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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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월은 어쩌면 그리도 빨리 흐르는지.… 벌써 10월 중순에 접어들고있었다. 푸른 정원수와 가로수 잎새들에는 황이 들기 시작했다.

하늘은 끝없이 맑게 개이였으며 습도가 떨어진 청신한 대기에는 무르익은 곡식과 열매의 훈향이 풍기였다.

지난 몇달동안에 경위대는 그 면모를 일신하였다. 정치군사훈련이 새로운 궤도에 들어서고 병실과 주위환경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건국실》은 더할나위없이 훌륭하게 꾸려졌다. 그동안의 사업을 총화하는 당세포회의에서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전변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는 여기에 모인 당원들뿐아니라 병사들까지도 다 잘 알기때문에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강조하고싶은것이 있습니다, 부대의 정문과  건국실에는 장군님을 필사호위하자라는 구호가 나붙어있습니다. 이 구호에는 우리 군대의 성격과 사명이 집약되여있습니다. 우리는 이 구호의 의미를 군인들의 가슴속에 깊이 심어주고 정치군사훈련을 언제나 이 구호관철에로 지향시켜야 하겠습니다.》

세포위원장의 격동적인 말이 끝나자 회의참가자들의 시선이 녀사에게 쏠리였다. 은연중에 오늘의 전변을 가져오신 그이를 생각했던것이다.

녀사께서는 군관과 병사들의 뒤에 앉아계시였다. 경위대 당세포에 소속된 당원이지만 어디까지나 사민이기때문에 군인들의 뒤전이 자신의 위치라고 여기시였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시는데 강상호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김정숙동지가 우리 경위대사업을 내놓고서라도 다른 여러가지 사업에 얼마나 분망하신가를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압니다.

정숙동지, 무리한 청인줄 알지만 앞으로도 우리 경위대사업에 계속 관심을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찍어서 그런 말을 하니 그냥 앉아계실수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옷자락을 여미며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경위대사업에서 전진이 있었다면 모든 군관, 병사들이 합심을 해서 떨쳐나섰기때문입니다. 함께 생활하는 기간에 이르는 곳마다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면 빨찌산시절로 되돌아간것만 같아서 감개무량하기만 하였습니다. 조금도 힘겨운줄을 몰랐고 군인들속에 있는것이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경위대의 사업에 힘이 닿는껏 기여를 하겠습니다.》

간단히 말씀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시였다.

이튿날은 휴식일이였다.

오늘은 가정일을 돌보려고 하시였다. 몇달동안 매일 경위대에 출근을 하시다보니 미처 손이 돌지 못한 집안일이 많았다. 빨래를 하시려고 팔은 걷고 나섰는데 차영환이 찾아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걷어올렸던 팔소매를 내리시였다. 새로 결혼한 안해를 데리고왔던 이후로는 그를 처음 만나신다.

《순실동무는 잘 있어요?》

《그 사람이야 잘 있지요. 그런데 저는 실패하였습니다.》

《실패라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의아한 시선으로 차영환을 바라보시였다. 어설핀 웃음을 그리는 그의 얼굴에 회오의 그늘이 비껴있었다.

《수상보안대 금괴도난사건은 끝내 해명하지 못했습니다. 정숙동지의 말씀대로 처음부터 김성국동지와 손을 잡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듣던바대로 성국동지는 그 분야에 경험도 있고 추리와 판단도 정확했습니다.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 우리는 보안대에 잠입한 한놈이 외부의 반동들과 결탁되여 그 사건에 공모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쥐였습니다. 성국동지곁에서 맴돌며 열성을 보이던 자였습니다. 그자를 체포해서 심문을 했습니다. 부인할수 없는 증거를 들이대자 그자는 사흘째되는 밤에 구류장에서 자살했습니다. 저의 돌이킬수 없는 실책은 그놈이 자살할수도 있다는것을 예견하지 못한데 있었습니다. 자기 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우리만이 자기 생명을 서슴없이 바칠 각오가 되여있는것이 아니라 적들중에도 극단한 경우에 자결할 용기를 가진자가 있을수 있다는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를테면 교활하고 악독한 원쑤를 상대로 한다는 자각이 부족했지요. 자살할 기회를 주지 말아야 했지요. 그놈이 죽다보니 힘겹게 찾아쥔 수사의 실머리가 끊어져버렸습니다. 더는 해명해볼 단서가 없었습니다. 과업을 수행하지 못하고 돌아온 저는 장군님앞에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보고를 받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동무가 금괴를 찾지 못한것은 물론 유감스러운 일이요, 그러나 성국동무가 사취한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반동놈의 작간이였다는것을 확인한것은 의의가 있소, 우리의 군건설을 방해하려고 적들이 얼마나 악랄하게 책동하는가를 수상보안대원들과 주변인민들에게 사실그대로 보여주었소, 그들모두가 이번 사건을 통해 각성할것이요, 그리고보면 물질적손해는 보상되지 못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수 있소.… 호되게 꾸짖을대신 그렇게 말씀하실 때 제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차영환의 그때의 심정이 리해되시였다.

《그렇게 되였군요. 아무튼 그동안 수고가 많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일을 쓰게 하지 못한 저를 탓하실대신 보다 중요한 임무를 맡겨주셨습니다. 보안국 부국장으로 임명해주시였습니다.》

《참말 무거운 직무를 받았군요. 나는 영환동무가 장군님의 신임에 보답하리라고 믿어요. 그래, 새로운 직무에 착수했습니까?》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당분간 쏘련에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녀사께서는 출장용건은 묻지 않으시였다. 영환의 사업은 어느것이나 비밀이였던것이다.

《쏘련에 출장을 간다니 하는 말인데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겠어요?》

언제부터 마음속에 품고계셨던 생각이 언뜻 떠올라서 그렇게 물으시였다.

《정숙동지 부탁이라면야…》

차영환은 선선히 응대했다.

《가능하면 이번 기회에 동훈동무의 아버지 유해를 가져오도록 힘써주세요, 죽어서도 조국땅에 묻히고싶다던 로인의 소원을 풀어드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차영환은 갑자기 낯색이 심중해지며 눈길을 내리깔았다.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할 겨를이 없으면 그만두세요. 내가 공연한 부탁을 했나보군요.》

《그래서가 아닙니다.》하고 차영환은 눈길을 번쩍 들었다. 마주보는 시선에 뜨거운 감동의 빛이 흘렀다. 《동훈동무야 저의 지기가 아닙니까. 그런데 전 그 생각을 못했습니다. 자책이 되는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범상한 표정으로 웃으시였다.

차영환이 다시 말했다

《정숙동지가 그처럼 왼심을 써주시는데 그 사람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의 치마폭에 감겨돌아가지나 않는지.

《일을 잘한답니다. 영환동무가 추천한 사람인데 어련하겠습니까.》

그렇게 믿고싶으시였다. 설사 직무수행에 결함이 있더라도 그의 친우앞에서 그대로 말할수 없는것이다.

차영환은 인차 돌아갔다.

김정숙동지는 다시 일손을 잡으시였다. 물에 잠근 빨래감에 고루 비누칠을 하시였다. 장군님과 아드님의 옷을 빠는 일은 다른 일손을 잡았을 때와는 다른 감정을 불러온다. 안해로서, 어머니로서 보통 단란한 가정의 주부들이 흔히 느끼게 되는 행복감이 가슴에 젖어들었다. 힘겨운줄 모르고 즐거움이 앞선다. 알심있게 문지르는 빨래에서 흰 거품이 솟아올랐다. 한껏 부푼 거품방울에 령롱한 무지개빛이 반짝이였다.

자제분께서는 아침에 집을 나가시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동네아이들과 군사놀이를 하실것이다. 집안은 조용했다.

(어떻게 하면 장군님의 건군사업을 좀더 도와드릴수 있을가? )

빨래를 계속하며 언제나 머리속을 지배하는 그 생각을 떠올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최근에 중앙보안간부학교사업을 특별히 관심하고계신다. 갓 창립된 그 학교는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않았다. 평양학원이 창립될 때에는 책임일군들은 물론 반장과 조장들까지 항일투사들이였다. 하지만 중앙보안간부학교 교직원구성은 복잡했다. 항일투사들은 새로 조직되는 보안간부훈련대대부와 보안간부훈련소, 수상보안대와 확장되는 철도경비대에 파견되여야 했다. 중앙보안간부학교에도 최용진, 김경석, 박성철을 비롯한 항일투사들이 있지만 태반이 해외와 국내에서 다양한 투쟁경력을 가진 사람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함께 싸운 투사들보다 되도록 그 사람들을 책임적인 직무에 내세우시였다. 교장직에는 8로군출신의 지휘관이 임명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중앙보안간부학교가 우리 군대의 원종장인것만큼 그곳의 교육사업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여러번 강조하시였다. 그곳의 교육사업이 조금이라도 잘되게 도와줄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쉽게 방도를 찾으실수 없었다. 경위대는 곁에 있었고 자신께서 경위대 당조직의 한 당원이였기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중앙보안간부학교는 멀리 떨어져있다. 그곳의 사업에 나서실 명분도 없었다. 마음은 안타깝지만 어찌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으시였다.

여러가지로 생각을 굴리시던 끝에 군관가족들과의 사업을 돕기로 결심하시였다. 군관가족들의 당조직과 녀맹조직은 김성옥이 책임지고있었다. 평양학원에서 이미 경험을 쌓은 그보다 나은 적임자가 없었다. 성옥은 두달전에 중앙보안간부학교가 자리잡은 대안리로 이사를 하였다. 다정한 옛전우인 그와는 허물없고 기탄없이 모든 사업을 의논할수 있었다. 가정은 사회의 한 세포이다. 가정생활의 연장선우에 사회생활이 있다. 가정생활이 불행한 사람은 사회생활에서도 지장을 받기마련이다. 다른 가정부인들과 달리 군관의 안해들은 사상적각오가 높아야 했다. 엄격한 규를과 제정된 질서를 지켜야 하는 군인은 사회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가정생활과 안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그 표현에서 제한적이다. 전투임무수행과정에는 서슴없이 생명도 바쳐야 한다. 군관의 안해들은 그러한 남편을 긍지롭게 여겨야 하며 열렬한 사랑으로 남편의 사업을 뒤받침해야 한다. 전선으로 떠나는 남편을 눈물 대신 락관의 미소로 배웅할줄 알아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남편과 한전호속에서 싸워야 한다. 군관의 안해는 비록 군복은 입지 않았지만 마음은 군인이여야 한다. 그들이 어떤 각오로 어떻게 생활을 하는가에 따라 부대의 전투력이 적지 않게 좌우된다고 할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그후 군관의 안해들을 위해 부엌세간들을 적지 않게 마련하시였다. 시장에서 사오기도 하셨고 조업을 시작한 요업공장에 찾아가 호소도 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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