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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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할아버님께서 인복이를 기특하게 바라보며 말씀하시였다.

《듣자니 원주녀석은 학원에서 제구실을 착실히 한다더라. 새 애기도 집걱정일랑 말고 군사를 잘 배워라. 너희들 부처가 다 총을 멘다면 얼마나 대견스러운 일이냐. 우리 가문은 대대로 총과 인연이 깊었느니라.》

《할아버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인복이는 할아버님께 공손히 머리를 숙이며 감격한 어조로 말씀드렸다.

《저 애가 언제쯤 떠나게 되느냐?》

할아버님께서 녀사에게 물으시였다.

《한달가량 지나서 원주적은이가 졸업을 하고 돌아온 다음에 떠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저 애들이 다문 며칠이라도 함께 지내겠군.》

할아버님께서는 한창나이에 늘 떨어져사는 그들이 마음에 씌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듣고보니 얼마간 마음이 놓이는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시고 인복에게 물으셨다.

《새아가, 친정에는 네 결심이 그렇다는것을 알렸느냐?》

《알리지 않았습니다.》

《인복이야 우리 집 사람이 된지 오랜데 뭐 친정에 가서 또 의논을 하겠나요. 우리 집에서 모두 찬성이면 그만이지요.》

현양신이 끼여들었다. 그러자 할아버님의 엄한 시선이 그를 겨누었다.

《모르는 소리. 출가외인이라 하지만 그런 중한 일을 놓고 친정에 가서 의논을 하지 않는다는것이 말이 되느냐?》

《그러다가 사돈님네가 반대를 하면 인복이만 속을 태울게 아닙니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알릴것은 알려야지. 자기들 모르게 새애기가 학원으로 훌 가버리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섭섭해하겠느냐.》

며느리에게 힘주어 말씀하신 할아버님께서는 인복에게 타이르시였다.

《불원간 두단리에 가서 친정부모님들께 네 결심을 말씀올려라. 친정에서 반대를 한다면 내가 걸음을 하겠다. 내 짐작이 안사돈은 어떨지 몰라도 바깥사돈은 뜻이 있는분이니까 아녀자의 몸으로 군사를 배우러 간다고 탓하지 않을거다.》

이리하여 인복은 어제 오후에 두단리로 갔다가 지금 저택의 남새밭머리에 나타났다. 그는 상글거리며 녀사께 말씀드리였다.

《할아버님 짐작이 옳았어요. 내 결심을 듣더니 아버지는 칭찬을 하시더군요. 그런데 어머니는 펄쩍 놀랐어요. 처녀라면 몰라도 시집을 간 녀자가 군사를 배우러 학교에 간다는게 당한 일이냐? 녀자야 집안일이나 하면 되는것이지. 치마를 두른 허리에 륙혈포를 찰 생각을 하고있으니 허파에 바람이 찬게 아니냐? 글쎄 이러질 않겠어요. 아버지가 호되게 꾸짖으니까 더 말을 못했어요.》

《어머니로서야 그럴수 있지. 많은 사람들은 아직 녀자들이 총을 멘다면 푼수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일로 여기고있으니까. 그래서 장군님께서 그처럼 깊이 생각하시던 끝에 인복이더러 남먼저 총을 메라고 하신거야. 아무튼 어머니도 수긍을 하였다니 반가운 일이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인복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내시였다.

《형님, 내 얼른 옷을 갈아입고 나올테니 그때까지 쉬시라요.》

인복은 쪼르르 저택으로 달려갔다. 머리를 얹었지만 사춘기의 소녀처럼 발랄한 정서와 청신한 기운을 풍겨주는 그였다. 10분도 못되여 그가 작업복을 갈아입고 남새밭으로 돌아왔다.

녀사께서는 그와 오손도손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며 김을 매시였다. 그의 정서와 기분에 감염되여서인지 혼자서 호미질을 하실 때보다 일이 수월하고 마음이 즐거웠다.

저녁해빛이 설핏해질무렵이였다.

녀사께서는 일손을 놓고 저택으로 향하시였다. 저녁밥을 지어야 할 때가 되였던것이다. 함께 호미를 놓자고 하셨으나 인복은 한고랑이라도 더 매겠다고 우기며 남새밭에 남았다.

마당에 들어서시는데 아침에 대안리로 떠났던 승용차가 들어왔다. 차에서는 운전사만이 내렸다. 장군님께서는 집무실에 남으신 모양이다. 운전사는 이쪽을 보자 무엇인가 난감해하는 기색이였다. 무슨 말인가를 할듯 했으나 선뜻 입이 열리지 않는지 시선을 떨구며 어줍게 서있었다.

장군님께서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되였어요?》

녀사께서는 마음의 긴장을 느끼며 운전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학교터전을 돌아보시고 만족해하시였습니다. 그런데 저…》

《그런데 뭐예요?》

《녀사께서 주신 삽과 곡괭이를

운전사의 난감한 기색이 어렴풋이 짐작되시였다. 그쯤한걸 가지고… 긴장해지셨던 마음이 풀리였다.

《그래 삽과 곡괭이를 잃어버렸어요?》

《아닙니다. 최용진동지한테 빼앗겼습니다.》

녀사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본 운전사는 죄스럽던 기색을 가시며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대안리로 가는 길은 다행히 자동차가 지나지 못할만큼 험한데가 없었다. 갈 때에는 삽과 곡괭이를 쓸데가 없었다. 중앙보안간부학교자리로 내정된 곳에는 여러 동의 건물이 있었다. 왜놈들이 쫓겨가면서 버리고간 건물인데 어느것이나 비여있었다.

장군님께서 현지에 도착하셨을 때에는 김책과 최용진을 비롯한 평양학원 간부들이 이미 기다리고있었다. 새로운 군사학교의 창립에 평양학원이 모체의 역할을 담당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건물들을 돌아보시면서 보수하고 수리할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교원과 학생문제를 두고 가르치심을 주시던 그이께서는 산기슭에 자리잡은 제일 아담해보이는 건물 두동도 병실로 정해주시였다.

그 건물의 뒤벽밑으로 가는 물줄기가 흐르고있었다. 눈석이가 한창일 때 산에서 쏟아져내리던 물의 한가닥이 종전의 길을 잃고 그쪽으로 곬을 잡았던것이다. 그통에 기초가 젖어들면서 뒤벽의 아래에 얼룩이 졌다.

《인차 물길을 돌려서 학생들이 오기 전에 벽체가 마르도록 하여야 하겠소.》

장군님께서 최용진에게 하신 말씀이였다. 하지만 작업을 할수있는 도구가 없었다. 한발 뒤에서 수행원들을 뒤따르던 운전사가 승용차에 싣고 온 삽과 곡괭이를 가져왔다. 최용진은 운전사의 잔등을 두드리며 기뻐했다. 운전사는 그와 함께 물길을 돌리고 벽체와 기초에 누기가 가지 않게 도랑을 팠다. 일이 끝났을 때 최용진은 삽과 곡괭이를 달라고 했다. 이제 건물보수작업이 벌어질텐데 쟁기가 하나도 없었던것이다. 운전사는 자기의것이 아니라 녀사께서 길이 험한것을 예견하여 실어보내신것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사정을 하는 투로 나오던 최용진이 무작정 삽과 곡괭이를 빼앗았다.

《그렇다면 더구나 일이 잘되였소. 돌아가서 내가 건사했다고 하오. 이것이 보안간부학교설립에 처음으로 쓰인 삽과 곡괭이로 되였다면 정숙동무도 기뻐할거요.》

《도로 주십시오. 녀사께서 늘 쓰시는 도구인데 제가 돌아가서…》

최용진은 운전사의 손을 뿌리치며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돌아가서 내가 하라는대로 하란 말이야! 네가 도대체 무얼 안다구 그래?》

더는 범접을 하지 못하리만큼 버럭 성을 냈다.

운전사는 하는수없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자기의 불찰로 소중한 쟁기를 빼앗긴것만 같아 녀사앞에서 머리를 들지 못했던것이다.

사연을 들으신 녀사께서는 밝게 웃으시였다.

《주고오길 잘했어요. 집에서 쓸 삽과 곡괭이야 또 구하면 되지요. 아까 용진동무한테서 전화가 왔댔어요.》

한껏 난감해하던 운전사가 마음을 놓고 돌아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시 선자리에서 해가 떨어지는 서켠하늘을 바라보시였다. 중앙보안간부학교가 자리잡은 곳은 저 하늘아래 어느 쯤일가? 마음같아서는 그리로 달려가서 건물보수에 아낌없이 땀을 흘리고싶으셨다. 자신의 손때가 오른 쟁기라도 거기에 쓰인다니 기쁜 일이였다. 오늘 병실뒤의 배수로치기에 요긴하게 리용되였다니 더구나 반가왔다.

최용진은 녀사께서 쓰시던 삽과 곡괭이를 학생들에게 넘겨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따라서 병실 뒤벽에 도랑을 쳐내는것으로 우리 학교의 건물보수작업이 시작되였는데 이 작업도구들이 그때 쓰이였소. 후에 작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면서 더욱 요긴하게 리용되고있소. 정숙동무가 저택에서 쓰던 도구들이요. 사연깊은 도구들인것만큼 잘 보관하면서 계속 요긴하게 쓰시오.》

학생들은 누구나 삽과 곡괭이자루를 소중히 쓸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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