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3 회)

제 1 편

(2)

 

처녀의 이름은 나리이고 중성의 소라골마을이 그의 고향이였다.

나리의 집은 마을초입새의 기와집이였다.

나리와 김석이라는 그의 동생을 따라 기와집에 들어선 설경성은 의문이 가득하였다.

나리가 증조부라며 소개하는 구척장신의 로인은 젊은이마냥 얼굴이 불깃하고 흰 머리칼을 찾아볼수 없었다.

김석이 방금 있은 일을 말하며 자기를 살려준 의원이라고 하니 김로인은 못내 기뻐하며 설경성을 방으로 이끌었다.

《정말 고마우이. 난 젊었을 때 서경 국자감에서 서학박사노릇을 한사람일세.》

설경성에게는 오늘이 참 이상하게 여겨졌다.

난생처음 서경의 경치를 구경하던중 서경미인도 만나고 서경학자도 알게 되였으니

서경에는 개경보다 먼저 학원이 일떠섰다.

태조는 3국을 통일하는 그 바쁜 속에서도 서경에 행차하여 학사원을 세우고 서경6부를 맡은 관리들의 자식들이 여기서 글을 배우도록 하였다.

그후 학사원이 국자감으로 이름을 달리한것이였다.

설경성과 마주앉은 김로인이 김석을 가리켰다.

《이 애의 아비는 각루원에서 일하댔는데 몽골군과의 싸움에서 돌아오지 못하였네.》

나라에서는 서경에도 각루원을 내오고 시간도 알려주고 천문도 관측하게 하고있었다.

설경성은 자기와 비슷한 김석의 처지에 눈물이 글썽해졌다.

《저도 강보에 싸여있을 때 아버지를 잃었소이다.》

김로인이 안색을 흐리였다.

《자네 부친도 전장에서?…》

《예, 의원이던 아버님은 용약원(군의)으로서 전상자들을 돌보던중 몽골군의 기습에…》

김로인이 갈린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집은 대대로 의원인가?》

어머님말씀이 고조부님도 증조부님도 다 의원이였다 하오이다. 조부님도 의원이시였는데 그분의 친구분들이 의서 향약구급방을 쓰시였다 하오이다.》

김로인이 탄복하여 고개를 끄덕이였다.

《오, 향약구급방을 조부님의 친구들이 쓰셨단 말이지. 우리 서경의 수서원에도 상, 중, 하로 된 그 책이 있네. 참 훌륭한 의서지.》

서경에는 건국시기부터 도서를 찍어내고 보관해두는 수서원이라는 관청이 있었다.

김로인이 설경성의 손을 잡고 또 물었다.

《자네 성은 뭔가?》

《계림 설씨이오이다.》

김로인의 두눈에 감탄이 비끼였다.

《그럼 자네 조상이 해동종이라는 불교교리를 내놓은 원효대사가 아닌가?》

설경성이 어줍게 웃었다.

어머님말씀이 원효대사의 조부님이 저희 계림 설씨의 조상이라고 했소이다.》

김로인이 무릎을 쳤다.

《오늘은 참 기이한 날이로다. 내 증손의 병을 고쳐준 귀인이 원효대사의 후손이라니…》

눈웃음을 지은 김로인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원효대사의 이름은 설서당이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설담날의 아들로 태여났지.

해동종을 내놓은 후 파계한 원효대사는 과부이던 요석공주에게 장가들어 설총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아버지와 더불어 신라10현의 한사람으로서 수많은 유교경전을 해설하였고 또 유명한 글을 많이 남긴 문사였지.

하기에 우리 고려에서는 설총에게 홍유후라는 높은 작위를 하사한게 아닌가.》

설경성은 쩡해지는 가슴을 부여안았다.

어쩜 이 로인이 우리 집 조상들을 그리도 잘 알가?!

설경성은 어머니로부터 가문의 조상들에 대해서 자장가처럼 들었었다.

《자네 장가는 들었나?》

김로인의 물음에 설경성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직…》

김로인이 벙글 웃었다.

《뜻이 높은 젊은이야 그럴수 있지.》

좀 있어 방문이 열리고 두손에 사발을 받쳐든 나리가 들어섰다.

《증조부님, 약이오이다.》

말없이 약사발을 받아든 김로인이 천천히 약물을 마시였다.

냄새만 맡아도 그게 무슨 약인지 척척 아는 설경성은 김로인이 마시는 약물이 버드나무속껍질을 달인 물임을 제꺽 알수 있었다.

봄철에 버드나무가지의 겉껍질을 긁어버리고 벗겨말린 속껍질을 수양피라 하는데 고뿔에 달여마신다. 그리고 학질이나 이쏘는데도 쓸수 있다.

《로인님, 고뿔에 수양피보다 좋은 약이 있으니 제 가져다올리겠소이다.》

김로인이 경탄의 눈길로 설경성을 바라보았다.

《과시 자넨 명의일세. 어쩜 맛보지 않고서도 알아맞추다니…》

김로인이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수양피를 고뿔때문에 달여마시는건 아닐세. 내가 여든살을 넘겨살수 있은건 아마도 이 덕일걸세.》

설경성으로서는 믿을수 없는 말이였다.

김로인은 추억을 더듬는듯 두눈을 반쯤 내리감았다.

《내 쉰살때였어. 그때 날마다 머리가 무거웠네. 그래서 의원을 찾아갔더니 중경락(뇌혈전)이 올 징조라나. 그병을 면하려거든 사향이나 우황을 쓰라는데 살림이 넉넉치 못한 우리 집 형편으로야 어림도 없는 일이지.

엎친데덮친다고 고뿔까지 겹쳐 할수없이 수양피를 달여먹었는데 열흘간 마시였더니 고뿔도 낫고 무겁던 머리도 가벼워지질 않았겠나.

야 이것 봐라, 이게 혹시 내 몸에 맞는 약이 아닐가. 그래서 이걸 계속 썼다네. 석달이 지나니 머리가 젊었을 때처럼 거뜬해지더군.

그때부터 난 머리가 좀 무거운것 같으면 두어달씩 수양피를 달여마신다네.》

그 말에 설경성은 탄복해마지 않았다.

이거야말로 중경락의 명처방이 아닌가. 우연하게도 이런 소득을 얻다니…

이윽고 나리가 밥상을 안고 들어섰다.

흰쌀밥에 생선국을 마주한 설경성은 비록 상우에 반찬의 가지수는 많지 않아도 하나같이 볼품있는것이 나리가 얼굴처럼 일솜씨도 곱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것을 느끼니 로총각의 가슴에 애정이 끓어올랐다.

지금껏 설경성이 처녀를 생각지 않은것은 의술을 닦는 일에만 몰두했기때문이였다.

난생처음 넓은 곳으로 나왔더니 마치도 물독에 같히웠던 물고기가 내물로 나온듯 세상천지가 별스럽기까지 하였다.

그 별스러운 세상에서 이성의 감정을 불러준 첫 녀인이 나리였다.

점심상을 내여가자 김로인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임자는 무슨 일로 우리 서경에 왔나?》

함박메골에 명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왔다가 허탕을 친 일을 입에 올린 설경성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임금님의 행차를 따라 이웃나라에 가서 의술을 배울가 하오이다.》

김로인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필이면 남의 나라에 가서 의술을 닦을게 있나?》

설경성은 선뜻 입을 열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의술을 련마해오는 속에 고금의 책을 끝없이 파고든 설경성은 다른 나라의 의서들까지 꿰뚫고있었다.

비상한 기억력을 타고난 설경성이 어려서부터 강심을 먹고 책을 번지였으니 이웃나라들의 력사며 산천, 인물, 풍속에까지 환할수밖에 없었다.

《우리 고려를 먹자고 못되게 날뛰던 몽골이 늦게나마 그것이 어리석은 망상임을 깨닫고 화친을 맺었으니 이러한 때 넓은 세상으로 나가 의서에도 없는 비방이 있다면 배우는것도 좋을것 같소이다.》

설경성의 자신만만한 태도와는 달리 김로인은 이를 갈았다.

거의 반생을 그 몹쓸 몽골이 일으킨 전란속에 고통을 겪은 김로인이였다.

멀리 북방의 몽골땅에 테무친이라는자가 나타나 여러 부족들을 거머쥐고 칭기스한이라고 자칭한것은 천하의 모든 나라들에 있어서 불행의 씨앗이였다.

강포한 기마군단을 거느린 칭기스한은 먼저 주변의 종족들부터 짓뭉개댔다.

그다음 금나라로 쳐들어가 도읍을 삼킨것이 50여년전이였다.

이어 칭기스한은 동방의 강국으로 알려진 고려의 군력을 타진해보려고 거란의 패잔무리를 친다는 구실로 압록강이남으로 대군을 들이밀었다.

그때 지략과 용병술이 뛰여난 조충, 김취려장군들이 고려군을 통솔하고있었다.

명장이 통솔하는 군사는 천하무적이라고 하였다.

조충과 김취려장군들이 거느린 고려군의 정예함을 목격한 몽골군은 조용히 물러가고말았다.

몽골장수 합진은 김취려장군을 만난 자리에서 65개 나라들을 짓부시던 나날 제노라는 군장들을 다 만나보았지만 고려의 장수들처럼 출중한 장수는 보지 못했노라고 실토했다.

칭기스한이 서하를 치던중 전장에서 죽자 그의 셋째아들 오고타이가 몽골의 대한으로 되였다.

고려의 범이라던 조충이 죽고 김취려마저 로환에 시달리고있다는것을 내탐한 오고타이가 마침내 최정예의 대군을 내몰았다.

그것이 신묘년(1231)에 있은 적장 살례탑이 이끈 몽골침략군의 1차침입이였다.

천하에 저희네를 당할자 없다며 단숨에 집어삼킬듯 쳐들어왔던 몽골침략군은 고려군의 호된 반격에 녹아나고말았다.

하지만 기어이 고려의 강토를 빼앗아가지자는것이 오고타이의 흉심이라 이듬해 또다시 살례탑에게 대군을 주어 들이밀었다.

그것이 2차침입이였다.

천하무적의 장수라던 살례탑까지 죽음을 당하자 살아남은 놈들은 황급히 도망쳐버렸다.

그쯤했으면 고려가 어떤 강국인지 깨달아야 하련만 령토야망에 환장한 오고타이는 을미년(1235)에 대군을 거느린 당고라는 장수를 또 들이밀었다.

3차로 기여든 당고도 여지없이 격파됨으로써 고려를 삼키려하였던 오고타이는 그 욕망을 이루지 못한채 죽고말았다.

오고타이를 이어 대한이 된 꾸유끄는 아비가 이루지 못한 욕망을 실현하려고 정미년(1247)에 맹장이라는 아모간에게 고려로 쳐들어가라는 령을 내렸다.

이 4차침입도 격파되였고 꾸유끄도 저승길로 가고말았다.

그다음으로 대한이 된 칭기스한의 손자 뭉께 역시 계축년(1253) 야굴에게 대군을 주어 들이밀었다.

5차침입도 패전으로 막을 내렸건만 몽골은 검질기게도 적장 차라대의 대군으로 또 쳐들어가게 하였다.

갑인년(1254)에 시작된 몽골침략군의 6차침입은 여러해동안 지속되였지만 차라대조차 개죽음을 당하고 영영 고려에서 쫓겨나고말았다.

이렇듯 고려는 다른 나라들이 모두 굴복한 《천하무적》의 몽골침략군과 당당히 싸워이긴 강국이였다.…

몽골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를 갈던 김로인이 입을 열었다.

《자네 도읍에 산다니 김윤후어른을 뵈온적 있겠구만.》

《예.》

병서도 적지 않게 파고든 설경성은 몽골침략군을 평정하는데 크게 공헌한 김윤후, 박서, 김경손, 김지대 같은 사람들을 존경하고있었다.

맹장이라고 뽐내던 살례탑을 활로 쏘아잡고 몽골침략군을 크게 쳐부신 김윤후는 그의 집을 찾아가서 직접 만나뵈왔다.

물론 병치료때문이기는 했지만…

《김윤후어른은 로환때문에 지난해 12월 수사공 우복야의 벼슬을 바치고 집에 들어가시였소이다.》

우복야는 백관을 통솔하는 상서성의 두번째가는 관직으로서 당당한 재상이였다.

더우기 수사공은 임금의 정사를 보좌하는 3공의 하나이니 이런 관직은 김윤후처럼 나라앞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아니고는 받을수 없었다.

국법에 관리들은 나이 70살에는 누구나 관직을 내놓고 집으로 들어가게 되여있는데 이것을 가리켜 치사라고 하였다.

물론 일부 대신들은 치사하려 해도 임금의 반대로 류임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네도 몇해전 몽골에서 있은 우리 성상페하와 몽골한과의 담판을 알테지?》

김로인의 질문에 설경성이 《예.》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국사에 관심있는 사람치고 3년전에 있은 기미년(1259)의 담판을 어이 모르랴.

고려는 고려태자와 만나 두 나라사이의 화친을 의논하자는 몽골의 요청에 따라 태자를 파견하였다.

몽골측에서는 한(임금)의 동생인 후비라이가 고려태자와 마주앉았다.

고려는 앞으로 또다시 수십년의 싸움이 지속된다고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을것이라고 선언한 고려태자의 당당한 태도에 후비라이는 허세를 부릴수 없었다.

후비라이로 말하면 칭기스한의 손자이고 몽골대한 뭉께의 친동생으로서 자기를 할아버지에 비기는 사람이였다.

대군을 이끌고 송나라로 원정하던 길에서 고려태자와 마주앉은 그는 칭기스한도 건드리지 못했던 고려라 공손하게 나오지 않을수 없었다.

하기에 그는 적국의 왕들에게 반드시 수치를 주던 지난날과 달리 공대하는 자세로 고려는 리세민(당태종)의 당나라도 쳐이긴 고구려를 이은 나라인데 그런 나라의 태자와 마주했으니 못내 기쁜 일이라고 말했던것이였다.

담판석상에서 고려측은 압록강이남으로 다시는 침략군을 들이밀지 않겠다는것을 몽골측이 다짐할 때만이 두 나라간의 진정한 화친이 이루어질수 있다고 들이댔다.

고려와 싸운댔자 승산이 없다는것을 잘 아는 후비라이로서는 이 요구를 거절할수 없었다.

그때 두 나라사이에 화친을 맺었던 고려태자가 오늘은 고려임금이, 후비라이는 몽골대한이 되였다.

김로인이 설경성의 손을 꼭 잡아쥐였다.

《내가 왜 담판소리를 했는가 하면 그건 자네가 우리 고려를 더 잘알기 위해 애쓰라는거네.

몽골에 가면 자네가 모르는 비방이 있을는지도 모르네. 그러나 자네가 바라는 비방이란게 바로 고려사람들을 위한것이겠지. 그러니 우리 나라에서 그런 비방을 먼저 찾아보는게 좋을걸세. 우리 고려는 비록 크지 않아도 강하고 문명한 나라가 아닌가.》

이미 홍자번을 따라 몽골에 갈 결심인 설경성이 그 말에 생각이 달라질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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