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4 장

1

 

(2)

 

김정숙동지께서는 더 캐여묻지 않으시였다. 후에 원명철이를 만나면 어찌된 사연인가를 알수 있을것이다.

《할아버지, 우리 집에 가서 점심을 나눕시다.》

점심때가 되여오고있었다. 평양학원개원식날 이 로인을 통하여 력사의 교훈을 안고 정규군건설을 지지하는 우리 인민의 지향을 뜨겁게 느끼시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녕 그냥 보내고싶지 않으셨다.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제가 감히 어떻게…》

《별로 대접해드릴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 가십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로인의 팔굽을 잡아이끄시였다.

로인은 황송한 기색으로 따라섰다.

《하, 내 오늘 뜻하지 않게 영광스러운 걸음을 하나봅니다.》

푸른 하늘을 우러러 혼자말로 되뇌이는 그의 얼굴에 격동된 빛이 흘렀다. 녀사의 손님으로 장군님의 저택에 들어서게 된다는 사실이 그를 흥분시켰다.

응접실에 자리를 정하고 앉은 로인은 조끼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꺼냈다.

《녀사님앞에서 내가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실은 이 편지때문에 서포에서 성안으로 단숨에 왔댔습니다. 이걸 좀 봐주소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의아한 표정으로 편지를 받으시였다. 겉봉을 보시니 명철이가 박송금이라는 처녀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박송금이란 그 녀석 약혼녀올시다. 그런데 그놈이 글쎄 그런 편지를…》

로인은 마라초를 피워물고 코로 연기를 길게 내불었다. 그 편지가 여지없이 격분을 폭발시킨 모양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녁이 터져있는 봉투에서 속지를 뽑아드시였다.

《송금동무.

여러가지로 깊이 생각을 굴리던 끝에 이 편지를 쓰오. 봉건유습이 짙은 량쪽 할아버지들이 철도 들기전에 우리들사이에 혼약을 맺어놓은것은 불행한 페단이였소. 얼마전에 남녀평등권법령이 발포되였으니 다시는 조혼이나 매혼과 같은 봉건유습이 더는 남아있지 않을거요.

할아버지들이 혼약을 맺어놓은탓으로 어릴적에 동네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오. 아마 동무도 그럴거요. 사랑의 자유를 누릴수 있는 민주의 새세상이 왔소. 오늘에 와서 우리가 짝을 뭇는다면 민주방망이로 타도를 먹여야 할 낡은 페습을 따르는것으로 되오. 남녀평등권법령에도 심히 어긋나는 처사라고 생각하오. 나는 경위대의 군관이기때문에 일제잔재와 봉건잔재를 숙청하는데 앞장에 서야 할 사람이요. 동무도 마을에서 민청위원장을 하니까 그런 각오가 되여있으리라고 믿소. 우리들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강요된 혼약은 깨끗이 없었던것으로 합시다. 량쪽 할아버지들이 펄쩍 뛸테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봉건의 희생물이 될수는 없소. 나를 깨끗이 잊어주시오. 부디 건강하기를 바라오. 본인의 마음에 드는 신랑감을 골라 행복하기를 축원하오.

                                                       원명철.》

김정숙동지께서는 편지를 말없이 로인에게 돌려주시였다. 사연이 짐작되시였다.

로인이 침묵을 깨쳤다.

《아무리 눈을 씻고 훑어보아도 남녀평등권법령에 조혼을 했던 사람들이 모조리 파혼을 해야 한다는 조목은 없었소이다. 그런데 언감 그 자식이 그 법령을 거들어 그따위 수작질을 하지 않았겠소이까. 오늘 아침에 송금이 할아버지가 그 편지를 들고와서 이럴수가 있는가고 합디다. 편지를 보니 나도 어찌나 결이 나던지 아침밥을 다 설때렸소이다. 당장 손자녀석한테서 토설을 받아내려고 집을 나섰지요. 두번다시 그 녀석 입에서 파혼소리가 나오면 주리대를 안기려고 단단히 잡도리를 했댔는데 그만 녀사님을 만나게 되였소이다.》

《그 편지를 받고 처녀는 어찌했답니까?》

《끼식을 번지면서 줄줄이 눈물을 쏟고있답니다. 나도 그래 본인도 그래, 송금이는 우리 집사람이 다 된것으로 알고있지요. 동네에서도 그렇고.

이제 이 늙은것이 무슨 낯으로 머리를 쳐들고 다니겠습니까. 그 괘씸한 녀석때문에…》

《명철동무는 여태껏 처녀에게 정을 주지 않았댔습니까?》

《편지에 쓴것처럼 어릴 때에는 부끄럼을 타면서 외면을 했지요. 그러나 커서는 과히 싫어하는 눈치가 아니였수다. 민청회의랑 함께 섭쓸려다녔지요. 그것들이 달밤에 만나는것도 내 눈에 몇번 띄웠지요. 정분이 나지 않았으면야 그럴리가 없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평양학원으로 돌아오는 원명철에게 처녀가 고추장단지를 지워보냈던 사실을 상기하시였다. 로인의 말은 사실이였다. 그들은 한때 사랑한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명철은 왜 그런 편지를 썼을가. 남녀평등권법령에 대해 편협한 리해를 가지고 단순히 낡은 유습에 반기를 들려는것일가. 아니면 명철의 마음이 변한것일가.

로인이 말했다.

《학원을 졸업하고 군관이 되더니 딴꿈을 꾸는겁니다. 내 짐작이 틀림없수다. 시내에서 향내가 펄펄 나는 처녀들을 보니 이마밑에 박혔던 눈이 뒤꼭대기로 옮겨갔수다. 아무래도 내 왔던김에 그녀석의 진속을 뽑아보고 가야 할것 같쉐다.》

로인의 짐작은 사실일수 있었다.

《명철동무의 문제는 저한테 맡겨주시는것이 어떻겠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심히 의견을 내비치시였다. 로인이 다시 손자를 불러내여 닥달을 한다면 그 대찬 성미에 지나친 일이 벌어질수 있었다.

《녀사께서 일을 바로잡아주신다면야… 그녀석이 녀사앞에서는 속심을 헤쳐보일거웨다. 다른 사람앞에서라면 몰라두.》

로인은 시름을 놓은듯이 기뻐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점심상을 차리시였다. 있는대로 잡곡이 섞인 밥과 고추장, 부루와 풋마늘이 상에 올랐다. 평소에 저택에서 잡수시는것 그대로였다.

《변변치 않지만 많이 잡수십시오.》

친절히 마주앉아 로인이 수저를 들도록 권하시였다. 그러나 로인은 생각깊은 표정으로 밥술을 들지 않았다.

《어서 드십시오.》

《녀사님, 아니할 말로 댁의 밥상이 이렇게 우리 농군들의 밥상과 조금도 다름이 없을줄은 몰랐습니다. 오히려 우리 집에는 거두어들인 감자도 고간에 그득하고 지붕에 호박이 주렁주렁 달려서 이즈막에는 댁에서보다 식찬이 많다고 할수 있쉐다. 이렇게도 간소하다니. 내 불원간 감자며 호박을 한달구지 실어다 드리리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없습니다. 정 싣고오시겠으면 손자가 있는 경위대에 가져다주십시오.》

최근에 경위대의 인원이 불어나서 그곳의 부식물사정이 어려웠다.

《댁에도 실어오고 경위대에도 주겠습니다. 한데 올 때 송금이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러니 녀사께서 명철이녀석의 마음이 돌아서도록 잘 조처해주십시오.》

난처한 당부여서 대답을 못하시였다. 본인을 만나서 구체적으로 사연을 알아보고 타이르기는 하겠지만 그 결과를 확답할수 없으시였다. 남녀간의 사랑을 강요할 3자의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었다.

로인은 점심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정히 보관해두셨던 빨찌산시절의 군복을 꺼내입으시였다. 허리에 혁띠를 띠고 권총을 차시였다. 경위대에 첫 출근을 하실 작정이시였다. 거울앞에서 군모도 바로잡으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시였다. 흘러간 빨찌산의 옛시절로 되돌아가시는듯 한 감정으로 가슴이 설레이시였다. 경위대의 상학전 아침일과가 끝난 다음에 어느 구분대의 사격훈련이나 전술훈련을 돌봐주시려고 생각하시였다.

거울앞에서 물러나 시계를 보시였다. 아직 여유가 있었다. 이 시각에 경위대에서는 상학검열이 시작될것이다.

전화종이 울렸다. 강상호가 걸어온 전화였다.

《정숙동지, 빨리 경위대로 와주십시오.》

어지간히 흥분된 목소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나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이야 상학검열시간이 아닙니까. 무슨 일로 급히 찾습니까?》

《사연은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급히 나와주십시오.》

전화가 끝났다. 도대체 경위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가? 무엇인가 뜻밖의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긴장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서둘러 저택을 나서시였다.

경위대의 운동장에는 전대오가 정렬해있었다. 정문에는 강상호가 나와있었다. 그의 낯색을 살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놀라시였다. 전화를 할 때의 흥분된 목소리와는 달리 빙긋이 웃고있었던것이다.

《어찌된 일이예요?》

《우리는 정숙동지에게 드린 당적분공을 전대오에 선포하려고 합니다. 어서 대오앞으로 갑시다. 미리 알려주면 정숙동지가 사양하며 오시지 않을것이 뻔하기때문에 무작정 급히 찾았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난감한 기색으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하시였다. 일이 이렇게 크게 번져질줄은 모르시였다. 소문없이 조용히 경위대의 사업을 더 적극 도와주려고 하시였던것이다.

《자, 어서 가십시다.》

강상호가 이끌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하는수없이 대오앞으로 나가 지휘관들과 나란히 서시였다. 아니 설 자리에 선것처럼 마음이 옹색하여서 내처 머리를 숙이고계시였다.

세포위원장이 앞으로 나섰다.

《상학검열시간을 통하여 모든 군관, 병사들에게 한가지 경사로운 사실을 알려주겠습니다. 경위대 당세포위원회는 본인의 절절한 소망에 따라 우리 당조직의 한 성원인 김정숙동지께 부대의 정치군사훈련을 비롯한 제반사업을 방조할것을 당적분공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렇다는것을 알고 모든 군관, 병사들은 이제부터 김정숙동지의 가르치심을 성근히 따르면서 군사정치훈련을 더욱 잘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그는 김정숙동지에게 청을 드렸다.

《우리 동무들에게 한말씀 하여주십시오.》

김정숙동지께서는 화끈 날아오르는 얼굴을 숙이고 그냥 서계시였다. 소개가 너무 요란스럽다고 생각되여서 선뜻 나서기가 주저되시였다.

눈치를 보던 강상호가 대오를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이제 김정숙동지로부터 인사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대오에서 우렁찬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이쯤되고보니 그냥 있을수가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선자리에서 자신에게 쏠리는 빛나는 시선들을 의식하며 고개를 드시였다.

《군관, 병사동지들, 안녕하십니까.》

퍼그나 유정한 어조로 첫인사를 보내시였다. 둘러보시는 대오의 모든 군인들이 친근하게 안겨왔던것이다. 그들과 같은 당세포에서 생활하시기때문만이 아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신변안전을 위해 지금껏 그들과 한대오에 서오신 생활적뉴대감이 새삼스레 북받치시였다.

《나는 동무들과 꼭같은 장군님의 전사입니다. 동무들과 함께 장군님을 철저히 호위하고 더 잘 받들어 모시려는 마음으로 당세포에 자기의 소망을 제기했던것입니다. 그런데 방금 소개된것처럼 그 무슨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배우고 의논을 하면서 힘이 닿는껏 도와드리고싶어서였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정규군건설이 본격적인 단계에서 추진되고있습니다. 경위대는 새로 조직되는 모든 부대들의 본보기가 되여야 할것입니다.

나는 경위대가 우리 군대의 본보기로 떳떳이 나설수 있도록 하는데 이바지할 결심입니다. 우리모두 뜻을 합치고 지혜를 합쳐서 정치사상생활과 군사훈련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봅시다.》

담담한 어조로 말씀을 마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대오를 향해 거수경례를 보내시였다. 대오는 뢰성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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