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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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찬란한 해빛이 한껏 열기를 품고 쏟아져내렸다. 바람기가 없는 공간은 지글지글하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달리는 화물자동차의 적재함에 앉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별로 더위를 느끼지 않으시였다. 얼굴을 스치는 대기가 시원한 촉감을 주었다. 자동차에는 손수 가꾸신 여러가지 남새가 가득 실렸다.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린것이 어제같은데 어느새 무성하게 자라서 수확을 했다. 그것을 평양학원 학생들에게 가져다주려고 떠나신 걸음이였다. 옆자리에는 김명화가 앉았다. 씨를 뿌리던 날 찾아와서 사연을 들었던 그도 집에 돌아가서 터전을 뚜지였다. 그가 가꾼 남새까지 합치고보니 한차분이 넉넉했다. 평양을 떠날 때 서로 운전칸에 앉으라고 싱갱이를 벌리던 끝에 함께 적재함에 올랐다. 그와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며 전야를 바라보시는 즐거움도 크시였다. 길옆으로 펼쳐진 논에서는 초벌김매기가 한창이였다. 모살이가 끝난 논판은 푸른 주단을 련상시켰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제초기를 힘있게 밀고가는 농민들의 얼굴마다에는 행복의 웃음꽃이 피였을것이다. 분여받은 자기의 땅에서 처음으로 김을 매여보는 그들은 힘겨움을 모르고 로동의 희열만을 느낄것이다.

김명화가 그윽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정숙동무 본을 따서 제손으로 남새라도 얼마간 가꾸어가지고 이렇게 학원을 찾아가게 되니 마음이 즐거워. 학원에 나가 수고를 하는 옛전우들이 보고싶었지만 어떻게 빈손으로야 찾아가겠나.》

《경옥이랑 무척 반가워할거예요. 남동무들도 그렇고.》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을 모시고 학원에 여러번 나가보셨지만 김명화는 오늘이 처음이였다.

《중앙보안간부학교가 서게 되면서 평양학원 간부들이 일부 그리로 조동되였다지?》

《그래요. 최용진동지는 중앙보안간부학교 군사부교장으로 임명되였어요. 반장과 조장을 하던 몇몇 동무들도 그리로 갔대요.》

《그럼 성옥이랑은 못 만나겠군. 내 걸음이 한발 늦었나봐. 진작 뭘 좀 마련해가지고 학원엘 나가봐야 하는것이였어.》

김명화는 이번 걸음에 만나고싶은 전우들을 다 만나지 못하는게 저으기 아쉬운 모양이다.

자동차가 학원에 도착했다.

정문에 후방부원장이 나와있었다.

반가운 인사가 오고갔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이렇게 나왔어요?》

김정숙동지께서 후방부원장에게 물으시였다. 크게 소문을 낼 일이 아니여서 조용히 떠나셨던것이다.

《강상호동무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후방부원장은 갖가지 남새가 가득한 적재함을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정숙동무가 남새까지 가져왔다는걸 알면 모두 감격해할겁니다.》

《뭘 그렇게까지… 명화어머니가 가꾼 남새도 함께 싣고왔어요.》

이때 느닷없이 녀자의 부름소리가 울리였다.

《정숙동무, 명화어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쪽으로 머리를 돌리시였다. 김성옥이 허둥지둥 달려오고있었다. 뜻밖이였다. 남편을 따라 중앙보안간부학교로 간줄로 알았는데 그가 아직 여기에 있었다.

다가온 김성옥은 김정숙동지와 김명화의 손을 잡고 오래도록 놓을줄 몰랐다.

《여기로 오면서도 용진동지나 성옥동무는 만나지 못할줄 알았는데 어찌된 일인가?》

김명화가 물었다.

《중앙보안간부학교에는 미처 사택이 마련되지 않아서 그냥 여기 남아있어요.》

《그럼 리다동무도 아직 여기 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 성옥에게 물으시였다. 처음 학원에 배치되였던 한동훈도 중앙보안간부학교로 소환되였다는것을 알고계시였던것이다. 그들부부를 두고 늘 마음을 써오셨는데 오늘 리다를 만날수 있다면 참으로 반가운 일이였다. 그들이 여기로 온 후로는 아직 만나지 못하시였다.

《리다는 남편이 소환되는 날로 따라갔어요.》

《사택이 없다면서?》

《용진동무가 그 사람네 사택만은 특별히 마련해주었나봐요. 여기와서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리다는 남편과 떨어져서는 하루도 못사는 녀자로 소문이 났어요. 글쎄 저녁마다 사무실앞에 와서 기다리다가 퇴근을 하는 남편의 팔을 끼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군 했어요. 그런걸 보아왔으니까 누구보다 그들에게 먼저 집을 해결해주었지요.》

《쏘련에서 자란 그들이니까 우리와는 생활풍습이 다를수밖에 없지요. 남편에게 지극한거야 좋은 일이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빙긋이 웃으시였다.

《아무리 쏘련에서 자랐어도 리다는 조선녀자가 분명한데 물에 뜬 기름방울처럼 우리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어요.》

《용진동지가 그들의 집부터 해결해준건 잘한 일이예요. 성옥동무도 대안리에 가면 그들의 생활을 잘 돌봐주어요.》

학생들이 여러명 나타나서 후방부원장의 지휘밑에 남새를 부리우기 시작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김명화와 함께 지휘부로 향하시였다. 조정철과 심태산을 비롯한 옛 전우들을 만나셔야 했다. 심태산은 얼마전부터 최용진의 후임으로 일하고있었다.

성옥은 집으로 향했다. 헤여지면서 성옥은 간절히 말했다.

《오늘 점심식사는 모두 우리 집에서 하자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웃음으로 수긍하시였다. 오붓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옛시절의 추억담을 나눈다면 참으로 즐거울것이다.

운동장에서는 학생들의 훈련이 한창이였다. 남학생들은 대렬훈련을 하고 녀학생들은 집총훈련을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을 유심히 살피시였다. 2기생으로 입학을 한 인복이나 홍구가 혹시 그들중에 있지 않는지.그들이 보고싶으셨으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실내상학을 하는 모양이다.

지휘부청사는 운동장 맞은편에 있었다. 김정숙동지에게는 눈익은 건물이였다. 김명화를 데리고 조정철의 사무실부터 찾으시였다. 문앞에 다가서시였을 때 방안에서 챙챙한 녀자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학원학생들중에서 다시는 이런 비행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주길 바랍니다.》

남자의 무거운 응대가 뒤따랐다.

《우리가 학생교양을 잘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나봅니다.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귀에 익은 조정철의 목소리였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방안에 있던 녀인이 밖으로 나왔다. 은초사적삼에 명주치마를 입은 중년녀인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와 어기며 열려진 출입문으로 들어가시였다. 김명화가 뒤따랐다.

방안에는 조정철과 심태산이 앉아있었다. 당조직책임자와 행정부책임자가 동시에 녀인을 만난것으로 보아 제기된 학생문제가 심각한 사연인듯싶었다. 방안에는 침울한 공기가 떠돌았다. 책상우에 시선을 떨구고 무거운 생각에 잠겼던 그들은 이쪽을 알아보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어떻게?!…》

그들의 얼굴에 드리웠던 그늘이 순간에 가셔지며 밝은 기색이 떠올랐다.

《어떻게라니… 동무들이 보고싶어 왔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반가움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모두 잘들 있었나?》

김명화는 그들을 번갈아보며 눈을 슴벅이였다. 항일전의 나날에 손아래동생처럼 정을 기울였던 두사람이였다.

조정철이 걸상을 권했다. 김명화가 앉기를 기다리며 뒤따라 자리에 앉으신 김정숙동지께서 조정철과 심태산을 일별하며 물으시였다.

《방금 이 방에 왔던 녀인은 누굽니까?》

《남포시녀맹에서 온 녀자였습니다. 한 학생의 비행을 신소하려고 왔댔습니다. 어제 일요일에 한 학생이 무단외출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 시간 탈영을 한것만도 묵인할수가 없어서 영창에 걷어넣었지요. 그런데 방금 왔던 그 녀자의 말을 들어보니 사태는 더 엄중합니다. 백주에 남포시내 어느집 안방에 달려들어 처녀를 희롱하려고 접어들었다는군요. 말리는 처녀의 부모들에게 행패질을 했는데 아버지는 쇄골을 상하고 어머니는 팔을 상했답니다. 그래서 시녀맹에서 우리한테 항의하러 왔댔습니다.》

조정철이 대답했다. 상봉의 기쁨에 그늘을 드리우지 않으려고 웃음진 얼굴로 말을 했으나 어쩔수없이 그 학생에 대한 의분과 안타까움이 내비치였다. 학원의 정치사업을 보는 그로서는 학생의 비행을 두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것이다.

《모처럼 찾아온 날에 기분나쁜 일이 생겨서 미안합니다. 우리가 일을 쓰게 하지 못한탓이지요.》

심태산이 유감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어떤 학생이길래 그따위짓을 하였나?》

김명화가 물었다.

조정철과 심태산은 동시에 김정숙동지를 바라보더니 시선을 떨구며 침묵했다. 그이앞에서 차마 터놓기를 주저하는 기색이 분명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머리속을 스치는 날카로운 예감을 느끼시였다. 설마 그럴수가 있을가? 한순간의 침묵끝에 나직이 물으시였다.

《혹시 김홍구동무가 아닌가요?》

《실은 그 동무입니다.》

심태산이 대답했다. 그와 조정철은 장군님을 모시고 합숙에서 생활할 때 홍구를 알게 되였고 김정숙동지께서 친히 그를 학원에 보내신 사실을 알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세찬 충격에 금시 억이 막히는듯 하시였다. 어질고 순박하던 홍구가 과연 그럴수 있을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아니땐 굴뚝에서 연기 날리는 없는것이다. 그를 깨우쳐주고 이끌어주시던 나날들이 되새겨지셨다. 안타까움과 함께 원망이 솟구쳐오르시였다.

《누가 그 동무를 만나봤습니까?》

《어제 저녁 내가 만났댔습니다. 왜 무단외출을 여러 시간 했는가고 따지니까 그저 잘못했다는 외마디 대답뿐이였습니다. 방금전에 사연을 듣고서야 우리도 흉심을 품고 탈영을 했다는걸 알았습니다.》

심태산이 대답했다.

《이거 어떻게 처리를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조정철이 김정숙동지를 바라보며 난색을 지었다. 그 처리가 난감하다는 뜻이였다.

《사실이 그렇다면 용서할수 없습니다. 학원의 규정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상봉의 기쁨만이 넘쳐야 할 이 장소에 홍구문제로 하여 무거운 공기가 떠돌다보니 누구나 말못할 괴로운 심정이였다.

《내가 그를 만나면 안될가요?》

김정숙동지께서 침묵을 깨치시였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정숙동지앞에서는 그가 숨김없이 진실을 말할것입니다.》

심태산은 위병소에 전화를 걸어서 보초장을 불렀다. 그리고는 김정숙동지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내가 함께 갔으면 좋겠지만 곁에 딴 사람이 있으면 그가 속심을 터놓지 않을수 있습니다. 이제 보초장이 오는데 그 동무가 안내해드릴겁니다.》

보초장은 5분도 못되여 사무실에 나타났다 .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를 따라 사무실을 나서시였다.

위병소에서 조금 떨어진 영창은 말이 영창이지 창고 비슷한 림시건물이였다. 그런대로 주변에 울타리를 두르고 보초도 서있어서 제법 엄엄한 군기를 느끼게 하였다.

보초장은 쪽걸상 두개가 낡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놓여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책상우에 펜과 잉크병이 갖추어져있는것으로 미루어 규률위반자들이 영창처벌을 받으면서 비판서를 쓰거나 담화를 하는 방이라는것이 명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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