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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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일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두툼한 편지봉투를 유심히 보시였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편지를 보낸 원득규라는 사람이 생각나지 않으시였다. 아무튼 자신에게 보내온 편지가 분명하여서 봉투의 가녁을 뜯고 속지를 뽑아드시였다. 여러장의 한지에 국한문 혼용으로 쓴 편지는 글자의 획마다에 정성을 기울였다.

 

김녀사님.

그간 귀체 만강하옵니까.

제 명철이녀석의 조부올시다.

 

아, 그렇구나 ! 로인을 두번이나 만났지만 이름을 묻지 않으셨다.

고령에도 옛시절의 기개가 살아있는 그 로인의 얼굴을 그려보며 입가에 따뜻한 미소를 그리시였다.

 

녀사께서 집안일, 바깥일에 바쁘신줄 번연히 알면서도 이렇게 붓을 든것은 늙은 가슴에 차오르는 경하의 심정을 터놓지 않고서는 도무지 견딜수가 없어서입니다. 이제 우리 정규무력건설이 장엄히 선포되고 그날에 열병식이 있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명철이녀석이 편지를 보내여왔습니다. 녀석은 열병식련습에 자기는 물론 송금이도 참가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원씨가문에 참으로 경사로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용렬하기가 이를데 없던 그 녀석이 오늘과 같이 제법 구실을 하는 군관이 되여 열병식대오에 서게 된것은 두말할것없이 녀사께서 옳게 이끌어주신 덕이올시다.

우리 군대의 열병식이 있게 될 그날을 머리속에 떠올려보는 저로서는 깊은 회고에 잠기며 드디여 력사적숙원이 풀린다는 생각으로 잠을 이룰수가 없습니다. 저로 말하면 정미년에 슬프게도 조선군대가 종말을 고하던 때의 병졸이올시다. 그때의 통분함이 가슴 후련하게 풀리게 되였으니 참으로 오래 산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해산을 강요하는 왜군과 용전혈투를 벌리다가 숨져간 조선군대의 마지막장병들이 하늘땅에 절통스러이 부르짖은것은 우리 겨레가 언제면 남부럽지 않은 강군을 가질수 있느냐? 하는것이였습니다. 군력이 약하면 남에게 나라가 먹히우고 만백성이 망국노의 수치를 면하지 못한다는것은 정한 리치외다.

반만년 우리 력사국이 망국의 처량한 빛이 짙어갈 때 충의지사들은 하루빨리 왜적을 물리칠 강군을 세워야 한다고 조정에 상소도 하고 애타게 가슴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봉건통치배들은 귀를 막고 돌아앉아서 저마끔 제 한몸의 영달만을 꾀하였습니다. 을사년의 국치를 당할무렵 우리 나라 군대는 수천명정도에 불과했고 그나마 장비 또한 한심한 형편이였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망할수밖에 없었습니다.

녀사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리이선생은 임진왜란이 있기 10년전에 10만양병설을 제창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통치배들은 음풍영월로 태평성대를 읊조렸기때문에 여러해동안 섬오랑캐의 발밑에 삼천리강산이 짓밟히고 놈들의 칼부림에 겨레의 피가 강물을 이루는 변란을 당하였던것입니다. 리조 말기의 통치배들이 선대가 남긴 이 교훈을 잊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자고로 군대를 홀시하는것은 매국이고 군대를 중시하는것은 애국인줄로 아옵니다.

력사를 상고해보면 우리 민족사가 광채로왔던 고구려시기는 군대가 강하였던 시기였습니다. 군대가 강하였기때문에 고구려는 남정북정의 기치창검을 들어 령토를 넓히였고 대륙의 큰 나라들을 눈아래로 굽어보면서 동방의 강국으로 우뚝 솟아오를수 있었습니다.

군력이자 국력임은 지나온 력사가 후세에 전하는 진리라 할것입니다. 머지않아 있게 될 열병식은 참말로 력사의 교훈을 살리여서 부강조국을 해방된 이 강토에 불러오는 대경사라 아니할수 없습니다! 그 경사의 날을 맞이하는 백성들의 기쁨은 바이 형언할길이 없을것입니다. 그것이 어찌 오늘에 사는 사람들뿐이겠습니까. 끊어진 나라의 명맥을 잇고저 화승대의 마지막탄환을 왜적에게 날리고 이역의 산야에서 숨져간 의병들! 기미년의 만세를 터치다가 왜놈들의 칼날에 피를 뿌리며 숨져간 충의지사들… 그들모두가 마지막숨을 거두며 바란것은 우리의 무적강군을 세우는것이였습니다. 강력한 군대가 없어서 나라를 잃은 유한을 품고간 그들이 아닙니까. 그 충혼들이 열병식의 그날에는 땅속에서도 기뻐서 울것이외다.

이제 우리 겨레는 고구려의 후손답게 무적강군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버젓이 머리를 들고 살게 되였습니다.

예로부터 일러오기를 명장의 휘하에는 약졸이 없다고 하였소이다.

그 존함만 들어도 삼도왜적이 벌벌 떨던 김일성장군님 휘하의 우리 군대는 모두가 당할자 없는 용병으로 자랄것입니다.

명철이녀석이 전하는바에 의하면 녀사께서는 경위대원들에게 장군님께서 이끄신 항일무장투쟁의 넋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가르치신다는데 참으로 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뿌리가 깊고 든든한 나무는 무성하게 자라는 법입니다. 군대의 육성도 그 리치가 같다고 할수 있을것입니다. 오랜 피어린 혈전을 벌려서 마침내 조국해방을 이룩한 항일무장투쟁에 그 뿌리를 내린 우리 군대는 그 어떤 바람에도 드놀지 않는 강철의 대오로 자라날것입니다.

생각할수록 해방의 년륜이 세돌기도 채 감지 못했는데 우리의 정규군이 열병식을 가지게 된것은 하늘이 놀라고 땅이 진동할 일입니다.

우리 장군님께서만이 이룩하실수 있는 위업입니다! 촌에 묻혀서 여생을 사는 저로서는 건군의 내막을 다 알수가 없는 일이지만 장군님께서 그간 우리 군대를 하루빨리 세우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시였고 얼마나 로고가 많으셨는지 짐작이 갑니다. 녀사님 또한 장군님을 도와서 건군을 위해 알게 모르게 전심전력을 다하신줄로 압니다.

열병식이 벌어지면 송금이년의 조부를 비롯한 마을사람들을 휘동해서 성내로 들어가렵니다. 우리 군대의 장쾌한 흐름을 바라보게 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입니다. 제 그날 주석단에 오르신 장군님과 녀사님께 백발을 숙여 멀리서라도 절을 드리겠습니다.

아뢰고싶은 심정은 많으나 녀사님의 귀한 시간을 범하는것이 죄스러워서 이만 붓을 놓겠습니다.

끝으로 부디 녀사께서 안녕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정월 그믐

                                                                                           원득규

 

녀사께서는 편지를 다 읽으셨으나 그냥 손에 들고계시였다. 로인의 편지를 통하여 멀리 흘러간 력사가 피의 교훈으로 전하는 건군의 호소를 듣는듯 하시였다.

바야흐로 있게 될 열병식은 진정 민족사적사변이고 온 나라의 경사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가슴에 젖어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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