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3 장

2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성당의 뾰족한 종각과 지붕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저녁기도의 종소리가 울린것은 3시간전이였다. 하느님께 축복을 빌던 신자들은 집으로 돌아가 깊은 잠에 들었다. 어데선가 개짖는 소리가 이따금 들릴뿐 사위는 고요했다.

곁에서 보면 성당도 안식에 잠긴듯싶었다. 그러나 지하실에서는 잠들지 않은 사나이들이 화투놀이를 하고있었다. 신자들이 아니라《멸공단》패거리들이였다. 지종수가 지난날 세번인가 그들에게 일장훈시를 한것도 이 지하실에서였다. 그가 나타날 때면 방안에 수십명 패당이 들어찼다. 하지만 지종수가 오기로 예정되지 않은 지금은 다섯명뿐이다.

《열다섯끝 매조가 푸르릉 날아간다.》

《스무끝 공산명월이 두둥실 떴다.》

《에라, 선심 썼다. 흑싸리깍지 너나 먹어라.》

겨끔내기로 화투목을 뽑아들고 팔이 빠지도록 바닥에 내려쳤다. 도박이 아니였다. 행동대장을 기다리는 지루감을 덜기 위하여 벌린 놀음이였다. 그러나 돈을 대고 판을 벌릴 때처럼 눈들에 달이 올랐다. 이밤에 벌려야 할 방화가 그들모두에게 전에없던 긴장감을 주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어야 한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여보려고 선소리를 치며 뒤번져지는 화투목에 신경을 집중했다. 새된 소리를 가늘게 지르며 불길을 뿜는 카바이드등이 그들의 그림자를 벽에 그리였다. 그것은 성당벽화에 그려진 악마들의 형상을 련상시켰다. 실내에는 등불연기와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곰팡내와 휘발유냄새가 엇섞여 맴돌았다.

화투판에 끼우지 않은 한 사나이는 휘발유통옆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었다. 좁은 이마밑에 오목하게 박힌 모밀눈이 멍하니 천정을 겨누고있었다. 남포에 고향을 둔 기도선이였다. 인제는 섭쓸린지가 여러달이 되지만 한패당의 평양태생들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었다. 삼촌 기양호의 우격다짐이 아니였다면 평양에 올라오지 않았을것이다. 해방전에 신세를 톡톡히 졌으니 삼촌의 말을 끝까지 거역할수 없었다. 기도선은 어려서부터 도적질에 남다른 흥미를 가지였다. 남의 눈을 속이는 아슬아슬한 체험과 훔친 물건을 바라볼 때의 성취감은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쾌감을 주었다. 사람으로 제일 못할짓이 도적질이라고들 하지만 기도선에게는 도적질이야말로 천성에 맞는 놀음이였고 락이였다. 해방되기 4년전이였다. 기도선은 은행을 털려고 했는데 그 놀라운 솜씨에도 불구하고 일이 꼬일 때라 현장에서 체포되였다. 도적미수라고 할수 있었지만 재판 1심에서 10년의 중형을 받았다. 삼촌이 여기저기 목돈을 찔러가며 교섭을 한 덕에 최종판결에서 5년으로 감형이 되였다. 그는 형기를 한해 앞두고 해방을 맞아 감옥에서 풀려났다. 비록 잡범이였지만 일제감옥에서 콩밥을 먹었다는 사실이 애국자로 둔갑할수 있는 밑천으로 된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열렬히 해방만세를 부르고 친일분자타도를 부르짖었다. 수감되였던 감옥의 조선인 간수를 반주검이 되도록 때려주기도 하였고 배운 솜씨가 있어서 적산품을 적지 않게 훔쳐내기도 하였다. 이래서 해방이 좋구나! 사는 멋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당분간이였다. 인민위원회가 조직되면서 사회의 질서가 점차 잡히였다. 제멋대로 살기가 어려웠다. 인민위원회나 공청에 머리를 디밀어보려고 했지만 뜻을 이룰수 없었다. 왜놈의 감옥밥을 먹었어도 그를 애국자로 여겨주지 않았다. 손바닥만 한 남포바닥에서는 과거의 경력을 속일수 없었다. 그러던차에 삼촌이 불렀다.

《도선아, 누구도 너를 믿어주지 않지만 나는 네가 큰 사람이 되리라고 믿는다. 지금은 반공이 애국의 길이다. 평양에는 이미 공산주의를 박멸하기 위한 지하조직이 무어졌다. 그쪽과 내 이미 줄을 톺아놓았으니 너는 평양에 올라가서 <멸공단>에 몸을 묻어라. 알겠느냐?》

기도선은 어정쩡한 낯빛으로 삼촌을 바라보았다. 전혀 뜻밖의 권고였다. 여태껏 그 무슨 리념이나 신앙을 가져볼 생각이 없었다.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이 저마다 애국자로 자처하기에 자기도 덩달아 어깨를 살구어보았을뿐이다. 그런데 《멸공단》에 들라니 너무도 뜻밖이였다.

《왜 말이 없느냐?》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나한텐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내가 왜 <멸공단>에 든단 말이예요?》

《이런 미물같은 녀석 봤나. 아무리 도적질밖에 배운것이 없는 놈이라도 정치시국이 첨예한 형세를 펼치는 이때 그따위 맹물같은 수작을 한단 말이냐. 공산주의가 되면 네가 익힌 도적질솜씨도 아무 소용이 없어! 쏘련에서는 도적놈의 손을 아예 잘라버린대. 알기나 하니? 너와 난 어차피 공산주의와는 피를 물고 싸워야 해!》

《일본함대에 뭉치돈을 기증해서 <천황>으로부터 금시계를 하사받은 삼촌이야 그래야 하겠지만 나야 왜 그러겠어요?》

삼촌의 얼굴이 험악하게 이지러졌다. 동시에 그의 손이 번개치듯 기도선의 뺨으로 날아들었다.

《어따대고 그따위 수작질이냐. 네놈이 나한테서 진 신세가 큰산같은데 그렇게 엇선단 말이냐. 배은망덕한 이놈, 내 집에서 썩 나가라.》

기도선은 얼얼한 볼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숙였다. 재판을 받을때 감형을 시키려고 아낌없이 돈을 처넣은 삼촌의 은혜를 잊을수가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장질부사로 부모들이 돌아간 후로 오늘까지 10여년을 삼촌의 집에 덧얹혀 살고있다.

《삼촌, 내가 잘못했어요. 분부대로 하겠어요.》

그로부터 사흘후에 하관이 넓은 30대의 사나이가 삼촌의 집에 왔다.

《도선아, 인사를 해라. 평양에서 온 한룡백군이다. <멸공단>단장의 중임을 지니고있다.》

삼촌이 소개했다. 기도선은 손님을 본 기억이 있었다. 한룡백은 룡강 대지주의 아들이였다. 삼촌과 지주와는 면식이 두터워서 상종하는 일이 많았다. 언젠가는 지주가 아들을 데리고 삼촌네 집에 들렸던 일이 있었다. 한룡백도 그때의 기억을 더듬었는지 시죽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이미 구면이지. 손잡고 일해봅시다.》

첫 인사가 오고가자 그는 이렇게 계속했다.

《기양호씨에게서 도선군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들었소. 도선군이 익힌 놀라운 재주가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하오. 그 재주를 발휘할 때가 되였소.》

기도선은 번쩍 귀가 열렸다. 듣기 좋게 말을 하는 재주란 도적질솜씨를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앞으로 몸에 맞는 과업을 주십시오. 힘껏 해보겠습니다.》

곁에 앉은 삼촌은 흡족한듯 크게 한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네가 또 한가지 해야 할 일은 평양과 남포사이에 련락을 하는것이다. 내밑에서도 네가 할 일이 없지 않지만 굳이 평양으로 보내는것은 그때문이다. 련락임무야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맡길수 없지 않느냐. 피밭은 너야 어느 경우든지 나를 배신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이날로 기도선은 한룡백을 따라 평양으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지금 누워있는 성당의 지하실에서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고 《멸공단》에 가입했다. 그후 지금까지는 주로 비밀문서를 훔쳐오든가 삼촌에게 한룡백의 지시를 전달하는 일을 하여왔다. 그러다보니 단독으로 움직이는 때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의 사정은 그전과 달랐다. 여럿이 작당을 해서 움직여야 했고 도적질이 아니라 방화를 해야 했다. 이끝저끝 몸에 맞지 않는 오늘 밤의 일이 알수 없는 불안을 가져왔다. 그래서 화투판에 끼여들지 않고 천정만 바라보고있는것이다. 과연 어느 건물에 불을 지를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대원들에게는 방화에 필요한 분담이 떨어졌을뿐 대상은 알려주지 않았다. 행동을 개시할 때까지는 철저한 비밀이 보장되였다. 물론 오늘 밤의 행동을 지휘하는 조장만은 알고있을것이다. 회색잠바를 입은 조장은 화투를 치면서도 자주 시계를 보고있다. 한룡백을 기다리고있었다.

드디여 복도에서 발자국소리가 울렸다.

서둘러 화투목을 거두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도선은 횡대로 정렬한 대오의 맨 끝에 섰다.

조심히 출입문이 열리더니 한룡백이 들어섰다. 한룡백은 발을 벌려딛고 서서 한사람한사람 뚫어지게 주시했다. 매 사람의 표정과 자세에서 오늘 밤에 발휘해야 할 투지를 확인해보는듯 했다.

《오늘 밤 원래의 계획은 저택을 기습하고 방화하는것이다. 이 거사는 멸공투사들인 우리가 생명도 서슴없이 바쳐 반드시 수행해야 할 초과제이다. 북조선지도부를 제거함으로써만 우리의 <멸공위업>이 실현될수 있기때문이다.》

그는 악에 받쳐 숨이 가빠오는지 소리가 나게 코김을 내불었다.

부릅뜬 눈에서는 살기띤 광채가 번뜩였다. 토지개혁이 있은 후부터 그의 신경은 극도로 곤두섰다. 룡강의 부모들이 토지를 몰수당하고 타곳으로 쫓겨났던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뜻을 이룰수가 없다. 현지의 정황을 알아본데 의하면 저택의 경비가 철통같다. 나는 제군들을 무모한 희생에로 내몰고싶지 않다. 금싸라기처럼 아껴야 할 <반공투사>들이기 때문이다.》

대오에서 일시에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그것이 한룡백의 격분을 폭발시켰다.

《웬 한숨이냐? 너희들로서야 응당 죽음을 각오하고 거사를 하자고 해야 할것 아니냐.》

으드득 이발을 갈며 주먹을 떨었다.

《저희들은 거사가 취소된게 아쉬워서 한숨을 쉬였던것입니다. <멸공위업>에 한목숨 바칠것을 혈맹한 저희들이 아닙니까.》

조장이 용기를 내여 변명했다.

《그렇다면 좋다. 나는 저택을 기습하지 못하는 대신 부관장의 집을 불살라버리기로 결심했다. 저택에서 부관장네 집은 얼마간 떨어져있기때문에 경위대의 시선이 잘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오늘 밤 방화에서 경험을 쌓고 조만간에 저택을 기습해야 한다.

부관장은 항일빨찌산출신이다. 스미스각하는 북의 군건설에서 핵심적역할을 하는 그들을 한명이라도 제거하는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 그런데 그들중 대다수는 지금 군사학교들과 현지에 나가있다. 해당한 곳에서 활동하는 우리 동료들이 그들에게 손을 쓸것이다. 평양에 남아있는 항일빨찌산들을 제거하는것은 우리의 임무이다. 오늘 밤 거사는 북의 군건설을 파괴하는데서도 자못 그 의의가 크다. 알겠는가?》

《알았습니다.》

정렬한 패당은 소리가 나게 발꿈치를 부딪치며 우렁차게 화답했다.

《성공을 믿는다.》

한룡백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높이 쳐들었다.

《멸공필승!》

그의 선창에 패당은 주먹을 들고 따라웨쳤다.

멸공필승!》

 

×

 

아니, 저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김홍구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김정숙녀사를 모시고 저택주변을 돌아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던 걸음이였다. 부관장의 집주변에서 수상한 그림자들이 얼른거렸다. 눈에 총기를 모아 지켜보니 희미한 별빛아래 분주히 서두는 사람들의 형체가 드러났다. 벙긋! 불시로 망막에 한줄기 광채가 날아오는가싶더니 불길이 솟았다. 불길은 순간에 집전체를 휩싸버렸다.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른것이 분명했다.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여서 어리둥절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혀왔다. 저도 모르게 《불이야!》하는 벽력같은 웨침이 입밖으로 터져나갔다. 와뜰 놀란 몇놈이 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화광에 드러난 그들의 얼굴에서 한놈을 알아보았다. 기도선이였다. 기양호한테 집을 차압당할 때 삼촌의 바지가랭이에 묻어다니며 밥가마까지 뽑아가던 그놈을 잊을수가 없었다. 불량배도적놈인줄로만 알았더니 이제보니 악질반동이 되였구나! 전신의 피가 머리끝으로 치솟는듯 했다.

《이놈아, 서라!》

홍구는 도망치는 그놈을 다쫓았다. 놈들은 뿔뿔이 도망쳤다. 기도선은 단층집들이 촘촘히 들어앉은 골목으로 달아났다. 이 집, 저 집에서 개들이 짖어댔다. 홍구는 그 무엇에 걸채이며 장달음을 놓았다. 기도선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와졌다. 달리기에서는 네놈이 다리가 긴 나를 당할수가 없지. 오늘은 네놈이 내 주먹맛을 톡톡히 보아라. 너같은 놈은 내 주먹 한대면 대갈통이 부서질게다.

홍구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자기의 튼튼한 체력에 지금처럼 자부심을 느껴본 때는 없었다. 전에는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했던 용기와 힘이 솟았다. 몇달전이였다면 눈을 펀히 뜨고 반동놈들의 죄행을 보고도 지금처럼 징벌의 용기를 가지지 못했을것이다.

《네놈이 뛰여야 벼룩이지. 도선이 이놈, 서라!》

당당히 호령을 하기도 지금이 처음이다.

기도선은 10여메터앞에서 멈춰섰다. 힘이 진했는지, 추적자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통에 넋을 잃어서인지는 알수 없었다.

《이놈아, 손들고 돌아서라!》

기도선은 손을 드는척 하고 돌아서더니 이쪽으로 장총을 겨누고 발사했다. 홍구는 아래도리에 둔중한 타격을 느끼며 달려가던 서슬로 쓰려졌다.

기도선은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홍구는 다시 뒤쫓아가려고 했으나 한쪽 다리가 천근같이 무거워서 일어설수 없었다. 점점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기도선의 뒤모습을 쏘아보았다.

점차 왼쪽허벅다리가 화끈화끈 달아오르는듯 하여서 만져보았다. 끈적끈적한것이 손에 묻었다.

여기저기서 총성이 울렸다. 비상소집을 한 경위대가 놈들을 추격하는 모양이다. 홍구는 비릿한 자기의 피냄새를 맡으며 절통하게 마음속으로 뇌이였다. 저놈을 놓쳐버리다니

여럿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울린 총성을 듣고 누구들인가 달려오는 모양이다.

《홍구동무홍구동무

애타는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김정숙녀사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녀사님, 여기 있습니다!》

큰소리로 화답하려 했으나 갑자기 목이 메여왔다. 간신히 목소리가 입밖으로 터져나갔다.

녀사께서 두명의 경위대원을 데리고 다가오시였다. 어찌된 일이냐고 묻지 않으시였다. 모든것을 짐작하셨을것이다. 손전지로 상처부터 살펴보시였다. 총탄이 관통된 허벅다리에서 계속 피가 흘렀다. 녀사께서는 자신의 옷자락을 서슴없이 찢어서 상처를 싸매주시였다. 이런 때 어떻게 지혈을 시키고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계시였다. 수많은 전투들에서 부상당한 전우들을 돌보시던 경험이 있었다.

《홍구동무, 오늘 밤 큰일을 했어요. 제때에 놈들을 발견하고 소리쳤기때문에 집안에서 자고있던 사람들이 깨여나서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조금만 지체했어도 불길속에 잘못되였을거예요.》

멀리 보이는 부관장의 집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불길이 타올랐다.

《그런데 놈들을 잡지 못하고 피만 흘린게 분합니다.》

잠시후에 그는 경위대원의 잔등에 업혀서 병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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