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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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난히 사람들의 왕래가 번잡한 시장역을 지날 때였다. 한 처녀가 눈길을 아래로 떨구고 마주왔다. 시름에 잠긴듯싶었다. 허름한 차림새부터가 궁상스러운 처지를 말해주고있었다.

처녀가 조심히 곁을 지나는 순간이였다. 머리를 소곳이 숙이여서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륙감이 불러오는 세찬 충격을 느꼈다. 저게 누구인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후둑후둑 뛰는 심장을 달래며 돌아섰다. 두갈래로 땋아서 그 끝을 댕기가 아니라 고무줄토막으로 맨 량태머리, 상큼한 목과 둥실한 어깨… 흔히 보게 되는 처녀들의 뒤모습이였지만 홍구는 거기에서 륙감이 불러일으키는 낯익은 특징을 포착했다.

《저- 처녀동무, 미안하지만 말 좀 물읍시다.》

용기를 내여 말을 걸었다.

처녀는 듣지를 못했는지, 상대를 하기가 싫어서인지 한나름으로 그냥 걸어갔다.

홍구는 몇걸음 다쫓아갔다.

《처녀동무!》

세차게 높뛰는 심장의 박동으로 본의아니게 성난듯 한 거친 목소리가 터져나갔다. 흠칫 놀라며 처녀가 돌아섰다. 겁질린 눈이 이쪽을 피끗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아!》하고 부르짖으며 반쯤 벌려진 입술이 굳어져버렸다.

《춘심이!》

홍구는 목밑으로 뜨거운것이 치밀어서 간신히 불렀다. 처녀가 춘심이라는것을 확인하자 고동치던 심장이 금시 멎는듯 했다. 꿈속에 잠긴듯 한 혼란속에서 잠시 처녀를 지켜보기만 했다. 창백했던 처녀의 얼굴에 점차 혈색이 돌면서 두눈에 물기가 어렸다.

《홍구!》

처녀의 입밖으로 가늘게 새여나오는 부름소리는 귀에 들리는것이 아니라 심장에 마쳐왔다. 전신에 줄달음치는 뜨거운 피가 홍구를 처녀에게로 떠밀었다. 바투 다가섰다.

《여기서 춘심이를 만날줄이야!》

《아니, 어떻게?!… 군복까지… 입고…》

춘심이는 눈물속에 웃고있었다.

그들은 동갑이였다. 어려서부터 이웃에서 함께 자라며 《춘심아》, 《홍구야》하고 서로를 부르던 동요시절의 습관은 헤여질 때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그래서 성숙된 청춘남녀이지만 이 순간에도 아무런 호칭도 없이 이름만을 불렀다. 꼽아보니 헤여져 6년만이다. 다같이 열아홉살 잡히던 해에 헤여졌다. 작별의 그 기간에 서로의 가슴속에 쌓인 그리움은 얼마이며 겪어야 했던 생활의 풍파는 얼마나 가혹했는지 모른다. 쌓이고쌓인 회포를 나누기에는 길가가 적당치 않았다.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자구.》

처녀는 한순간 망설이더니 가늘게 한숨을 내불며 홍구를 따라섰다.

홍구는 춘심이와 나란히 왼쪽으로 꺾어진 골목길을 걸었다. 어데를 지목하고 걷는지는 스스로도 분명치 않았다. 번잡한 장거리를 피하고싶어서 무작정 골목으로 꺾어들었다. 걸음걸음 잊을수 없는 추억이 밀려와서 누구도 말이 없었다.

철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다정했다. 산나리꽃을 꺾으려고 산에도 함께 오르고 게나 조개를 잡으려고 바다에도 함께 다녔다. 배를 타고 풍랑사나운 바다로 멀리 나간 아버지들을 마중하려고 선창에도 함께 나가군 했다. 춘심이는 구운 감자나 누룽지가 생기면 몽당치마속에 감추어가지고 늘 배가 고파하는 홍구에게 주었다. 어린 나이에도 녀자랍시고 홍구의 너슬너슬하게 해진 옷을 꿰매주기도 했었다. 하기는 일찌기 어머니를 잃고 열두살때부터 집안에서 녀자가 하는 일을 감당해야 했던 춘심이였으니 철이르게 일손이 여물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두 집 부모들은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지냈다. 그랬으니 아이들사이가 친동기처럼 가까왔던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하지만 서로 상대를 전날처럼 순진한 감정으로 대할수 없다는것을 의식할 때가 찾아왔다. 그것이 언제였던가? 다같이 열여덟살이 되는 해의 여름이였다. 홍구와 춘심이는 조개잡이를 나갔다. 썰물이 진 개벌을 따라 멀리 나갔다. 감탕속에 몸을 숨긴 조개를 영낙없이 찾아서 캐여내는 재미는 이를데 없었다. 혼자라면 그렇게 흥겨울수가 없었다. 홍구가 캐여놓은 조개를 춘심이가 자루에 주어담았다. 일손이 맞아서 힘든줄을 몰랐다.

뭍에서 아스무레하게 보이던 작은 섬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낭끝에 소나무 몇그루가 아지를 펼친 섬은 그림같이 아름다왔다. 사람이 살지 않는 그 섬에는 신비의 세계가 있을상싶었다. 썰물진 개벌끝에서 섬까지는 그닥 멀지 않았다. 그들은 후날 매생이를 빌려타고 섬에 가보자고 약속했다. 조개반찬에 꽁보리밥이라도 넉넉히 싸가지고 가서 운치있는 소나무그늘밑에서 서로 나눈다면 그 재미가 오죽하랴. 조개를 캐는 즐거움과 후날의 황홀한 꿈에 도취된 그들은 시간가는줄 몰랐다.

솨- 솨- 세찬 바람소리같은 울림에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밀물이 들이닥치고있었다. 아쉽지만 조개자루를 팽개치고 뭍을 향해 달렸다. 뭍은 아직 멀리 보이는데 썰물이 그들의 몸을 휘감았다. 헤염을 치기 시작했다. 필사적이였다. 여차하면 죽어버릴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홍구는 춘심이더러 자기의 허리띠를 잡고 죽어도 놓지 말라고 했다. 춘심이는 어느새 기력이 진해버려서 혼자서는 헤염을 칠수가 없었다. 하라는대로 하면서 홍구에게 매달려 이끌리였다. 홍구도 점점 힘겨워했다. 춘심은 이러다가는 둘다 죽을수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홍구야, 날 버리고 가.》

춘심은 홍구의 몸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물결이 그를 삼켰다. 홍구는 몇번이나 자맥질을 하던끝에 춘심이의 머리채를 거머쥘수 있었다. 번쩍 물우로 춘심의 머리를 들어올린 홍구는 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어려서부터 뼈대가 굵었던 홍구는 힘이 드세였다. 하지만 성품이 어질다보니 다른 아이들한테 주먹질 한번 하여본 일이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사람을 때렸다. 어떤 감정이 춘심의 얼굴에 손찌검을 하도록 떠밀었는지를 그로서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왜서인지 불쑥 눈물이 솟았다.

그 눈물을 본 춘심은 말없이 홍구의 바지띠를 다시 잡았다. 홍구는 춘심이가 매여달린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떠밀어주는듯이 느껴졌다. 알수 없는 힘을 의식하며 계속 헤염을 쳤다. 마침내 뭍에 이르렀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둔덕에 오르자 밑둥을 잘린듯이 쓰러져버렸다. 극도로 긴장했던 마음의 탕개가 끊어져버렸다. 의식을 잃었는지, 잠에 들었던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달이 떴다. 곁에 쓰러져버린채 아직 눈을 뜨지 못하는 춘심이를 흔들었다.

《정신 차려!》

춘심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홍구는 그를 잔등에 둘쳐업고 집으로 향했다. 얼마간 기력이 회복되였지만 다리가 후들거렸다. 춘심의 따스한 체온과 달큰한 입김을 어렴풋이 느끼며 힘겹게 자욱을 옮겼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어느쪽이나 상대를 대하면 얼굴이 붉어졌다. 전날처럼 무랍없이 대할수가 없었다. 더욱 가까와지기마련인 생활의 계기가 서먹하고 어색한 간격을 파놓은것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였다. 더구나 알수 없는것은 겉으로는 만나기가 거북하고 쑥스러우면서도 가슴속에는 애틋한 그리움이 넘치는것이였다.

그로부터 한해후에 작별이 있었다. 솔가도주를 하던 불행한 그밤에 홍구는 조용히 춘심을 불러내서 손거울 하나를 작별의 기념으로 주었다. 조개를 판 돈으로 춘심에게 주려고 이틀전에 샀던 거울이였다. 이 세상 가장 귀중한것을 그에게 남겨주고싶었으나 손거울 밖에 없었다. 서로 잊지 말자는 다정한 약속도 없었다.

《춘심아, 잘 있어!》

총각은 목메인 음성으로 퉁명스레 한마디 남기였고 처녀는 눈물속에 고개를 끄덕였을뿐이다.…

그렇게 헤여졌던 그들이 오늘 이렇게 만났다.

춘심은 군복을 입고 총을 멘 홍구의 모습에서 잠시도 눈길을 떼지 못했다. 너무도 상상밖의 모습이였다. 전날에 너들너들한 넝마를 걸치고 다니여서 《닭털》이라는 치욕의 별명으로 불리우던 홍구의 신수가 이렇게 달라질수가 있을가? 홍구를 그리워하던 나머지 환상속에 떠오른 그에게 이끌려가는것 같았다. 홍구가 먼저 말이라도 하였으면 좋으련만 내처 침묵속에 걷고있다. 제먼저 말을 건늬여보고싶었지만 선뜻 입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 홍구의 모습이 엄엄했다. 꿈길을 가듯이 홍구를 따라 자욱을 맞추었다.

얼마쯤 걸었을 때 기와집 울타리밖에 서있는 느티나무가 나타났다. 집의 풍치를 돋구려고 기른 나무일터인데 다행 그밑에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나무그늘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춘심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홍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춘심은 꺼지듯 길게 한숨을 토했다. 그리고는 서서히 눈길을 들어 홍구의 모습을 다시한번 훑어보았다.

《제가 먼저 말할게지. 거기선 어떻게 이렇게 되였나?》

홍구는 지나온 경위를 말하기 시작했다. 만주에서 겪어야 했던 고생과 해방직후 평양에 나와 몇달동안 상두막에 살던 고생스럽던 생활을 필치였다.

《그러던 어느날 일성장군님께서 서기산속의 그 상두막에

자기네 일가의 생활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그날이 불현듯 떠오르자 홍구는 목이 메였다.

춘심은 너무도 놀라운 사실에 숨을 흑 들이그으며 홍구의 떨리는 입귀를 지켜보았다.

홍구는 울대뼈를 몇번 실구고 뒤를 이었다.

춘심은 홍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격했다. 장군님과 녀사님께서 홍구에게 베푸신 은정이 그대로 자기의 가슴에 젖어드는듯 했다.

《그래서 이렇게 몰라보게 딴 사람이 되였구나!》

《사실 난 두분의 보살피심속에 이 세상에 두번 다시 태여났어. 짐승처럼 살던 홍구는 상두막의 그 상여에 실려서 딴 세상으로 가버리고 사람답게 사는 김홍구가 새로 태여났단 말이야.》

그 말의 뜻을 새겨보듯 하늘 한끝을 망연히 바라보던 춘심이가 물었다.

《어머닌 잘 계시나?》

《잘 있어. 우리 어머니도 춘심이를 만나면 무척 반가워할거야.》

《나도 보고싶어. 인젠 퍽 늙으셨겠네.》

《춘심이 아버진 잘 계시나?》

춘심은 대답이 없었다.

홍구는 춘심의 눈에 불시로 비애가 흐르는것을 보았다.

《잘못되였나?》

다시 물었다.

《아버진 자살했어.》

《자살이라니?》

《그 집에서 차압을 당할 때 우리 집도 차압을 당하지 않았나.》

《그랬었지.》

《그 집에서 도망을 친 이튿날이였어. 선주가 순사를 데리고 와서 우리 집도 도망할 생각을 말라면서 으름장을 놓고 가장집물을 날라가던 나머지 가마뿌리까지 뽑아갔어. 그리고도 진 빛이 적지 않다면서 나까지 자기 집 종으로 끌어갔어. 그날 밤 아버지는 서슬을 마시고

홍구는 부지중 무릎에 세운 총대를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련민과 분노가 폭발하며 총대를 잡은 손이 떨렸다.

《난 춘심이네도 멀리 타곳으로 도망을 친줄 알았더니 그렇게 되였구나. 그래 지금은 어데서 살아?》

《방금 말하지 않았어. 선주네 집에 끌려갔다구.》

《해방이 된지 언젠데 아직 그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있단 말이야?》

홍구는 의분이 끓어올라 버럭 성을 냈다.

춘심은 흠칫 놀랐다. 마주보는 눈빛에 보는 사람의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애수가 비꼈다.

홍구는 곧 자신을 후회했다. 평양거리에서 기양호를 만났을 때 바보스럽게 기를 못 폈던 때가 돌이켜졌다. 그날 안타까운 의분으로 눈물을 머금고 호되게 꾸짖어주시던 김정숙녀사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녀사의 꾸준한 교양이 아니였다면 자기 역시 오늘의 춘심이와 다를바 없을것이다.

《춘심이.》

부드러운 어조로 불렀다. 손을 뻗쳐서 괴로운 마음을 어루만지듯 가늘게 파동치는 춘심의 어깨를 쓰다듬어주고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용기는 없었다. 안타까운 심정을 말마디에 담으며 계속했다.

《인제는 세상이 뒤바뀌여서 우리같은 사람들이 나라의 주인으로 되였단 말이야. 버젓이 고개를 들고 살아야지. 아직 종살이를 하다니

《선주도 나를 해방전처럼 마구 구박하지는 못해.》

《그자는 지금 뭘하고있어? 왜놈세상처럼 날치지야 못하겠지?》

《배들을 모두 시상공회에 들여놓고 거기서 무슨 위원직을 맡고있다나봐.》

《그러니 갑자기 애국자로 둔갑을 했군. 춘심이, 그자는 우리의 원쑤야. 춘심이 아버지가 왜 서슬을 마시고 자살을 했겠나? 기양호놈의 등쌀에 못 견뎌서 그랬지. 그런데 그놈의 집에 아직 있다니 한심해. 당장 뛰쳐나오라구!》

춘심은 원망과 애원이 어린 눈길로 홍구를 바라볼뿐 말이 없었다. 홍구의 권고를 받아들일만 한 자각도 없었지만 당장 그 집을 뛰쳐나오면 몸을 담글 곳이 없었다. 무작정 다몰아대는듯 하여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춘심이도 기양호의 조카 기도선이를 알지?》

홍구는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덮쳐잡으며 물었다.

《알지 않구.》

《그놈이 내 다리를 쏘았단 말이야.》

《그래?》

춘심은 소스라치듯 놀랐다.

홍구는 그놈과 대결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가 갈리도록 분노가 치밀어서 말마디들이 자꾸 동강났다.

《그놈이 그랬구나!》

조용히 듣고난 춘심의 눈에도 서리발이 어렸다. 다른 사람이 아닌 홍구를 쏘았다는 사실이 그에게도 격분스러웠다. 그는 일순 생각을 더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놈은 해방후 두달만에 남포에서 사라졌어. 그후로 이따금 꼭 밤에만 자기 삼촌을 찾아와. 그들은 식구들도 따돌리고 골방에서 무슨 공론을 했어. 방금 거기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보니 아무래도 수상쩍어.》

《그놈이 다시 나타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안서에 알리라구. 백번 잡아 죽여야 할 놈이야.》

춘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홍구는 너무 시간을 지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녕 헤여지고싶지 않지만 학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수첩을 한장 찢어서 연필로 자기의 주소를 적어주었다.

《이 주소로 편지를 하라구.》

춘심은 종이를 받지 않고 말없이 홍구를 놀란 눈길로 바라보았다.

《왜 그래?》

《거기선 글을 쓸줄도 아나?》

홍구가 글을 쓸줄 안다는것이 춘심에게는 놀라왔던것이다. 두번다시 딴 사람을 대하는듯 하였다.

《그래 춘심인 아직 글을 모르나?》

춘심은 대답없이 얼굴을 붉혔다. 홍구는 곧 자기의 물음이 지나쳤다는것을 깨달았다. 김정숙녀사의 가르치심이 없었다면 자기도 아직 문맹자로 남아있을런지 모른다.

《지금 문맹퇴치사업이 활발히 벌어지는데 춘심이도 글을 배우라구. 이 주소를 간수했다가 글을 깨친 다음에 다문 몇자라도 나한테 적어보내라구. 그렇게 약속하지?》

춘심은 종이를 받아서 품속에 간수했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손거울을 꺼내여 자기의 얼굴을 비쳐보았다. 홍구가 여러해전에 기념으로 준 그 손거울이였다. 작별의 그날에 홍구와 자기는 처지가 같았다. 그러나 상봉의 오늘에는 아득한 거리감을 느끼였다. 홍구에 비해 여러모로 자기는 짝이 기울었다. 그것을 애달프게 확인하며 한동안 거울속에 비낀 자기의 얼굴에 시선을 멈추었다. 간격없던 옛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반면에 춘심의 손에서 손거울을 보았을 때 홍구는 가슴 한귀가 저릿해왔다. 그것을 여적 소중히 간직하고있다는 사실이 그 어떤 설명으로써도 대신할수 없는 춘심의 마음을 말해주었다. -춘심이는 그 손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를 생각했을것이다!- 애절한 정과 련민이 솟구치며 호흡이 빨라졌다. 얼핏 춘심이의 말을 비쳤을 때 그도 살아있으면 홍구동무를 그리워할것이라고, 후날에 가슴아픈 상처를 남기지 말고 그를 기다려보라고 하시던 김정숙녀사의 말씀이 되새겨졌다. 오늘을 예견하고 그런 당부를 하셨을것이다.

홍구는 덥석 손거울을 든 춘심의 손을 감싸쥐였다. 손거울에 자기의 얼굴도 비쳐보고싶었다. 춘심의 얼굴만이 보일뿐이다. 길게 팔을 뻗쳤다. 그러자 서로가 볼을 대이다싶이 한 두사람의 얼굴이 거울속에 동시에 드러났다. 후두두 가슴이 설레였다. 춘심이의 나긋한 팔이 어깨에 휘감기는것을 황홀한 의식속에 감촉했다. 자기 비하의 애수가 안개발처럼 서렸던 춘심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안도의 미소가 피여올랐다. 홍구도 히뭇이 따라웃었다. 거울속에 비친 두 청춘의 웃음에는 그들만이 알고있는 눈물의 과거와 비로소 오늘에 찾은 사랑의 행복이 비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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