기였던 서경의 백운대사도, 중화의 칼침의원도, 온정골의 대중보와 개경의 한송빈도, 은인인 운두골의 사냥군도 저세상으로 떠나갔다.

리장용도 조정의 수석인 문하시중으로서 세상을 하직하였다.

가슴아픈 일은 리승휴가 초야에 묻히고만것이였다. 임금의 족보를 맡아보는 전중시의 판사(정3품관)로 승진했던 리승휴는 이태전 백성살이를 도탄에 빠뜨리고있는 조정을 쇄신해야 한다는 상주문을 올리였다가 대신들의 미움을 사서 파직되였다. 그래서 고향 경산부의 두타산에 있는 구동의 옛집으로 내려가 은거하고있었다.

리승휴와 꼭같은 글을 올렸다가 대청도로 귀양을 갔던 최유엄은 감찰사로 돌아와 시사(종5품관)의 관직을 맡고있다.

최유엄의 스승인 리익배는 한림원을 문하서로 개편한 관청의 학사로, 정가신은 첨의부에서 좌사의 대부(종4품관)를 맡고있다.

오윤부도 크게 출세를 하였다. 새 임금은 사천감을 관후서로 이름을 고친데 이어 오윤부를 이 관청의 장관인 판사(정3품관)로 임명하였다.

그런가 하면 강윤소는 군부사의 장관인 판서를 거쳐 이전의 추밀원인 밀직사의 부사(종2품관)로까지 기여올라 조인규가 이 관청의 승지를 차지할수 있게 해주었다.

이로써 조인규가 임금의 측근이 된것이였다.

무덤속에서 살아나온 리덕손은 권신들에게 뢰물을 먹이고 경상도 왕지사용별감이라는 감투를 쓰자마자 경시서때처럼 백성수탈로 다시금 악명을 떨치였다.

왕지사용별감은 궁중에서 쓰이는 재물을 마련해야 하는 직분이다.

이런 직분을 맡았으면 조정의 위엄에 흙칠을 할세라 조심해야 하련만 리덕손은 악독한 토색질로써 경상도백성들이 피눈물을 뿌리게 하였다 그놈이 얼마나 토색질을 일삼았으면 《경상도백성들의 흘린 피로 덕손놈의 3품관복 물들였다네》라는 시까지 생겨나 온 나라에 알려졌겠는가.

그런 놈이 재물의 힘으로 오늘은 나라의 의례식에 쓰이는 물건을 장만하는 위위시의 판사로까지 되였으니 덕손을 살려준 제 손을 자르고싶은 설경성이였다.

《내 두번다시야 그런짓을 되풀이할가.》

속으로 부르짖으며 배머리쪽으로 돌아서는데 《여기에 의원님이 계시나요?》하고 소리치는 젊은 녀인이 있었다.

그 녀인에게 다가간 설경성이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왜 그러나?》

재빨리 상대의 아래우를 훑어보는 녀인의 총기어린 눈길에 설경성은 그가 령리한 사람임을 즉시 알아보았다.

인차 녀인이 설경성을 구원의 눈길로 쳐다보며 말했다.

《제 동생이 몸을 풀려는지 지금 진통이 와서… 도와주사이다.》

진통이 왔다는 말에 설경성은 느슨한 웃음을 지었다.

당장 해산할것 같았으면 배에 오를수나 있겠는가. 아직은 서두르지 않아도 돼. 허- 걸음걸음 병자들이라니까.

날마다 맞다드는 병자들때문에 지난해 집을 나선 설경성이 오늘에야 배길에 오른것이였다.

녀인의 조급해하는 마음을 늦구어줄 심산으로 설경성은 물었다.

《그대는 누구이며 내가 의원이라는걸 어떻게 알았나?》

총기어린 두눈에 웃음을 띤 녀인이 대꾸했다.

《전 탐라에서 사는 을나라고 하오이다. 의원님의 눈길에는 병자들을 위해주려는 마음이 어려있고 몸에서는 약내가 나는데 어찌 몰라보겠나이까?》

설경성은 녀인의 총명에 탄복하였다.

《동생이 어데 있는지 가보세.》

을나가 이끌어간 곳은 배머리쪽에 있는 선실이였다. 룡골을 타고 복도를 낸 배에는 여러개의 선실이 있었다.

선창으로 해빛이 쏟아지는 방에 열댓명의 길손들이 있는데 그 한켠에서 애젊은 녀인이 앓음소리를 내고있었다.

산파술도 뛰여난 설경성은 숱한 아이들을 받아낸 경험이 풍부했다.

을나가 앓는 소리를 내는 동생에게 다가가 설경성을 가리켜보였다.

《진나야, 의원님이시다.》

설경성이 보건대 당장 몸을 풀것 같지 않았다.

선실이 축축하고 사람도 많으니 조용한 방으로 임신부를 옮겨야 했다.

《을나, 도사공에게 다락방을 부탁하겠으니 동생을 그곳으로 데려오라구.》

그길로 키를 잡은 도사공을 찾아간 설경성이 그를 찾아온 사연을 말하였다.

이미 안면을 익힌 도사공이 그의 청을 쾌히 들어주었다.

건조하고 조용한 다락방에 진나를 눕힌 설경성은 임신부가 겁을 먹지 않도록 롱조로 말했다.

《진나, 내가 지금껏 받아낸 아이들이 열두름도 넘을걸세. 내 손이 움직이기만 하면 배속에 있던 아이들이 깔깔 웃으며 뛰쳐나온다네. 진나의 애기도 갈데가 있을라구.》

진나도 을나도 깔깔 웃었다.

《게다가 이미 이런 일을 겪어본 언니까지 곁에 있는데 얼마나 좋은가.》

그 말에 을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진나가 의아해하는 설경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언닌 스물다섯살을 넘기였어도 처녀나 다를바 없소이다. 몇날도 살아보지 못하고 지아비를 잃었소이다. 왜구와의 싸움에서 저의 아버지와 함께 잘못되였나이다.》

동정심에서 설경성은 을나의 손을 감싸쥐였다.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무슨 일인들 없겠나. 하늘이 도와줄걸세.》

《고맙나이다.》

설경성이 화제를 바꾸었다.

《헌데 막달찬 동생을 객지에서 고생시킬건 뭔가?》

을나가 한숨을 지으며 대꾸했다.

《저 애 지아비가 작년 여름 군총으로 뽑히워 라주로 갔사온데 가을에 오마한 사람이 겨울이 지나도 기별이 없기에 찾아나선것이오이다. 저 애가 지아비를 보아야만 마음을 놓겠다고 하니…》

《그래 만나보았나?》

이번에는 진나가 대꾸했다.

《만나보았소이다. 올가을에는 꼭 돌아갈거라고는 하는데 그게 다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 제집만을 위해 가겠다고 하겠소이까. 살아있는 지아비를 보았으니 이젠 됐소이다.》

그 말에 가슴이 뭉클해진 설경성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 이제 좋은 비방을 써주겠네.》

설경성은 보짐속에서 피마주씨를 몇알 꺼내들었다.

피마주씨와 같이 길을 가다가 사람들의 병치료에 급히 쓸수 있는 몇가지 약재들은 언제나 가지고다니는 설경성이였다.

피마주씨를 한알씩 짓이겨 진나의 두발바닥 한복판에 붙이고 천으로 동여맨 설경성이 벙글 웃었다.

이 비방도 처음으로 피마주의 쓸모를 일러준 백운거사에게서 배운것이였다.

해산을 박두한 임신부에게 이 비방을 써주면 순조롭게 몸을 풀수 있었다.

현실에서 이 처방을 써보았는데 효험이 정말 좋았다.

흡족한 웃음을 지은 설경성이 을나를 바라보았다.

《이젠 순산할수 있을거네. 헌데 동생에게 아침밥을 먹였나?》

고개를 젓는 을나에게 설경성이 일렀다.

《산모가 허기지면 안되네. 빨리 숙수칸에 가서 죽을 쑤어오게.》

이튿날 새벽 진나는 설경성의 덕에 순산을 하였다.

다락방은 사내애가 터치는 고고성으로 들썩했다.

산모를 간호하는 정신에 설경성은 배길이 어떻게 축나고있는지 알수 없었다.

며칠후 배들은 탐라길에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추자도에 닻을 내리였다.

음료수도 보충하면서 잠을 푹 잔 배군들이 이튿날 날이 밝자 닻을 올렸다.

추자도를 나선 배들은 순풍에 돛을 달고 탐라의 애월포에 들어섰다.

설경성은 개경에서부터 가지고오는 짐을 등에 지였다.

수십근이 잘되는 짐속에는 대풍자라고 하는 문둥병의 명약이 들어있는데 이것만 가지고서도 적지 않은 문둥병자들에게 새 생을 안겨줄수 있었다.

등에는 짐을 지고 아기를 안고 배에서 내린 설경성은 류다른 섬의 풍경에 입이 벌어졌다. 섬에는 사철 푸른 귤나무들이 도처에 펼쳐져있었다.

여기가 정녕 머나먼 옛적에 부씨, 량씨, 고씨가 마을들을 일떠세웠다는 탐라란 말인가.

진나를 부축하는 을나가 설경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전 의원님이 우리 오라버니였으면 좋겠소이다.》

그 말이 싫지 않은 설경성은 을나를 친근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탐라가 처음이라는데 우리 집에 거처하시오이다. 탐라는 제가 손금보듯 다 아니 가고싶은데는 다 모셔다드리겠소이다.》

설경성은 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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