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49 회)

제 5 장

2

 

군복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였다.

신의주에 나갔던 김일이 군복천을 실어보냈던것이다. 일제가 경성방직에서 만주에 있는 관동군피복공장으로 실어보내던 천이 신의주에 있었다. 천을 실은 렬차가 신의주역을 통과하려던 그날에 놈들은 패망을 했다. 불과 몇분을 앞두고 군복천이 국경을 넘지 못한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해방후 이러저러한 사건을 빚어내며 얼마간 축이 가기는 했으나 그 천은 여태껏 적지 않게 남아있었다. 라남과 함흥에서도 적산품군복천이 나타났다. 이제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기도 하고 자체로 짜기도 한다면 군복천은 해결될 전망이 보이였다. 그리하여 평양피복공장만이 아니라 보안간부훈련소가 자리잡은 지역들에 새로 건설된 피복공장들도 생산에 들어갔다.

어느날 김정숙동지께서는 녀투사들과 자리를 함께 하시였다. 그들에게 긴장한 군복생산실태를 알려주신 다음 진작 품고계시던 생각을 터놓으시였다.

《우리가 한데 모여서 군복을 짓는다면 딸리는 피복공장능력을 적지 않게 보충해줄수 있을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모이자고 했는데 모두들 생각이 어떤지?…》

자신처럼 믿는 전우들이지만 어디까지나 의논조로 물으시였다. 웃음진눈으로 둘러보시는데 김명화가 감심한 표정으로 응대했다.

《어떻고말고가 있나? 정숙동무가 참 좋은 생각을 했어요!》

다른 녀투사들도 적극 찬성했다. 빨찌산시절 밀영에서 군복을 짓던 때를 추억하며 누구나 흥분했다.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듯 한 심정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구체적인 조직사업을 하시였다. 작업장은 김명화의 집으로 하고 부족되는 재봉기는 인민위원회 경리과에서 빌려오기로 하시였다. 재단조와 재봉조로 나누어 작업분공도 하시였다.

이튿날부터 군복을 짓기 시작했다. 녀투사들은 처음부터 솜씨를 보이였다. 재봉기술이 있는 경위대군관의 안해들이 소문을 듣고 스스로 찾아왔다. 작업장은 날을 따라 활기를 띠고 흥성거렸다.

《녀사님, 이런 일을 벌리시면서 저에겐 왜 알리지 않았습니까?》

손재봉기를 보자기에 싸들고 새로 나타난 젊은 녀자는 장군님의 운전사 김동룡의 안해 향숙이였다.

《향숙동무한테야 어린애가 달리지 않았나. 그래서 알리지 않았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무겁게 들고 서있는 그의 손에서 재봉기를 받으시였다.

《어린애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겼습니다.》

김명화가 향숙에게 머리를 돌렸다.

《동무도 재봉기술이 있나?》

향숙은 대답을 피하며 녀사를 바라보았다. 자기를 보증해주실것을 바라는 눈치였다.

《재봉뿐아니라 재단도 잘하지요. 이 자리에는 그 분야에서 향숙동무를 따를 사람이 없을것입니다. 사실은 동룡동무와 사랑을 맺게 된것도 그 솜씨때문이였어요.》

녀사께서 말씀하신바대로 향숙은 일손을 잡자부터 뛰여난 솜씨를 보이였다. 보배덩이가 굴러왔다고 모두들 기뻐하였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잠시 휴식을 할 때였다. 어데서나 쉴참에는 흥미있는 화제가 필요한 법이다. 박경숙이 향숙이를 눈짓하며 녀사께 물었다.

《재봉솜씨때문에 동룡동무와 사랑을 맺게 되였다는데 어찌된건가요?》

녀사께서는 향숙이에게 눈웃음을 보내시였다.

《내가 사연을 말해도 일없을가?》

《아니, 그만두세요.》

향숙은 얼굴을 붉히며 손을 저었다. 결혼을 한지 한해가 넘었지만 새색시의 수집음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뭐, 지나간 일인데 말해주자구.》

향숙은 머리를 숙이며 응대가 없었다. 붉어진 얼굴에는 어줍은 웃음이 번지였다.

청진에서 평양으로 올라가기 전에 벌어졌던 일이여서 나는 향숙동무네 결혼식때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였어요.》하고 녀사께서는 즐거운 기분에 잠기며 이야기를 하시였다.

장군님의 개선소식을 듣게 된 김동룡은 차를 몰고 평양으로 달려왔다. 그는 신의주운송점에서 목탄차를 몰던 운전사였다. 운송점에는 승용차로도 쓸수 있고 화물차로도 쓸수 있는 소형자동차가 있었다. 그 차에 장군님을 모시고싶었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젊은 운전사의 소행을 대견히 여기시고 당분간 그 차를 리용하시였다. 얼마후에 신형승용차를 장군님께서 리용하시게 되였다. 그 승용차에 장군님을 모시게 된 동룡의 기쁨은 이를데없이 컸다. 하루는 행정10국회의에 참가한 재정국장의 승용차를 보고 이마를 쳤다. 값진 비로도천으로 차실안을 화려하게 장식했던것이다. 재정국장의 승용차 차실안이 저럴진대 장군님을 모시는 승용차에야…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하지만 수중에는 돈이 없었다. 안타까움으로 모대기던 끝에 당조직위원회 해당 부서를 찾아갔다. 총무부는 동룡의 심정에 공감하며 비로도천을 살만 한 돈을 내여주었다. 천을 구한 동룡은 양복점에 들렸다. 그때 손님들의 몸매를 재는 자끈을 목에 걸고 접수를 하던 처녀가 바로 향숙이였다. 동룡의 설명을 듣고난 처녀는 자기가 직접 의자씌우개를 만들어주겠다고 하였다. 뛰여난 솜씨에 정성을 기울인 의자씌우개는 재정국장의것보다 더 정교하고 멋이 있었다. 동룡은 장군님께서도 무척 기뻐하시리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이였다.

동룡은 출근길에 나서시는 장군님께 흥분된 마음으로 차실문을 열어드리였다. 차실안을 들여다보신 장군님께서는 일순 놀라는듯하시더니 운전사에게 머리를 돌리시였다.

《말타면 견마잡히고싶다더니 새 차를 받더니만 사치를 누려보고 싶었던게지.》

그것은 결코 칭찬의 말씀이 아니였다. 동룡은 그이의 흐려지신 안색을 살피며 자기의 생각이 빗나갔다는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장군님께서는 안타까이 타이르시였다.

《동룡이, 우린 이렇게 살아선 안돼. 사람이 사치를 누리면 사상이 변해. 우리가 이런 사치나 누리자고 산에서 싸운게 아니야. 얼마전에 동룡이도 나와 함께 평양학원에 모여온 학생들을 봤지? 겨울이 닥쳐오는데 그들은 집에서 입고온 홑옷차림으로 훈련도 하고 건설도 하고있지 않았나. 그들에게 군복을 해입히지 못하는것이 마음에 걸려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어. 한쪼박의 천이 귀한 때가 아닌가. 저 의자씌우개를 당장 거두라구. 알겠나?》

《알았습니다.》

동룡은 그날로 씌우개를 벗기였다. 하지만 그냥 버리기가 아쉬웠다. 두루 궁리를 하던 끝에 그중 가까운 사이인 김책의 운전사에게 주었다. 이것이 뜻밖의 불집을 일으킬줄이야. 자기의 운전사로부터 어찌된 사연인지를 알게 된 김책은 격노했다.

장군님께서 허용하지 않으신 그 씌우개를 넙적 받아서 내 차에 씌웠단 말이지. 이게 도대체 분별이 있는 처사냐?》

자기의 운전사를 당장 영창에 걷어넣고 동룡을 불렀다. 동룡은 노기가 서슬푸르게 뿜겨지는 김책의 시선에 부딪치자 기가 질렸다. 김책은 책상을 내리치며 준절히 꾸짖었다.

장군님의 심중을 너무도 모르는 너는 장군님을 모시고 다닐 운전사자격이 없다! 장군님의 타이름을 받았으면 자기를 심각히 돌이켜볼줄 알아야지. 그럴 대신에 그 씌우개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

《제가 잘못했습니다.》

동룡은 후들거리는 아래다리를 간신히 가누며 용서를 빌었다.

《도대체 그 씌우개가 어떻게 만들어진거냐?》

동룡은 사실을 고백하고 모든 잘못은 자기에게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화가 미칠것 같아서 두번 다시 죄스러웠다. 그날 저녁 향숙을 찾아갔다. 어마어마하게 벌어진 사태를 이야기하고 이렇게 당부했다.

《누가 와서 물으면 말이요, 어느 간부의 차에 씌우는것인지 모르고 만들어주었다고 대답하오.》

원망스레 마주보는 처녀의 눈에 대뜸 물기가 어렸다. 그 눈물을 보는 동룡은 한껏 송구스러운 마음이 치밀었다.

《그렇게까지 겁나할 필요는 없소. 울지 마오. 모든 책임은 내가 질테니까.》

《누가 겁나서 우는줄 알아요. 장군님의 심정에 눈물이 나서 우는거예요. 지금 보니 동무는 정말 장군님을 모시고 다닐 운전사자격이 없어요!》

처녀는 원망스레 쏘아보며 부르짖었다.

동룡은 가슴이 뭉클해오는 충격을 받았다. 처녀는 겁이 나서가 아니라 장군님의 숭고하신 풍모에 감격하여 울고있었다. 그것을 오해하다니…

《동무 말대로 난 자격이 없소.》

처녀의 눈물에 공감된 동룡의 눈에도 눈물이 어렸다. 흐려진 시야로 안겨오는 처녀의 모습은 무지개빛후광에 싸인듯 하였다. 뼈저린 회오속에 피끗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저 처녀와 함께라면 이 미련한 동룡이도 장군님을 잘 받들어모실수 있지 않을가? 동룡은 그후 처녀를 여러번 찾아갔다. 달빛이 교교한 어느날 밤에는 자기 심정을 고백했다. 처녀는 기꺼이 그 고백을 받아들였다.

《동룡동무와 향숙동무는 이렇게 결혼을 하였어요.》

김정숙동지께서 이야기를 마치시였다. 흥미있게 듣고난 좌중은 향숙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향숙은 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상긋이 웃고있다. 그에게도 즐거운 추억이였다.

《동룡동무가 색시감을 고를줄 알았구만.》

훈훈한 감정에 휩싸이며 김명화가 하는 말이였다.

또다시 작업이 시작되였다. 재단과 재봉, 완성품을 다려서 포장을 하는 공정이 틈없이 맞물렸다.

《어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름소리에 재봉기를 멈추고 머리를 돌리시였다. 밖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노시던 아드님이시였다. 녀인들중에는 아이가 달린 어머니가 여럿이였다.

《아이들을 잘 돌보라고 했는데 왜 들어왔니?》

《중앙녀맹할머니가 어머닐 찾아오셨어요.》

중앙녀맹할머니란 정신옥을 말한다. 그가 무슨 일로 왔을가? 녀사께서는 아드님을 앞세우고 밖으로 나가시였다. 잠시후에 돌아오신 녀사께서는 량해를 구하는듯 한 표정으로 말씀하시였다.

《중앙녀맹에서 남녀평등권법령 발포 한돐전으로 탁아소문을 열겠다는군요. 문을 열기 전에 같이 가보자고 찾아왔어요.》

《어서 가보라구.》

김명화가 말했다.

녀사께서 방문을 나서시자 김명화는 좌중을 둘러보며 그윽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숙동무가 없길래 하는 말인데 이제 제꺽 자제분의 장군복을 한벌 짓자구. 어제 갓 지어놓은 장군복을 보니 자제분생각이 나질 않겠나. 그래 다들 어떤가?》

《참으로 좋은 생각을 했어요.》

황순희가 선뜻 응했다. 말은 없었으나 다른 녀인들의 얼굴에도 공감의 웃음이 떠올랐다.

즐거운 마음으로 자제분의 장군복을 짓기 시작했다. 정성다해 재봉기를 돌리는 김명화의 귀가에는 전우들이 터치던 환호성이 메아리쳐오는듯싶었다.

-백두산에 광명성이 솟았다!-

눈앞에는 서리꽃이 만발한 그날의 소백수가 련상되였다. 남자들은 크나큰 경사를 맞이한 기쁨에 들떠있지만 김명화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러한 기쁨과 함께 말못할 안타까움에 휩싸여있었다. 아이를 낳아본 그는 이런 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소백수밀영에는 미역 한오리, 천 한쪼박도 없었다. 산나물소금국만을 끓여야 했고 낡은 군복을 뜯어서 포단과 옷을 지어야 했을것이다.

후날 밀영에 있던 녀대원들의 말을 듣고 자기가 상상했던바 그대로라는것을 알았다.

그때의 가슴아프던 일이 김명화의 가슴속에는 아물줄 모르는 상처마냥 옹이로 맺혀있었다. 그 마음속에 맺힌 사연을 오리오리 재봉실로 풀어서 자제분의 장군복을 한뜸두뜸 박아나갔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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