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53 회)

 

16. 송악에서 사라지다

3

 

다음날 왕유는 왕건에게 하직인사 겸 마지막조언을 주는 편지를 남겨놓고 송악도성을 떠나갔다.

등에 진것도, 손에 든것도 없이 도포 한겹 걸친 단출한 홀몸으로 올때처럼 조용히 가버린것이였다.

왕건은 나리로부터 왕유가 도성을 떠나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소식을 받고 아차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두무릎을 꺾으며 주저앉았다.

한동안 망연자실한채 굳어져있던 왕건은 이윽하여 몸수습을 하며 나리가 내여미는 왕유의 편지를 펼쳐들었다.

《존귀하신 페하께 하직인사 겸 몇자 적어올리나이다.

그간에 페하의 덕망에 감격하고 성은에 감사한 마음 이루 말로 다할수 없고 여한없는 생을 보냈사와 신하의 도리를 다함에 미흡한 구석이 너무도 많았음을 거듭거듭 부끄럽게 자책하면서 심성이 하 고약하야 떠나가는 마지막하직인사에조차 한마디 간언을 보탬하려 하오니 용서하시오이다.

페하께옵선 하늘의 도움을 받으시여 충신이 많은 복을 누리신탓에 겨레를 하나로 모으는 만고에 다시없을 성스러운 대업을 끝끝내 이루시와 그 영광이 하늘끝, 땅끝에 광휘롭게 빛을 뿌리고있사옵니다.

충신이 많은것은 임금이 현명하기때문이오라 임금의 덕망이 나날이 넉넉하와 충신도 나날이 늘어갈것이로되 고려의 부흥은 천수, 만만수에 이를것이오이다.

상고해보건대 단군시조의 슬하에 신지와 주인, 고시 같은 지혜로운 신하들이 있어 동방에 겨레의 첫 나라를 일떠세울수 있었고 동명성제의 슬하에 오이, 마리, 협보, 부분노, 무골 같은 신하들이 있어 고구려의 첫걸음이 순조로이 시작되였으며 이후에 을파소와 창조리, 명림답부 같은 신하들이 백성들과 더불어 왕조를 사심없이 받들어 고구려의 천년강국이 세세년년 존재해올수 있었음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력사의 사실이옵나이다.

단군시조와 동명성제의 뜻을 따라 오늘은 페하께옵서 그 이름 고려라 칭한 나라의 큰 지붕아래 겨레를 또다시 품어안아올렸사와 이 긍지로운 대업을 이루는 과정에 배출된 페하의 신하들은 또 얼마나 많은것이오이니까. 고려국창업공신으로 꼽히는 홍유, 배현경, 복지겸, 신숭겸은 말할것도 없고 유금필, 박술희 같은 맹장들과 최응, 최언위, 최지몽 같은 지혜로운 문신들이 있어 페하의 지략과 성덕이 더더욱 빛을 낼수 있었음은 현실이 증명하는 사실이 아니겠소이까. 이들은 페하를 믿고 따름에 그 순결무구함이 하나같은 충신들이라 소신은 이것이 하늘이 페하께 내린 신하복이라 감히 일컫는바이로소이다.

저같은 신하는 마음으로는 페하를 받든다 하였사오나 시작부터 끝까지 페하의 노여움만 돋구기가 례사였으니 충신은커녕 악신으로밖에 달리 평가할수 없는 존재였소이다.

하지만 력사에는 어진 신하들만으로는 일이 다되는 법이 없사옵고 소신같은 모난 신하도 있어 임금이 가끔 가다 매운 소리를 더러 들음에 결코 해롭지만은 아닌 사실을 기록하고있사옵나이다. 감히 페하와 견주기에는 당치도 않은 인물이옵니다만은 백제를 마감한 의자왕만 놓고보더라도 옥에 갇히고 목이 잘리우면서도 진언을 멈추지 않은 대신 성층의 조언을 단 한번만이라도 귀기울여 들었더라면 망국의 수치까지는 겪지 않았을것이로소이다.

지금 우리 고려의 정사가 그와 같지 않을뿐더러 승승장구하여 거침없이 나가는 실상이므로 때아닌 위기타령이 가을뻐꾸기소리같이 황당한감은 있사오나 순조로이 몰아가는 배우에도 왕청같이 배사공을 갈아대자고 나서는 놈팽이가 부지불식간에 튀여나올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경계해야 할것이로소이다.

거듭해서 간하거니와 간신, 역신은 평백성들속에서가 아니오라 충신이라 자처하는 무리속에서, 페하의 가까이에서 나온다는것을 잊지 말기 바라나이다. 왕규를 내놓고 지목하는바이오이다.

이것이 페하를 마지막으로 노엽히는 소신의 조언이오이다.

페하와 태자분의 강녕을 다시한번 축수드리오며 내 나라 통일고려가 천세, 천만세로 부흥번영하기를 바라오면서 페하의 성씨를 하사받은 왕유 이마를 조아려 삼가 절을 올리나이다.》

편지를 다 읽고난 왕건은 신음소리를 내였다.

《내 한쪽팔이 떨어져나가는듯 아프구나, 아!…》

《이제라도… 다시 찾아뫼셔오리까?》

나리가 행여나 하여 떠듬떠듬 청을 드려보았으나 왕건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그는 갈 때가 되면 제스스로 가겠노라 이미전에 나에게 말하였느니라. 할일을 다하였으니 여한이 없이 간것이다. 그는 자기 존재를 알리는것조차 꺼린 사람이니라.》

왕건은 명예나 재물따위엔 곁눈도 팔지 않고 오직 하나 고려의 통일과 부흥만을 바라고 전념해온 왕유의 곧은 인생길을 다시한번 돌이켜보며 그를 추억하였다. 그럴수록 그와 함께 있을 때 그의 조언을 좀 더 기꺼이 들어주지 못한것이 가슴에 걸려 후회를 거듭했다.

왕유가 그토록 경계하였던 왕규라는 존재가 이후에 2대임금 왕무(혜종)를 수시로 위협하다가 3대임금 왕요(정종)를 암살(자기 외손자를 왕위에 올려앉히려고)하려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사실을 왕건이 알았더라면 왕유의 선견지명을 두고 얼마나 감탄하였을것인가?!

하지만 그 일은 왕건의 사후에 벌어진 일이였다.

왕유는 임금의 말이라면 덮어놓고 따른 량신 즉 어진 신하가 아니라 임금이 아파하건 거슬려하건 제 소견을 숨기지 않고 바른소리를 해가며 따른, 임금을 돕는 일이라면 욕을 먹으면서도 하고야만 자칭 각신(모난신하)이였다.

력사는 이런 사람을 충신중의 충신, 진짜 충의지신이라는것을 엄정히 평가하고있다.

고려6대임금 왕치(성종)는 태조 왕건의 릉을 보수하면서 왕유를 배향공신의 반렬에 세워주었다. (《고려사》 렬전)

고려의 통일과 부흥에 있는 힘껏 이바지한 왕유의 공적을 응당하게 평가하고 기록에 남겨준것이였다.

왕유는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그는 자기 존재를 숨기려 하였으나 력사는 그의 이름과 모습을 비석에 새기고 석상으로 다듬어 세상에 알려지게 하였다.

오늘도 왕유는 웅장하게 개건확장된 왕건릉의 충신석상반렬에 우뚝 서서 겨레를 하나로 모으는데 이바지한 당대인물들의 하많은 이야기를 두고두고 전해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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