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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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족들과의 사업을 두고 계속하여 긴 이야기가 오고갔다. 성옥은 지난날 자기로서는 어찌할수 없었던 문제들을 문의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의깊게 들으시고 자신의 견해를 말씀하시였다. 속에 품고있던 안타까움을 모두 헤쳐보이고 녀사의 조언을 듣고난 김성옥은 눈앞이 열리고 가슴이 후련했다. 그는 간절히 말씀드렸다.

《정숙동무, 앞으로도 종종 내려와서 오늘처럼 나를 좀 깨우쳐줘요.》

《깨우쳐주기야 뭘, 함께 의논을 하자요. 틈을 내서 인차 또 오겠어요.》

《내려오겠으면 미리 알려달라요. 가족들을 모이게 하겠으니 그날은 그들앞에서 강연을 좀 해달라요. 정숙동무의 강연을 들으면 모두 깊은 감동을 받을거예요.》

《강연이라기보다 개교식날에 느꼈던 나의 소감을 숨김없이 말해주겠어요.》

그날 김정숙동지께서는 걷잡을수없이 다밀려오는 추억과 감격에 사로잡히시였다. 수많은 사람들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하셨지만 소용이 없었다. 장군님의 축하연설에 격동된 학생들의 환호와 그들의 씩씩한 분렬행진을 보셨을 때 걷잡을수없이 오열이 터지는것을 어찌할수 없으시였다. 사람들에게 눈물을 아니 보이려고 내처 고개를 숙이시였다. 중앙보안간부학교의 탄생이 가지는 사변적의의가 마음을 격동시켰었다. 눈앞을 지나는 젊은 군인들모두가 눈물이 날만큼 대견스러웠다. 그날의 눈물은 참으로 많은 의미와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담고있었다. 눈물로써만 표현할수 있었던 그날의 감정을 같은 녀성으로서 이 학교군관의 안해들에게 헤쳐보이고싶으셨다.

 

×

 

김정숙동지께서는 성옥을 앞세우고 지휘부로 가시였다. 오셨던김에 옛전우들인 최용진과 김경석을 만나야 했다. 그들에게 가족들과의 사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해주고싶으셨다. 그런데 그들의 사무실은 비여있었다. 복도를 지나는 군관들에게 물으시니 교장실에서 과정안을 토론한다고 했다. 휴식시간에 만날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교장실로 다가가시였다.

방안에서 한동훈의 열띤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저는 포병전술과정안작성과 관련한 교장동지의 의견을 접수할수 없습니다. 8로군의 전투행정은 현대전보다 유격전이 기본이였던만큼 포병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때문에 작전에서 포병의 리용과 전투조법은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과학화되지 못했습니다. 정규군건설을 지향하여 포병지휘관을 양성하는 우리 학교의 포병반에서는 붉은군대의 포병학을 배워주어야 합니다.…》

한동훈은 붉은군대 포병학의 과학성과 우월성을 실례를 들어가며 장황히 설명했다. 그리고는 자기의 주장에 매듭을 짓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교장동지가 그처럼 완강히 8로군의 포병전법을 주장한다면 저는 결심을 달리할수밖에 없다는것을 명백히 말하고싶습니다. 제가 받은 군사교육과 파쑈도이췰란드군대를 격파하면서 쌓은 전투경험이 소용없는 이상 교단에 설 필요가 없을것입니다.》

쾅,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울리며 격노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동무, 어따대고 삿대질이요? 군인은 상관의 명령지시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것을 모르고있소?》

김정숙동지께서는 처음 듣는 거센 목소리여서 성옥에게 귀속말로 물으시였다.

《누구예요?》

《교장이예오.》

한동훈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였다. 아까보다 목소리가 낮아진 대신에 짓눌린 의분이 느껴졌다.

《물론 상관의 명령지시에 복종해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전시조건이라면 저는 무조건 복종했을것입니다. 만일 명령에 불복했다면 군사재판에서 총살을 받아 마땅했을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모임이야 교육과정안토론이 아닙니까.

포병학교육을 책임진 저로서 자기의 견해를 주장할 권리가 없다면 이 자리에 부르지도 말아야 했습니다. 군사교육기관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복종체계와 함께 학술적문제에 대한 충분한 견해발표도 허용됩니다. 저는 지금이 후자의 성격을 띤 모임이라고 생각하기때문에 기탄없이 자기의 주장을 말씀드렸습니다.》

명백한 론리에 항변할 말을 찾기 어려운듯 교장은 일순 침묵했다. 거칠게 숨을 쉬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동무는 언제봐야 건방지단 말이야. 자기만이 현대군사과학을 아는것처럼 고개를 쳐들지 마시오.

동무가 소학교를 다닐 때 나는 8로군에 입대하여 싸웠고 2만5천리장정에도 참가했소. 왜놈군대를 괴멸시킨 평형관전투에서 나는 련대장으로서 포병대의 지휘도 해보았단 말이요. 아마 그때 동무는 군관학교에도 입학하기 전이였을거요. 동무가 쏘련군 군관이였다고 은근히 뽐내면서 코대를 세우기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거요.》

그러고난 교장은 쏘련군출신인 그를 두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모욕적인 말을 하였다.

《뭐요? -》

한동훈은 말꼬리를 길게 끌더니 격분을 터뜨렸다.

《나는 땅크병으로서 베를린까지 갔댔지만 누구한테도 자기 경력을 자랑한 일이 없소. 나라를 잃었기때문에 부모를 따라 쏘련에 갔댔고 거기서 자랐소. 그러나 난 조선청년이요! 당신, 아무 말이나 망탕 하지 마시오.》

벌컥 문이 열리였다. 문을 박차고 뛰쳐나온 한동훈은 도망치듯 반달음으로 복도를 지나가버렸다. 출입문곁에 서계시는 김정숙동지와 성옥을 알아보지 못했다. 너무도 분이 치밀어서 주위를 살펴볼 경황조차 없는것 같았다.

방안에서 귀에 익은 최용진의 음성이 들리였다.

《교장동지, 한동훈동무를 그렇게 모욕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교장동지부터 붉은군대출신들을 고깝게 여기는데 이것은 엄중한 후과를 빚어낼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싸웠든 우리는 다같이 조선사람입니다. 해방된 내 나라의 정규군건설을 위해 모두 합심을 해야 할것 아닙니까!》

《내가 그만 결김에 실언을 했나보오. 포병학문제는 후에 토론하고 다른 병종과정안을 계속 토론합시다.》

교장이 한껏 숙어진 어조로 말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나 밖으로 나오시였다.

《다른 때도 이렇게 의견대립이 벌어지군 하는가요?》

성옥에게 물으시였다.

《남정들이 하는 일이여서 잘 모르기는 하겠는데 그런가봐요.》

운동장에서는 대렬훈련이 한창이였다. 정보행진을 하는 학생들에게 주는 지휘관의 구령이 뜻밖이였다. 다른 나라 군대에서 사용하던 구령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생각이 많으시였다. 교장실에서 벌어진 론쟁과 눈앞에 보이는 훈련정형이 하나로 이어지며 안타까운 상념을 불러냈다. 중앙보안간부학교의 군사교육은 심중한 문제를 안고있다. 어째서 우리 말로 명백히 표현할수 있는 단순한 군사용어들조차 다른 나라 말을 쓰고있는가. 어느 나라 군대출신이든 그들은 모두 조선사람이 아닌가. 다른 나라에서 싸울 때 입에 오른 군사용어를 갑자기 버리기가 어려워서인가? 아니면 자기가 어느 나라 군대의 지휘관이였다는것을 뽐내기 위해서인가? 만주에서도 싸웠고 쏘련의 원동에서도 훈련을 했지만 항일빨찌산에서는 상상조차 할수없는 일이였다. 몸은 비록 이역에 있었지만 오로지 내 나라의 해방을 위해 싸운 항일빨찌산에서는 훈련과 전투의 모든 규정과 조법들이 우리 식이였고 우리 말로 표현되였다. 우리의 군대는 응당 그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성옥동무, 여기서도 건국실을 꾸렸는가요?》

《꾸렸어요.》

《한번 가보자요.》

《건국실》은 지휘부옆에 있는 군인회관앞에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벽에 걸려있는 직관물과 그림들을 유심히 돌아보시였다. 왼쪽벽에 처음 눈에 띄우는것이 로씨야의 명장 쑤워로브였다. 그는 알프스정복을 앞두고 마상에서 병사들에게 훈령을 하고있었다. 그다음에 걸려있는것은 나뽈레옹을 격파한 꾸뚜조브가 실명한 한쪽눈에 검은 안대를 띠고 해군대장 우샤꼬브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였다. 원동훈련기지에서 붉은군대회관에 가셨을 때 보셨던 그림들이였다. 그 벽에는 련이어 쓰딸린그라드격전, 꾸르스크격전, 모스크바방위전, 베를린함락전의 륜곽을 반영한 직관물들이 걸려있었다.

맞은편벽에는 준의회의전경을 그린 그림과 2만5천리장정도, 평형관전투를 비롯한 8로군과 신사군이 벌린 대표적인 전투들의 략도가 걸려있었다. 정면으로 마주보이는 벽에는 개선연설을 하시는 장군님의 사진을 모시고 20개조정강과 제반민주개혁의 내용이 전시되여있었다.

전반적으로 보면 경위대의 《건국실》과는 심한 대조를 이루고있었다. 우리의것은 적고 다른 나라의것이 태반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르는 곳마다에서 실망과 안타까움이 무겁게 가슴에 서려드는것을 의식하시였다. 그이의 표정을 살피던 성옥이가 말했다.

건국실내용을 두고도 론쟁이 많았다나봐요. 경석동지나 철수 아버지는 우리 나라것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우에서 직권을 내려먹이는통에 지금처림 된것 같아요.》

《경석동지와 용진동지를 만나보자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을 만나서 구체적인 사연을 알아보시고 자신의 소감을 기탄없이 말해주고싶으시였다. 지금쯤은 교장실에서 열렸던 협의회가 끝날수 있었다. 성옥이를 데리고 다시 지휘부로 가시였다. 그런데 협의회는 계속되고있었다. 보병전술의 교범을 놓고 엇갈리는 주장들이 문틈으로 새여나왔다. 모임이 언제 끝날지 알수 없었다.

마가을의 짧은 해는 어느새 져버렸다.

김정숙동지께거는 학교를 떠나셔야 했다.

성옥은 녀사께서 괴로움을 안고 차에 오르시는것이 자신의 불찰이기라도 한듯이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바래워드리였다.

《정숙동무, 안됐어요.》

느닷없는 그 한마디에 자기의 심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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