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38 회)

11. 왕청문

 

(3)

 

당시 오동진의 밑에서 공산당과의 제휴를 모색하다가 오동진이 체포된 후 광복군 총영장대리로 있던 리진택도 석태무의 주장에 선뜻 공감하였다. 그리고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리진택은 원래 공산주의서적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였다.

이리하여 독립군부대들이 정식으로 조선혁명군으로 근대적이며 혁신적인 이름을 가지게 되였다.

그러나 그 뒤날에도 대원들은 물론 인민들도 이미 익숙되고 정이 든 독립군이라는 부름에 더 애착이 가서 독립군이라고 불렀다.

량세봉도 독립이라는 말이 혁명이라는 말보다 그 의미가 명확하고 친근해서 공적인 장소에서도 줄창 독립군이라고 부르군 하였다.

이것은 실상 어찌보면 20세기초부터 인류의 사상의식령역에 물밀듯이 거세게 밀려드는 새시대의 사조에 따라서지 못하고 낡은것을 굳이 고집하는 이 시절의 량세봉이나 독립군대원들의 보수적인 세계관적제한성과 미숙성을 엿보게 하는것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또한 당시 공산주의운동에 파쟁놀음을 벌려놓아 공산주의의 숭고하고 혁신적인 진리성과 정의로움을 짓밟아버린 파쟁군들이 빚어놓은 범죄적인 후과이기도 하였다.

리진택은 광복군총영도 혁명군사령부로 이름을 바꾸도록 하고 총영장도 총사령으로 부르게 하였다.

총사령으로는 리진택이 선출되였다.

리진택은 조선혁명당의 기능도 강화하였다.

조선혁명당은 조선인집단거주지를 행정구역별로 구분하고 각 현에 조선인자치단체로 지방집행위원회를 두었다. 구에는 위원장, 구 밑에는 둔장이라 부르는 동장을 두어 조선인들에 대한 거주등록을 비롯한 행정사무를 처리하도록 하였다.

흥경현에는 구가 많았고 둔장들도 수십명이 되였다.

그리고 조선혁명당에는 대의원회를 설치하고 제기되는 문제들을 수시로 토의하도록 하였다.

반일예비군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체계도 정연하게 서게 되였다.

마을마다 서당이 생겨났으며 구에는 소학교를 세웠다.

왕청문에는 화흥중학교가 세워졌으며 만주각지에 널려져있는 지식인들과 군사교관들을 초빙하여 강의를 하도록 하였다.

뿐더러 선진적인 군사교육을 받아오기 위하여 쏘련과 남경쪽에 끌끌한 청년들을 선발하여 류학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 시기 수십명의 청년들이 황포군관학교에도 파견되여 공부하였다. 대체로 독립군의 핵심적인 청년들이였다. 이들은 그후 황포군관학교에서 조직된 중국공산당소속의 당조직에 망라되여 공산주의자들로 자라났다.

조선혁명당 중앙위원회 행정기능을 맡아보게 된 자치위원회는 상점과 농장 그리고 공장도 운영하여 자금을 마련하였다.

흥경현과 환인현을 비롯한 현과 주민거주지들에 점포들과 정미소, 쌀가게가 많이 생겨나고 조선혁명당에서 총관이라는 직함을 주어 파견한 사람들이 운영하여 자금을 뽑아 왕청문에 보내왔다.

이 시기 최현수도 총관으로 다시 임명되여 통화현의 조선인거주지역을 책임지게 되였다.

한편 그러한 기관들은 혁명군의 주요련락거점으로도 리용되였다.

자치행정기구가 비교적 정연하게 서자 군비를 매개 가정들에 부담시키게 하였다. 점차 군대가 확장되고 무장도 현대화되여갔고 지방조직들도 확대발전되여갔다. 인쇄소를 꾸려 주에 한번씩 신문도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동변도일대에서 조선의 독립운동이 조직적으로 강화되여가자 이에 질겁한것은 일본놈들이였다.

왜놈들은 통화에 령사관을 이미 설치하고 동변도의 현들마다 출장소들을 내왔다. 그리고 조선이주민을 탄압하기 위하여 령사관안에 이른바 령사관경찰서를 만들어놓고 동변도의 현들마다 제놈들의 경찰분소를 설치하였다.

그놈들이 모두 검은 옷을 입고 다니기때문에 사람들은 일본령사관을 가리켜 《검은모자관청》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왜놈들이 현들에 설치한 령사관출장소나 경찰분소들은 교묘하게 위장하고 은밀하게 활동하고있었다.

흥경현에는 《하옥당약방》이라는 2층건물이 있었다.

여기서는 일본사람과 조선사람들을 대상으로 약을 팔았다. 그러나 실은 일본통화령사관과 련결된 왜놈들의 비밀기관으로서 사회치안을 교란시키는 일본놈들을 보호하고 숨겨주는 일을 하였다.

약방집주인부터 일본통화령사관의 직원이였다.

일본령사관의 지휘밑에 《조선민회》라고 부르는 《선민부》도 만들어졌는데 이것 역시 일본령사관의 외곽조직이나 같은것이였다.

《선민부》는 통화현에 본부를 두고 현과 구에 《례절단》, 《농민의무조합》, 《강의 교회》, 《촉탁의사》 등을 설치하고 조선독립군을 색출하여 체포하는 일을 업으로 벌리고있었다.

《선민부》의 직원들은 다 무장을 하고 《선민부》학교까지 세워놓고 일제의 식민지하수인들을 교육하였다.

《선민부》의 책동에 각성을 높여온 조선혁명당 중앙은 그자들의 책동이 점점 우심해지고 독립운동가들이 그놈들에게 크게 피해를 당하자 《선민부》를 공격할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선민부》토벌사령부가 조직되고 량세봉이 대장으로 임명되였다.

그의 밑에 두개의 중대가 배속되였다.

량세봉은 특수요원들을 각 현에 파견하여 지역총관들과 련계하여 매개 지역에서 《선민부》에 의해 입은 피해정형을 료해하는것으로부터 공작을 시작하였다.

《선민부》놈들중에서 가장 악착하게 날뛰는것은 통화현에 있는 《선민부》본부놈들이였다.

이놈들은 조선독립군의 가족들을 체포하여 야수적으로 고문하고 학살하였으며 조선이주민가정들에서 해마다 15원씩 징수하여 저들의 활동자금으로 탕진하고있었다. 놈들은 돈을 내지 못한 집에는 무리로 달려들어 귀물을 몰수하고 반항하면 때려죽이기도 하였다.

량세봉은 《선민부》토벌작전을 환인현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첫 불꽃은 해당 지역에 있는 조선혁명당소속의 현자치단체들에서 튕기게 하였다.

그들은 현청을 상대로 환인현에서 《선민부》가 저지른 죄상을 까밝히고 《선민부》지도부를 처벌하겠다는것을 정식으로 통고하였다.

그와 함께 현의 모든 조선인가정에서 청장년들을 한명씩 뽑아 1천여명을 현청마당에 집결시켜 조선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여줄것을 현청에 강하게 요구하였다.

현청에서는 처음에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범죄를 저지른 현의 《선민부》우두머리들을 체포하였다.

여기에 일본통화령사관이 개입하여나섰다. 왜놈들은 저들의 령사관대표와 경찰들을 파견하여 환인현청과 환인경찰서를 대상하여 위협공갈하면서 압력을 가하였다.

이에 껑충 놀란 환인현청은 굴복하여 저들이 체포한 《선민부》우두머리들을 석방하고 오히려 저들과 협상하러 왔던 조선이주민대표들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자기들이 체포한 협상대표들을 왜놈경찰들에게 넘겨주어 통화에 있는 령사관에 압송하도록 하였다.

량세봉은 이 소식에 접하자 일본인경찰 네명과 환인현 경찰서소속 30여명이 두대의 마차에 대표들을 포박하여 싣고가는 행렬을 막아나섰다. 그리고 자기가 인솔하고 간 두개 중대의 대원들을 농민들로 가장시켜 군중을 보호하면서 놈들이 호송하는 협상대표들을 힘으로 구원하였다.

환인현의 경찰들은 질겁하여 현으로 돌아가고 일본인경찰들은 군중의 무리매를 얻어맞고 겨우 목숨이 붙어가지고 간신히 꽁무니를 뺐다.

환인현청은 여론의 압력과 군중의 기세에 하는수없이 자기의 현에서 못된짓을 하고있는 《선민부》의 성원들을 현청밖으로 추방하고 그놈들이 조직한 하부조직들을 없애버리도록 하였다.

환인현에서 일본놈들에게 본때를 보인 량세봉은 이어 각 현들에 있는 《선민부》를 조직된 군중의 힘으로 제압하고 파괴하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량세봉은 한개 중대를 인솔해가지고 통화현에 있는 《선민부》본부를 습격하였다.

대원들은 대낮에 《선민부》우두머리들이 질탕거리며 왜기생들과 주색을 벌리고있는 료리점을 습격하여 모조리 소탕하고 《선민부》본부를 불태워버리고 철수하였다.

이렇게 되여 일본통화령사관이 조직한 《선민부》는 뿌리채 파괴되고 이 일대의 일본놈들과 그 앞잡이들의 기세를 꺾어놓아 그놈들이 숨어지내게 하였다.

일본령사관은 《선민부》를 해체하는수밖에 없게 되였다.

《선민부》에 대한 무자비한 응징은 동변도인민들의 반일투쟁을 고조시키고 조선독립군의 사기를 높여주었다.

중국사람들도 조선독립군의 위세와 활동에 전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일본놈들을 조소하고 경멸하였으며 조중 두 나라 사람들사이에 쐐기를 박으려는 일본놈들의 책동을 똑똑히 알게 되였다.

그런데 남만일대의 조선독립운동은 공산당의 파쟁군들때문에 새로운 시련을 겪게 되였다.

조선혁명당과 독립군상층부에서 1925년에 생겨난 조선공산당에 대한 동조자들이 하나의 무시할수 없는 세력으로 자라나고 《조선독립의 새로운 시대적사조를 대변하는 조선공산당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급격히 강화된 사정과 관련되였다.

독립운동가들이 피로써 개척한 본거지인 흥경에 조선공산당이 발을 디밀기 시작한것은 1926년부터였다. 그들은 엠엘파, 화요파, 북풍파, 상해파 등으로 나뉘여져 쉬임없이 분파싸움을 벌려놓고있었다. 여기서 제일 큰 력량은 엠엘파와 화요파였다.

조선공산당이 해산된 후에는 그 잔여세력들이 만주지역에 들어와 민족주의운동과 대립하고 저들끼리 파벌싸움도 격렬하게 벌리였다.

근래에는 독립군부대에 의하여 개척되고 조선혁명당과 조선독립군이 틀고앉은 왕청문을 차지하려고 저마끔 여러모로 각축전을 벌리고있었다.

새로운 선진사상인 공산주의사상은 쉽사리 새것에 민감하고 진취적인 청년들에게 급속히 파급되여 그 세력이 점차 조선혁명당과 조선독립군에 깊이 침투되였다.

이렇게 되자 왕청문과 그 일대에서 민족주의세력을 대표하는 조선혁명당과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청년들이 대부분인 남만청년총동맹은 서로 대립되여 점점 골이 깊어가고있었다.

그들 쌍방은 교사자리를 하나 차지하기 위하여서도 화흥중학교에 가서 치렬한 선전활동을 벌리고 지어는 류혈적인 싸움을 벌려놓기도 하였다.

화흥중학교 학생들도 두패로 갈라져 공산주의사상과 민족주의사상을 파고들면서 상대방을 소 닭보듯 하였다.

한집안, 한형제도 사상적립장이 달라서 사이가 좋지 않은 가정도 적지 않았다.

량세봉의 막내동생 량정봉도 형과는 달리 남만청년총동맹에 가입하여 여러번 량세봉을 찾아와 공산주의선전을 하다가 형한테서 쫓겨가군 하였다.

독립운동가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흥경현의 쌍묘자에서 회의를 열고 조선혁명당과 조선독립군의 진로를 가지고 비공개론쟁을 벌리였다. 여기에 량세봉도 참가하였다.

총사령인 리진택을 비롯한 공산주의동조자들은 조선혁명군은 새로운 시대사조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열변을 토하였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접수해야 한다. 공산주의는 오늘 진보적인류의 심장속에 침투한 가장 과학적이며 근대적인 사회개조사상이다. 로씨야를 보라.

레닌과 쓰딸린은 공산주의자로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 지금 중국관내에서도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치되여있는데 국민들은 절대다수가 공산주의를 따라가고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공산주의를 제창하고 공산주의를 위하여 혁명을 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우리 혁명당도 혁명군도 마땅히 공산주의를 접수하고 공산당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력사를 돌이켜보라. 우리 력사에 농민군이나 의병대나 독립군이 승리하고 천하를 평정하고 백성을 다스려온 전례는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조선독립을 바란다면 로동자, 농민의 국가를 제창하는 공산당을 따라야 한다.…

공산주의를 따르는 인물들속에는 황포군관학교를 다녀왔거나 쏘련에서 나온 사람들 혹은 벌써 해산된 조선공산당인물들과 손을 잡은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있었다.

참모장 김한석도 은근히 그쪽으로 기울어져 리진택과 거리를 좁혀가고있었다.

반대파는 조선혁명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장 고인허를 비롯한 민족주의정통세력이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열을 내서 상대방을 공격하였다.

…공산주의를 따라가는 길은 자멸로 달음질쳐 가는 길이다. 지금 그들이 하는짓을 보라. 꼭 지난 기간 이 지역에서 벌어졌던 독립운동을 련상시킨다.

얼마 안될뿐더러 력사도 길지 않은 그들이 엠엘파요, 화요파요, 상해파요 하면서 그 갈래가 많아가지고 매일같이 입싸움에 주먹싸움을 벌리고있다.

그래, 당신들은 그쪽으로 가서 또 그 싸움판에 끼여들어 우리 앞세대의 독립운동가들처럼 자연분해되려고 안달인가.

공산주의는 아직 조선에서 시기상조이다. 공산당은 그 세력이 부실한데다가 바로 지난해에는 국제당으로부터 해산할데 대한 수치스러운 명령까지 받아 조락되고말았다.

지금 그 잔여세력이 조선에서 발붙일 자리를 잃고 만주로 와서 헤매다가 우리가 피로써 개척한 이곳에 기여들어 제 얼굴을 내세우려고 하는데 여기에 제발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민족주의운동은 자기의 력사에서 가장 조직적이며 강력한 조직인 무장부대를 완성하였다. 그 힘이 나날이 강화되고있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사분오렬되여 밤낮으로 분파싸움을 벌리고있는 그 각설이집단에 가서 우리를 지도해달라고 허리를 굽신거린단 말인가. 우리는 절대로 공산당세력의 휘하에 들어갈수 없다.…

이러한 론쟁은 하루이틀이 아니라 두달에 걸쳐 치렬하게 벌어졌다. 그러나 아무런 합의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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