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3 장

7

 

(1)

 

김성국은 가벼운 걸음으로 선박수리소건물을 나섰다. 이곳에 왔던 일이 예상외로 쉽게 풀리였다. 수리소에서는 자금만 대여주면 파손된 발동선 두척을 수리해주겠다고 하였다. 그 배들에 소구경포와 기관총을 설치하면 경비정으로 쓸수 있을것이다. 두척의 경비정만 마련되여도 현재로서는 대단한 해상무장력을 갖추는셈이다.

정문을 나선 그는 나무줄기에 매여놓은 밤빛말의 볼편을 다독여주었다. 기분이 좋을 때면 말을 애무해주군 하였다. 주인의 감정을 리해하였는지 말은 눈을 슴벅이며 대가리를 주억거렸다. 건국청년학교시절부터 타고다니던 정든 말이였다. 특별경비대장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평양의 밤거리를 순찰할 때 그 말을 타고 아슬아슬한 시련의 고비를 여러번 넘었다.

수상보안대를 조직할데 대한 임무를 받고 남포로 내려올 때 그 말을 타고왔다. 다정한 전우처럼 헤여지고싶지 않았다.

김성국은 말고삐를 틀어잡고 안장우에 올랐다. 말은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춤이라도 주듯이 률동적으로 자욱을 옮겼다. 그 률동에 가볍게 몸을 흔들며 그는 수상보안대의 사업을 두고 생각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서해수상보안대장으로 김성국을 임명하시면서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 나라에서는 해안보안이 나라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특별히 중요하오. 수상보안대조직을 서둘러야겠소. 수상보안대는 해상경비를 기본으로 하면서 배들의 무질서한 항해를 단속하고 바다로 출몰하는 반동들의 준동을 미연에 적발해야 하오.

나는 성국동무가 임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책임적으로 사업해주기를 바라오. 여러군데 부상을 입었던 동무에게 보다 무거운 새 과업을 주는 내 마음은 가볍지 않소. 그러나 어쩌겠소.적임자를 물색하다가 이미 반동놈들과의 투쟁에서 경험을 쌓은 동무가 서해안의 보안사업을 책임질수 있다고 생각했소. 그런데 동무에게 해상보안에 필요한 경비정은 한척도 줄 조건이 못되는구만. 현지에 내려가 상선이나 어선을 개조해보시오.

나는 조만간 동해안에도 수상보안대를 조직할 결심이요. 수상보안대들은 앞으로 창건될 정규적인 해군무력의 핵심을 이루게 될거요.》

이렇게 말씀하신것이 지난 6월 5일이였다. 이날이 후날 우리 나라의 해군절로 되리라는것을 당시의 성국으로서는 알수 없었다.

아무튼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훌륭히 수행하리라는 불타는 결의를 안고 남포로 내려왔다. 그의 지나온 생활은 바다와 인연이 없었다. 생소한 환경에서 사업을 하여야 했다. 대오를 꾸리고 장비를 갖추는 그 모든 사업을 령으로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만큼 고심도 많았고 애로와 난관도 많았다. 그러나 완강한 의지와 조직적수완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수상보안대를 꾸려나갔다. 그 과정에 뜻하지 않았던 행운이 있었다. 제련소에 있던 적산품금괴를 넘겨받았던것이다. 그 금괴는 수상보안대를 꾸리는데 요긴한 자금으로 쓰일수 있었다. 방금전에 발동선수리자금을 담보할수 있은것도 그 금괴를 가지고있기때문이였다. 참으로 귀중한 밑천이여서 자기 방의 철궤속에 간수했다. 금괴를 파는데 물계가 트이지 못하다보니 쉽게 처분을 할수가 없었다. 여차하면 나쁜 놈들에게 협잡을 당할수도 있었고 눅거리로 팔릴수도 있었다. 제값을 받아서 한푼이라도 아껴가며 써야 하겠기에 여적 보관하고있었다. 그 돈으로 배들을 수리할뿐아니라 필요한 설비와 후방물자들도 갖추어야 했다. 무엇을 사들이고 무엇을 마련할것인가? 금괴를 두고 여러가지 구상을 펼쳐보며 수상보안대로 돌아왔다.

《대장동지!》

생각에 잠겨 현관에 들어서는데 부름소리가 들리였다. 걸음을 멈추고 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군복차림에 총을 멘 청년이 다가오고있었다. 수상보안대원은 아니였다. 첫눈에는 누군지 알수 없었다. 청년은 거수경례를 하며 반기였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아니, 이게 누군가!》

비로소 상대를 알아보았다. 김홍구였다. 머리속에는 상두막에서 미역춤같은 람루를 걸쳤던 홍구의 모습이 지을수 없는 인상으로 남아있었다. 그후로는 전국청년학교에서 드바쁜 나날을 보내다보니 별로 그를 만나본 일이 없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달라져서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잔뜩 주접이 들고 형색이 말이 아니던 전날의 홍구가 지금은 군복차림의 어엿한 모습으로 앞에 나타났다. 차림을 보니 평앙학원 학생이 분명했다.

《동무가 어떻게 여기에 왔나?》

《학원에서 수상보안대에 가서 통신선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대장동지가 주겠다고 승인을 했다더군요. 그런데 창고장이 그런 지시를 받지 못했다면서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장동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참이였습니다.》

《아, 내가 깜박 잊었댔군.》

성국은 학원의 책임일군과 그런 약속을 했었다. 그랬으나 분주한 일에 다몰리는통에 창고장에게 미처 지시를 못하였다.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소. 내 방으로 어서 들어가자구.》

홍구를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갓 조직된 수상보안대 대장의 사무실은 소박했다. 낡은 책상이 놓이고 그옆에 철궤 하나가 서있었다. 성국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홍구와 마주앉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전혀 몰라보겠구만!》

다정히 물었다. 홍구가 장군님과 녀사님의 곁에서 지낸다는것은 건국청년학교시절에 얼핏 들은바가 있었지만 그의 성장이 너무도 놀라왔던것이다.

장군님과 녀사님덕분에…》

홍구는 돌이켜볼수록 감격에 목이 메는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서야 더듬거리며 뒤를 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김성국은 자신의 지난날이 회상되였다. 서로 시기는 다르지만 두분의 깨우침과 보살피심속에서 재생의 길을 걷게 된 자기와 홍구의 생활이 어쩌면 그리도 비슷할가. 녀사께서 첫 군복을 지어주신 사실, 더구나 원동훈련기지에서 두분께서 자기를 곁에 두고 건강을 회복시켜주시면서 군정학습을 지도하시던 생활은 구체적인 세부까지도 홍구의 경우와 비슷한데가 많았다.

《홍구동무도 그렇지만 나도 장군님과 김정숙동지가 보살펴주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내가 있을수가 없소.》

홍구의 이야기를 듣고난 성국은 밀려드는 감회에 가슴이 후더워졌다. 정녕 홍구의 성장에서 자신의 과거를 보는듯 했다.

《그렇습니까?》

홍구는 눈을 빛내이며 반문했다. 항일투사인 상대가 자기의 지나온 생활과 공통점이 있다는것이 놀라운 모양이다.

김성국은 방불히 련상되는 하나의 사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942년 5월이였소. 훈춘현일대에서 소조활동을 하던 나는 련락장소에 있던 사람이 변절하는통에 적들의 총탄에 여러군데 부상을 당했댔소. 동무들과 함께 숲속에 몸을 숨겼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조금도 운신할수가 없었소. 소조원들에게 나를 남겨두고 장군님께 돌아가 정형을 보고해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떠나가지 않았소. 내 이마에 권총을 가져가며 떠나지 않으면 방아쇠를 당기겠다고 해서야 동무들은 초막을 지어주고 눈물을 뿌리며 떠나갔소. 나를 업고 가다가는 모두가 잘못될 형편이였으니까.홀로 남은 나는 어차피 죽을 몸이니 고통없이 죽자고 공작용으로 품고다니던 아편덩이를 먹어버렸소. 의식을 잃고 며칠이나 지냈는지는 알수 없었지만 정신을 차리고보니 상처마다에 구데기가 하얗게 쓸었더군.

장군님께서 나를 구원해주시려고 대원들을 보냈는데 그들중에 의학을 좀 아는 동무가 구데기덕분에 염증이 번져지지 않았다면서 다행이라고 하더군. 뼈에 시커먼 가죽만 남은 내 몰골은 산 사람이라고 할수 없었소. 담가에 실려서 훈련기지로 돌아왔을 때 장군님께서는 지체없이 나를 쏘련군병원에 입원시켜주시였소. 해를 넘기며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할 때 병원에서는 전투능력완전상실이라는 의학적감정을 우리 사령부에 보내여왔소. 여러군데 뼈가 상하고 두손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으니까 그럴수밖에 없었겠지. 부대로 돌아온 나는 절망했소. 다른 전우들은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앞두고 맹렬히 군정훈련을 하고있는데 나는 대오에 서지 못하고 해방의 날을 맞이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더군.

장군님께서 나를 위로해주셨소. 락심하지 말라면서 저승문전까지 갔다가 염라대왕의 뺨을 치고 돌아온 성국이가 아닌가, 병원에서는 살려내기 어렵다고 하였지만 이만큼이라도 회복되지 않았는가고 하셨소.

그때 곁에 서계시던 김정숙동지께서 나를 사령부에 두고 몸이 추서도록 자신께서 돌봐주면 어떻겠는가고 하시자 장군님께서는 적극 지지하시였소.

이렇게 되여 나는 두분의 곁에서 생활하게 되였소. 홍구동무가 학원에 오기전까지 그랬던것처럼 말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나의 건강을 회복시켜주시려고 씨비리토산 록용을 비롯해서 좋다는 약은 다 구해다주시였소. 끼니도 손수 따로 지어주시고는 내가 밥을 다 먹는것을 보시고서야 상을 거두군 하시였소. 당시는 쏘도전쟁이 한창이여서 원동지구의 쏘련군대나 국제려단의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웠소. 장군님께서도 대용식품이 섞인 검은 빵을 잡수시며 훈련을 지도하시였소. 후에 사령부취사원을 통해 그 사정을 알게 된 나는 가슴을 쳤소. 나는 사람이 아니였구나. 자신에 대한 저주와 원망이 끓어올랐소. 그날 점심에도 김정숙동지께서는 흰쌀밥에 구운 연어를 따로 차린 나의 밥상에 올려주셨소. 그때 내 마음이 어떠했겠소. 인제부터는 사령부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겠다고 부르짖으며 밥상을 받지 않고 벌떡 일어섰소. 그 순간 김정숙동지께서는 엄한 음성으로 손아래동생을 부르듯이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따로 식사를 보장해주라는것은 장군님의 지시였어, 장군님의 그 심정을 모르고… 이 누나의 성의도 모른다면 성국인 그야말로 사람이 아니라고 하시였소.

나는 도로 밥상에 마주앉아서 흐느끼며 밥술을 들었소.

건강이 호전되기 시작하자 나는 장군님과 김정숙동지로부터 개별훈련을 받았소. 매일 늦어돌아오시는 장군님께서는 정치학습을 지도해주시였고 김정숙동지께서는 군사훈련을 지도해주시였소. 이렇게 훈련진도를 따라가게 되였지.

강상호랑 동무를 인차 평양학원으로 보내자고 했다지만 그때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소. 김경석동지랑 나를 후방병원에 보내자고 제의하였다는거요. 장군님과 김정숙동지의 수고를 생각해서였지. 그런데 두분께서 완강히 반대하셨다오. 홍구동무의 경우처럼말이요.》

이야기를 마치고 깊은 정회에 잠겨 창밖을 바라보던 김성국은 머리를 돌렸다. 팔을 뻗쳐서 생각깊은 낯빛으로 앉아있는 홍구의 손을 더듬어잡았다.

《홍구동무, 우리 어데서나 그 은혜를 잊지 말자구!》

《알겠습니다!》

성국은 새로운 결심이 어리는 홍구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절절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산에서 싸울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모든 면에서 우리들의 본보기였어. 나는 언제나 김정숙동지를 마음과 행동의 거울로 삼고있소. 이따금 대원들에게도 강조하지. 우리가 장군님의 전사로 된다는것은 바로 김정숙동지를 따라배운 전사로 된다는것을 의미한다고 말이요. 나는 홍구동무도 그것을 명심하리라고 믿소.》

《참으로 귀중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자, 그럼 창고로 가기요. 통신선을 타줄테니까.》

김성국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련락병을 시켜서 창고장에게 지시를 전달해도 되겠지만 권선기를 직접 홍구에게 지워보내고싶었다.

김홍구는 깊은 충격의 여운에 휩싸인채 그의 뒤를 따랐다.

 

×

 

수상보안대를 떠난 홍구는 남포시내에 나섰다. 머리를 곧추 들고 힘있게 걸었다. 김성국의 절절한 당부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자각이 가슴에 넘치였다. 둥실한 얼굴에는 혈조가 번지였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였다. 군복차림의 름름한 체구에 총을 메고 권선기를 진 그의 모습이 돋보였던것이다. 어떤 처녀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기도 하였다.

《야, 멋있다야.》

《평양학원 학생인것 같애.》

방금 곁을 지난 두 처녀의 속삭임이 들렸다.

홍구는 들레이는 마음을 누르며 내처 걸었다. 되돌아본다면 자기의 체면이 깎일것 같이 생각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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