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 3 장

9

 

(1)

 

퍼져오는 아침해살이 저택의 창가에 비껴들었다. 방안으로 흘러드는 해살의 한끝이 닿는 탁자우에서 전화기가 종을 울리였다.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일손을 멈추고 방안으로 올라오시였다. 물기어린 손을 행주치마로 훔치고 수화기를 드시였다.

김정숙이 전화받습니다.》

《제 차영환입니다. 그새 안녕하셨습니까.》

《아니, 영환동무가 어떻게?!

오래간만에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귀익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시니 무등 반가왔다.

《지금 장군님께서 댁에 계십니까?》

《지방에 나가셨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이여서 저택에 찾아가 장군님과 정숙동지에게 인사를 올리려고 했는데 장군님께서 안계시누만요.

말끝에 뒤따르는 가벼운 한숨소리가 들리였다. 무척 아쉬워하는듯 했다.

《새삼스레 인사는 무슨 인사를 한다고 그러세요?》

차영환의 말을 대중할수가 없어서 반문하시였다.

《순실동무가 얼마전에 청진에서 아들애를 데리고 올라왔습니다.》

차영환은 약간 쑥스러워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반가운 예감에 사로잡히며 뒤를 재촉하시였다.

《그래서 새 가정을 꾸렸습니다.》

《나도 모르게 벼락잔치를 했어요?》

김정숙동지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홀애비와 과부가 만났는데 잔치는 무슨 잔치를 하겠습니까. 소문없이 살림을 폈는데 아무래도 장군님과 정숙동지에게만은 인사를 올려야 하겠기에 오늘 찾아뵙자고 생각했습니다.》

《축하해요. 어서 오세요.》

《저는 래일 아침 장기출장을 떠나야 합니다. 장군님께는 후에 다시 인사를 올리기로 하고 이제 곧 가겠습니다.》

전화가 끝났다.

그들이 결혼을 했단 말인가?!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청진에서 사업하실 때 진작 차영환과 리순실의 인연을 알고계시였다.

어느날 차영환은 화물역 근처에서 석탄덩이를 줏고있는 사내애를 발견했다. 집안의 땔감을 마련하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기껏 대여섯살가량 나보이였다. 그 어린것이 눈바람속에서 손가락을 불어가며 석탄을 줏는 모습은 이를데없이 가긍했다. 차영환은 남다른 련민의 정을 느끼였다. 그는 쏘도전쟁시기에 안해와 아들애를 잃었다. 아들애가 살아있다면 눈앞에 보이는 사내애또래였다. 불현듯 눈앞에 아들애가 방불히 떠올랐다. 저릿해오는 애달픈 가슴을 누르며 사내애한테 물었다.

《넌 부모들이 없느냐?》

《엄마가 있어요.》

《엄마가 있으면서 너한테 이런 일을 시킨단 말이냐?》

목메인 목소리에 의분이 끓었다.

《앓고있어요.》

《아버지는?》

《없어요.》

모든것이 리해되였다. 차영환은 사내애를 도와서 석탄덩이를 담아주었다. 그 애를 통하여 련상되는 아들애의 모습이 눈에 맺혀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낯모를 사내애에 대한 애틋한 정을 불러냈다. 잠간사이에 사내애가 들수 없으리만큼 석탄덩이가 바구니에 담겨졌다.

《아저씨가 들어다주지. 너의 집이 어데냐?》

《학교옆에 있어요.》

시내의 여러 학교들중에서 어느 학교의 근방인지 알수 없었다.

그러나 캐여묻지 않았다. 아이를 따라가면 될것이다. 차영환은 석탄바구니를 들고 자리를 떴다. 다른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석탄가루가 게발린 작은 손이 고드름같이 찼다.

《네 이름이 뭐지?》

《석종남이.》

《종남아,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니?》

《몰라요.》

차영환은 종남이를 따라서 그의 집에 이르렀다. 이웃집 벽체에 덧걸이를 하여서 대충 꾸려진 작은 집이였다. 굴속같이 어둑한 방안에 들어서니 쉬지근한 냄새가 풍겨올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 아저씨가 석탄을 가져왔어.》

종남이가 아래목에 누운 어머니를 흔들었다.

《웬 아저씨란 말이냐?》

녀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차 어둠에 익숙된 차영환이 눈에 병색짙은 녀인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였다. 《누워계십시오. 종남이가 탄바구니를 무거워하길래 들고왔습니다.》

《이렇게 고마울데라구야.》

차영환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신문을 바른 나무궤짝 하나가 뒤구석에 놓였을뿐 아무것도 없었다. 녀인이 덮은 이불은 거죽이 헐어서 희뜩희뜩 솜이 보이였다. 쏘련에서 살았던 그로서는 일제가 조국인민들에게 강요했던 참상을 보는듯 하였다. 해방은 되였으나 인민들의 물질생활에는 지난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무슨 병입니까?》

《모르겠어요. 오한이 나고 뼈마디가 쏘는데…》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는 녀인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이 섬찍할 정도로 수척했다.

《병세가 위급한것 같은데 치료를 잘해야 하겠습니다.》

녀인의 시선이 서서히 차영환을 겨누었다. 무슨 말인가를 하는듯했으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차영환은 저려드는 가슴을 안고 집을 나섰다.

그날 점심시간이였다.

김정숙동지와 함께 식사를 나눈 차영환은 그 녀인의 정상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위급한 환자를 두고 그냥 돌아왔어요?》

사연을 들으신 녀사께서는 차영환을 힐책하시였다.

《오전중으로 추적해야 할 사건이 있었습니다.》

반동들의 암해책동을 추적하는 일은 시간을 다투었다. 설사 시간의 여유가 있더라도 환자가 젊은 녀인인것만큼 차영환이로서는 간호를 하기가 난감했을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의 집위치를 알아가지고 찾아가시였다. 방직공장에 나가서 정치사업을 하시려던 계획을 뒤로 미루시였다. 지난날 여러 지역에서 지하정치공작을 하실 때에도 위급한 환자가 나타나면 그를 구원하는 일부터 하시였다. 정치공작을 인간에 대한 헌신적사랑으로 간주하셨기때문이였다. 녀인의 집에 들어서신 녀사께서는 환자의 머리를 짚어보시였다. 손끝에 불덩이같은 열기가 느껴지셨다. 환자는 그처럼 고열에 시달리는데 머리맡에 놓인 물사발은 살얼음이 갔다. 종남이를 데리고 부엌으로 내려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였다. 갈탄덩이에 인차 불이 당기였다. 하나밖에 없는 작은 가마가 끓기 시작했다. 가져오신 쌀로 미음을 쒀서 이빠진 사발에 담아들고 방안으로 올라가시였다.

《식기전에 어서 좀 잡수세요.》

초들초들 마른 환자의 입술로 미음숟가락을 가져가시였다.

아무런 반응도 없이 멍하니 바라보던 녀인의 눈이 빛을 뿜었다.

동시에 놀라움에 잠긴 가는 목소리가 벙긋거리는 입술사이로 새여나왔다.

《아니, 김녀사님께서!…》

환자는 이쪽을 알아본것이 분명했다.

《나를 어떻게 압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놀라며 웃어보이시였다.

《학교에서 강연을 하실 때 나도…》

보름전에 중학교 강당에서 녀성들에게 강연을 하신적이 있었다. 그날 이 녀인도 참가했던 모양이다. 그는 일어나려고 안깐힘을 썼다.

《그냥 누워있어요.… 그러니 우린 구면이군요.… 어서 드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에게 미음을 권하시였다. 녀인은 눈물과 함께 미음을 목으로 넘기였다. 미음사발을 비우고난 그는 얼마간 원기를 회복하자 스스로 자기 신상의 이야기를 펼치였다. 녀사를 뵈옵고보니 외롭던 자기의 가슴속을 헤쳐보이고싶었던것이다.

리순실의 고향은 원산이였다. 세방살이를 하면서 어물장사로 간신히 밥술이나 먹는 어려운 처지였으나 부모들은 순실이를 소학교에 입학시켰다. 외동딸이기도 했지만 동네에서 령리하다는 평판이 자자했기때문에 기를 쓰고 딸애를 공부시키려 했었다. 순실은 부모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공부를 잘했다. 언제나 학급에서 최우수생이였다. 그런데 졸업을 한해 앞둔 해에 전염병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갔다. 향학열이 높았던 순실은 부모들이 남긴 얼마 안되는 유산을 팔아 학비로 쓰면서 소학교를 졸업했다. 상급학교에 가고싶었으나 더는 학비가 없었다. 적당한 일자리를 구할수도 없었다. 아이보개나 부엌데기쯤은 할수 있었으나 굴욕을 참기 어려웠기때문에 그렇게 밥줄을 달고싶지는 않았다. 힘겹더라도 독자적으로 떳떳이 살고싶었다. 마침 청진시가 번창해지면서 소년들도 공장에 입직을 할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 그의 나이는 열네살이였다. 청진을 향해 북행렬차에 몸을 실었다. 차표를 살 돈이 없어서 도적차를 탔던 그는 려객전무에게 단속되여 렬차에서 쫓겨났다. 같은또래의 소년이 함께 단속되였다. 동해안의 어느 역두에서인지는 후날의 기억에도 없었다. 캄캄한 밤 낯선 고장에 던져진 그들은 서로 마음을 의지했다. 알고보니 소년 역시 자기와 처지도 같았고 청진으로 가는 목적도 같았다. 그들은 이튿날 다시 청진행렬차에 새여들었다. 청진에 온 그들은 소년로동자로 입직을 했다. 순실은 방직공장 견습공으로, 소년은 부두의 가대기군으로 되였다. 렬차에서 맺은 인연으로 그들은 가까이 지냈다. 20대의 성숙기를 맞이하자 잔치도 없이 생활을 폈다. 가난이 무겁게 드리운 움막같은 집에서 신혼생활이 흘러갔으나 부부간의 정은 두터웠다. 그런데 태평양전쟁이 터지면서 남편은 《징병》으로 끌려갔다. 2년전에 남양전선의 어느 섬에서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순실은 절망했다. 만일 커가는 아들애가 없었다면 슬픔을 이기지 못해 바다물에 몸을 던졌을런지 모른다. 애오라지 종남이에게 희망을 걸고 고생스러운 생활을 이어왔다. 해방직후 다른 도시들에도 그러하였지만 농업지대와 멀리 떨어진 북방의 도시 청진에는 식량난이 무섭게 휩쓸었다. 순실은 공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바다가에 나가 미역이나 조개를 건져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바다물은 살을 에일듯이 얼어들었지만 몸을 잠그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다가 한주일전에 탈을 만나 쓰러졌다.

김정숙녀사앞에 자기 인생을 터놓고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리순실은 병색짙은 얼굴에 애젊은 미소를 그리였다.

녀사께서는 눈물겹도록 동정과 련민을 느끼며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이삼일내로 청진에도 식량이 도착합니다. 식량을 실은 렬차들이 떠났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순실동무, 지금은 나라의 형편이 어렵지만 새 생활이 기다리고있어요. 신심과 희망을 가지고 병을 고쳐야 해요. 내가 이제 의사를 불러오겠어요.》

집을 나서신 녀사께서는 가까이에 사는 의사를 데려오시였다.

진찰을 한 의사는 감기가 페염으로 번져졌는데 제때에 손을 쓰지 않아서 병세가 깊어졌다고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후 며칠동안 밤마다 그 집에서 순실을 간호해주시였다. 나날이 차도를 보이던 순실은 마침내 일어설수 있을 정도로 병이 덜리였다.

하루는 녀사께서 차영환과 함께 순실을 찾으시였다.

《아저씨!》

종남이가 차영환의 군복자락에 매달렸다. 한번 만났던 아저씨를 보고 그처럼 반가와하는걸보면 어린것의 순진한 가슴에 차영환은 깊은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순실은 녀사를 반겨맞으면서 차영환에게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을뿐이였다.

《건강이 퍼그나 좋아진것 같습니다.》

차영환에게는 그렇게 병세가 짙었던 녀인이 며칠사이에 그만큼이라도 회복된것이 참으로 놀라왔다.

《녀사님덕분에…》

차영환은 군복주머니를 뒤지더니 있는대로 돈을 꺼내서 종남이에게 주었다.

《종남아, 옷도 사입고 어머니가 잡숫고싶어하는것도 사다드려라.》

사내애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어조에는 애틋한 여운이 울리였다.

《지금 누구나 집살림이 어려운데 그만두세요.》

순실은 아들애의 손에서 돈을 앗아서 도로 주려고 했다. 그러자 차영환의 말없는 얼굴에 노여운 기색이 떠올랐다. 아들애를 련상시켜주는 종남이, 그래서 보내는 아낌없는 동정이 거절을 당하고보니 의분에 가까운 감정이 치밀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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